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관계를 이야기할 때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 중 하나입니다. 북한인권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남북관계 접근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지난 1차 간담회 개성공단 재개 찬성 반대를 두고 청년들의 토론을 진행했었고, 이번 2차 간담회 역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2030세대의 시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변화될 남북관계 속에 북한 인권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북한인권이 안 좋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선정 : 북한 김정은 정권은 자신의 친형인 김정남을 독살하고 사촌인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3대 세습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통치를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북한 전체를 빈곤에 허덕이게 하고 있잖아요? 정치범 수용소, 인민의 노예화, 임금과 노동력 착취 등 북한의 인권침해는 셀 수 없이 많아요.

추재훈 : 북한인권 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이죠. 하지만 주민 인권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권이 주민에게 인권 탄압을 가한다고 인권 탄압의 주체인 정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위험해요. 정권 위기로 북한에 급변사태가 닥치면 그 때 북한 인권은 누가 어떻게 챙기나요? 지금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것은 정치적 이유로 대북지원을 하느니 마느냐가 아니라 굶주리거나, 의료지원을 못 받고,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그런 북한 사람들을 즉각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윤아 : 북한 인권 문제는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접근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이유를 배재하기에는 북한의 반평화, 반체제적인 정권의 무도함을 인정할 수 없어요. 물론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진행되어야겠지만 동시에 강한 대북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우선시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국진 : 북한에 대해서 군사적인 행동을 취한다거나 북한이 급작스럽게 붕괴될 경우 북한의 인권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동북아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체제 붕괴를 목적으로 했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결과를 보세요. 주위 국가의 인권 상황까지 악화시키고, 이를 넘어 전 세계에 난민 이슈까지 발생시키고 있잖아요?

김윤아 :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에 대한 지향은 남북관계에 가장 중요한 아젠다에요 저는 전쟁이나 폭력에 의한 북한 붕괴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북한에 인권유린이 심각하니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 인권의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는거에요.

 

북한인권의 접근방법은 대북지원인가 선비핵화인가?

정국진 : 보수진영은 지나치게 정치적 자유로서의 인권만 강조하는 듯해요. 물론 정치적 자유로서의 인권이 필요하지 않다는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확성기 방송, 삐라 등에만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북한 주민에게는 경제적 생존권으로서의 인권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려면 우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지원 해야 해요. 따라서 현재의 한반도 평화무드가 장기적으로 북한 인권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선정 : 확성기, 삐라, 라디오방송, 국경선 근처에서 공유되는 남한 드라마 USB 등을 통해 북한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아요. 실제로 그런 활동으로 인식이 바뀌어 탈북하신 분들도 있고요. 북한 인권문제를 ‘투입 대비 효과’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요. 또 사상의 자유가 침해되는 문제나, 경제적인 생존권이 저해되는 문제나 둘 다 중요하고, 어떤 것이 먼저랄 것 없이 최대한 빨리 해결되어야 문제입니다. 우선순위를 나눌 수 없어요.

추재훈 : 탈북민 이야기가 나왔는데, 탈북민의 존재가 북한의 체제 불안정성을 방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탈북민분들이 가진 북한의 정보는 개인적 경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적 논의의 근거로 쓰기엔 제한적이고. 탈북의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고봐요. 무엇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과거에 서구 선진국보다 정치, 경제, 인권 등 다방면에서 모두 엄청 부족했고 그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한국을 탈출하지는 않았잖아요. 다양한 이유가 있는 거죠. 탈북민도 마찬가지에요.

이선정 : 북한에 사람들과 연락하는 탈북민들이 증언하듯, 이미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과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주민들이 많다고봐요. 설령 주체사상의 세뇌로 김정은 정권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존권 확립과 사상의 자유는 인류 보편적 가치고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때리는 부모 밑에서 쭉 살았기 때문에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느낀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매 맞고 사는 것이 당연하고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추재훈 : 우리나라도 과거에 독재국가였어요. 국가가 자행하는 인권 침해도 심각했죠. 그렇다고 다 도망치진 않았잖아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때 미국이 우리나라를 독재국가라는 이유로 경제적 압박을 하면서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한국의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적 발전은 불가능 했을 거라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의 조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북지원이 필요해요.

이선정 : 문제는 대북지원이 북한 주민의 변화보다 북한 정권에 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북한이 남한이 준 대북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등 모니터링이 제대로 안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안함, 연평도사건과 같은 주기적인 북한의 도발과 북한의 핵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실의 한반도 문제를 진단하고 적합한 지원방식을 택해야합니다. 모니터링 없는 무분별한 대북지원은 반대합니다.

정국진 : 한반도 비핵화가 하루아침에 뚝딱 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비핵화는 수많은 검증작업이 필요하고 북한 핵 시설의 완전한 폐기는 십 수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게 끝난 십 수년 이후에서야 대북지원과 경제협력이 가능하다고 하면 북한이 비핵화를 할 유인동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차근차근 경제협력의 폭을 넓혀 가야하는데 지금 북한 핵을 경제적 생존권으로서의 인권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태도는 비현실적입니다.

김윤아 : 무엇이 우선순위이고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남한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어찌되었건 북한인권에 일정 부분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는 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해서 남한의 지원이 쓰였다는 점은 결국 북한인권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가 안 되면 모든 인도적 지원을 다 끊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필수불가결인 부분은 제외하고 대북지원은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원칙인겁니다.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추재훈 : 원점으로 돌아와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북한 주민 입장에서, 비핵화나 정권의 진정성, 이런 거대한 담론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당장 생계 문제나 학업, 의료 문제, 비료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일상을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역량이 있는 우리가 무슨 일이라도 해야죠. 설령 그것이 어느 정도 북한 정권에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지원을 통해 한 명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왜 못하나요. 그리고 대북지원 품목의 일부가 북한 정권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떻게 유용되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딛고서라도 지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윤아 : 인도적 지원이 안 좋다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동포니까.” 하는 감정적 접근보다는 “우리는 북한은 전쟁 중이다.” 라는 이성적 접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보적 측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이 입는 피해와 인권 침해라 너무나 극명하게 커요. 모니터링이 없으면 북한은 반드시 무기개발로 대북지원을 활용할 거라고 확신하고요. 그렇다면 대북지원은 당연히 해서는 안 되지요.

정국진 : 최근 대북 인도적 지원은 현금 아닌 현물로만 가고 있고요. 문제는 북한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해 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 것도 아닌데 무조건 의심만하고 있잖아요? 인도적 지원까지 부정하려는 것은 북한을 국가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이며, 자연스럽게 북한붕괴론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보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보지 않으니까 자꾸 국제 레짐이 허용하는 범위 밖의 비상식적인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의견이 나오잖아요?

이선정 : 실제 우리나라 헌법은 북한을 인정하고 있지 않잖아요.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 인권은 보편적 문제인데 북한을 국가로 보는것과 아닌것의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북한인권법은 효과가 있을까?

정국진 : 보수진영이 말하는 북한인권법을 예로 들어보면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으니까 실질적인 내정간섭 수준의 법이 만들어지는 셈이에요. 결국 북한을 도발해 남북관계만 악화시키고 별다른 실효성은 없는 선언적 법 제정에 그친다는 거예요. 도대체 북한인권법 어떤 조항이 실질적으로 북한 인권을 개선시키는거죠?

이선정 : 사문화된 법처럼 실효성 없게 유지해 온 것이 문제이지 북한 인권법 자체가 문제일까요? 북한은 세계인권선언에 서명한 당사국인데 북한은 인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북한인권 문제에 내정간섭이라고 하는 것은 가정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외부 시선에 사생활 침해라고 답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자는 것인가요? 북한 인권법은 남북인권대화 추진, 인도적 지원, 북한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 북한 인권재단의 설립, 북한 인권기록센터 운영 등의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법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북한인권증진 활동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대북삐라와 라디오 등으로 넘어온 탈북민이 실제로도 있잖아요.

정국진 : 설령 탈북민 3만 명이 전부 삐라와 라디오를 보고 넘어왔다고 해도 전체 북한 인구 2500만 명 중 0.1%에 불과하잖아요.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정치적 논란은 매우 크다는거에요. 북한인권 개선의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과의 교류와 접촉면적을 넓혀나가서 높아진 경제적 수준을 바탕으로 북한 주민 스스로가 정치적 자유권으로서의 인권을 자각하는거에요.

김윤아 : 북한은 공포정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중 인권침해에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게 접촉 면적을 넓히는 방법도 있잖아요. 북한 정권에 도움이 될지 모르고 모니터링도 불가능한 경제협력은 답은 아니에요.

 

대북제재를 통한 북한인권 향상이 가능한가?

김윤아 :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과거 심각한 인종차별과 인권침해에 국제적 제재와 연대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국제적 제재와 압박이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의 개선을 이루어냈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대북제재와 압박을 통해서 변화의 틈을 만들어내고 북한인권의 큰 틀에서 개선이 필요해요.

추재훈 : 경제제재는 일차적으로 정권이 아닌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줘요. 제재는 당 간부가 아니라 오히려 주민의 식탁을 위협하는 셈이죠. 또 오늘날 북한은 이미 제재와 압박에 익숙해져 있어서 제재는 효과가 없어요.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2011년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은 경제 성장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습니다(한국은행 통계). 제재와 압박이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국제적 경제협력 관계나 무역관계가 이미 많은 국가여야 해요. 북한은 이미 중국의 영향력만 엄청 커져있는데 무슨 효과가 있겠어요. 그리고 역사상 제재와 압박을 통해 특정 국가의 정치·경제적 개선을 이끌어 낸 사례를 단 한 건도 없습니다.

김윤아 : 대북제재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따라서 국제시회는 중국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봐요. 물론 완전한 대북제재는 어려울 수 있으나 북한을 비핵화 협상테이블에 나오게 할 가능할 제재와 압박 수단은 많다고 봅니다. 지금도 미국의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측면이 크다고 보고요.

추재훈 : 북한이 지금 비핵화 협상에 나온 이유는 제재와 압박이라기보다, 핵-경제 병진노선 중 핵 건설이 완성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이 타당성이 크다고 봐요.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 왜 지금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까요? 북한과 중국이 그저 순망치한 관계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경제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에요. 중국이 가진 북한에 대한 이 영향력을 우리가 가져올 수 있어야되요. 북한과의 경제협력, 대북지원을 늘려서 중국이 북한에 가진 영향력을 가져와야만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비핵화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을 거예요.

