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해?” “요즘? 동네에서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고 있지” “일은 안해?” “일? 지금 하고 있는 게 일인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장 안 구하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5년간 다니던 직장을 작년에 그만뒀다. 지역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나름 인정도 받았고 생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이 내가 평생을 걸고 해야할만한 것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나가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마냥 생각 없이 그만둔 건 아니었다. 전부터 몸담고 있었던 지역 청년공동체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소통, 공감, 관계회복을 위해 시작했던 사람도서관 사업부터 마을라디오, 청소년교육, 청년공유공간 조성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법제도 마련을 목적으로 지역 내 청년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기본조례 제정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고 난 뒤 다시금 나 자신에게 질문이 생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러한 고민은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다른 청년활동가들 그리고 청년활동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활동일까 노동일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청년활동가’


청년활동가. 익숙하면서도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사회운동가 혹은 특정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 정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는 청년활동가 담론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청년활동가라고 함은 기존의 활동가 범위를 넘어 청년 사회적기업가, 사회혁신가, 소셜디자이너, 마을활동가 등 ‘제 3의 영역’에서 종사하는 청년집단까지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여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또한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운동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되면서도 경제적 생존이 가능한 일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실패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활동 전반을 포괄한다. 요컨대 사회적경제, 사회혁신활동, 공동체 복원과 같은 일들도 이러한 사회적 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년문제 연구자 류연미는 “노동과 운동이 공존하는 행위, 환언하면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때로는 노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소규모 공동체를 바탕으로 사회적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들이 모두 느슨하게 활동 내지 사회적 활동이라 불리고 있다”고 정의한다. 


청년활동가라는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 청년허브의 탄생시점부터라고 볼 수 있다. 청년허브는 공식적으로는 청년일자리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위탁기구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 문제를 넘어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과 자발적 공동체를 지원하고 청년 개개인을 적극적인 시민이자 혁신적 활동가로 양성하는 공간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2016년까지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은 청년활동가단체의 수는 총 842곳. 이들은 사회활동, 문화기획, 업사이클링, 생태환경, 학습세미나, IT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위한 청년활동가들의 움직임은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에서도 2016년 경기청년네트워크라는 모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청년활동가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전주, 순천,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도 청년활동가들이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우리의 일은 활동인가 노동인가


“노동이냐 활동이냐 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청년들이 공적인 돈을 받아 활동하는데, 사회적으로 볼 때는 뭘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2014년 3월 26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청년의 일, 노동인가 활동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기성 시민단체활동가와 청년활동가, 청년논객 등이 참석한 이날 자리에서는 ‘활동’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놓고 전통적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기성 활동가들과 자율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청년 활동가간의 간극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특히 패널로 참석한 한 청년활동가는 청년활동에서 느끼는 활동-노동에 대한 고민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의 활동은 꼭 가사노동하고 비슷하다. 밖에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필요한 일을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정책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활동, 노동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2016년 10월 서울시 청년주간프로그램의 한 섹션으로 진행된 ‘우리 활동-노동자: 노동과 활동의 영원한 갈등에 대해’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은 이어졌다. “어떻게 한 줄로 나의 일을 소개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이라는 활동가들은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일상의 행복을 갉아먹지 않기를 바랬다. 활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이지만 이들은 종종 노동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 사정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청년활동가 개인 혹은 소수가 모여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어떠한 대가 없이 오히려 자비를 들여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일부 청년활동가의 경우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이나 공사장 잡부, 단기알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보전을 위해 일반기업체나 기관에 입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아직까지 청년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보기보다 사회에 헌신하는 봉사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지자체로 내려올수록 더 심화된다). 요컨대 이는 청년활동가의 노동권 문제와 연결된다.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된다면 청년활동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나의 활동이 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경험과 성장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사회가 제공해줘야 한다. 


지속가능한 청년활동을 위해 


다시 처음 제기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들의 활동은 노동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자부심만으로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청년들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강력한 내적동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외적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 소진되는 것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청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허브를 통해 청년참, 청년활과 같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자리정책의 일환으로 청년활동가양성사업 또한 펼쳐나가고 있다. 서울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또한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논쟁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 사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기존의 실업정책과는 달리 자율적인 사회활동을 지향하는 청년들 또한 제도적 지원망에 포섭한다는 점에 있다. 


