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병 :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네 번 이직 했고 다섯 번째 직장에서 일한다.

김민호 : 동네에서 목사를 하고 있다. 상가 6층에 위치한 조그만 개척 교회다

홍명근 : 시민단체에서 일한다. 경력 8년차 15개월 아기가 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김민호 : 대부분 신학생들이 중고등학생 시절 수련회에서 결단한다. 나 역시 그랬다. 대중들 앞에 서는 목사의 모습이 멋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모두가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될 수는 없겠구나, 으리으리한 예배당을 건축하고, 눈에 잘 띠는 거대한 선행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좋은 모범이 되는 선배 목회자와 교회들을 만나고 접하면서, 일상 속에 평화를 심는 소박한 일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조금은 ‘대안’이 되는 교회를 모색하고 있다.

성기병 : 제대 무렵 책을 많이 읽었다. 소설이나 에세이, 자기계발서. 책 읽은 게 아까워서 서평도 쓰고 네이버 블로그도 시작하고. 그때 나 같은 어설픈 블로거들 사이에서 유행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하나 있었다. 그 카페를 운영하던 출판사 직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부럽더라. 그저 책에 관한 직업을 갖고 싶었고 남들보다 책을 많이 아는 우월감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게 전부다. 뭔가 특별한 재주는 없고, 책으로는 먹고살고 싶고. 

홍명근 : 대학 들어가서는 흔한 문과가 그렇듯 공무원이나 언론인을 생각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스펙관리에 최선을 다했고 자기소개서에 한 줄 더 쓰려고 박원순 변호사와 백두대간을 50일 정도 종주했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산을 50일씩 타는 건 무척 힘들었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한다. 그러나 그 50일 동안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겠다.’ 고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처럼 되야겠다.’ 라고 말이다.


내 일, 이 때가 가장 보람 있었어.

성기병 : 첫 회사에서 첫 책을 만들었을 때. 가장 애정이 가는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면 담당 편집자가 신간 보도자료를 쓴다. 책과 함께 보도자료를 신문사 기자들에게 보내면 기자들이 읽고서 괜찮은 책이다 싶으면 자기네 신문 신간 소개 코너에 올려준다. 그런데 생전 처음 써본 보도자료가 신문에 실린 거다. 그것도 북섹션 1면에. 담당 기자가 ‘좋은 책 내줘서 고맙다’고 메일까지 보내줬다. 그때 기분 엄청 좋더라. 그때만 해도 신간 나오면 이렇게 무조건 신문에 소개될 수 있는 줄 알았지. 하지만 그 이후론 그렇게 크게 실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홍명근 : 개인적으로 군 PX 납품비리를 검찰에 고발했거나 1형당뇨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을 두고 식약처가 고발을 한 것을 두고 이슈화시켜 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한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결코 혼자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해서 작지만 어떤 좋은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 분들의 감사와 내 안의 느껴진 뿌뜻함이 기억남는다.

김민호 : 예배를 집례하면서, 스스로 감동받는 일이 있다. 자아도취의 경험이라 해도 좋고, 영적 체험이라 해도 좋다. 일년에 한 두번 정도 겪는 듯하다. 블로그에 매주 설교문을 게시하는데, “내가 레전드로 꼽고 싶은 설교” 라고 제목을 달아 포스팅을 한 것들이 그것이다. 또 ‘김민호 어록’이라고 포스팅한 것도 있다. 내가 만든 경구도 있고, 내가 생각해도 내 통찰이 탁월했다고 느꼈던 문장 혹은 문단을 한 데 모아놓았다. 누가 나를 자랑하겠는가. 내가 나를 자랑해야지.


실수? 지금도 이불킥하게 되는 기억

홍명근 : 성격이 급하다보니 실수가 굉장히 많다. 기자들에게 이메일 제목을 틀리게 보내거나, 성명 쓸 때 현직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오타를 내거나, 집회 나갈 때 앰프만 가져가고 마이크를 안 가져간다거나, 서명 받으러 나가서 접이식 테이블을 안 가져간 적도 있다. 다 어떻게, 어떻게 현장에서 해결했다. 근데 신기하게 30대가 되면서 그런 실수가 조금씩 주는 것 같다.