김윤아 : 중국에 미치는 영향력을 우리한테 가져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북한은 당연히 우리보다 북한을 더 신뢰하고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도 있잖아요. 우리가 한미 동맹을 맺고 있듯 북중 동맹도 있는데 북한이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겠어요.

정국진 : 중국을 지렛대 삼아서 북한에 대해서 경제제재는 가능하다고 하고, 우리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오는 건 왜 불가능하다고 보나요? 이미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동안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기도 했어요. 한반도 평화와 발전,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라도 남북경제협력과 대북지원을 확장하는 게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하는 것 보다 더 쉽고 효율적이잖아요.

이선정 : 대북 인도적 지원이 가장 높았을 때도 북한은 도발을 해왔어요. 북한의 위협은 우리와 접촉면이 넓어진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봐요. 이미 북한의 고도화된 핵무기체계로 인하여 남북한 군사력 균형은 붕괴되었고 북미 간 공격방어균형도 심대한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중국을 압박해서 북한을 제재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봐요. 전술핵 배치나 사드배치는 국내외 사정상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겠지만, 정치적 레버리지로는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의 균형 상태로 가야함을 천명해 중국을 압박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종용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 계기로 북한인권 이렇게 바뀌길.

정국진 : 북한 인권에 대해서 당위적 주장, 가치에 입각한 주장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권의 ‘실질적인’ 증진에 집중했으면 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북한인권법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며 공연히 북한 정권만 자극 할 뿐이라고 봐요. 물론 북한인권을 개선시키기 위한 보수진영의 노력마저 폄하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교류협력 확대를 통한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이라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봐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협력이 재개되어 남북이 쌍방·호혜적 관계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윤아 : 북한인권 문제는 체제의 비합리성이 근본적 원인이라 봐요. 궁극적으로 북한인권 문제의 해법은 체제변화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보고요. 남북은 휴전상태이며 상호 적대국가에요. 대북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 체제가 사회적 변화를 태동시킬 수 있는 틈을 국제사회가 만들어줘야 북한 인권이 개선되리라고 봅니다.

추재훈 :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키워드가 ‘평화권’이에요. 저는 평화롭게 살 권리도 하나의 중요한 인권이라고 봐요. 칸트는 ‘평화로운 교역과 교류가 있으면 전쟁이 있을 수 없다.’ 고 했어요. 남북이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계를 개선시키고 있는 만큼 한반도가 인권 문제도 개선되고 더욱 평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정 : 북한 인권문제는 진보-보수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타까운 부분은 미국은 자국민 유해송환과 납북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말하는데 우리는 미국에 비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봐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권을 챙기는 길이라고 봐요.


남북정상회담 계기 2030 합의회의 열러

이처럼 북한인권을 둘러싼 2030 양 패널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선명한 쟁점으로 합의지점을 찾기 어려운 모양을 보였다.

이에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오는 20일(목) 오후 7시 상상캔버스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계개선, 당신의 선택은?" 이라는 주제로 남북정상회담 합의회의를 개최한다. 이를 통해 2030세대가 생각하는 북한에 대한 인식과 쟁점을 이를 이슈로 부각시키고, 상호 합의지점을 만들어 미래 통일담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자세히보기 : http://bit.ly/합의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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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화) - 9월 20일(목)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올해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한반도 정세는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는 계기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가 먼저인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비핵화가 우선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 남남갈등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 2030세대의 통일인식은 나날히 낮아지는 가운데 

이제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의제가 될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후 남북관계 개선이 먼저인지

아니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지

서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합의회의 공론장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참가신청하기-

http://bit.ly/합의회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참가자는 성별, 지역, 정치성향을 고려해 50명을 선발합니다.

* 참가자 전원에게 식사가 제공됩니다.

* 페이스북을 통해 본 토론회를 공유해주시고, 페이스북 계정에 댓글을 달아주시면 선착순 10명에게 분단문제를 다룬 연극 '옥인동 부국상사' 티켓을 1인 2매씩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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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omn.kr/r1ul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


"저희 조에서 가장 크게 공감을 얻은 건 '남북 교환학생 교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학기 정도, 일상적인 생활 교류를 하는 건데요.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사회로 나온다면 통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가자 박영아씨)


"'북한에서 한 달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어떨까요. 좀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실제로 같이 살아볼 때 어떨지 모르니 미리 먼저 한번 실천해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참가자 박성준씨)


남북 간 교환학생·펜팔(편지) 교류, 남북 대학생들 모여 '치맥 회담' 개최, 남한 청년들 북한에서 한 달 살아보기... 얼핏 듣기엔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이 제안들은 실제 현실이 될 수 있을까. 4·27 정상회담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남북이 실무회담에서 양 정상이 '회담 생중계'에 합의하는 등 현재의 평화적인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30청년들이 양 정상에 전달할 대표 제안을 꼽는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가 17일 진행됐다. 사진은 조별 토론중인 참가자들 ⓒ 유성애


지난 17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시청년허브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온 10대~30대 청년 60여 명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시민단체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이 주관하고 통일부가 주최한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에서, 4·27 남북회담 때 양 정상에 제안할 '청년 대표 제안'을 뽑기 위해서다. 단체 요청·사전 지원 등으로 선정된 참가자들은 이날 조별토론(1부)·대표제안 선정(2부) 등을 통해 가장 호응 높은 제안을 뽑았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는 내내 참가자들 토론으로 시끄러웠다. 멀리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온 참가자, 교복을 입고 참석한 만 16세 고등학생도 있었다. 60명 참가자는 각기 남북관계(1조)·경제(3조)·사회문화(4조)·환경생태(7조) 등 8개 조로 나뉘어 토론한 뒤, 각 조 투표를 통해 아이디어 3개씩을 뽑았다. 행사는 이렇게 뽑힌 총 24개 아이디어(제안) 중 다시 한 번 청년들이 투표해 최종 제안을 고르는 식으로 진행됐다.


조별로 뽑힌 제안을 발표하는 시간, 가장 큰 호응과 박수를 받은 것은 '북한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였다. "북한에서 직접 살아보자"는 제안에 장내는 술렁거렸다. 4조(사회문화) 발표자가 '남북 체육대회 정례화', '남북인접 지역 관광특구로 개발' 등 제안을 소개하며 "사회문화적으로 자꾸 교류하면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차별을 해소하게 돼, 정치적인 갈등 해소까지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본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박수로 답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의견이 접수·발표됐다. 참가자들은 4월 초 진행됐던 사전행사·온라인에서 수렴된 제안들을 바탕으로 논의했는데, 이 중엔 '남북 홈스테이 프로그램 진행', '정상회담 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금강산·백두산 정상에서 치맥 회담 개최' 등이 포함됐다. 토론시간, 5조(인도주의) 한 참가자는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 <강철비>를 거론하며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종종 북한 유튜브를 본다"는 학생도 있었다.


▲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30청년들이 양 정상에 전달할 대표 제안을 꼽는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가 17일 진행됐다. ⓒ 유성애


▲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30청년들이 양 정상에 전달할 대표 제안을 꼽는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가 17일 진행됐다. ⓒ 유성애



통일부 "통일·남북관계 영향받는 건 청년세대인데도...청년 의견 반영될 기회 적어"


최종 선택 결과는 어땠을까. 이날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양 정상에 제안할 대표 제안 1위로 "종전선언·평화협정"을 꼽았다(총 39명이 선택).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빠르게 조성되는 지금, 어쩌면 가장 현실적일 수도 있을 제안이다. 이들은 정상들에 전달할 청년제안 2위와 3위로 "남북 간 철도를 통한 한반도 관광, 물류협정·물류확보 추진(33명 선택)",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상시화(26명 선택)" 등을 꼽았다.


그 외 기타 의견으로는 "남북 간 정상회담을 상시화·정례화하되, 회담의 주체를 점차 민간으로도 확대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민간 차원에서도 경제적·사회문화적 교류가 시급하다는 취지다. 이날 가장 나이 어린 참가자였던 유세은씨(경기 모 고등학교 2학년)는 행사와 관련해 "학교에서는 늘 북한이 불쌍하다,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시혜적 입장만 배우는데, 오늘 여기선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전공이 정치외교라서 북한에 관심이 많다"는 조나은씨(20세, 숙명여대 재학)도 행사 뒤 "보통 청년들은 남북정상회담, 외교에 관심이 없다고들 얘기하는데 오늘 와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다. 다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며 "10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이 정말 기대된다"라고 덧붙였다.


행사를 주최한 통일부 측 담당자는 이날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 '통일 공약'의 하나로 시행하는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청년들 의견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일 등 남북관계는 결국 미래에 관한 얘기고, 이로 인해 영향받는 건 20~30대 청년들인데도 이들 의견이 반영될 기회는 적은 편이다. 이에 청년들 얘기를 듣자는 취지에서 진행하게 됐다"라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다.


남북 청년들이 금강산·백두산 정상에서 만나 치킨과 맥주를 함께 나눠 마시는 '치맥 회담'은 언젠가 현실이 될까? 그 또한 청년으로서 행사를 주최한, 30대 초반 바꿈 활동가 홍명근씨는 행사 뒤 기자가 던진 이런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실제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남북관계가 좋았다고 하더라"면서, "북한 '대동강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저도 한번 같이 먹어보고 싶다"라고 말한 뒤 웃었다.


▲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30청년들이 양 정상에 전달할 대표 제안을 꼽는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가 17일 진행됐다. 각 제안을 손에 든 참가자들. ⓒ 유성애


▲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30청년들이 양 정상에 전달할 대표 제안을 꼽는 '한반도의 봄, 청년들이 정상에게 바란다' 행사가 17일 진행됐다. 이들은 1위 제안으로 '종전선언.평화선언'을 선택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여러 논의와 쟁점을 통해 대안을 고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에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통일과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진보-보수 청년들이 각자가 상상하는 통일은?

신정현 :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면서 분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구하고 싶어 북한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더불어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고양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대연 : 아르헨티나에서 살다 왔다. 그곳에서 본 북한의 여러 도발은 한 때 성장가도를 달린 남미 여러 국가들의 몰락과 복합적으로 비교되며 자연스럽게 통일·외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외무고시를 준비중이며 바른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수현 : 대학을 다니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여러 진보적 의제들이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걸 느꼈다. 그런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통일경제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초롱 : 테러리즘과 안보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연구에 대한 흥미로 이어져 북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현재는 ‘북한의 투자 위험도 분석’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다.


