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참을 수 없는 애증의 대상에 대하여_작성자 : 성기병(바꿈 세상을바꾸는꿈 회원)

 

현실에서 일은 ‘그저 돈벌이’도 아니고, ‘감히 돈벌이’도 아니다.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아직도 ‘평생직장’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몸은 회사에 있지만 정신만은 자유롭다며 자위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먹고살기 위해 이 빌어먹을 지옥 같은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여차하면 ‘꿈과 희망을 찾아’ 어디론가 날아갈 플랜과 의지를 남들 몰래 꽁꽁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유튜브, 팟캐스트, 각종 SNS 등 혼자서도 끼와 재능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는 플랫폼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일’의 정의와 가치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소위 성공한 ‘N잡러’들을 전면에 다루며 자신만의 꿈을 찾아 움직이라고 조언한다. 누군가는 보험회사에 다니며 글을 쓰고, 누군가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사진을 찍고, 또 누군가는 영화사에서 일하며 주말엔 번역을 한다. 자유롭고 유능한 이 일터의 노마드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자신의 꿈과 현실의 생계 모두를 성공적으로 쟁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렇다면 이번엔 6년 차 직장러인 필자의 주변을 보자. 내 앞에 앉은 동료는 회사의 권고로 다음 주 퇴사를 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한 편집자는 회사 몰래 독립출판을 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봉 동결을 선고(?)받고 결국 회사를 관뒀다. 사내의 거의 모든 팀장들은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거의 모든 주말에 일거리를 싸들고 집에 간다. 시대가 변하고 일의 패러다임이 변해 기회가 분명 늘어나고 있다고 말들은 하는데 정작 내 주변의 ‘일’의 정의는 여전히 굳건히 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힌 명패가 단단하게 박혀 있다.

 

참여자들에게 나의 현재를 빨간색 스티커, 바라는 미래를 초록색 스티커로 붙여달라 제안하였을 때,

빨간색 스티커는 자유가 높지만 안정이 적은, 안정이 높지만 자유가 적은, 자유와 안정이 둘다 적은 위치에 놓였다.

반면, 바라는 미래 소망은 자유와 안정이 높은 위치에 초록색 스티커가 많이 모여있다. 

정말 자유와 안정이 높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미래가 올까? 그 소망이 반영되었으면 한다.   


: 먹고살기 위해 이 세상 모두가 울상을 짓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무언가.

 

우리의 일터엔 변화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중간관리자로 앉아 있고,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악랄한 착취가 활개치고 있으며, 소수자에 대한 제도화된 억압과 정교한 배제가 작동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분 좋게 회사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갈 일은 매우 희박하다. 현세에는 힘들고 다음 생에서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사장님 몰래 업무시간에 구인 사이트에 들락거리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내 퇴직금의 액수를 가늠해보고, 동료의 퇴사 소식을 부러움도 안도감도 아닌 애매한 감정으로 흘겨보고, 동창들은 어떻게 사는지 염탐하듯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훑어본다. 이렇게만 보면 우리는 회사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나의 일터와 그 동료들을 환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이와는 정 반대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이 겉모습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퇴근 시각이 넘은 지 이미 오래지만 우리가 여전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눈치 게임을 하는 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그만큼 높아서가 아니다. ‘이번 주말 시간 되는 사람 등산이나 할까?’라는 부장님의 허무맹랑한 말씀에 단호하고 진지하게 정색을 날리지 못하는 건 상사에 대한 존경심이 넘쳐나서가 아니다. 평일에 마치지 못한 업무를 싸매고 자발적 주말 특근을 감행하는 건 일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우리가 노후를 보장받을 수 없고, 만족감보다는 자괴감을 더 일으키는 빈약한 월급을 받고, 나의 가치를 사람이 아닌 부품으로 취급하고, 환대와 연대가 아닌 텃새와 경쟁의 원리가 일터를 지배하고, 무엇보다 재미없는 일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도 순순히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섣부른 퇴사와 이직으로 인해 한순간에 사회 밖으로 밀려나 (우아하게 말하면) ‘백수’ 혹은 ‘백조’가 되거나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조직 부적응자’, ‘낙오자’,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정상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복무하고자 우리는 오늘도 상냥하게 웃으며 상사의 전화를 받고, 불가능한 업무 지시를 가능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탈락과 배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빌어먹을 ‘일’이라는 녀석은 먹고사니즘의 가장 최상위에 있는 절대 포식자로 군림하며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리라는 낭만적인 꿈을 잠시나마 꾸기도 한다. 이 참을 수 없이 애매한 애증의 대상인 일과 우리는 언젠가는 화해할 수 있을까? 일의 미래에는 어떤 변화와 기회, 그리고 위기가 놓여 있을까? 급격히 변하는 이러한 일의 전화기 속에서 가장 절실한 당사자인 우리 2030세대들은 그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맞서야 할까?

