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해?” “요즘? 동네에서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고 있지” “일은 안해?” “일? 지금 하고 있는 게 일인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장 안 구하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5년간 다니던 직장을 작년에 그만뒀다. 지역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나름 인정도 받았고 생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이 내가 평생을 걸고 해야할만한 것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나가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마냥 생각 없이 그만둔 건 아니었다. 전부터 몸담고 있었던 지역 청년공동체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소통, 공감, 관계회복을 위해 시작했던 사람도서관 사업부터 마을라디오, 청소년교육, 청년공유공간 조성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법제도 마련을 목적으로 지역 내 청년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기본조례 제정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고 난 뒤 다시금 나 자신에게 질문이 생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러한 고민은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다른 청년활동가들 그리고 청년활동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활동일까 노동일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청년활동가’


청년활동가. 익숙하면서도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사회운동가 혹은 특정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 정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는 청년활동가 담론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청년활동가라고 함은 기존의 활동가 범위를 넘어 청년 사회적기업가, 사회혁신가, 소셜디자이너, 마을활동가 등 ‘제 3의 영역’에서 종사하는 청년집단까지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여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또한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운동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되면서도 경제적 생존이 가능한 일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실패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활동 전반을 포괄한다. 요컨대 사회적경제, 사회혁신활동, 공동체 복원과 같은 일들도 이러한 사회적 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년문제 연구자 류연미는 “노동과 운동이 공존하는 행위, 환언하면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때로는 노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소규모 공동체를 바탕으로 사회적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들이 모두 느슨하게 활동 내지 사회적 활동이라 불리고 있다”고 정의한다. 


청년활동가라는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 청년허브의 탄생시점부터라고 볼 수 있다. 청년허브는 공식적으로는 청년일자리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위탁기구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 문제를 넘어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과 자발적 공동체를 지원하고 청년 개개인을 적극적인 시민이자 혁신적 활동가로 양성하는 공간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2016년까지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은 청년활동가단체의 수는 총 842곳. 이들은 사회활동, 문화기획, 업사이클링, 생태환경, 학습세미나, IT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위한 청년활동가들의 움직임은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에서도 2016년 경기청년네트워크라는 모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청년활동가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전주, 순천,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도 청년활동가들이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우리의 일은 활동인가 노동인가


“노동이냐 활동이냐 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청년들이 공적인 돈을 받아 활동하는데, 사회적으로 볼 때는 뭘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2014년 3월 26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청년의 일, 노동인가 활동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기성 시민단체활동가와 청년활동가, 청년논객 등이 참석한 이날 자리에서는 ‘활동’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놓고 전통적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기성 활동가들과 자율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청년 활동가간의 간극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특히 패널로 참석한 한 청년활동가는 청년활동에서 느끼는 활동-노동에 대한 고민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의 활동은 꼭 가사노동하고 비슷하다. 밖에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필요한 일을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정책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활동, 노동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2016년 10월 서울시 청년주간프로그램의 한 섹션으로 진행된 ‘우리 활동-노동자: 노동과 활동의 영원한 갈등에 대해’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은 이어졌다. “어떻게 한 줄로 나의 일을 소개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이라는 활동가들은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일상의 행복을 갉아먹지 않기를 바랬다. 활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이지만 이들은 종종 노동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 사정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청년활동가 개인 혹은 소수가 모여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어떠한 대가 없이 오히려 자비를 들여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일부 청년활동가의 경우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이나 공사장 잡부, 단기알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보전을 위해 일반기업체나 기관에 입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아직까지 청년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보기보다 사회에 헌신하는 봉사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지자체로 내려올수록 더 심화된다). 요컨대 이는 청년활동가의 노동권 문제와 연결된다.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된다면 청년활동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나의 활동이 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경험과 성장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사회가 제공해줘야 한다. 


지속가능한 청년활동을 위해 


다시 처음 제기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들의 활동은 노동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자부심만으로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청년들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강력한 내적동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외적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 소진되는 것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청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허브를 통해 청년참, 청년활과 같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자리정책의 일환으로 청년활동가양성사업 또한 펼쳐나가고 있다. 서울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또한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논쟁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 사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기존의 실업정책과는 달리 자율적인 사회활동을 지향하는 청년들 또한 제도적 지원망에 포섭한다는 점에 있다. 