북핵문제, 미중패권 경쟁에 맞춰야 VS 우리 주도로 풀어내야

이대연 : 애초에 북한이 왜 평화의 대상인지, 통일의 대상인지 의문시 된다. 북한은 김씨 일가가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국가다. 다만 우리 머리 위에 핵과 도발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지, 굳이 통일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

김수현 : 북한과 우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우리 입장에서 북핵이 큰 위협이듯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미군사훈련이 큰 위협일 수 있다. 지금 남북은 전쟁의 위협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이대연 :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한반도 전쟁 위협을 줄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북한이 우리하고 대화하고 교류한다고 해서 도발을 멈추겟는가. 동북아 정세는 미-중 패권경쟁의 큰 측면에서 봐야지,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남북문제를 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선제적 대화 제의와 남북교류는 자칫 호구 잡혀, 넘겨줄 건 다 넘겨주고 얻는 건 아무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본다. 

신정현 : 우선 남북관계가 미중간의 패권관계로만 정의되는 것에 반대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풀어낸 것은 우리 정부였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도발이이라는 액션에 우리 정부가 제재하는 리액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액션하고 북한이 리액션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도 초기 2년은 북한에서 흡수통일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6.15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까지 이어졌다. 특히 개성공단은 북한 군부 입장에서는 몇 개 사단이 후방으로 밀리는 치명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주도적 액션에 북한이 리액션한 것이다. 미중패권 경쟁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북정책 북핵문제 초래 VS 이명박-박근혜 대북제재 아무 효과 없어

이대연 : 우리가 먼저 액션을 하고 리액션을 요구하는 건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우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을 가지게 되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게 자그마치 1994년부터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핵무기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던 만큼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정현 : 먼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핵개발이 진행되었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또한 대북재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고 대외(대중)무역이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자료와 탈북민들의 증언들은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지난 9년의 대북 제재 기간 동안 우리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초롱 : 금강산관광의 수입이 어디로 갔는가. 또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받을 수 있는 수입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많은 돈이 당으로 가고, 김씨 일가에 호주머니로 간 건 사실이지 않은가?

신정현 : 그렇다면 남한에서 돈 쓰면 그게 문재인 돈 줄이 되는가. 북한의 경제 규모 대비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북한이 개성공단 하나로, 금강산관광 하나로 먹고 사는 게 아니지 않는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가지고 북한의 핵무기와 도발의 근거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이 매우 문제 있는 발언이다.


인도적지원, 더 이상 퍼주기 안되 VS 상호 호혜적으로 가야

이초롱 :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에 대해 막무가내식 퍼주기를 한 건 사실로 봐야하지 않은가? 그리고 북한은 그걸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봐야한다.

신정현 : 도대체 어떤점이 막무가내인가?

이대연 : 북한 정권이 대북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한 것이 바로 막무가내다. 북한 국민들을 살리라고 준 돈이 그리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모니터링 없는 대북지원은 그 금액이 100원이건, 1,000원이건 문제는 문제인 것이다.  

신정현 : 그렇다면 지금 대북지원을 하고 있는 EU나 국제기구들도 다 퍼줬다고 설명할 것인가. 물론 모니터링이 안 되는 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대 국가의 관계에서 그 나라의 자금흐름을 샅샅이 보고 운반상황까지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국가간 인도적 지원에 있어 부적절한 개입이며 남북 간의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다. 그래서 모기 퇴치나 개성공단 같은 상호호혜적인 방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교류 중단으로 모든 대화채널이 막혔다. 판문점에서 소리치고 대화하는 게 한반도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야한다.

이초롱 :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이야기를 하면서 반대로 연평도 포격, 북한의 여러 도발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대화채널을 가지는 건 중요하지만 그 채널을 가지고자 퍼주기식으로 가는 건 반대한다. 무엇보다 대화는 대화대로 하지만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하드파워도 당연히 필요한데 너무 소프트파워만 강조하는 것 아닌가?


남북경협, 북핵으로 이어질 가능성 우려 VS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단

김수현 :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라면 오히려 정치·군사적 접근 보다는 경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개성공단이다. 북핵문제는 이미 한반도와 여러 주변국의 복합적 요인으로 결부되어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은 상대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충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남북은 아주 특수한 관계이고 우리는 서로 접점을 늘려가며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관점에서 경협사업은 꼭 필요하다. 

이대연 : 남북경협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4대강 사업도 5년간 22조를 썼다. 그럼 1년에 4-5조원 꼴이고,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단순히 350-400조원으로 잡으면 1년 예산에 4대강 사업은 고작 1-2%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대도 이 나라 전체가 난리였고 모든 건설사가 명운을 걸 정도로 큰 사업이었다. 이처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이 북한에 1-2% 영향만 줘도 정말 크게 영향을 주는것이다. 그런 사업들이 지금 북한 자금줄로 들어가는 건 분명한데 언제까지 무책임하게 북핵문제를 대해야 하는가?

신정현 : 북한이 개성공단이 없었으면 핵개발을 안했을까? 아니다. 개성공단 유무를 떠나 북한은 체재의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마치 개성공단 때문에 빚어진 것처럼 말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저렴한 노동력과 근접성으로 우리 기업과 원청업체까지 많은 이익을 준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미중구도 속 하드파워 보여줘야 VS 남북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던져야

이대연 : 김대중 정부에서 우리 역할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중국이 패권 국가로서 아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후로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었다고 볼 때 김대중 정부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 동북아 균형자론이 국제사회 외면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한반도 운전대를 이야기하는 것 역시 미중 패권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신정현 : 그렇지 않다. 물론 남한이 결정자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조정자 역할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할 첫 번째 역할은 바로 남북관계 회복을 기축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다. 적극적인 남북대화 재개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통해 상호 조건을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대연 :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필요한건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확실하게 제재 하는 것이다. 중국에 한미일 삼각동맹이나 사드 등을 협상 카드로 내세워 북한을 더 강하게 제재하도록 유도해야한다. 그래야만 오히려 제재 끝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로 나올 것이다.

김수현 :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해도 개성공단으로 협상했는데 지금은 개성공단마저 없어지니 서로 주고 받을 카드가 없어졌기 떄문이다. 이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해온 대북제재로는 북한의 태도 변화도, 북핵문제도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에서 첫 번째 할 일은 바로 북한과 대화 창구를 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첨예한 부분이 남북관계와 통일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로서 이런 대립과 갈등의 잔재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지만 함께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리 사회 여러 쟁점들과 의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면서 대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이런 기획을 지속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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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박 2일 방한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악화일로를 걷던 한반도 주변 정세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까?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3명의 평화·통일 활동가와 함께 한반도와 남북관계, 대북 인도적 지원, 청년들의 통일인식 개선 방향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얻은 건 무기대금 청구서뿐

조성훈 경실련통일협회 간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남북관계 개선 기대와 달리, 북한의 연이은 도발 등으로 강경 대응 조짐이 보였다고 밝혔다. 조 간사는 ‘베를린 선언의 메시지는 남북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지만 내용을 보면 결국 대화에  북한 비핵화를 전제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화 조건과 같다. 그 뒤에 이어진 사드배치,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 언급,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언급, 미국의 전략자산 투입 등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대화를 통해 조건을 알아보는 프로세스가 필요한데 대화의 조건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며 문제를 지적했다.   

조 간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역시 얻은 건 막대한 비용이 적혀있는 무기대금 청구서뿐이라고 비판했다. 지금과 같이 말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행동은 대북제재를 보인다면 임기 후반에는 이러한 기조를 되돌리기 어렵다. 때로는 우리의 목소리를 적극 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에 결코 전쟁은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조 간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한 배경에는 촛불이 있었다, 국민들은 이전 정부의 여러 적페 청산을 원하는데 남북관계도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 안은 정부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문재인 정부가역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믿고, 필요하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구상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며 담대하게 한반도 평화정책을 펴나갔으면 한다.’ 고 밝혔다. 

 

대북인도적 지원, 이제는 정부주도를 넘어 상호 호혜적 방향을 찾아야.

대북인도적 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이영재 부장은 현재 대북인도적 지원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와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후반기 2년은 접촉 신고조차 금지한 것과 달리 현 정부는 대북인도적 지원을 승인하지만 오히려 북한이 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비롯해 여러 지원단체들이 5월 정권교체 이후 남북관계 변화를 기점을 예상하고 사업을 준비해왔다. 실제 우리민족은 여름 말라리아 예방사업을 준비했다. 인천, 경기, 강원 3개 지자체에서 9억 5천 만원을 확보했으나 개성공단 폐쇄 후 군 통신선이 끊겨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최종적으로 북한이 거절했다.’ 며 현황을 전했다. 

이러한 원인으로 이 부장은 남북의 기 싸움을 문제로 추측했다. 이 부장은 ‘받고 안받고는 수혜국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당시 북한의 도발로 UN제재와 우리 정부의 독자제재까지 언급되던 상황이다. 이에 대해 북한이 반발한 것으로 보이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 고 밝혔다.

이 부장은 대북인도적 지원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한민족이니까 지원한다거나 또는 민족의 화해와 교류에 기여했다라는 식의 지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개성공단 재개에 국민 절반 이상이 찬성하는 것도 개성공단이 우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북 지원 분야도 상호 호혜적인 방식을 개발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개 된다 하더라도 오래 못갈 것이고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다.’ 며 대북지원의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과거 관 주도의 대북지원의 방향에서 벗어나 민간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UN 등 국제 기구들은 정치·외교적 여건과 관계없이 북한에 많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거 정부 주도의 지원을 넘이 이제는 민간 차원에서 대북지원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한다.’ 고 강조했다. 

또한 이 부장은 평창 올림픽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평창올림픽 기간이 한미군사훈련 기간과 맞물리기 때문에 이 기간만큼은 올림픽 취지에 맞게 군사훈련을 잠시 축소하거나 중단해 북측을 끌어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의 다양한 교류 방법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청년들의 통일의식은 낮아지는데 개선 방향은 없어

원유준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낮아진 통일의식을 지적했다. 원 위원장은 ‘2-3년에 한 번 대학생 통일의식 조사를 하는데 통일의식은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다. 이러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통일은 구시대적 이미지가 강하다.’ 고 밝혔다. 통일의 이미지가 올드해진 이유로는 ▲목표지향적 통일관 ▲교조적인 통일교육 ▲과도한 민족적 의미 강조 ▲현실과 동떨어진 의제라는 점 등을 꼽았다.

