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7월 16일부터 시행됨과 동시에 우리 일터 안에서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일터 속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위험과 책임소재의 외주화, 성차별, 고용구조, 업종, 근로 형태 등 노동권 사각지대 속 문제와 사례들도 다양하다.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청년이 또 죽었다.  

2016년 5월 구의역 9-4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에서 근무하던 김군은 월급 144만원 중 100만원을 적금했다고 한다. 가방에 달랑 컵라면 하나 놓고 세상을 떠난 김군의 나이는 고작 19살. 김군이 죽은 지 어느 덧 3년이 지났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2018년 12월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20살 김용균씨 홀로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사망했다. 야간에는 2인 1조로 일하게 되어있으나 규정은 무시되었다. 그 역시 구의역 ‘김군’처럼 과자와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4시간 동안 방치되었고 그의 시체가 발견된 상태에서도 4시간 더 방치되었다. 비정규직 그는 그곳 사람이 아니었다. 

이뿐만 아니다. 2011년 자동차 공장에서 뇌출혈로 사망한 청년, 2014년 자동차 하청공장에서 야간근무 중 사망한 청년, 2015년 외식업체에서 일하다 자살한 청년, 2016년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라며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문자를 남기고 자살한 청년, 2017년 마찬가지로 욕받이 부서라고 불리는 해지방어팀에서 실적압박에 저수지에 투신한 청년 등.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971명이다. 하루 2-3명 넘게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가운데 비정규직 청년들이 있는 셈이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려서 마치 정상인 것처럼 인지되는 비정규직 문제, 보이지 않아 죽기전까지는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죽는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극단99도는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서울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상상하다.’ 라는 주제로 공론극장을 개최했다. 공론극장은 연극으로 발제를 기획하고 시민들이 그 발제를 바탕으로 토론을 통해 연극을 짜서 직접 해보는 공론장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기획한 연극은 12월 초, 국민권익위원회 후원으로 대학로에서 직접 연극으로 제작되어 시민들에게 초연될 예정이다.

발제 연극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죽는다.” 라는 주제로 연극이 이어졌다. 홍승오 극단99도 대표는 “이 이야기는 본 공론극장을 기획하면서 본 <노동자, 쓰러지다> 에 나온 실제 코레일테크 산하 협력업체 노동자들 이야기에요. 원래 주간조였던 그들이 일이 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야간조로 투입되었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어요. 5명이나 사망한 큰 사고였죠. 그들은 주간조라 막차시간도 몰랐고, 사고를 낸 기관사는 선로 공사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데요. 공사 알림판도, 열차가 오는지 봐줄 감독관도 없었어요. 게다가 용역업체는 기일을 못 지키면 계약에 문제가 생기니 급하게 일 하느라 안전문제는 뒷전인거죠. 그런데도 철도공사는 자기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만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작업시간도 아닌데 왜 일을 했어요?” 이 이야기에는 비정규직과 관련해 청년, 안전, 차별 등 모든 문제가 총 망라되어 있는거 같아  발제연극으로 기획하게 되었어요.” 라고 말했다.


시민이 쓰는 연극, 당신의 선택은?

발제 연극을 보고 총 6개조로 참가한 시민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위험의 외주화(사내하청, 파견, 용역), 노동권 사각지대(특수고용-1인도급, 초단시간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비정규직 워라밸 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연극을 기획했다. 참가자들은 본인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토론을 통해 다양한 연극을 만들어 냈다. 

그 경험과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소윤씨는 “어느날 학교에서 한 학생이 제 앞에 와서 ‘선생님. 제가 엄마한테 이르면 선생님 짤리는 거 알죠?’ 라고 이야기 했어요. 앞에서야 ‘그럴 일 없어.’ 라고 했지만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사실 교무실을 쓸 수 도 없어서 프린트 하나 하는것도 눈치 보이는데 이런 차별이 사회적으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거 같아요.”

안전 관련 하청을 받고 일하는 이기석씨는 갑을관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재계약 시즌이 되면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메일, 문자 하나까지 조심해서 보내고 날을 잡아 찾아가서 인사를 해요. 담당자가 하루는 ‘왜 이런 업체에서 일하냐고, 공부 못했냐고.’ 이런식으로 말을 했어요. 그런대 사실 그 사람도 정부에서 위탁받아 사업하는 갑이자 동시에 을인데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갑을관계에서 을의 피해가 너무나 당연시 되는 것 같아요.”  

여성차별 역시 언급되었다. 최미혜씨는 “임신을 하면서 일을 그만 뒀는데, 다시 내가 일을 찾으려면 정규직은 어림도 없어요. 그래도 아기 낳기 전에는 5년차 대리에 나름 전문가였는데 육아를 거치면서 경력이 단절되면서 일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 옆에 육아휴직 후 복직한 언니가 있었는데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게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이해가 되요.”


모이고 말 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

공론극장을 함께 기획한 바꿈세상을바꾸는꿈 진한나 이사는 “한국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써야하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사용과 그로 인한 산재사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여겨지는 듯 해요. 없애야 할 문제도, 없앨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상태에서 산재사고를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은 쉽지 않겠죠. 그러나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런 공론극장이 필요해요.” 라고 말했다.

본 공론극장에 앞서 30대를 중심으로 인터뷰해 <평균 34.1세 근황 인터뷰> “너는 잘 지내는 줄 알았지.” 라는 독립서적을 출판한 백승영씨는 “청년들이 쏟아낸 고민사항은 비슷비슷해요. 이들의 하소연은 경제적 문제, 가족의 문제 등 다분히 현실적인 내용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이 걱정이 저 걱정을 낳고, 저 걱정이 이 걱정을 만들고 있어요.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로 보기보다는 청년 전체 문제의 사회적 맥락과 연결지을 필요가 있을거 같아요. 그리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렇게 함께 모여서 '말하고 듣는것' 이 우리의 삶을 개선해나가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 참가자 중 한 사람인 고준우씨 역시 엽서에 남긴 후기를 통해 “청년, 노동자 갈 길은 멀고 나오는 이야기는 항상 답답하지만(진심 노답이지만) 같이 모여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기회가 있는것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느낌입니다. 왜 힘든지도 모른 채 많은 청년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청년 노동자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져 자신들은 힘들지 않을 수 있다고, 아프지 않은 청춘을 보낼 수 있다고 꿈으로, 사랑으로 가득한 젊음을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단결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라며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