성기병 : A4 용지 한 장짜리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는데 오탈자가 나왔다. 상사가 다시 써오래서 다시 써서 갔다. 근데 또 오탈자가 나왔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썼다. 세 번째 보고에서 또 오탈자가 나왔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그때 상사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라.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출력해서 보고를 했다. 근데 오탈자가 또 나왔다. 진짜 창피했다. 이런 간단한 사무에서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내가 책을 만드는 일을 계속 해도 되나 싶었다.

김민호 : 나 같은 경우에는 해프닝 같은 건 별로 없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부교역자로 고용되어서 일을 했을 때 한 일화가 기억난다. 1년 정도 지났을 때, 교회 구성원들 전체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 있었다. 그중에는 부교역자를 평가하는 란도 있었다.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내 호칭이 ‘간사’였는데, 한 설문지에 “간사님은…….”라고 쓰여져 있었다. 말줄임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다는 의미일 게다. 내가 생각해도 그 교회에 도움은 주지 못하고, 피해만 끼친 것 같다. 송구스럽다. 


지금 우리의 ‘일’ 문제는 무엇일까?


김민호 : 교회의 세습, 부정과 비리, 또한 성범죄, 이로 인해 교회의 공신력과 위신이 추락했다. 교회의 이미지 실추, ‘개독’이라며 혐오하고 냉소하는 것, 기독교가 자초한 일임에 확실하지만, 종교혐오라는 결과가 빚어진 것은 아쉽다. 정치혐오만큼 종교혐오가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브렌덴 캐널러라는 아일랜드 시인은 “지옥이란 경이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탄식했다.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태어나 콘크리트 위에서 죽어가는 메마른 현대인의 실상이 그러할 게다. 어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냥한 동물 옆에서 함께 울고 아파하면서 죽음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공유했다고 한다. 공동체의 속죄의식의 기원이 이런 것일 터. 흙의 생기, 자연의 온기, 이런 감성을 종교는 늘 깨우쳐주기 때문에, 종교의 필요성은 몇 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종교란 용어가 불편하면, ‘영성’이라 바꿔말해도 좋다. 그것이 개개인과 우리사회를 정화시켜 줄 것이다. 그 외에 실천적인 답을 하나 언급하자면, 기독교인들에게만 국한된 제언이 될 것 같다. 규모가 큰 교회 말고, 덩치가 작은 교회에 출석해주었으면 한다. 각자 인근 작은 교회에서 건강한 교회공동체, 마을을 섬기고, 동네의 역동성을 끌어내주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홍명근 :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오해와 편견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시민 없는 시민사회’다. 시민들이 시민단체에 가입하면 운동권이 되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또 시민단체는 과격하다는 인식도 강하다. 사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집회, 시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으니까.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앞으로 기부문화가 더 많이 확산되고, 시민사회 영역이 한 섹터, 한 분야로서 뿌리가 잘 내렸으면 좋겠다.

성기병 : 출판 산업은 상상 이상으로 영세하다. 예전에 작은 출판사에 다닐 때는 편집자가 나 혼자뿐이라 팀장처럼 일했다. 그래서 대단히 폐쇄적이다. 대표가 왕이다. 그러나 출판 노동자들은 그저 묵묵히 부당한 노동을 견디고 있다. 같은 출판노동자로서, 남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다른 상사들은 어떤지, 월급은 얼마나 받고 일하는지, 쉴 때는 뭐하고 쉬는지… 그런 게 궁금하다. 우리의 노동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거 아닐까. 소통되지 않는 문제의식,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부족으로 돌리는 문제 등이다. 

홍명근 : 시민단체는 적은 월급, 많은 노동을 사명감 하나로 버틴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처음 몇 년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문제가 삶을 위협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고민과 걱정은 일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불행한 활동가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즉 앞으로는 사람을 갈아 넣어서 성과를 내는 구조라면 어떻게 우리 사회 비전을 제시하기 어려울 거라고 본다. 물론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90년대생과 함께 일하면 생각과 문화에서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중간에 끼여서 힘들다는 느낌이 자주든다.