 

누군가는 놀 때 누군가는 고민을 합니다

 

사람이란 자기의 운명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자를 가리킨다.

-칼 마르크스

 


토요일 낮 2. 이 황금 같은 주말 시각대에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이 천장 높은 이름 모를 공간에 모이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대관절, 나들이에 데이트에 여행에 (누군가는 야근에) 귀하디 귀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 써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이들은 대체 노동과 일을 주제로 어떤 고민을 나누고자 이토록 즐거운(?) 표정을 짓고 공론장에 모인 걸까? 필자는 2019 5 25일 낮 2시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커뮤니티 마실에서 열린 LAB2050 및 바꿈 주관 ‘2030 일의 미래를 상상하다’라는 공론장에 참석했다.

 

공론장: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기획한 개념으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는 공간을 뜻함.

 

누군가는 취업을 못해 안달인데, 누군가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해 울상을 짓는 현실. 지독한 모순 속에 놓여 있는 한국의 일과 노동에 대해 2030 세대의 의견을 들어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이번 공론장의 큰 취지다. 이번 행사의 주최 측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론화해 구체적인 다음 ‘행동’을 기획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얼마 전 개최된 ‘2030 한국 사회 전환의 전략’ 공론장에서 압도적인 투표로 선정된 의제가 바로 ‘일과 노동’이다. 청년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치열하게 일에 대해 고민하는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최 측이 제안한 이번 공론장 모임의 취지문을 읽어보자.

 


당신의 일! 그리고 그 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대안을 찾아보는 공론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취업과 현재 나의 일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가끔은 기운이 빠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청년일자리 정책들은 쏟아지지만, 막상 나에게 맞는 것이 없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이직을 하더라도 야근을 하는 상황이 변하는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일자리는 무엇일까? 워라벨이 되는 직장? 직장 갑질이 사라진 일터?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 주말에 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일터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 비정규직문제, 노동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또 차별이 없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일터는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일의미래를상상하다 공론장에서 2030세대가 주도적으로 일의 미래를 상상하고자 합니다.

 

2030세대가 주도적으로 일의 미래를 상상’할 이번 공론장에서 나누게 될 구체적인 토론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워라벨, 일과 삶의 균형은?

야근, 월급, 휴가, 좋은 일자리란?

20, 알바, 여성 등 차별에 맞서려면?

다함께 그려보는 비정규직 해법은?

갑질문제 어떻게 해결할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주제가 아니지만, 일단 조금 엉뚱하고 비현실적이더라도, 일의 당사자인 2030 세대가 직접 목소리를 내 문제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번 공론장의 핵심 of 핵심이다.

 

직업은 삶의 근간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미리 와 있던 퍼실레이터(각 토론 분과의 사회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이도 있고, 아직은 분위기가 서먹한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자를 지키는 이도 있다. 자고로 뻘쭘하고 민망할 때는 입안에 가득 무언가를 넣어주면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달달해지는 법. 주최 측이 준비해둔 다양한 다과(베지테리언을 위한 바나나와 귤이 포함된!)를 맛보며 청년들은 잠자코 행사를 기다렸다.