경기도 또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을공동체활동가 인증제 도입을 통해 청년활동가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또한 뷰티풀펠로우 방식의 지역 청년활동가들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청년활동가의 지속가능한 지역혁신활동 보장방안 제안’도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는 공적지원이 끊길 경우 자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청년활동은 독일의 미래학자 울리히 벡이 이야기했던 ‘시민노동’의 개념과도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공적 서비스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적노동의 속성이 존재하지만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작동하는 정부 ‘외부’의 공적 노동이란 점에서 전통적인 공적 노동과도 다르다. 또한 이 공적 노동은 능동적인 시민의 자율성 곧 ‘자율활동’의 속성을 요구하고 그에 기반을 둘 때,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자율활동과 공적노동이 중첩된 새로운 범주인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청년활동가는 일차적으로 공적서비스의 단순한 수요자의 위치를 넘어 공공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지식생산자로 참여하고 이차적으론 자신이 제안한 공공정책모델의 혁신경영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즉 정책수요자인 시민이면서도 시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종의 ‘시민노동’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노동의 출현은 역설적으로 노동사회의 위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청년활동가라는 새로운 집단이 장기화된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 여건과 이에 대응하는 청년주체들의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쉽게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이는 곧 활동-노동을 둘러싼 이들의 고민지점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시민노동의 영역이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문제는 향후 몇 년 안에 한국사회의 주요 노동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트랜드가 된 시대. 끊임없는 타인과의 부딪힘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혼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고 따듯한 느낌이어서 좋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나는 인권활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NO'를 외치는 사람들


2000년대 초반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한 증권사의 CF 광고가 있었다. 아직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고 '웰빙'이 유행했던 시대일지라도 한 개인이 다수자에 맞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노맨’이 되라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평등을 위해 she/he 대신 성중립대명사 Ze/Xe를 사용하자는 '성중립 언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그녀뿐만 아니라 OO맨, XX녀등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단어에 내제된 성차별적 요소는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사회 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는 법, 제도화 이후의 일이므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차별과 혐오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내가 만난 인권활동가들은 공기와 같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인권 침해 요소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감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수를 향해, 권력과 자본을 향해 ‘NO’를 외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자 ‘YES'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연대하는 따듯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2015> 연구조사는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로 지내온 30대 중반의 활동가들이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에 못 미치는 107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캄캄한 밤 풍경 속 불빛만큼 빚이 있는 시대. 숨만 쉬어도 비용이 지출된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 있는 사회에선 영리가 아닌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라도 풀뿌리 후원금은 단체운영에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를 기조로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권의제를 말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은 1~2명의 상임활동가 또는 비상임 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 영역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이나 귀엽거나 불쌍한 '아이' 또는 '동물'을 콘텐츠로 다루지 않아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빗겨나 있고 이는 곧 자원의 부족함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끝없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래만큼의 지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벼룩시장 할인 또는 소비 없는 삶 등으로 지출을 피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인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경제적 급부를 기대하기보단 경제적인 많은 부분의 포기를 각오해야 한다. 안정적 수입은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설문 응답자의 73% 이상이 중요성을 인정했듯 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치는 활동비는 동수저쯤 돼야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도 활동을 포기하는 일 없이 지속할 가능성을 높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어 떠나가는 이들의 난관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얹는 일 아닐까? 공익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인권

 

"한국은 경제로는 '수'를 받으면서도 삶의 질이나 인권 현실은 우·미·양 사이를 헤매고 있는 극히 모순적인 사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경제 논리가 더욱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인권 논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교양인) 중 「대한민국 인권 지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은 우리 삶이 인권에 의해 보호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인권의 제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오늘 하루 존중받으며 보냈는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것이 한국 인권의 현주소다. 보릿고개를 넘기신 나의 부모님세대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지상과제였다면 비교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린 청년세대인 나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인권공화국을 꿈꾼다. 이 인권공화국으로 가는 길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인권임을 잊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인권의 가치를 실천해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 인권활동가는 토론회 자리에서 청중을 향해 인권운동은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이의 말처럼, 나는 신체의 장기 중 유일하게 '마음이 담겨있는 내장'인 이 심장(心腸)에 인권의 첫 걸음인 인권감수성이 있다 믿는다. 인권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결고리가 지금보다 더 넓고 단단해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번 명절에도 많은 청춘들이 친지들로부터 "취직은 했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 등의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하고 알바와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청년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꿈과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도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러나 혼자만의 꿈이 아닌 모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청년들이 있다.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지난 8월30일로 창립 1주년을 맞았다. 다양한 색깔의 청년들이 모여 주로 청년문제에 관한 의제설정과 대안제시를 위해 활동하는 이 단체는 언제부턴가 사회진보의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청년들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려 노력한다. '바꿈'의 홍명근활동가가 민플러스에 보내온 1년간의 활동상을 싣는다. [편집자 주]

 


“먹고 살기 정말 힘들다.”