경기도 또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을공동체활동가 인증제 도입을 통해 청년활동가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또한 뷰티풀펠로우 방식의 지역 청년활동가들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청년활동가의 지속가능한 지역혁신활동 보장방안 제안’도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는 공적지원이 끊길 경우 자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청년활동은 독일의 미래학자 울리히 벡이 이야기했던 ‘시민노동’의 개념과도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공적 서비스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적노동의 속성이 존재하지만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작동하는 정부 ‘외부’의 공적 노동이란 점에서 전통적인 공적 노동과도 다르다. 또한 이 공적 노동은 능동적인 시민의 자율성 곧 ‘자율활동’의 속성을 요구하고 그에 기반을 둘 때,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자율활동과 공적노동이 중첩된 새로운 범주인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청년활동가는 일차적으로 공적서비스의 단순한 수요자의 위치를 넘어 공공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지식생산자로 참여하고 이차적으론 자신이 제안한 공공정책모델의 혁신경영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즉 정책수요자인 시민이면서도 시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종의 ‘시민노동’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노동의 출현은 역설적으로 노동사회의 위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청년활동가라는 새로운 집단이 장기화된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 여건과 이에 대응하는 청년주체들의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쉽게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이는 곧 활동-노동을 둘러싼 이들의 고민지점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시민노동의 영역이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문제는 향후 몇 년 안에 한국사회의 주요 노동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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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트랜드가 된 시대. 끊임없는 타인과의 부딪힘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혼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고 따듯한 느낌이어서 좋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나는 인권활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NO'를 외치는 사람들


2000년대 초반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한 증권사의 CF 광고가 있었다. 아직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고 '웰빙'이 유행했던 시대일지라도 한 개인이 다수자에 맞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노맨’이 되라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평등을 위해 she/he 대신 성중립대명사 Ze/Xe를 사용하자는 '성중립 언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그녀뿐만 아니라 OO맨, XX녀등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단어에 내제된 성차별적 요소는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사회 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는 법, 제도화 이후의 일이므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차별과 혐오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내가 만난 인권활동가들은 공기와 같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인권 침해 요소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감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수를 향해, 권력과 자본을 향해 ‘NO’를 외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자 ‘YES'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연대하는 따듯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2015> 연구조사는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로 지내온 30대 중반의 활동가들이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에 못 미치는 107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캄캄한 밤 풍경 속 불빛만큼 빚이 있는 시대. 숨만 쉬어도 비용이 지출된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 있는 사회에선 영리가 아닌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라도 풀뿌리 후원금은 단체운영에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를 기조로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권의제를 말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은 1~2명의 상임활동가 또는 비상임 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 영역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이나 귀엽거나 불쌍한 '아이' 또는 '동물'을 콘텐츠로 다루지 않아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빗겨나 있고 이는 곧 자원의 부족함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끝없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래만큼의 지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벼룩시장 할인 또는 소비 없는 삶 등으로 지출을 피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인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경제적 급부를 기대하기보단 경제적인 많은 부분의 포기를 각오해야 한다. 안정적 수입은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설문 응답자의 73% 이상이 중요성을 인정했듯 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치는 활동비는 동수저쯤 돼야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도 활동을 포기하는 일 없이 지속할 가능성을 높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어 떠나가는 이들의 난관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얹는 일 아닐까? 공익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인권

 

"한국은 경제로는 '수'를 받으면서도 삶의 질이나 인권 현실은 우·미·양 사이를 헤매고 있는 극히 모순적인 사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경제 논리가 더욱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인권 논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교양인) 중 「대한민국 인권 지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은 우리 삶이 인권에 의해 보호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인권의 제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오늘 하루 존중받으며 보냈는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것이 한국 인권의 현주소다. 보릿고개를 넘기신 나의 부모님세대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지상과제였다면 비교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린 청년세대인 나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인권공화국을 꿈꾼다. 이 인권공화국으로 가는 길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인권임을 잊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인권의 가치를 실천해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 인권활동가는 토론회 자리에서 청중을 향해 인권운동은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이의 말처럼, 나는 신체의 장기 중 유일하게 '마음이 담겨있는 내장'인 이 심장(心腸)에 인권의 첫 걸음인 인권감수성이 있다 믿는다. 인권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결고리가 지금보다 더 넓고 단단해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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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재직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조 장관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향후 국회 청문회 및 검찰조사 등을 통해 사실 여부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런 논란은 문화계뿐 아니라 이미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도 정보·기록관리 운동을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너무 많이 당했다. 우선 정부 산하 언론교육기관에서 정보공개교육을 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한 번씩 퇴출당했다. 강의 때마다 높은 평가점수를 받았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퇴출당한 것이다. 담당자들은 연신 미안하다고만 했다. 이후 청와대 고위직이 나를 포함한 특정 강사 몇 명이 좌파성향이라며 불편해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정부3.0 운동’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고, 시민들과 소통하겠다고 정부가 만든 자리였다. 이 회의를 주도하던 행정자치부는 처음에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세월호·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3.0 운동은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사실상 멈추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단체가 정부3.0 정책을 비판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후 관련 회의는 시민사회 출신들이 배제되고 관료 및 친정부 학자들로 채워졌다.