특히 원 위원장은 ‘통일이란 의제가 점차 시대가 지날수록 창의적 사고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또한 분단으로 인해 통일 자체가 수직적·일방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기존 구시대적 통일의제는 민주시민교육과 함께 가야하며 앞으로는 평화의제로 메시지를 바꿔야한다. 최근 괌 폭격 문제에서 보듯 군사적 긴장감이 올라갈수록 평화적 욕구는 커진다. 따라서 여러 가지 교육에서 평화적인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원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계속 평화적 메시지를 던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이야기하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통일의식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만남조차 없는 상황에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이 생긴다.’ 며 남북의 대화와 만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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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적대감이 공존하는 헌법


최근 한반도는 갈등과 대립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드배치를 둘러싼 주변국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북핵실험은 나날히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북미관계는 연일 무서울 정도로 설전이 오고가며 대화채널마저 사라진 가운데 중단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울한 남북관계 속에 한반도 평화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는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게 되어있습니다. 바로 헌법 4조입니다. 헌법 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라고 명시 되어있습니다. 즉 우리는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의무가 있는 것 입니다.


물론 그 반대로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바로 헌법 3조입니다.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 일까요?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인구는 증가하여 내수 시장이 활성화 되고 

국방비 절감으로 사회, 복지가 늘어나고

북한자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생산력, 신뢰도 높아지고, 

문화, 관광산업으로 일자리는 늘어나고… 


통일에 장점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많겠지만 지금의 헬조선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답이 바로 평화 통일 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화통일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혹시 누군가 평화와 통일을 정략적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헌법에 평화통일을 담자


남북의 대립을 멈추고 한반도는 평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과거 늘 반복되었던 통일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행위도 멈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 헌법에 평화통일의 방향을 명확히해야 합니다


현재의 헌법3조와 4조를 합쳐 이렇게 수정하는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이며,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평화통일! 상상부터 시작하면 우리의 소원은 꼭 이루어질 겁니다. 시민이 직접쓰는 새로운 헌법에 참여해주세요. >>바로가기 : bit.ly/시민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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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근(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드문제와 해묵은 숙제인 북핵문제, 일본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산적한 외교·안보 현안 속에 꼭 잊지 말아야 한 가지가 있어 이렇게 편지를 전합니다. 바로 ‘개성공단’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개성공단은 작년 2월 폐쇄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 외화유입 차단 위한 것" 이라며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했지만 그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개성공단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남북관계의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처럼 버텨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조치인 5.24조치로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되었을 때도 개성공단만은 유일하게 남아 전체 남북교류의 99%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성공단 하나만으로도 전체 남북교류협력이 오히려 증가하는 이상 현상도 있었습니다. 


대북제재로 신규투자가 금지되었음에도 개성공단이 성장세가 지속된 것은 개성공단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 모두 win-win 하는 남북경협사업입니다. 저렴한 노동력과 인접성, 같은 언어 사용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개성공단은 지난 10여년 간 30배 넘는 성장을 해왔고, 남북 노동자는 5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모든 게 3단계로 계획된 개성공단 계획 중 1단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그 자체가 한반도 ‘평화’였습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면 남북대화의 창구로서 상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개성공단을 출구전략 없이 무작정 폐쇄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북경협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관련 종사자들과 거래처, 관계 업체들 모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통일과 관련된 꿈을 키운 청년들의 바람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싶었다는 한 20대 청년은 대학때부터 학생회, 대외활동 모두 ‘통일’에 집중해왔다고 합니다. 실제 북한대학원대학교에도 진학하고 입학금도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학한지 한 달만에 개성공단은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상황실에서 일했다는 30대 청년도 만났습니다. 남북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한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안 북한사람은 그저 동료였다고 합니다. 작은 통일과 탈분단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개성공단이었다고 이야기한 그는 남북관계 악화로 고작 1년 전 일을 옛날 이야기처럼 느끼는 듯 했습니다.


대학 학과 중에는 이제 동국대 북한학과만 남았습니다. 고려대는 작년 ‘북한학과’를 ‘통일외교안보전공’으로 개편한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2006년에는 관동대 북한학과가 폐지되었고, 2008년에는 선문대 북한학과가, 2010년에는 명지대 북한학과가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 남은 동국대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최소 규모의 정원만 유지하며 폐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남북경협이 모두 중단된 와중에 그들이 ‘북한’이라는 현실적으로 특화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남북교류 중단은 청년세대 통일인식 악화로도 이어졌습니다. 2015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과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20대는 20.3%로 30대(30.6%), 40대(27.1%), 50대(33.7%)보다 더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20대는 74.5%가 가능하다고 응답해 30대(71%), 40대(70%), 60대 이상(68.8%) 보다 더 높아 심각한 안보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건 개성공단은 북핵이나 사드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과는 별개의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점을 미국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실제 도라산역을 방문하면 그곳에는 ‘입국’ 대신 ‘입경’ 이라고 쓰여 있고 ‘출국’ 대신 ‘출경’ 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헌법상에 나와있듯이 남북은 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중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곳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과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을 의미를 되새기며 서명한 철도 침목이 놓여있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 서명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철도가 한민족을 이어주기를 기원합니다.’ 즉 미국도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통일대박의 헛된 구호와 통일준비위원회, DMZ세계평화공원 같은 의지와 실천 없는 거짓말로 남북관계의 기대와 전망은 늘 실망으로 끝났습니다. 그럴 때 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이 만났던 10.4 남북공동선언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때는 한반도에 갈등과 대립이 아닌 평화와 번영이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개성공단이 있었습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부터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삼아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 리더십을 기대해봅니다. 6.15, 10.4 그 때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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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북핵문제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인터뷰




북한 6차 핵실험 임박, 미국의 시리아 폭격, 항공모함 칼빈슨호 이전 등 한반도 4월 전쟁위기설이 붉어지고 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안보 불안은 한반도 평화적 토대가 그 만큼 취약하고 남북관계의 불안정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만나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안정성의 이유와 실체를 확인하고 대안을 나누어 보았다. -편집자저.

"한반도에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분명한 원칙을 가져야"


Q. 4월 한반도 위기설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부분도 있다. 항공모함 칼빈슨호 이전, 시리아 폭격 등으로 볼 때 북한 선제타격이 거론된 1994년과 비견되기도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은 무엇인가?

A.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체가 워낙 예측 불가능하다. 미중정상회담 기간에 시리아를 공습했고 칼빈슨호 기수를 한국으로 돌렸다. 예측이 불가능하니 불안정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미국 독단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불안감을 이용해 협상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협상에 말리거나 편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에 절대 전쟁이 불가하다는 분명한 원칙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Q. 한반도 전쟁위기는 실체가 있는것인가? 대선 시점을 맞아 과대포장된 것은 아닌가?

A. 실제보다 과대포장은 맞지만 한반도 전쟁은 구조적으로 상존하고 있다. 


Q. 북한이 김일성 생일태(15일)부터 조선인민군창건일(25일) 사이에 핵실험을 강행 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인지,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A. 과거 북한의 핵실험을 볼 때 특정 기념일에 이벤트적 성격을 보인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북한은 정세적, 기술적 판단에 따라 핵실험이 진행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미국이 북핵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이처럼 북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둔 이유는 무역문제 등 중국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지, 임기 초반부터 온 지지율 급락이라는 국내정치 요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대북전략이 오바마 정부 당시 ‘전략적 인내’에서 적극적 방향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전환기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한반도 무력사용에 절대 반대하고 대북제재의 한계도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답은 협상뿐임을 미국에 인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제재의 프레임을 깨고 협상의 프레임을 다시 짜야"


Q. 한반도 위기 상황을 협상으로 이끌기 위한 구체적 방향은 무엇이 있겠는가?

A. 프레임을 잘 짜야 한다. 미국은 북핵문제의 원인을 중국에 있다는 프레임을 짰다. 중국 내부에서도 석유 송유관 차단 같은 강력한 대북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북제재가 약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핵문제는 악화되었다. 이제는 제재위주에서 협상위주로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의 수석대표회의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어있고 평화회담도 중단된 건 마찬가지이다. 차기 한국정부는 대화와 협상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강력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도 외교위원회를 설치하고 협상을 대비하고 있다. 제재의 프레임을 깨고 협상의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이 중요하다.


Q. 그렇다면 차기 정부가 한반도 주변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보는가?

A. 해법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의지가 문제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북한붕괴를 위한 제재에 매몰되어왔다. 한국은 충분히 ‘게임체인저(Game-Changer)’ 가 될 수 있다. 지금 같은 전환기에 차기 정부는 북한과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우리이다.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면서 6자회담, 4자회담. 남북대화, 북미대화를 북핵협상과 평화협정의 틀에서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상대가 오히려 트럼프라는 점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관계정상화, 주한미군 감축과 같은 그랜드바겐(Grand Bargain)이 가능할 수 도 있다. 


Q. 의지를 가지고 대화를 이끌기 위한 테크니컬한 측면에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A. 스타팅 포인트를 잡아야한다. 당장 시급한 북핵문제는 핵과 미사일 그리고 인공위성까지 포함해 발사를 동결시켜야한다. 이를 위해 한미군사훈련 축소. 북미고위급회담과 같은 유인책도 필요하다. 평화협정 개시를 스타팅 포인트로 잡고 남북관계 개선의 전환점을 만들어야한다. 평화협정과 북핵문제를 기술적으로 병행해 나아가야 한다.  


Q. 그러면 북핵 동결로 협상을 마무리하면 북핵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A. 평화협정안에 한반도 비핵화 조약을 넣어야한다. 북핵 폐기를 위한 시한을 명시하여 점차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천해야한다.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Q.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사드배치에 대한 입장이 선회하거나 강경해지고 있다. 사드의 가용성 등의 논란을 넘어 사드가 북핵문제의 만능책처럼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사드 논쟁은 어떻게 보나? 

A  사드는 북핵을 막는데 무용지물이다. 사드배치 했더니 북핵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신의방패’라는 사드의 방어력 역시 고작 주한미군 방어 수준에 불과하다. 사드배치가 중국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며 보복하고 있다. 여러 요인을 종합해 볼 때 백해무익이다. 내년 말까지 사드배치를 유보하고 한미중 3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사드배치 철회한다고 한미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한미동맹은 약하지 않다. 과거 미국 부시정부가 김대중 정부에게 MD참여를 강력히 요청할 때도 김대중 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지만 한미동맹은 흔들리지 않았다. 


Q.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이라는 인식이 있다. 현실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어려움 있지 않겠는가?