친구들과의 만남, 아내와의 대화, 택시에서 아니 당장 내 입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삶의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 당장 의식주부터 지키기 어렵다. 치솟는 물가에 반찬값을 걱정하고 조그만 월세방 하나에 더울 때는 에어컨이 무섭고 추울 때는 난방비가 무섭고 도둑은 홈쳐갈게 없으니 안 무섭다.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 눈치에 저 수많은 아파트를 우러러 보며 평생 숨만 쉬고 살아도 30년을 걸리는 내 집 마련은 한숨으로 대체한다. 우리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다.


왜 이렇게 살기 어려워졌을까? 개개인의 노오오오력과 능력을 탓하기에는 우리 사회는 전반에 걸친 양극화와 저성장, 저출산과 고령화, 걱정과 불안을 넘어 사람에 대한 혐오는 단지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기에는 그 정도와 수준이 심각하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는 7만 2천여 명이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숫자를 합친 것 보다 많다. 한국 사회가 전쟁보다 더 무서운 무기로 돌변해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년이 있다. 이제 청년은 더 이상 푸르름의 꿈을 상징하는 세대가 아니다. N포세대, 흙수저, 헬조선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상징 속에 청년은 그저 우리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 하나의 계급일 뿐이다. 단적인 사례로 밥을 굶다 밥 좀 달라고 말하며 죽은 연극하는 청년이 있었고, 가방 한 구석에 컵라면을 넣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를 당한 20살 청년이 있었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한국의 청년들처럼 치명적인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을 동시에 기록하진 않는다.



바꿈은 지난 1년간 무엇을 바꾸었는가?


약 1년여 전 바꿈의 창립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의 대안을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는 점점 어려워져 가는데 제 각각 다른 생각 속에 어렵고 올드하고 심지어 힘도 없는 현재의 민주-진보 진영의 상황을 극복해 내고자 창립했다. 다만 바꿈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바꿈은 그 답을 첫째 시민사회 네트워킹, 둘째 사회 의제의 공론의 장 마련, 셋째 미래세대인 청년에서 찾았다.


바꿈은 연결고리로서 다양한 단위의 시민사회 네트워킹을 시도해왔다. 특히 청년들의 주도적, 자발적 네트워킹은 25명의 청년저자가 참여해 인권, 대학, 노동, 평화에 대한 논의와 토론을 모은 ‘세상을 바꾸는 청년사회입문서’ 라는 책을 출판으로 이어졌다. 청년 사업을 밑바탕으로 여러 시민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킹과 MOU가 이루어져 시민사회의 소통의 장을 마련되었다. 또한 바꿈은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도 ‘재미’를 지향했다. 지난 1년 간 정치, 노동/경제, 복지/안전, 사회, 국제평화, 청년세대, 인물 등 여러 의제에서 85편의 카드뉴스, 43편의 칼럼기고, 20번의 포럼. 15편의 영상과 10편의 인터뷰 등이 진행되었다. 고작 1년 된 신생단체의 성과치고는 놀라웠다.


바꿈이 무엇을 하는 곳이야?


지난 1년간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어렵고 바꿈이 할 일은 많다. 바꿈은 열려있고 함께 만드는 ‘사회진보 프로젝트’ 이다. 바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그 영향력이나 힘도 미비하다. 바꿈은 올해 청년. 의제. 프로덕션 제작을 3대 사업으로 잡고 집중하고자 한다.


청년사업은 이미 지난번 4개 의제보다 더 확장되어 9개 의제를 중심으로 80여 명의 청년이 참여 중이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다른 법이야” 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이다. 청년들이 서있는 환경과 시각에 따라 해당 의제의 상상력이 어떻게 발휘될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된다. 의제 사업 역시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함께그대) 라는 이름으로 방향을 잡고 우리 사회 의제를 모으는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을 함께하는 보수진영까지 폭넓게 진행되는 본 프로젝트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의 정책적 방향을 모색하는 사업으로 확대 발전을 기획하고 있다.