그 결과 정부3.0의 대표 서비스인 대한민국정보공개 포털은 사이트 개설 첫날 개인정보 5만건이 대구에 있는 시민단체로 유입되는 사고가 터졌다. 이 사이트는 이후에도 온갖 문제를 노출해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박근혜 정부 4년차인 지금 정부3.0 운동은 부처 간판으로만 존재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정책이 되어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유독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키로 결정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관련 회의록은 없었다. 공공기록물법은 이 회의를 회의록 작성 대상회의라고 규정했지만 유일호 부총리는 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실태를 조사해야 할 국가기록원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기록원은 1960~199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다분히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움직임이었다. 너무 노골적이라 보기가 민망했는지 보수신문도 비판했다.


정부 실태를 비판하면 관련 전문가는 ‘종북 좌파’로 몰렸고, 블랙리스트로 찍혀 생계를 위협당했다. 실제 나를 포함해 정부에 비판적인 기록전문가 몇 명이 ‘기록학계 3대악’이라고 불린다는 소문이 돌아다녔다.


왜 기록하고 공개하자는 활동가를 싫어했을까? 최근 최순실 사태를 보면 정확한 답이 나온다. 특정 업체를 통해 온갖 특혜를 주려고 하는데 공개하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을지 짐작이 간다.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아부를 떨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자 했는데 기록하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나는 눈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장막은 걷히고 햇빛이 어둠 곳곳을 비추고 있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비난하기 전에 함께 기생하며 특혜를 누렸던 자들에게 더욱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사라져도 이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정보공개 캠페인을 ‘선샤인 액트’라고 지칭한다. 햇빛은 곰팡이와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한다. 지금이라도 햇빛을 통해 부패동조자들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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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쓰는 청년교과서가 발간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 입문서(궁리출판)」는 노동, 인권, 대학, 평화·통일 파트로 구성된 청년들을 위한 교과서이다. 수많은 문제를 봉착한 청년들이 이 책 한권으로 각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했다. 


2014년 초부터 기획과 필진을 모집하고 필자들 전체가 한 달에 2번 정도의 모임을 통해 내용을 쌓아갔다. 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글을 쓰고, 글을 수정하는 노력 끝에 드디어 세상 밖에 나오게 된 나름 역사적인 작품이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법무법인 <지향>의 후원으로 제대로 된 청년교과서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벌써부터 뜨거운(?) 반응에 새삼 놀라고 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하겠다고만 하면 되요' 뭐 이런 제안이 다 있나 싶었지만 당장 할 일도 없었고, 막무가내의 자신감이 재밌기도 해서 흔쾌히 오케이를 던졌다. 그 대답이 1년 이상의 시간을 쓰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청년이 쓰고, 청년이 읽는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다양한 논의를 담고 있는 청년입문서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특히나 관점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이들이 조언하듯 쏟아낸 말들은 청년들의 공감을 사기에 역부족이었다. 여러 단체에서 실제로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자신이 먼저 경험한 사회적 문턱의 문제를 다루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북한학과 재학생인 만큼 평화·통일 분과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와 통일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인지, 분단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회의가 진행되었다. 시민단체 간사, 통일교육 강사, 북한학 석사과정 학생, 인권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속원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평화이고, 무엇이 통일인지 결정하는 일 조차 어려운 과정이었다. 심지어 '청년'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노동, 인권, 대학으로 이루어진 다른 분과 사정도 다르지는 않았다. 어렵사리 시작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곳도 있었고 이미 썼던 글들을 모두 지운 곳도 있었다.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에 봉착하는 광경을 보며 분명 같은 가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임에도 무수히 많은 이견들이 생기는 구나,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정말 멀고 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숱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멈추지 않았다.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었지만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향해 움직인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청년이기에 알 수 있는 부조리함이 만연했었고 그렇기에 청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책 제목을 '모르면, 사기 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정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색다른 시선도 한몫 했다. '캐러멜 마끼아또' 보다 청년 시급이 더 싼 현실, 낭만적인 캠퍼스가 아닌 처참한 대학 현실, 선후배가 군대에서 겪고 있는 반인권적인 일 등 청년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려고 했다. 평화·통일 분과의 경우 역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단에 집중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헬조선'과 분단이 얼마나 닮아있는지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누군가는 청년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 말하고, 누군가는 '요즘 애들'은 세상을 바꾸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진짜 청년을 모르기 때문에 던진 말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또한 비슷한 처지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목소리를 전달하려 한다.