 


가뜩이나 천장이 높아 텅 비어 보이는데, 여기에 사람까지 많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공식적인) 행사 시작 시각이 10분 정도 지나자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백발의 할아버지와 뿔테 안경을 쓴 덩치 큰 청년, 민소매를 입은 어린 여자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아 후루룩 마시며 미소 짓는 중년 여자까지 흡사 우리의 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적구성이 바로 이곳에서도 그대로 묘사된 것이다. 설마 주최 측은 이러한 것까지 노린 걸까!?

 


공론장에 함께 온 아버지와 아들



그중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인물은 단연 이름 모를 두 부자였다. 헐렁한 반팔티를 입은 앳된 소년과 체크무늬 난방을 입은 동안의 아저씨가 나란히 걸어들어왔다. “야, 내 자리는 저긴가 보다. 너는 어디냐?” “저는 이쪽 같은데요. 일단 화장실부터 갔다 올게요.” 아마도 이런 대화를 나눈 두 부자는 그 이후로 (집에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각자의 길을 걸었다. 아들은 ‘워라밸’의 길을, 아버지는 ‘차별’의 길을. 오늘 공론장의 의제는 워라밸, 차별, 비정규직, 갑질 등 모두 네 가지였다.

 

우리의 첫 직장은 왜 언제나 지옥일까?

 

이렇게 낮은 소득과 장시간 노동이 공존하는 이유가 뭘까?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139

 

이번 공론장의 전체적인 흐름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일과 노동의 미래에 대한 발제를 진행한 후 공론장에 참여한 토론자들(청년)이 그러한 이야기를 자양 삼아 세부적인 주제에 대해 문제 진단 및 대안 제시를 진행하는 식이다. 3개의 발제가 준비되었고, 차례로 시사인의 송지혜 기자,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레나 활동가, 갑질119의 오진호 총괄 스태프가 발제를 진행했다.

 


첫 발제는 시사인 기자 송지혜 기자가 맡았다. 2015~2016년 “살고 싶어서 퇴사합니다”라는 기획 기사를 취재하고 쓴 그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대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이 입사 1~3년 사이에 도망치듯 회사를 나와 이직에 목숨을 거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분석했다

대기업 3년 차에 연봉 9000만 원을 받은 한 청년은 자신이 회사의 부품이라는 생각이 들자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스타트업 기업에 들어가 처음엔 재밌게 일을 했으나 역시 회사가 커지자 자신을 그저 ‘좀 더 큰 부품’으로 여기는 것을 느끼곤 절망했다고 한다. 그를 포함해 거의 모든 이들은 자신을 ‘대기업 직원’이라고 간편히 설명할 수 있는 명함 한 장에 가장 큰 만족감을 느꼈다고 하며, 반대로 지옥 같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질질 끈 이유 역시 그 명함 때문이라고 했다(허울뿐인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 대해선 뒤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도 활발히 논의되었다). 그가 만난 한 인터뷰이는 ‘세계에서 일하기 좋은 회사 10’에 선정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결국 퇴사하고 “6시 퇴근 이후 진정한 내 삶을 찾겠다”라며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결론은 입사 후 3년 만에 퇴사한 거의 모든 신입 사원들의 공통된 종착지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토록 힘겹게 들어간 대기업을 제 발로 나오며 공기업이나 공무원의 꿈을 꾸었고, 결국 그 꿈을 달성했다