바꿈의 활동기간은 최대 5년이다. 조직논리와 운영의 틀이 짜여 관료화 되기전에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그 시간 만큼만 활동하고자 한다. 이제 1년이 지났다. 바꿈의 단체 명은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다. 바꿈은 단체 이름처럼 앞으로도 세상을 바꾸는데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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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 창립 1주년 정기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본 총회에서는 지난 1년과 앞으로를 평가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주년 정기총회는 회원들 뿐만 아니라 청년 네트워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까지

현재 바꿈을 이끌고 있는 많은 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 바꿈과 관련한 퀴즈를 통해 상품권을 전달하는 시간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상품이 걸려있는 코너인 만큼 회원 및 내빈들의 열정적인 참여가 이어졌습니다:)











깜짝 퀴즈대회를 마친 후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되었는데요,

총회의 의장은 바꿈의 이사장이신 박순성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개회를 선언하고, 바꿈의 지난 1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사업보고와 감사까지 길고도 짧은 1년의 활동들을 다시금 떠올려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바꿈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나누었는데요,

바꿈이 계획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에 대해 회원 및 내빈들이 추가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또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바꿈은 지난 1년간 다양한 사안에 대한 뉴스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키우고 내세워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 아닌

시민사회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정치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의 1년 역시 바꿈을 빛내기위한 활동이 아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그렇지만 발언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의제를 발굴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 '바꾸기'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총회, 그리고 세상을 바꿀 또 어딘가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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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띠발표자료.pdf




6월 23일 목요일 빠띠-바꿈의 공동 포럼이 아주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참여와 호응으로 포럼부터 뒷풀이까지 열정적인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번 빠띠-바꿈의 포럼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 가능성을 진단하는 시간이었는데요,

바꿈 청년네트워크 사업 2기의 도서출판 사업을 빠띠를 통해

더 확장성있는 사업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한 프레임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다양한 직업,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더 입체적인 토론이 가능했습니다.


발제는 바꿈의 홍명근 상임활동가와 UFO Factory대표인 권오현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홍명근 상임활동가는 바꿈이 앞으로 진행할 청년네트워크 2기 사업을 간략히 소개하고

작년에 진행했던 1기 사업때 제기되었던 비판 지점들을 바탕으로, 

빠띠를 통해 보다 발전된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를 보였습니다.



권 대표님 역시 현재 우리가 인터넷과 그 안의 여론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한계점을 지적하며

빠띠의 플랫폼이 어떻게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고

좀 더 합리적이고 유의미한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설명했습니다.




 





발제에 이어 토론과 플로어 질문시간이 있었는데요.

다양한 질문과 답변들이 오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바꿈의 변윤지 이사의 제안으로 빠띠 플랫폼을 사용하고 싶다에 대한 찬/반 투표도 진행되어

현장의 반응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질문과 답변 외에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만큼 제안들이 이어졌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시는 김희진님은 해외 사례를 말씀해주시며 온라인에서 시작된 오프라인 모임의 가능성을 말씀해주셨고

변윤지님은 vingle사례를 통해 '덕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며 덕후들의 마음을 대변해주셨습니다.




온-오프의 연계를 통한 사업의 첫 시작인만큼 참신하고 중요한 이야기들이 제기되어 

띠와 바꿈 모두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포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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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4.11총선에서 10만3811표 얻었어요"


"아이고, 뭐 이렇게 빨간 책을 들고 다니시나?"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내 손에 들린 책을 보고 풉~ 하고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빨갛다고? 내가 들고 있던 책은 누가 봐도 초록 일색인 표지에 심지어 낱낱의 책장도 연둣빛을 은근하게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 큼지막하게 적힌 책 제목도 이랬다. '행복하려면, 녹색'. 빨갛다는 친구의 농담이 다소 과격했다. 그래도 이 친구, 알아봐 준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친구는 거기까지였다. 나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눈치껏, 대충, 어렴풋이 그쪽이겠거니. <행복하려면, 녹색>(하승수, 서형원 지음, 이매진)은 하승수 위원장을 만나기로 하고 빈 머리로 갈 수 없어 뽑아든 책이었다. 그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데 나도 녹색당에 대한 풍문은 그만 주워듣자 싶어 급한 대로 찾아 읽던 차였다. 

2012년 3월 4일 창당해 그해 4월 11일 총선에 뛰어든 녹색당, 결과는 참담했다. 0.48%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두 명의 지역구 후보는 모두 낙선했고 비례대표를 통한 원내진입도 실패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득표율이 2%에 미달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정당법에 따라 총선 다음날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곡절을 겪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4.11 총선에서 10만3811표를 얻었어요." 

