[기고]'약자'를 위한 비례대표

경향신문 2015.08.27.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


여야는 지난 18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를 열고 20대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주장했던 의원정수 확대 문제는 결국 포기하고만 것이다. 


이번 여야 합의는 여러 측면에서 매우 우려되는 점이 많다. 우선 이번 합의로 지역구 의원 수는 늘어나고 비례대표 의원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헌법재판소가 인구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 간 유권자 수 편차 비율이 2 대 1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비례의원 제도를 축소·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동시에 비례대표 의원 대부분이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만약 비례대표 의원을 줄이고 지역구 의원이 늘어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해보자. 우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국회의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그동안 청년실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국회는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청년고용촉진법이 존재했지만 사실상 훈시규정만 나열되어 있을 뿐 청년들의 취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를 끈질기게 사업적 이슈로 만들고,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에 정원의 3% 이상 청년 미취업자 고용을 강제하는 법안을 만들어낸 사람이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장하나 의원이다. 

애초에 장 의원은 이 법안의 적용대상을 대기업까지 확대하려 했다. 하지만 조직적인 저항으로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장 의원은 청년들의 경제적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청년경제기본법’(가칭) 발의도 준비 중이다. 이것이 바로 초선 비례대표의 힘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입법발의 내용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국회 전진영 입법조사관의 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의원들은 주로 농림수산, 국토개발, 조세 정책에 관심이 많은 반면 비례대표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여성가족, 보건복지, 노동 분야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것들이 많다고 밝혔다. 비례대표를 줄이는 것은 곧 국회에서 약자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표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올 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 대 1(200석/100석)로 도입할 것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지역주의 완화와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선’이었다. 

이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충분히 경험한 문제다. 고향인 대구에서 서너 번의 투표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지지하는 후보자가 당선된 경험이 없다. 심지어 지지한 후보가 30% 이상 득표를 했음에도 낙선자 신세가 됐다. 대구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표는 무의미한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정치적 무관심은 늘어나고, 그 무관심은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무기로 돌아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보았다. 

물론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러 보완점이 필요하다. 그동안 비례대표를 어떤 기준으로 영입하고 또 당선 가능한 번호로 배치하는지 외부에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부적절한 공천 헌금을 매개로 부적합한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비례대표 선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비례대표 수를 늘려 온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19대 국회 동안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 등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치권의 이익을 위해 야합을 하는 순간 20대 국회에서도 이와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불행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서서히 자라난다. 정치권은 고통받고 있는 약자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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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