A. 실제 김정은은 핵 억제력을 확보하는 것을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또한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도 핵을 가지고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병진노선을 걷고 있다. 북핵문제는 기나긴 과정을 요하는 문제이다. 차기 정부가 누가 되더라도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다만 전환점을 만들어내고 합의가 이행되는 것을 공고화하는 것이 최대치이다. 김정은의 셈법을 바꿔야 한다. 한국 정부 주도로 과감히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Q. 마지막으로 차기정부에게 당부할 말은? 

A. 차기 한국정부는 악화되어가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반전시켜야 한다. 스스로 ‘게임체인저’가 되겠다라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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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중단된지 오늘로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과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청년'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분단은 아직도 한민족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불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하다. 그래서 올해 2월 개성공단이 폐쇄 되었을 때에도 그것의 문제점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청소년 중 일부는 북한을 우리와 다른 국가로 인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점차 통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분단이 70년 이상 지속되면서 우리에게 분단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단은 당연한 것일까? 암이 위험한 것은 우리 몸 깊숙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병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고통이 심해져서 발견 할 땐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분단은 어쩌면 우리에게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함에도 그것이 위태롭게 할 만큼 깊은 병이란 사실을 모른 체 살아가는 암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분단이 이렇게 익숙한 가장 큰 이유는 한편으론 분단으로 인한 억압에 그 만큼 익숙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 억압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하나로 정리 될 수 있다. 바로 '다양한 의사표현에 대한 억압'이다.  탈 분단이란 개념은 추상적이면서 포괄적인 개념이다. 간단하게는 분단구조의 해체이기도 하지만, 깊게 들어가면 분단에 파생된 모든 잔재의 청산까지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통일'이 과거 민족주의가 대세였던 해방과 전쟁 이후 추구했던 목표였기 때문에 현재 한반도 상황에선 적합하지 않다. 통일이란 개념 속에선 다양성을 유보시키는 폭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남북정권은 통일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분단체제를 더욱 강화시켰던 선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탈 분단은 보다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우선 그 전에 우리는 언제부터 통일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는지부터 간략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통일은 '단결'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국가권력자에 의해 국민을 통제시키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다. 불행히도 휴전 이후 남북은 특히 과거 냉전시기 체제경쟁에서 남북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데에 통일을 독점하고 이 목표를 위해 '국민'과 '인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시켰다. 그리고 남북 각자의 주도하의 일방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경제개발을 빌미로 주권을 철저히 유린시켰다. 북한은 그 흐름을 깨지 못했지만 남한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계기로 7년 뒤, 87년 '6월 항쟁'을 통해 잃어버린 주권을 쟁취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국민은 통일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 추진한 남북화해협력정책을 보수진영에선 체제부정으로 몰고 다시 과거 반공적인 시각에서 통일을 독점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2016년 12월 현재 우린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탈 분단은 '통일논의의 주도권을 국민이 가지는 것'이며 동시에 '다양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성숙과 확장'이 곧 탈 분단의 실제임을 앞선 역사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2016년 12월 현재 우리는 주권재민을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많은 촛불을 통해 확인했다. 이 광장은 바로 '분단의 구조가 해소되는' 장소이다. 앞서 분단은 통일을 빌미로 국가권력에 일방적으로 '단일화'하는 과정임을 보았다. 다양성을 배제한 체 일방적으로 어떤 입장 또는 세력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배타적인 갈등이 곧 분단의 실재적 모습이다. 또한 오르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모든 가치를 경제우선제일주의로 잡은 산업화로 인한 폭력성을 우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목격했다. 보수 일부 단체들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인심공격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내세운 논리가 바로 '경제위기를 부추긴다.'는 비상식적인 논리였다. 여기에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비판과 갈등, 토론을 '분열'로 통칭하며 곧 북한과 연계된 '종북 세력'으로 규정해 버린다. 지금 그 오래된 분단의 잔재들이 해소되는 과정을 우린 광장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광장은 어떻게 분단에서 파생된 일상적인 문제를 해소하며 그것이 지향해야 될 방향은 무엇인가? 본고는 광장이 '단일성에서 다양성으로 변화하는 만남의 장'으로서 탈 분단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것이 남북분단의 해소로 이어지기 위해선 남북의 사람들 간에 만남의 장이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모델로서 중단된 개성공단의 일상적 단면을 통해 광장의 다양성이 어떻게 남북분단에 다양성을 부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리 탈 분단을 경험하는 만남의 장: 개성공단

우리는 남북관계와 통일을 말 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단의 익숙함을 간과한다. 우리에게 분단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다. 연세 높은 어른이 아니라면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미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났다. 통일은 어디까지나 책으로 보았다. 이중 누구도 통일이 된 한반도를 경험한 이는 해방 이전의 세대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익숙한 통일은 사실 매우 부자연스럽다. 경험을 안했기 때문에 통일은 매우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 통일은 반대하지 않는 한 거의 장밋빛 환상으로 채워져 있다.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남북은 하나가 되고 곧 강대국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도대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통일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건 같은 민족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동질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 단군할아버지부터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서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공유한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으로 우린 북한을 바라본다. 그러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은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갖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대부분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이 우리에게 자연스럽다면 북한에 대한 인식은 추상적인 '민족'이란 동질성 보단 '주적'이란 현실적인 존재가 더 와 닿는다.

사실상 남북관계는 짝사랑과 비슷하다. 짝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거기엔 상대방과의 감정의 공유나 교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짝사랑은 상대방을 매우 추상적으로 이해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짝사랑 하는 상대방을 자기가 원하는 생각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다. 대부분 짝사랑은 상대방을 향한 보다 직접적인 만남과 교류가 없다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파국으로도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대로 사랑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급기야 상대방에게 강제로 사랑을 강요하거나 폭력을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남북 구성원은 바로 현실적인 서로의 이해와 교감 보다 자기가 원하는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하는 통일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이미 남북의 짝사랑은 한번 파국을 겪었다. 바로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한국전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적인 결론에 이른다. 통일은 우리에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남북은 오랫동안 자기가 원하는 짝사랑을 강요하는 관계라면 탈 분단 보다 분단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실제 일상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부대끼고 대화하며 실질적으로 남북 구성원들이 조심스러운 사랑을 키워갔던 장소가 있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2005년 본격적으로 개성공단이 운영된 이후, 완전히 문을 닫은 2016년까지 근 10년 동안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근로자들이 매일같이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편견을 허물고 새롭게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이어갔던 '통일의 실체'였다. 외국인에게 남북통일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긴 설명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여기서는 오히려 분단이 어색하다. 분단에서 남북 구성원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했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함께 지내보니깐 그런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무섭고 거칠고 음흉스러울 것 같던 북한 근로자들은 그저 우리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가장이며, 어머니이고, 이웃 이었다. 그래서 편견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어느 세 개성공단에서 남북 근로자들은 함께 살아가고 교제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탈 분단을 실제로 경험하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개성공단은 바로 미리 탈 분단을 자연스럽게 남북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미리 본 만남의 장 이었다.

개성공단 그 때 그 하루 : 일상에서 온 몸으로 경험하는 탈 분단

오늘도 어김없이 자명종 시계는 오전 6시를 귀 따갑도록 울린다. 정말 몸은 무겁지만 일찍 일어나야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개성공단에서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살아야 한다. 약속된 시간에 나가지 못하면 회사 지각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부지런히 세면하고 숙소를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직장까지 이동한다. 빠르게 대로로 나갈 수도 있지만 맘 편하게 외곽으로 빙빙 돈다. 뭐 산책 겸 이라는 건 명분이고 사실은 까다로운 북한 교통보안원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저항정신이라 할까? 안개가 자욱이 낀 개성공단은 매우 부산하다. 새벽부터 5만이 넘는 북한근로자들이 통근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무려 250대의 버스가 이동하는 장관이지만 5만의 북한 근로자를 실어 나르기엔 무리다. 거의 콩나물 버스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버스에 내려선 꼭 삼삼오오 손을 잡고 직장까지 출근을 한다. 그런 출근시간의 부산한 모습을 보면서 J군도 출근했다.

출근하고 밀려오는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점심 때 쯤 되면 함께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아저씨가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번엔 자녀자랑이다. 이번에 개성의 명문인 개성성균관상공업대학에 자식이 입학했다면서 굳어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보면 남북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대부분이 다 아버지뻘 인데 사리원 출신인 비슷한 연배의 북한 근로자는 어느 세 친구처럼 친숙하다. 때마침 브라질 월드컵 시즌이라 외국의 유명한 축구 스타플레이어에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음 남북 남자들은 역시 축구이야기면 사족을 못 쓴가 싶다. 그렇게 수다를 털다 보면 어느 덧 정오가 오고,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식당에 간다. 이때가 아쉬운데 남북 근로자들이 직장에서 일은 같이 하지만 식사는 따로 한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먹으면 참 좋을 텐데.......

오후에 잠시 숙소에 들려 차를 끌고 오기 위해서 J군은 잠깐 걷기로 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태양과 그 속에서 배구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황해도 아가씨들의 코웃음에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 진다. 숙소에서 차를 끌고 가기 전에 숙소 옆 OO편의점에 들른다. 개성공단에서는 모든 종업원은 반드시 북한 근로자를 써야 해서 점원 역시 북한 앳된 여자점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고향이 어딘지 물어본다. 수줍어하면서도 할 말을 하는 북한 여자점원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리고 차를 몰고 다시 직장에 도착해서 남은 일들을 마무리 하고 그렇게 퇴근길에 오른다.

저녁노을이 길게 늘어진 개성공단 밖의 북한 마을풍경. 2중으로 펜스가 둘러치고 그 사이 북한 초병이 있지만 북한 마을은 그 어느 때 보다 가까이에 있다. 거기에 개성공단은 주변에 공장도 도시도 없기에 소리가 잘 들린다. J씨는 그 때 펜스 건너편 길에서 한 아이의 쩌렁쩌렁한 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장면을 바라본다. 그 아이는 또랑또랑하게 엄마를 부르고, 동구 밖부터 달려오는 자녀를 보며 안길 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너그러운 모습. 그리고 그렇게 품에 안긴 자녀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그 아이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재잘재잘 이야길 한다. 그것은 카메라로 담으라고 해도 담을 수 없는 J군만의 아름다운 추억 이었다.

그렇게 북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개성공단 이웃을 만나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정말 탈 분단을 온 몸으로 맞보고 싶은가?