당신의 삶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고, 이 책 속에 녹아있는 20여명의 청년의 삶은 당신과 꽤 닮아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응원하고 스스로 전진하는 청년들의 앞길에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 입문서」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힘냅시다, 청춘.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다 -

바꿈 청년네트워크 지음, 궁리 출판사, 304쪽, 15,000원




"2,30대 청년 25명이 바라본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원인, 그 대안까지"


"청년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에 대해 큰 산을 그릴 수 있는 책"


"처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말 그대로 '입문서'"


"마치 친한 친구 또는 선배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절"



<책 소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의 풍경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서문에서 인용한 만화 송곳의 대사이다.

오늘날 청년이 서 있는 공간과 과거 청년이 서 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다. 과거와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불쌍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청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받아들여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


청년들이 ‘서 있는 곳’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아니라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세대의 시선으로


사회에서 비교적 성공했거나 글쓰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과 해법을 이야기해주는

'외부자' 시각이 아닌, ‘청년 스스로 쓴 청년 사회입문서’이다.

바꿈청년네트워크에는 대학생, 백수,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활동가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있다.

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써보자’는 하나의 이유로 모였다.

바꿈 청년들이 스스로 만드는 책이니만큼 ‘청년의 시각’,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바꾸어가고자 합니다!


어떤 정답이나 대안을 이야기하기보다 그걸 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소통하고 조율되어야만 ‘청년들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책에도 청년들이 생각하는 대안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바꿈의 이야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바꿈이 추구하는 대안은 ‘정답’이라기보다 ‘방법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곁에 있는 또래의 청년들, 청년과 소통하기 원하는 기성세대와 함께 토론하면 좋을 책이다.




<목차>


발간사 

서문 


1부 | 노동을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것들

1 청년 일자리 

2 열정을 가지고 참고 견디라고요? 

3 당신의 노동은 얼마입니까? 

4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비빌 언덕, 4대 보험에 대하여 

5 ‘노동자’ 모두 여~기여기 모여라(feat, 헌법33조) 


2부 |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1 인권은 감정이다 

2 인권 결핍의 대한민국 군대 

3 우리 사회 혐오읽기-여성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4 광화문역에는 장애인이 살고 있어요 

5 다름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세계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6 메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송파 세 모녀에게 우리가 돌려주어야 할 말, ‘죄송합니다’ 


3부 | 대학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1 대학공략법 

2 자신의 미래를 빛내러 온 대학에서 빚만 내는 대학생들 

3 엇나간 교수와 학생의 사이 

4 비리재단은 현재 진행중 

5 대학을 권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라! 

6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 

7 아직도 우리는 대학에서 희망을 찾는다 


4부 | 평화, 통일보다 낯선

1 통일이라 쓰고 탈분단이라 읽는다 

2 분단 모순 극복으로서의 통일 

3 이게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이 아니야! 

4 청년 실업 ‘중동’보다 ‘남북경협’에서 

5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 

6 스무 살, 분단을 인식하고 평화에 공감하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자: 바꿈청년네트워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20~30대 청년 활동가의 모임이다. 2015년 2월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제작을 목표로 대학, 노동, 인권, 평화.통일 등 4개 분과로 운영되어 왔다.


강태경(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강혜진(숭실대학교 학생)

김성은(홍익대학교 졸업생)

김윤영(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정숙(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단청(여성학을 배우는 학생)

리온소연(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운영자)

박영민(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재학생)

박혜영(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변규홍(청년녹색당 전국위원/전 KAIST 학부 동아리연합회 회장)

손우정(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바꿈 이사)

신정현(사람도서관 리드미 관장/청소년통일교육 전문가)

오세연(전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유애리(예비 사회활동가)

윤지선(손잡고 활동가)

이다솜(독립다큐멘터리스트)

이동철(한국노총 법률원 부천상담소 상담간사)

이인섭(전 군인권센터 활동가)

