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만 표 또 버릴 겁니까...어느 대구 남자의 호소

오마이뉴스 2015.09.01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


내 고향은 대구다. 대구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더운 날씨다. 도시 주위가 산으로 감싸져 있는 분지 지역이고 큰 호수나 강이 없어 여름은 웬만한 인내가 아니면 버텨내기가 어렵다. 가장 기억에 남는 더위는 1994년 여름이었다. 난 당시 다행히도 군대에 있었지만, 군에서 본 대구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대구는 내내 38~39℃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 방송사에서 날계란을 도심 아스팔트에 풀어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장면을 내보낸 적도 있었다.

이 장면은 당시 최고의 특종으로 화제가 됐는데, 지금도 날씨가 더우면 이런 방송이 많이 보도되곤 한다. 그래서 대구 음식은 부패를 막기 위해 대부분 양념이 강하다. 따라서 대구에서는 더위를 많이 타고, 맵고 짠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살기 어려울 수 있다.

그 다음 대구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 성향 때문이다. 대구에서 현재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 이외에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평생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 못하는 풍경을 볼 가능성이 크다. 나도 대구에서 총선과 지방선거를 네 번 치렀으나 단 한 번도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하지 않았다. 과거 대구에서 개혁적인 이미지를 가진 당선자가 한두 번 나오긴 했지만, 정당 후보자가 아닌 무소속으로 나온 경우였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보니, 대구에서 개혁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의 정치적 소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개혁적이고 뛰어난 사람이 선거에 출마하고 그를 지지해도 당선하지 않으니 사실상 일당 독재가 지속되고 정치적 무관심도 커진다. 나 자신도 선거를 치르면서 왜 이런 무의미한 투표를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한 당이 계속해서 당선되는 지역은 정치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시에 비해 발전 속도도 느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2013년 기준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6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이고 1인당 지역총소득도 14위다. 실제 서울대 행정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대구 시민 10명 중 9명이 스스로 중간이하의 계층이라고 인식하는데, 이런 인식은 전국 최하위라고 한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활력을 잃다 보니 청년들이 직장을 찾지 못해 고향인 대구를 떠나는 비율도 높다. 대구뿐만 아니라 지역주의가 고착화돼 있는 지역은 이런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몇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정치인 중 누구 하나 이런 현상을 두고 올바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8년간 버려진 유권자의 선택


기사 관련 사진

▲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진후 원내대표 등 대표단이 1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비례대표 축소 저지, 3당 회담 수용을 촉구하는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가운데 근본적인 해결점을 제시한 국가기관이 있다. 올해 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대 1(200석 / 100석)로 도입할 것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정치권에 촉구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지역주의 완화와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선'이었다. 

바로 대구와 같은 지역에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대표성을 부여하고 직능별 대표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선관위의 발표가 있을 때만해도 많은 시민들은 이를 정치권이 잘 반영해 정치발전의 주춧돌로 사용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인구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 간 유권자 수 편차 비율이 2대 1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결정이 있었다. 이 같은 결정에 정치권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직능·약자를 대표할 54석마저 줄이자는 결론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개월 만에 지역주의 타파와 직능·약자를 보호할 선관위의 촉구는 어디로 사라지고, 오히려 지역주의 강화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만 살아남은 격이다. 

앞서 내 경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에서 소외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 선거 때만 하더라도 시민들이 당선자에게 던진 표수가 1144만 표였는데, 낙선자에게 던진 표도 무려 1036만 표다. 1000만 표가 넘는 유권자의 의사가 모두 '쓰레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표는 지난 28년간 총선에 투표한 것을 다 합치면 7160만 표에 이른다(참고 : 선거에서 사라지는 표를 살려주세요).

현재 흘러가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이 매우 우려스럽다. 지금이라도 정의당과 녹색당 및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의원 정족수 논의를 다시 진행하고 비례대표제 확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새누리당을 비롯해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거제도를 개악한다면 역사적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인식해야 한다. 수많은 시민들이 정치권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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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