이들의 궤적은 일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어른들의 격언을 비웃는다. 그들이 발견한 인생의 승리법은, 일과 삶을 성공적으로 분리해 자신만의 천국을 구축하고 모든 스트레스와 분노는 일터에서 씻어내는 것이었다. 정말 우리의 일과 삶을 합치될 수 없는 것일까? 송지혜 기자 역시 이에 대해선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 그는 완번한 천국도 지옥도 없는 유동적인 현실에서 ‘일단 지금의 일터 안에 미래의 나의 일을 고민하고 현실화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레나는 자신의 알바 경험담을 근거로 삼아 ‘청년,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기성 사회의 편협한 시각과 내재화된 배제의 실상을 고발했다. 아파트 소독 알바를 한 레나는 누군가에겐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건강과 심지어 생명,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하루 300~500세대’의 가정에 소독약을 뿌리러 다니는 여성 청년 소독원의 위태로운 일터의 조건을 세밀하게 복기했다. 만약 내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내가 청년이 아니었다면? 내가 비정규직이 아니었다면?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만들게 한 열악하고 철저하지 못한 자신의 일터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2000년대부터 빠르게 확산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관이 사회의 가장 취약계층인 ‘청년이자 여성이자 비정규직인’ 노동자에게 일터의 모든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는 형태로 노골화되었다는 것이며, 그 억압과 차별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음을 고발했다. 레나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나의 노동 경험을 타인과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제자 갑질119 오진호 총괄스탭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며 우리 일터에 오랫동안 내재화된 ‘갑질’의 문화를 폭로했다. 150명의 재능기부로 운영되는 갑질119 2017 11월 출범해 출범 후 1년간 무려 2 2000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이토록 수많은 갑질을 지근거리에서 봐온 그조차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갑질’인지 여전히 헛갈린다고 말했다. 이는 ‘누군가의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괴롭힘과 차별적 대우 및 부당한 처우’가 조직 안에서 대단히 은밀하고 비가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것을 관심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및 내면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직장 내 갑질은 대단히 정교하게 시스템 안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지난 5 1일 노동절을 맞이해 개목걸이 갑질, 마라톤 갑질, 장기자랑 갑질 등 대한민국 10대 직장 갑질을 선정한 갑질 119는 직종별 모임을 강화해 일종의 ‘대나무숲’ 같은 공론장을 활성화하자고 제안했다. 노동자 간 소통과 교류만으로도 갑질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한탄 말고 대안을 제시해봅시다!

 


“자부심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제 노동은 유일한 삶의 원리인 것처럼 내면화되고 말았다.

-과로 사회, 11

 


이윽고 오늘 공론장의 전체 사회를 맡은 극단99도의 단장이자 바꿈의 이사 홍승오 대표가 각 분과별 토론을 여는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이번 공론장에서 도출된 의견이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글과 영상으로 콘텐츠화될 것이고, 또한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연극 무대로 꾸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줄곧 정치 행위의 하나로 여겨진 공론장의 활동이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적인 장르로 재창조됨으로써 정치와 문화가 결합하는 새로운 공론장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의 약속문’을 제시하며 경청의 태도를 강조한 그는, 각 조에 속한 퍼실레이터를 소개한 뒤 약 80분간의 열띤 토론의 시작을 선언했다. “한탄만이 아닌 창의적인 대안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제 발제자들이 던진 다양하고 중요한 화두에 대해 수십 명의 토론자들이 분과별 토론을 거쳐 좀 더 깊이 있고 기발한 대안을 제시할 차례다. 이들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대안을 찾았을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나이도, 직업도, 성도, 사는 지역도, 가치관도 모두 다른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찾아낸 대안의 맥락은 어떤 특정한 줄기에 모여 ‘큰 그림’을 그렸다.

 