이진수(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초등교사)

임지훈(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박사과정 재학생)

전진한(알권리연구소 소장/바꿈 이사)

전진희(대학고발자 운영자)

정별(홍익대학교 학생)

정욜(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최수지(학교통일교육 전문강사)

최형순(전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홍명근(시민의날개 상임활동가)



서평 "익숙해지지 말자, 착취당하는 것에" 성영이 상임활동가 2016.4.4. 오마이뉴스


저자 후기 "청년은 이미 사회를 바꾸고 있다" 박영민 자원활동가 2016.4.4


서평 "‘스텐수저’를 꿈꾸는 청춘들 입문서" 양리리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2016.4.1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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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 전태일 재단 이사장 이수호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현실이 이러니 우리가 할말이 없지요"

창신동 전태일 재단을 찾아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초행길이라면 재단 건물을 쉬이 지나칠 지도 모른다. 건물의 외관이 주변 봉제공장들과 허물없이 생긴 통에 그렇다. 전태일 재단 이사장인 이수호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골목을 더듬거리며 다니느라 진이 빠진 상태에서 건물 내부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계단을 밟아 오르며 선생이 지나온 자리를 하나씩 곱씹었다. 국어교사, 전교조위원장, 민주노총위원장,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내 딴에 어설프게 알아 봐둔 약력만으로도 이러했다. 선생이 머무르는 재단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큰 숨을 고르게 된 것이 오직 계단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이수호 선생을 만나기 전 공부가 필요했다면 너무 부끄러운 고백일까.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선생이 교육운동,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투쟁하던 80년대는 내가 태어난 시대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월이기에 그의 삶을 어쭙잖게라도 아는 체 하려면 사전공부가 필요했다. 그러나 선생의 인생을 몇 줄 이력으로 알아보려는 무모함은 이수호 선생의 인자함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찾아 온 이들을 향한 애정 어린 그의 눈빛에 나는 그만 고백해버렸다. 선생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고 말이다. 나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사람 좋게 웃으며 1948년, 경북 영덕에서의 출생부터 털어놨다.
 

영덕에서 태어나 대구 변두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가난한 집안 살림을 생각해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선생님의 권유로 야간학교를 가게 됐는데, 교직 이수가 가능한 국문학과였다. 실은 대학을 가게 된다면 꽃을 만지는 농대에 가고 싶었다며 선생이 멋쩍어 했다. 꽃을 만지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 노동계의 최전선에 서서 투쟁을 이끌던 그였다. 그러나 이내 원예도 그가 하면 참 어울렸겠단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 쓰는 위원장, 시 읽어주는 위원장이었다. 

"노동조합에 상근하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은 탄압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싸움, 투쟁을 주로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어요. 또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을 이겨내는 우악스러움 같은 것들도 있죠. 그럴수록 정서적이고 따듯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민주노총 위원장일 때 회의 시작 전에 짧은 시를 읽었어요. 거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마음 속엔 항상 따듯함을 간직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것을 살려내고 싶었어요." 

노동 운동의 부드러운 결을 알아보고 밖으로 되살리려 했던 그의 안목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꽃을 사랑하던 소년 이수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와 운동의 간극은 크다. 물렁함이 오히려 독이 되지는 않았을까, 부드러움이 도리어 해가 되는 건 아닐까.  

"도종환 시인의 시 중에 <부드러운 직선> 이라는 말이 있어요. 직선이라는 것은 힘 있게 쭉 뻗어가는 것인데, 그것도 사실은 부드러울 때 더 힘이 있고 강해지고 그러면서 부러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잖아요. 부드러우면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태도가 굉장히 중요해요."

부드러운 직선, 도종환 시인에게서 탄생한 시어가 이수호 선생의 삶으로 살아지고 있는 듯 했다.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다 학교에서 해직당하고 반복되는 투옥을 경험했지만 물러섬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그만의 부드러운 기개로 부러지지 않고 지난한 시절을 이겨왔을 것이다. 


"지금 현실을 보면 우리 세대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이런 사회는 안 물려줬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제가 겪어 온 시절과는 개념이 조금 달라졌지만 청년실업과 빈곤문제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심하고 구체적인 문제로 남아있어요. 현실이 이러니 저희 같은 선배세대가 할 말이 없어요..."