위의 J군의 '개성공단의 일일'이 소설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이것은 추상적인 상상이 아닌 실제를 바탕으로 재현한 이야기다. 개성공단에서 남북 근로자들은 실제로 남한 사람, 북한 사람(또는 남조선 사람, 북조선 사람)으로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냥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이자 함께 이야길 나누는 가까운 이웃으로 서로를 느끼고 나눈다. 거기엔 이념도 정치적인 견해도 나눌 필요가 없다. 그저 함께 일상을 나누는 친근한 이웃이자 친구로 이미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남북 근로자들은 탈 분단을 온몸으로 경험해 왔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작년 2월 갑자기 폐쇄 되었을 때 북한도 맞대응으로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48시간 이내로 남한 근로자들을 모두 추방시켰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게 급하게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데 매일 직장 건물을 청소하던 직원이 '선생님 언젠가 꼭 다시 만납시다.'란 인사를 건넬 때 뭉클했다는 일화도 있다. 비록 남북관계는 크게 변했고 정치적인 갈등이 증폭되었을 지언 정 개성공단 안에서 만큼은 남북 근로자 모두 서로 함께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고 바랬다. 사실상 개성공단은 남북 구성원이란 정체성에서 개성공단인 이란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경험이 지금 단절 된 체 1년여의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정말 탈 분단을 온 몸으로 맞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주저 없이 개성공단이 다시 복원되길 소망하고 또 새로운 정부에 외쳐야 한다. 지난 남북관계에서 보듯 아무리 정부가 남북교류의 의지가 강해도 국민이 동조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철저히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야 말로 더 많은 만남을 경험해야 한다. 연애는 책으로 공부해서 알 수 없듯이, 남북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탈 분단은 이론과 이해가 아니라 경험과 만남을 통해서만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체득될 수 있다. 곧 더 많은 지역에서 남북 구성원들이 함께 만남을 통해 탈 분단을 희망하고 고대하는 이들이 남북 도처에 많아지길 기원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개성공단이 중단된지 오늘로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과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청년'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2016년 2월 10일 나의 날개가 부러졌다. 나의 미래이자 꿈이었던 개성공단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통일이라는 꿈은 개성공단 몇 개만 있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에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들어가 일을 하고 통일의 초석이 되겠노라 다짐했었다.

이런 다짐을 한 후 나의 꿈을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힘을 쏟아 부었던 시절은 '대학생'때 였다. 내가 바라던 통일리더가 되기 위해 나는 무던히 애를 썼다. 나의 리더쉽을 기르기 위해 학생회에 들어가 동기, 선·후배들과 열정적으로 술을 마셨고 통일과 우리사회와 관련된 대외활동들을 통해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꿔보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학과공부 또한 열심히 하여 학과수석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성과들은 때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내가 했던 활동들은 빨간 색깔론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며 간혹 회의감에 휩싸여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든지 해내는 나를 놀라워했고 '너는 정말 취직은 걱정없겠다!'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분단'이라는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의 사람들에게 큰 아픔이지만 분단을 해소하기 위한 통일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는 개인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노력은 흔히 바늘구멍이라 불리는 대기업, 공무원의 취업문턱을 넘기 위한 것이 아닌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들어가서 통일을 위한 일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결국 중단되었다.

현재 청년실업률 9.4%, 고용률 42% 심각하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없는 나의 미래의 실업률 100%, 고용률 0%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단순히 개성공단의 중단은 숫자에 불과한 실업률과 고용률 뿐만이 아닌 나의 꿈이라는 목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통일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이 중단되었다는 발표를 들은 후 나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통일의 꿈을 꿔봤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것을 정부가 모를 리가 없을 터, 나는 우리나라가 통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통일이라는 꿈 때문에 나는 북한대학원대학교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합격발표가 나고 등록금을 이미 낸 상태에서 불과 한달 후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맘껏 먹지도, 놀지도 않고 돈을 모아 대학원등록금을 마련해서 입학을 했는데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들어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기대감을 가진 채 입학을 했다. 이런 기대감속에 입학 후 나는 이미 남북한과 관련된 업을 삼고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다. 대북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시는 분, 대북사업을 하셨던 분, 통일부에서 일하시는 분, 그 외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셨던 말은 '개성공단이 중단된 마당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였다. 그 분들이야 그래도 직장이 있는 마당에 고민을 하셨지만 사실 아직 직장도 없고 전업학생이었던 나로써는 그런 말들을 들으니 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이 좌절감이 과연 나만의 고민이었을 까?

지난년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의 1명을 모집하던 직원 공고에서 400명이 모였다고 한다. 대기업도 철밥통도 아니었던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400:1일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나처럼 통일을 꿈꾸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인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그곳에 모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기성세대는 400명의 미래의 기회를 빼앗아 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개성공단을 더 이상은 정치의 문제, 국가의 문제, 남북한 간의 체제갈등적인 상황으로써의 수단이 아닌 단지 '삶의 터'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냥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중에 하나'라고 말이다. 한창 개성공단 취직을 꿈꾸던 시절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는 한 직장인을 만나 물은 적이 있다.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개성공단을 통해 정말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남북한이 정말 서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나요?' 이러한 기대에 찬 나의 생각과는 달리 그분은 그저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는 것 뿐이다. 개성공단에 대해 뭔가 심오하게 생각하고 통일에 대해서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통일이 그저 그냥 먹고 살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개성공단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보다 통일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인간으로써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북쪽으로, 개성공단으로 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닌 어쩌면 그냥 개성공단에 가서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그 자체가 통일이라는 것이다. 바로 '생활의 통일'이다. 

개성공단은 화해의 접촉지대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먹고 일하며 서로간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또한 개성공단은 통일 네트워크다. 개성공단의 사람들뿐만이 아닌 그들의 가족·고향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제품들을 사는 고객과 그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 준다. 개성공단은 청년들의 미래의 기회다. 청년들에게 힘내라는 말이 아닌 진짜 힘을 실어줘야 한다. 개성공단을 재가동 시키는 것이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남북간의 교류에 대한 '상'(像)은 북한의 핵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개성공단으로 인해 어떻게 바뀔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개성공단을 지속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개성공단을 다시 재가동한다면 개성공단에 대한 정확한 '상'을 그리고 이를 활용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나는 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에게 '베스트 커플상'을 주고 싶다. 베스트커플의 수상자는 바로 남한의 대기업의 장벽에 갇혀 성장의 발동을 이어나갈 중소기업과 북한의 노동자뿐만이 아닌 더 나아가 북한의 기업 및 연구센터이다. 즉, 이들의 수상이유는 이를 통해 새로운 '뉴커플'=남북기업클러스트를 형성하고 더불어 남북한청년들에게 미래의 '기회의 터'를 제공할 것이다.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최후의 통첩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같이 분단의 아픔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다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만 무성하지만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언젠가 다시 재개될 개성공단이 가져올 새로운 상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나에게 '삶의 터'에서 더 나아가 '기회의 터'를 제공할 개성공단을 계속 그리워 할 것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북-’에 있는 사람들

2011년의 일이다. 수능을 치고, 가, 나, 다군으로 나누어 지망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서를 썼다. 어느 학과를 지원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중에는 지금 재학중인 북한학과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지원한 학교와 학과들을 메모해두셨다. 그런데 다른 학교와 학과는 그 이름 그대로 적어두시고는, 유독 북한학과에 대해서만 ‘북-’이라고 표기해놓으셨다. ‘북-’. 아버지가 나의 지망 학과를 메모하던 그 순간에 북한학과는 왜 ‘북-’이되었을까. ‘북-’은 뭘 의미하는 걸까. ‘북-’은 도대체 뭘까.

북한학도로 약 5년을 보내면서, ‘북-’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졌다. 북한학과 단체티를 입고 버스에 타면, 심심찮게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로 쏠린다. 자세히 보기 위해 가방을 들추어보는 분들도 계신다. 단체티를 입고 거리를 걸을 때, 누군가 뒤에서 “김대(김일성종합대학)다니세요?”하는 해괴한 질문을 한 일도 있었다. 한 선배는 지하철에서 전공 서적을 읽다가 웬 할아버지에게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고 등짝을 맞았다고 하며, 학과 학우가 전공 과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다 사이버수사대에 덜미가 잡혀 경찰서에 출두되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들려왔다.

같은 학교의 학우들도 북한학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학교에 그런 과가 있어요?”하고 놀라며, “그 학과에서는 뭐 배워요?”하고 물어온다. ‘뭐 배워요’가 정말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궁금증만을 함축한 의문은 아닐 것이다. 이설주가 누군지 아느냐는 둥, 장성택이 왜 죽었냐는 둥, 북한에 핵무기가 몇 개냐는 둥의 질문은 애교다. 조금 친해진 사람들은 친밀함이라는 관계성 뒤에 살짝 숨어서는 “북한 추종하고 그래?”, “위험한거 아냐?”, “빨갱이학과야?”하고 물어온다.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내가 북한학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간부와 선임들은 ‘북괴학과’라고 말하며 깔깔거렸다. 인터넷에 북한 관련 글을 몇 번 기고한 적이 있는데, 댓글은 정말 가관이었다. 시민으로서 나의 존재 뿐만 아니라 때로는 부모님까지 들먹여졌다. 악플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편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꽤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꽤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것이 ‘북-’의 정체였다. 그건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북-’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총체적 무지, 사회적 배타성, 그러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묘한-韓-친밀감,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 궁금증 따위의 것들이 온데 뒤섞여있는 복잡한 무언가. 나보다 인생을 훨씬 오래 사셨던 아버지는 ‘북-’의 정체를 나보다 훨씬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북한학과를 ‘북-’이라고 기입한 아버지의 표현은 그야말로 정확했다. 때때로 누군가 나에게 학과를 물어오면,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한번쯤 머릿속으로 굴린다. ‘북-’.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또한, 아마도 ‘북-’에 대해 마냥 심심한 반응을 보이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나는, 말하자면 북한학과라기보단 ‘북-’에 있는 사람이다.

“온 나라가 최순실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운데, 당장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거라고, 저거.”

안보견학차 강원도 철원에 들렀을 때다. 날은 추웠고, 분단 한반도의 최전선이라는 것을 시위하듯 호국훈련이 한창이었다. 철원에 들어서면서 가장 처음 본 모습은 군인들은 도로에 벌벌떨며 서서 차량운행을 통제하고있던 모습이었다. 자주포들과 병력을 실은 군용 차량들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철원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고석정으로 이동하는 길, 앞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군용 트럭 ‘두돈반’ 을 보며 택시기사는 푸념하듯 내뱉었다. 철원평야 저 편에서는 쾅, 쾅 포탄소리가 울렸다.