성기병 : 얼마 전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우리 회사는 월요일마다 아침에 청소를 한다. 문제는 일과시간이 아니라 출근 시각 전에 청소를 끝내야 한다는 사실. 나는 이런 게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 회사의 갑질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솔직히 대표한테 뭐라고 못하겠더라. 그냥 ‘일주일에 한 번뿐인데 뭐…’ 식으로 참고 혼자 일찍 와서 청소를 했다. 그런데 나 혼자 청소를 하니까 이번엔 대표가 “왜 혼자서 청소해요? 신입사원도 같이 해야죠?”라고 말하더라. 나는 이런 부조리한 회사의 관습을 신입 직원한테 말하는 게 왠지 쪽팔리고 싫어서 그냥 나 혼자 일찍 와서 한 거였는데. 신입은 집이 가까워서 9시에 딱 맞춰 출근한다. 그래서 결국 지금은 신입을 기다렸다가 같이 청소를 한다. 80년대생으로서 이럴 때마다 참 곤혹스럽다. 윗세대의 부조리를 나 혼자는 감당하겠는데, 그걸 아랫세대에게 그대로 반복하는 건 도저히 못하겠더라. 하지만 지금의 노동의 구조는 그렇게 강요하도록 만들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춰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의 일, 이렇게 바꿔야한다.

홍명근 : 일을 쉰 적이 없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까. 일을 해도 항상 모자라게 산다. 사실 부담감도 크고, 미래에 불안감이 있다. 자신은 있지만 가끔 오는 걱정은 사실 삶의 큰 불안을 준다. 그러다보니 기본소득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고는 살인이다.’ 라고 하지 않은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기업에서는 해고한다고 해도 그게 ‘살인’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견실해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실업급여를 2개월 정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자존감이 상하더라. 마치 죄인처럼 취급받는 느낌이었다. 절대 수입이 있어도 안 되고, 교육도 꼭 받아야하고, 이력서 낸 것도 내야하고.

김민호 : 그러니까 “모든 직업이 소중하다”, 그런 말들을 많이 양산해야 한다. 마틴 루터의 ‘직업 소명론’과 ‘만인 사제론’이 근거를 제공해준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는가. 자칫 자존감이 무너지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계속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하루 4시간 노동’을 주장하고 싶다.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큰 까닭에, 차별이 일상화된 게 아닐까. 어떤 직업을 경멸하고 멸시하고, 또 다른 직업은 열광적으로 추앙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성기병 : 나는 우리 삶 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은 정말 작고 사소한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가령,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서로의 삶과 일, 그리고 처지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거창한 투쟁이나 저항 말고도,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얼마나 힘든지, 또는 어떤 마음을 갖고 하루를 살아가는지. 출판사 중에는 연봉을 누설하는 것을 취업규칙으로 금지하는 회사도 많다. 직원 간 연봉 정보가 공유되면 연봉 협상에서 불리해지니까 그걸 막는 거다. 순진한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입을 꼭 다문다. 직원들 사이에서 아예 급여나 연봉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원천봉쇄하는 거지.

김민호 : 근로소득 혹은 기타소득으로 종교인도 세금을 내는 시점도 도래했고, 종교계 내 노동문제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에서도 노동법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봉사라는 미명으로 치장해서, 노동착취당하는 부교역자와 청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가장 어려운 구조가 종교계 아닐까.

홍명근 : 아직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는 일을하다 죽는 20대 청년이 있다. 구의역 20살 청년이 죽었을 때 그렇게 외치던 재발방지 약속은 고 김용균 노동자 사고로 반복되고 있지 않는가? 며칠전에도 부산에서 20대 청년 노동자가 엘리베이터와 콘크리트 벽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달라도 결국 우리 사회 일이라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전체 판이 바뀌지 않으면 다음세대에게 더 안 좋은 노동 환경을 물려주게 되는 거 같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지 않을까?


2030 청년 노동문제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공론극장>

1:29:300, 포스터의 숫자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있으신 분 계시나요? 이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 숫자는 하인리히 법칙을 의미합니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죠. 즉,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살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대형사고 또는 실패를 방지할 수 있지만,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미한 사고들과, “이건 좀 아닌데..” 하는 문제들이 일터 속에서 많을텐데,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이야기 해 본 기억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요 몇 년간 청년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고와, 그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의 고용 구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큰 사고가 일어난 이후, 사고가 난 이유와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구조를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터 속 문제들은 곧 우리의 삶에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꿈과 극단 99도는 청년 문제 중, 노동 문제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해보고 문제들을 도출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7월 27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진행하는 공론극장은 청년 노동의 층위를 나누어 다양한 사례들을 발굴하여 연극으로 발제하고, 많은 선호를 받은 테이블은 이번 년도 말에 전문 배우들이 구성하는 연극을 통하여 무대로 올려지게 됩니다. 

참가신청은 bit.ly/공론극장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