비례대표 의원 당선을 위한 득표율인 3%에는 한참 모자란 수였다며 뒤통수를 긁던 하승수 위원장이 당시 득표수를 정확하게 읊었다. 지역구 당선의원이 압도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와 지역기반으로 세워진 거대 양당제로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에서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생명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녹색당을 지지한 10만3811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가 집어삼킨 사표가 아니라 녹색당을 함께 가꾸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손길이었다. 10만3811표를 곱씹는 담담한 그의 목소리엔 녹색당에 대한 미더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정당등록 취소 위헌소송을 통해 녹색당을 지켜냈다.

"정당 활동은 노동 강도도 세고 엔지오 활동보다 몇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저는 사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역 풀뿌리 정치에 관심을 두고 내 동네, 내 지역에서 정치를 바꿔보자 했었는데, 제가 좀 늦게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 사건 이후로 국가 정치,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건, 2011년 3월 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녹색당이 창당 된 2012년 전에도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5개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정당법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고 이후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녹색당 창당에 뛰어 들었다. 하승수 위원장도 그랬다. 

"저는 환경운동보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데 후쿠시마 사고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후쿠시마도 로컬푸드운동이 있던 곳이고 생협도 있는 지역인데 한 순간에 지역 사람들이 몇 십년간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버렸잖아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단순히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유지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게 된 사건이었어요. 지금까지 나는 내가 사는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해오며 살았는데, 그나마 이정도의 사회도 유지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무리 지역 풀뿌리 운동과 시민운동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한순간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거죠." 

정당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던 그가 창당에 뛰어들 만큼 시대적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로 개입하지 않고서는 원전사고와 같은 참사를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왜 녹색당일까. 우리나라 정치지형에서 군소정당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다년간의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던 그가 모를 리 없다.  

"녹색당은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매출증대가 목표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국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좋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요.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순간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환경, 인권, 먹을거리, 이런 것들은 뒤로 밀리게 되어 있어요. 경쟁에 뒤처지는 사람은 배제되고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차별이 생기고 소외가 나타나잖아요. 경제성장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좋은 삶을 만드는 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녹색당이 유일하게 하고 있어요." 

그도 한때는 체제 내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정도로 삶을 계획했었다. 제도권에 들어가 양심적으로 살아볼까 싶었다. 그래서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됐다. 2006년부터는 국립대 교수직도 맡았었다. 그러나 하승수 위원장은 변호사도, 교수직도 스스로 그만뒀다. 변호사 생활은 시민운동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갈 수 없었고 대학에선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그가 선택한 곳은 늘 시민과 함께 하는 운동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치다. 선거 때마다 50% 내외를 겨우 오가는 투표율이 보여주듯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치, 그것도 탈핵과 탈성장이라는 녹색 정치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녹색 정치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었다.

"누군가와 나를ㅁ 비교하고, 내가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이런 것들이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비교하다보면 자기다운 삶을 찾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가 뭐가 다를까 비교해 보고, 대한민국 사회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와 서로 비교해 보고. 이런 비교를 하다보면 상상력이 나오잖아요.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많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꿈이나 상상력을 가져야 이 사회가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승수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출마는 당선을 위한 출마는 아니라고 했다. 녹색당의 가치와 정책을 알리려는데 집중하는 모양이다. 더불어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 나설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데 벌써부터 담금질을 하고 있다. 녹색당이 낼 비례대표는 당원들이 추천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게 되고 순번 역시 당원투표로 정해진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공개 된다. 

녹색당은 녹색이다. 어설픈 농담이 들어설 틈이 없는, 꽉 찬 녹색이다. 생태적 지혜와 사회정의,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지속가능성, 다양성 옹호, 지구적 행동과 국제연대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 녹색당. 이 정당 강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푸릇푸릇하고 보드라운 싹으로 움터 올라 거친 바닥을 덮고, 그 위를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볼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아, 물론 알고 있다. 현 정치권이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는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와 정치개혁 없이는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승수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녹색당은 이름을 바꾸지 않고 100년 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유럽을 비롯해 지구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각국 녹색당도 창당 이후 초반엔 어려웠다. 그렇다고 정치적 시민권을 얻어 원내에 진입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데 100년까지는 안 걸렸다. 이 땅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자. 그리고 무작정 녹색을 떠올려보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녹색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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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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