그해에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철원의 군대에서는 지뢰폭발 사고가 있었다. 지뢰를 밟은 병사는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아마 그것은, 휴전국에서 태어난 죄일 것이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지뢰를 발로 걷어차다가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은 전방지역에는 비일비재하다. 전쟁이 끝나고 60년도 더 되는 세월이 흘렀으나, 변한 것은 크게 없다.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거라고.” 그게 단순히 철원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안보관광을 하는 길에 관광안내사는 힘주어 강조했다.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켜낸 어르신들에게는 감사를, 나라를 이끌어갈 세대에게는 격려를 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땅덩어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뿐인가, 관광안내사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서 설명을 들은 후, 내가 북한학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안 군인은 내게 질문이 없냐고 물었다. 북한학과라면 더 많은 질문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군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이 조그만 전망대에서 질문이랍시고 할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북한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걸어주었음에 고마워하면서, 앞에 있는 강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했다. “저 강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있을까요?” 군인은 ‘아니’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북한이나 통일, 혹은 분단에 대해 보다 심화된 사유를 기대한다. 누군가는 투철한 안보관을, 누군가는 깊은 평화관을 기대한다. 단순히 북한학과에 있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탈북민 관련 단체에서 일을 하거나, 북한 관련 연구소나 부서에서 근무하거나, 여하튼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총체적 무지, 사회적 배타성, 그러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묘한-韓-친밀감,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 궁금증 따위의 것들이 온데 뒤섞여있는 복잡한 무언가’에 항시적으로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힘쓸 것이고, 누군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단순히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 누구라도, ‘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많이, 더 자주 요구되거나 그렇지 않을 뿐, 누구나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특정한 사유를 요구받고 있다.

2015년 말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일 당시, 새누리당 당사 앞에는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나는 그 현수막을 보자마자 대번에 칼럼을 하나 써서 인터넷에 기고했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현실은 부당하며, 오히려 그런 현실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사실을, 마치 주체사상을 내면화하고 믿기 시작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의 지나친 발현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라는 말도 북한 앞에서는 무용하기 짝이 없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장하는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물론, 악플도 많이 달렸다.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문구는,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주체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지한 가운데 만들어진 문구다. 그러한 현실을 당리당략에 맞게 악용한 것이다. 흔히 ‘북풍’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 사회 정치의 풍토는, 그 효과가 무척이나 확실하므로 지금껏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나서 시작된 박근혜 퇴진 시위 초기에 평화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던 것도 ‘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평화롭지 못하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향해 던져졌던 ‘프락치’라는 말이다. 프락치의 의미가 ‘전문시위꾼’, ‘선동가’, ‘폭력주의자’, ‘종북세력’ 등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은 구태여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초 북풍은 북한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각인시킴으로써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이른바 ‘안보위기 결집효과’를 극대화하고, 동시에 반대세력을 흔들기 위한 보수 기득권층의 전략이었다. 1997년의 총풍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북풍은 주도하는 자가 뚜렷했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북풍은 점차 전략을 넘어, 온 나라를 휘감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구조처럼 굳어지고 있다.

탄핵 소추안이 기각되고 난 후,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심판에서 박근혜는 또 한 번 북풍을 이용하고자 했다. 탄핵심판에서 박근혜의 대변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촛불집회에서 불린 노래의 작곡가가 김일성 찬양 노래를 만든 전력이 있다며, 촛불집회는 민심이 아니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대항마였던 문재인을 향해, 북한에 의견을 물었던 종북주의자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자 몇몇 언론들은 박근혜가 2005년에 김정일에게 썼던 편지를 공개했다. 김정일을 ‘위원장님’이라고 부르거나, 남북이 아닌 ‘북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박근혜를 소개함으로써 북풍의 방향을 오히려 박근혜에게 돌리고자 했다.

북풍을 박근혜에게 돌리고자 했던 현실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북풍이 단순히 북한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 관련되거나 북한에 친밀감을 표하는 행위를 경계하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그 어떤 평화적 사유와 행위도 배척된다면,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헌법마저도 경계대상이 된다. ‘북-’에서 살아가는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과, 한반도 남쪽의 모든 시민들은 분단의 옭아맴 속에서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의 남성들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2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거나,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치졸한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전방의 주민들이 지뢰사고를 당한다거나,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북한이 동해와 서해 어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겨 우리나라 어민들이 어획에 피해를 입었다거나, 그 결과 꽃게나 오징어의 가격이 폭등하거나, 개성공단이 폐쇄되어 한동안 교복 공급량이 수요량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교복 대란이 있었다거나, 하다못해 북한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는 사실이 있다거나, 하는 현실보다 더욱 심각한 현실이 닥치고 있다. 북한학과를 ‘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더욱 가혹해졌다는 것, 과거에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주장과 실험을 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그조차도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제는 ‘북-’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들조차 배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단은 강하다. 그러므로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강해야한다. ‘북-’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념과 사상은 달랐을지언정,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러나 북풍이 거세지는 오늘날에는 노력의 스펙트럼이 상당부분 소실되고 있다. 이래서는 평화적으로 분단을 넘어서는 일은 점차 불가능에 가까워지기만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분단은 강하다. 그러므로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강해야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우리 손으로 제한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여전히 ‘북-’의 한가운데 선 채로, 언젠가 ‘북-’이 아니라 평화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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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말에서 9월초 태풍 라이언룩에 의해 북한 함경도 지방에 심각한 수해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이번 수해로 138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실종되었으며 약 1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식수와 보건문제 위기에 처해있는 인원은 약 60만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 언론은 그 피해를 두고 '해방 후 처음 맞는 대재앙'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5차 핵실험 등 최근 잇따르는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은 분명하고 신속했다. 평양주재 UN 상주조정관실은 수해를 입은 북한지역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6개 지역, 60만 명 주민들의 수해복구 비용 2,820만 달러 모금에 나섰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같은 민족인 우리 정부는 '묵묵부답' 이다. 통일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두고 "북한이 수해 지원을 요청하더라도 5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 등을 고려할 때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 며 거부했다. 심지어 정부는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 역시 막고 있다. 지난 20일 북한 수해 지원을 위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대북접촉 신청은 불허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이 '인도적 지원'


"한반도의 자연재해와 안전문제도 함께 대응해 나갑시다." -광복절 70주년 경축사 中 


"앞으로 한국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드레스덴 선언 中


자연재해에 대한 남북의 공동 대응,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지난 2012년 대선 공약집을 살펴보면 '정치적 상황과 구분하여 인도적 문제 지속적으로 해결' 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또한 올해 1월 통일부 역시 2016년 업무보고에 '인도적 문제는 꾸준히 해결' 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통일부 업무보고에는 박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이산가족상봉, 모자보건 및 감염병 예방을 위해 영유야 백신, 어린이 영양지원, 임산부, 산모 의료지원, 결핵 백신 등 감염병 예방 및 치료사업 등이 담겨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통일부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도적 협력 지원을 지속'하기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함경도 수해 피해에 따른 영유아, 임산부, 수해에 따른 전염병 등이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행동은 전혀 없다.


5차 북핵실험 이전의 박근혜 정부 인도적 지원은?


남북관계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북핵실험 때문이다. 지난달 9일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4차 핵실험 이후 고작 8개월 만이다. 게다가 5차 핵실험은 북한의 역대 핵실험 중 가장 파괴력이 큰 규모(10kt 상당)라고 알려지고 있어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소형화가 완성단계에 들어섰다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실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불가 이유로 새누리당은 19일 '북한의 핵 포기와 도발 중단 선언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고 밝힌바 있다. 


▲ 대북인도적 지원 현황 / 출처 : 통일부



그러나 4, 5차 북한의 핵실험 이전인 임기 초반, '통일은 대박이다.' 라며 인도적 지원을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의 성과는 정작 보잘것없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2007년 4,397억원 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MB정부 때 부터 급격히 감소해 현재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MB정부 때 보다 다소 상승했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역시 올해(8월)는 전무한 상태이다. 참고로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또한 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국민과 약속한 사안이자, 여러차례 강조한 부분이다.


북핵문제 해결의 정책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현재 여러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핵은 나날히 고도화, 소형화 되고 있는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만 총 세 번의 핵실험이 발생했다. 북핵문제 뿐만 아니라 북한은 SLBM과 노동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핵문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합리적 정책전환을촉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경실련통일협회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인도적 지원 통한 북핵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 마련' 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 북핵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대화의 틀 속에 관리되어 왔었다. 현재 6자 회담은 2008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의 수석대표회의를 끝으로 중단된 상태다. 


역대 남북관계의 여러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 왔다. 박근혜 정부 초반에도 아시안게임 북한 고위급 3인의 방남, 연이어 진행된 고위급접촉을 통해 개성공단 잠정중단의 위기를 대화로 해결한 사례가 있다. 즉 대북수해를 통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틔어 압박과 제재의 위주의 대북정책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정책전환도 가능한 상황이다. '인도적 지원' 이라는 명분도 충분하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와 행동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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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토요일, 

문래당이라는 공간에서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청년네트워크'의 평화통일분과가 참여해

"샘이나는 세미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바꿈 청년네트워크는 대학생, 시민단체 활동가, 회사원, 백수 등 사회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2-30대 청년 활동가들의 모임입니다. 



지난 2015년 2월, 대학, 노동, 인권, 평화통일 4개분과가 모여

<세상을 바꾸는 청년사회입문서>라는 책을 출판했고 현재 2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그 4개 분과 중에서도 평화통일분과의 구성원들과 만나

<세상을 바꾸는 청년사회입문서>를 쓰게 된 이야기,

자신이 맡아 쓴 글에 대한 이야기,

평화통일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가지 화두를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날 자리에는 '4부-평화, 통일보다 낯선'의 여섯 저자 중 네 분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셨는데요. 




'통일이라 쓰고 탈분단이라 읽는다'를 쓴 최수지씨(학교통일교육 전문강사),

'분단 모순 극복으로서의 통일'의 임지훈씨(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박사과정),

'청년실업 중동보다 남북경협에서'의 저자 홍명근씨(바꿈 활동가),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의 이다솜씨(독립다큐멘터리스트)가 모여주셨습니다



사회, 인문학적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부족한 2030세대가

서로 편한 공간에서 열띈 논의와 토론을 이어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기획에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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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새 국회에


2016.5.26. 한겨레


박영민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활동가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졸업이 다가왔습니다. 그간 대선부터 지방선거, 총선까지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나의 한 표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고민하고 또 염원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어제보다 더 진보했고,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동국대 북한학과에 재학 중인 저는 최근 36년 만에 개최된 북한 조선노동당의 당 대회를 관심 있게 봤습니다. 당 대회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악화된 남북관계는 북한학도에겐 막연한 정치가 아닙니다. 취업과 미래를 결정지을 현실에 가깝습니다.