첫째, 개인의 측면에서는 ‘정상성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했다. 오늘 모인 대다수의 청년들은 우리가 그동안 ‘정상’의 범주라고 상상하고 인정했던 삶의 모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동의를 표했다. “남자 나이 ×× 살이면 취업도 하고 장가도 가야지”, “여자가 ×× 살을 넘어 애를 못 낳으면 제대로 된 삶이 아니다” 따위의 편협하고 왜곡된 인식이 정상의 지위를 탐하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그렇게 정해진 프로세스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 평범한 흙수저로 태어난 이상 불가능해져버린 현실 속에서, ‘정상’이라는 허울뿐인 환상을 좇아 스스로를 착취하고 비하하는 악순환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 이데올로기의 가장 패악은, 열악한 일터의 환경과 부당한 대우는 은폐하고선, 문제의 원인을 청년 개인에게 전가하는 기성세대의 그릇된 관념에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동체와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참여함으로써 동료들과 끊임없이 연결될 것을 주문했다(느슨한 신뢰 공동체 구축). 오늘 8개 조에서 나온 대안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공동체’였다. ‘여성 네트워크’(1조 차별 분과) 같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공동체 건설을 제시한 조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이 공히 공감했던 것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고충을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5(비정규직 분과)는 일터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차별 대우 등에 대해 공론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어플’을 개발한다면, 노동자 입장에서 정보 교환 및 공감의 도움을 얻을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횡포와 전횡을 억제하는 최소한의 도구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이미 기업 견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노조에 가입할 것을 독려하는 대안도 있었다(1 1노조 가입).

 

셋째, 차별과 억압, 배제와 오해를 무한정 양산하는 거대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 자체를 전환하는 차원에서, 학교 교육의 질적 변화를 주문했다. 우리 사회의 노동을 병들게 하는 그릇된 이분법적 사고는 대부분 어린 시절 제도권 교육 안에서 자신도 알게 모르게 체화되고 내재화된다는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내근직-파견직, 원청-하청에 대한 무분별하고 무지한 오해가 그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어떤 배경에 의해 탄생했고,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충실히 교육한다면, 적어도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은 대부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청년들은 전망했다. 또한 노동 인권에 대한 교육을 청소년 때부터 배울 수 있도록 확대하거나,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고 일의 모양새가 다채로운지에 대해 고등학교 때부터 배울 수 있도록 제도화하자는 의견도 돋보였다. 특히, 성장과 확장만이 전부가 아닌, 정의로운 노동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평등한 노동권에 대해 미래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에게 충실히 교육할 것을 강조했다.

 

넷째, 입법부에서 계류 중이거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에 의해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권의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를 통해 노동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법의 힘으로 제한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청년 계층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서도 안정적으로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본소득법’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더불어, 아직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노동의 다변화에 맞춰, 다양한 근무 형태의 노동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신속히 개발해 불법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 조도 있었다. 사회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대대적인 정비에 대한 주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이밖에도 매우 다채로운 대안이 제시되었는데, 이 링크(bit.ly/일의대안)를 타고 들어가면 총 여덟 개 조에서 내놓은 일과 노동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물론 분과별 토론이 아주 매끄럽고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문제를 진단하는 수준이 아닌, 그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2030 세대의 일의 미래를 책임질 구체적이고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라는 주최 측의 주문에 대해 구성원들 모두 처음엔 다소 어려움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토론 초반에는 각 조의 퍼실레이터들이 진땀을 흘리며 긴장 때문에 다소 경직된 청년들의 뇌를 깨워주느라 고생을 살짝 했다. 하지만 조별로 저마다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일을 둘러싼 당야한 문제의 근원을 향해 토론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대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록 완전하고 완벽한 답안은 아니었을지라도, 청년 자신의 문제를 청년 자신이 직접 목소리를 모아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대한 단단한 자신감을 획득하였고, 또한 이렇게 축적한 귀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2, 3의 콘텐츠화 과정을 통해 일반 시민에게 청년의 목소리가 메시지화되어 전달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수두룩하고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 중인 난제가 사회적 정의를 가로막고 있다. 차 앞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면 핸들을 쥐고 있는 운전자 당사자가 문 밖으로 나가 나무를 치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청년의 문제는 청년이 스스로 나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의 원인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에 대한 대안들을 도출해내 지속적으로 사회에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공론장은 계속된다. 다음 행사는 6 29일 토요일에 열린다. 이번 주제는 ‘정치’다. 다음 세대의 정치란 어때야 할까? 청년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정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고 싶은 청년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청년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함께 의논해보고 싶은 시민이라면 주저 말고 다음 공론장에 참석하기 바란다. 언제나 문은 열려 있다. 당신은 그저 문고리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