그러나 선생의 단단함도 지금의 현실을 얘기할 때만큼은 급히 초라해졌다.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에서 착잡함이 묻어났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자기들이 살아갈 시대에 맞는 정답을 써야 하는데 당신 세대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태일 재단에도 젊은이들이 북적였으면 좋겠다했다. 전태일 정신을 박물로 남기지 않고 젊은 세대와 함께 살아 숨 쉬게 하려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마음만큼 젊은 세대와 더불어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역력했다.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지금의 제가 아주 작은 만큼이라도(이 마음도 버려야 하는데)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를 수단으로 삼으세요."

나는 자신이 보내온 세월을 한 없이 낮추는 선생의 초연함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서글펐다. 단지 우리가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배 세대들의 통렬한 반성문을 받아 볼 자격이 있나 스스로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청년은 답이 아니다. 건강한 시대를 만드는 합은 서로를 그러안는 세대 간의 포옹이 아니던가. 이수호 선생이 청년에게 거는 기대는 쭈뼛거리는 청년에게 그가 먼저 내밀어 준 손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밀었던 그의 손을 이번엔 나도 덥석 잡고 가능한 오래 함께 걷고 싶다.


"이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뒤에서 밀어주는 일이겠지요. 제가 운동을 해오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우리가 기울인 노력이 씨앗이라면 봄과 같은 조건만 되면 일시에 새파랗게 싹을 틔운다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런 과정의 총합으로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젊은 그대들이 착 피어날 때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의 위로와 배웅을 받고 건물을 나와 걷다가 문득 돌아봤다. 창신동 골목길에 오롯이 자리한 전태일 재단. 그곳에 가면, 다시 시인의 말을 빌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이수호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위로가 말장난처럼 번져가는 세상에서 온 몸으로 마음을 전하는 어른이 거기 있었다.  




덧) 이수호 선생님은 1974년 울진군 제동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해직이 될 때까지 서울 신일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했습니다. 전교조 활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두 번에 걸쳐 구속되어 2년의 투옥생활을 했고 전교조가 합법화 되면서 1998년 10년 만에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복직하여 2008년까지 33년을 교사로서 살았습니다. 그 동안 전교조 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 노동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전태일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이사장, 한국갈등해결센터의 상임이사,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돕는 손잡고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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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을 왜 시작했는가?

더 플랜B 2015.4.5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준비위원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면서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주변에 많은 활동가들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스멀스멀 용솟음 치고 있는 방사능 걱정으로 한숨 짓기 바빴다.

반면 일반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미국 쪽으로 갈 것이라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웃던 친구가 있었다. 너무 기가차서 각종 수산물과 공산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으니,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 친구는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흉측한 괴 생명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이렇게 되냐며 나에게 묻곤 했다.

당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우리 활동가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 운동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핵발전소 및 방사능의 각종 어려운 용어는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 우리가 직접 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쓰면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3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핵발전소 문제 및 방사능 문제를 인포 그래픽으로 정리한 ‘방사능 와치(http://www.nukeknock.net)’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전문가들과 홍익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도움을 얻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환경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다. 사이트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 사이트의 개설과 동시에 트래픽량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페이지뷰가 800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경험은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방사능와치에 올라와있는 인포그래픽

그러나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자고 했다. 자료를 찾을수록 엄청난 비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선박들의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려주었던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속출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서는 2010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생산한 보고서에 해양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하고, 안전관리매뉴얼의 분량이 많으며, 심지어 선원의 나이가 많고 선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4년이나 방치해 둔 것이다.

해양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목포여객터미널에 12척의 배를 2시간 20분 동안 점검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었다. 한 척당 13분이다.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할 시간으로 선박을 검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자신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매뉴얼에는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큰 재난사고가 나면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언론의 경쟁적 취재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를 미리 발견해 시민들과 소통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이런 자료들은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도,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자료들,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향후 시민운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선 기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를 살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결과물들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웹툰으로 제작된 미생, 송곳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또 다른 결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일어날 사고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용역서, 학계 논문, 통계, 빅데이터 등을 찾으면서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핵발전소 등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위험 예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출처 : The Library by Zhu, on Flickr)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 이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인포그래픽, 웹툰, 카드뉴스, 동영상 등으로 가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을 찾아서 공개할 예정이다. ‘바꿈’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 복지공동체, 안전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최대한 쉽게 가공해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컨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사회의 부패하고 썩은 곳을 지적하는 내용은 잘 찾을 수 없다.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반면에 구석구석 시민들을 위해 훌륭한 컨텐츠를 만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내용의 전문성과 딱딱함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꿈’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향후 ‘바꿈’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창립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나조차도 기대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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