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이렇게 바꾸자!

“여러 학문 분야를 연구하고 지도자로서 자질을 함양하는 고등교육기관.”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대학’의 정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이를 믿는 사람이 있을까?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란, 한 사람의 학벌을 규정하는 명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해에 수십만 명의 고등학생이 좀 더 좋은 명함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중에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학벌을 얻는 학생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5%의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데도 전국의 대학은 학생 정원수를 채우지 못해 폐교를 걱정하는 판국이다. 한쪽에선 대학에 가겠다고 죽자 살자 덤비고, 한쪽에선 학생이 없어 존립이 불가능한 대학이 태반이다. 운이 좋아 상위권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취업률이 떨어지는 학과가 통폐합되고 기업이 세워진 건물로 가득 찬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기다리는 건 캠퍼스의 낭만이 아니라 치열한 학점 경쟁과 맹목적인 스펙 관리다. 오죽하면 대학교 생활을 두고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이 있을까?


2019년 10월 3일 개천절, 청년네트워크 바꿈이 기획한 ‘우리가 꿈꾸는 대학: 대학슬램’이 창비서교빌딩에서 개최됐다. 청년 당사자가 입을 모아 현행 대학 제도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우리가 꿈꾸는 대학’ 프로젝트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지난 1회차와 2회차 행사에 이어 오늘 행사는 사전 발제를 준비한 청년 발제자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학의 모습을 제시하고, 공론자에 참여한 시민 심사위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공개 경연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늘 행사에 발제자로 참석해 3등을 수상한 고등학교 3학년 이건희 씨는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었다”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이번 공개 경연은 사전 공모 형식을 도입해, 다양한 청년들의 사전 참여를 독려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오른 총 여섯 팀의 청년 발제자들은 저마다 겪은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진지하고 참신한 발제를 선보였다. 

고등학생 당사자가 말하는 ‘내가 원하는 대학’

첫 발제를 맡은 금주한 발제자는 ‘꿈꾸는 학교’를 제안했다. 자신을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소개한 금 씨는 ‘대학 무경험자로서 새로운 대학을 제시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밝히면서도, ‘현행 대학의 모습이 오로지 돈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철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주위의 만류에 부딪힌 금 씨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년에게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권리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꿈꾼 대학은 학생들의 꿈을 존중하고 그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대학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 서열화 제도를 철폐하고 다양성을 지지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발제자 이건희 씨는 대학 제도 자체가 아닌, 그중에서도 대학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수리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 씨는 현행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이 학생들의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점점 광풍처럼 불고 있는 사교육 열풍 역시 국가가 나서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주의 조장하는 주범인 사교육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입시 컨성팅이나 논술 지도 등 과도한 성행 교육을 금지함으로써 최소한의 교육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현재의 입시 제도가 재수생과 N수생이 무한 양산하여 입시 제도 자체를 비정상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그는 첫째 수능 횟수 제한, 둘째 재수학원 교육비 상한선 규제, 셋째 재수생과 현역 수험생의 분리 경쟁 등을 꼽았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대학이 몰락하지 않으려면?

또한 발제자로 나선 차희주 씨는 ‘디지털 노동 계급의 시대’, 대학의 역할은? 발제를 준비하여,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 양극화 문제’ 속에서 대학이 과연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했다. 특히 디지털 프레데터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곧 중간 지대가 소멸될 경우를 대비해 대학이 어떻게 인재를 양성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씨가 제안한 대학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첫째 문제 창조형 인재, 둘째 융합형 인재, 셋째 관계성과형 인재였으며, 공통적으로 ‘디지털 리터리시’ 능력을 갖춘 다학제적 역량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점차 확대되고 있는 ‘무크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발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하여 대학의 적립금 환수를 통한 기금마련과 교수-학생의 수평적 관계형성 및 교수 평가제 도입을 이야기하였다.

지금까지 총 다섯 개 대학에 몸담으며 대학 제도를 온몸으로 경유한 학부생이자 교직원인 이탁현 발제자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일자리가 감소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대학 교육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이른바 ‘창업과 창직을 만드는 선순환 교육’을 제시했다. 그는 ‘미네르바 스쿨’, ‘특이점 대학’, ‘에코엘42’ 등 해외의 우수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대학 역시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융복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등록금 폐지, 전면 무상교육

발제자들의 모든 발제가 끝난 뒤 시민 참여단의 냉철한 심사가 진행됐다. 한 명당 지지하는 발제팀 세 팀을 골라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팀이 우승하는 형식이었다. 참여단 모두 진지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발제팀을 고름으로써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다.

투표를 마친 뒤 이번엔 조별로 모인 시민 참여단이 ‘더 나은 대학을 위한 토론’을 진행했다. 참여단 개인이 발제자가 되어 자신이 생각하는 대학의 문제와 원인 그리고 그 대안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모든 조에서 열성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한 토론 참여자는 ‘다음 행사 때는 시간을 더 많이 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시민 참여단이 제시한 수많은 대안 역시 투표에 붙여졌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의견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대안은 ‘대학 등록금 전면 폐지 및 무상 교육화’였다. 대학의 문턱을 낮추되 졸업을 어렵게 하여 대학 교육의 내실을 더욱 쌓아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중론이었다. 


“모두가 함께 바꿔나가야 합니다”

시민 참여단의 토론이 모두 끝난 뒤 오늘 대학슬램 경연의 최종 우승자가 발표됐다. 6개 팀 중에서 공동 3등은 금주훈 씨(꿈꾸는 학교), 이건희 씨(입시제도 개선안), 이탁연 씨(창업과 창직을 만든느 선순환 교육)가 차지했으며, 공등 2등으로 차희주 씨(디지털 노동 시대의 교육)와 백지은•최유리 씨(대학다운 대학)가 올랐다.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발제자는 ‘말하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수현 씨였다. 우승을 차지한 김현수 씨는 최종 경연 우승 소감으로 “막상 대학에 입학하니 내가 생각했던 대학과 너무 달랐다. 그래서 나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함께 도와주기 바란다. 그래서 많은 것이 바뀌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오늘 개최된 ‘대학슬램’ 경연 관련 자료와 더불어 지금까지 진행된 바꿈청년네트워크의 ‘우리가 꿈꾸는 대학’ 프로젝트의 모든 발표 자료와 토론 자료는 도서, 카드뉴스,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제작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배포될 예정이다. 바꿈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교육 제도의 큰 축인 대학 제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리고 청년 당사자가 원하는 대학 제도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