당장 남북교류를 다루는 회사도, 정부부처도 없는 상황이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으로 2011년 기준 약 6000억원대의 손해를 입은 현대아산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중단 사태로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생활고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사업계획이 확대될 일도 없기 때문이죠.


최고 수치를 기록한 청년실업률 앞에 정부는 청년과 대학에 그 탓을 돌립니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대학에서 적절한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수요를 염두에 두지 않은 학문을 배운 청년들 탓이라는 것이지요. 정부의 이러한 불호령 앞에 대학은 앞다퉈 ‘프라임 사업’이라고 불리는 구조조정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인문·사회계열 인원은 축소되고 그 인원을 공학계열에서 충당했습니다. 교육부에는 ‘너무 많은 대학과 대학생’이 오직 인문·사회계열에만 해당했던 모양입니다. 프라임 사업의 결과로 해당 대학 전체 인원의 11%에 해당하는 5351명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이동’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인문계열과 공학계열을 복합한다는 명목으로 신설된 학과들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경희대는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을 합쳐 웹툰창작학과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샀고, 국민대는 ‘엔터테인먼트디자인 테크놀로지학과’ 등 읽기도 힘든 영어를 다 가져다 붙여 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은, 대학에선 문과의 씨를 말려놓고 정작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자며 ‘인문학 증진법’을 공포한 게 다름 아닌 정부라는 것입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청년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왜 취업에 실패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가장 분명한 건 문과생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적절한 분배도 없이 발전을 외치며 돈 되는 기업만 키워주는 풍습이 원인입니다. 인력난에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경직된 시장은 고려하지 않고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을 하라고 말하는 정부가 원인입니다.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나라 정치의 암담함이 보입니다. 청년들의 투표율이 계속해서 상승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생존의 문제가 닥친 청년들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승리했다는 성취감에 취해 20대 국회에 기대하고 있는 청년들을 잊어버리진 않았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4년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패기 넘치게 출발 테이프를 끊은 만큼 모두의 염원을 빌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꼭 일조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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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김홍선 오사카국제대학 인권교육 강사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오사카에서 만난 '밀로의 비너스'


살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고민의 여지도 없었던 것들, 국가, 국적, 국어, 이런 것들 말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히 부여 받았다 생각했는데 사실 이것들은 때로 기막히기도 하고 우연하기도 한 시간과 사건의 결과였다. 굴곡 많은 이 땅의 역사를 생각하자니 더욱 그렇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 의해 강제 연행 되었던 나의 할아버지가 일본을 탈출해 당신의 고향인 충청도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황해도가 고향인 나의 외조부모가 6.25 전쟁 때 이남으로 피난을 오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속한 집안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이루어진 선대의 크고 작은 결정들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국가, 갖고 있는 국적, 쓰고 있는 언어를 하나로 동일하게 만들었다. 우연한 일이다.


지난 11월,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김홍선 선생을 만났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하거니와 영락없는 오사카 아줌마가 따로 없다. 쾌활하고 수다스럽고 웃음이 많다. 그러나 예의 그 웃음 가득한 얼굴로 풀어 놓는 이야기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재일교포 2세인 그의 가족사를 들어보면 이렇다.


"일제의 수탈로 생계가 어려웠던 부모님께서 1939년 4월, 일본 시모노세키로 건너오셨어요, 그 후 오사카에 자리 잡고 신발을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일본의 징용 명령이 떨어졌지요. 아버지께서는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강제 징용까지 하라고 하니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숨어 다니셨어요. 징용을 시키려는 일본 경찰의 폭압이 점점 심해지자 아버지는 온 가족을 데리고 히로시마 현의 산골로 도망쳐버렸습니다.“



1945년 8월 5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일본이 패전을 맞이하자 생계를 위해, 일제의 강제 연행과 징용으로 인해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많은 한국인들이 내쫓기듯 일본 땅을 벗어나게 된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어렵사리 구해서 타고 간 귀국선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고(1945년 8월 24일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다수 타고 있던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가 교토 근교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5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수몰되었다.) 한반도에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끝내 귀국선을 마련하지 못한 김홍선 선생의 가족들은 히로시마에서 조금 더 생활하다가 종전직후의 혼란한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현재의 60만 재일교포의 시작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나와 김홍선 선생이 각각 태어난 국가가 달라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김홍선 선생은 1951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3살이 되던 해 온 가족이 오사카로 터전을 옮긴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파친코 가게에 화재가 나면서 히로시마에서의 생활기반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갈 곳이 없던 가족은 한인들이 모여 살던 부락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곳은 미군기지 건설공사에 인부로 일하던 교포들이 그대로 공사장 근처에 정착해 살게 된 부락이에요. 막노동꾼들이 합숙소로 쓰던 판잣집 같은 곳에 칸막이를 해놓고 여러 가구가 나눠 살았는데, 우리 가족도 한 칸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때 살던 집근처에 건국학교라는 한국계 학교가 있었어요. 조국을 늘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언젠가 가족과 함께 고향에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고 저희 형제들을 그 민족학교에 보냈어요. 한국어를 배우게 하려고요."


민족의식이 유별났던 그의 아버지는 곤궁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일본학교보다 학비가 비싼 한국 학교로 아이들을 등교시켰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에 따라 김홍선 선생 역시 건국소학교를 졸업하고 건국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김홍선 선생은 중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사고가 있었다.


"당시 큰 오빠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기계 한 대를 장만해 밥그릇이나 젓가락을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재일교포들이 주로 하는 막노동일 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서였죠. 여름방학을 보내던 저도 가서 일을 돕게 됐지요. 기계가 찍어낸 플라스틱 제품을 빼내다 사고가 났어요. 기계에 양손이 끼어들어가 손가락이 모두 으스러졌지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생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라 만으로 겨우 12살 때 벌어진 일이에요."


"겨우 12살이었잖아요" 하며 그가 웃었다. 뭘 몰랐다며 웃었다. 기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모르고 두 손을 다 집어넣는 어린애였다. 으스러진 손가락은 접합수술조차 할 수 없어 손목 아래로 모두 절단해야 했다. 가난한 살림에다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재일교포였기에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퇴원을 서둘렀다. 사고와 함께 찾아온 사춘기는 혹독했다.



"14살이 되던 해 외국인등록증을 만들러 구청에 가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당시엔 사진을 찍고 지문을 남겨야 하는 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손가락이 없잖아요. 그게 너무 걱정이고 사람들의 시선도 무서웠어요. 다행히 구청 직원이 제 상태를 확인해주는 도장을 찍어줘서 일본에서 살 수 있는 등록증은 나왔지만 그때 제가 장애인이라는 것과 외국인,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고 후 학교를 그만 둔 그가 집에서 한 일이라고는 책읽기와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보기였다. 12살의 김홍선은 어느덧 18살이 되었다.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재택장애인이었던 그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 건 펜팔이었다.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영화잡지에 실린 펜팔모집 광고를 보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글씨 쓰기는 문제 되지 않았다. 글씨 쓰는 연습을 지독히 해온 것이다. 대화를 하는 중에 그가 직접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양 손목 사이에 낀 펜은 그 누구의 손가락 사이에서보다 정교하게 움직였다. 획수가 많은 한자도, 곡선이 많은 히라가나도, 자음과 모음의 간격이 까다로운 한글도 모두 반듯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일본사회에서 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펜팔 편지를 안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숨기고 가짜 일본 이름을 만들어서 편지를 주고받고 했어요. 그리고 손이 없는 사람은 더욱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그것도 숨겼어요. 그렇게 진짜 나를 숨기고 펜팔 친구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가짜모습으로 친구를 갖고 있는 게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결심을 하고 고백했지요. 그 후 절반의 친구는 편지를 주지 않았지만 계속 편지를 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일본 사람 중에서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덕분에 세상에 나갈 용기도 생겼고, 제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맞는 계기도 생겼죠."


펜팔로 용기를 얻은 그는 오사카 문학학교에 등록했다. 1970년의 일이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 듣는 문학 강좌였지만 중학교 1학년 이후 처음 나가기 시작한 학교였다. 그곳에서 재일교포 시인 김시종 선생을 만난다.  


"김시종 선생님이 밀로의 비너스엔 팔이 없는데 왜 우리는 아름답다 느끼느냐 물으셨어요. 왜일까요? 비너스에게 없는 팔과 손을 우리가 상상해서 보니까 아름다운거래요. 그때 저는 너무 놀랐어요. 양손이 없는 제 자신에게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 때였는데, 우리의 상상력 덕분에 저도 손이 없는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어요. 그때야 저도 이제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아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시종 시인이 김홍선 선생에게 남긴 말은 "시인에게 마이너스란 없다"였다. 손이 없는 것은 마이너스의 의미가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으로 다채롭게 채워 나갈 공간이 생겼다는 것으로 느꼈다. 오사카 문학학교 이후 김홍선 선생의 삶을 보면 실로 그렇다.


1974년, 재일교포 3세들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해 11년을 꾸준히 했다. 이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어 강의를 맡았다. 1991년부터 시작한 이 강의는 2011년 3월까지 지속했고 2006년부터는 오사카국제대학에서 인권교육론을 담당하는 비상근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저를 둘러싼 세 가지의 안 좋은 조건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찾아 살게 됐으니까요. 외국인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온 재일교포에, 중증 장애인에, 중학교도 못 나온 학력, 이런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잖아요. 자기의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니에요. 불행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행복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남들 보기에 그까짓 게 뭐가 행복하냐고 해도 상관없어요. 무엇이든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고 전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행복을 말하는 그의 얼굴이 꽃잎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처음 사회생활을 했던 회사에서 받았던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 한복을 입은 날이면 어김없이 달라붙던 불쾌한 시선들, 절단된 손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던 어린 날의 기억들. 그가 말하는 행복은 불행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쳐본 선험자가 들려주는 아주 핍진한 진심이었다.


김홍선 선생이 재일교포 2세라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타고 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조부모 세대가 한반도 남쪽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한 탓에 지금 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민족이니까, 가혹한 삶에 대한 동정심으로, 역사적인 책임감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당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 생각할 때 이해의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로의 삶이 뒤바뀌거나 어쩌면 비슷해질 수 있었다는 우연의 가능성을 열어놨을 때 타인의 삶에 대한 오해 없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의 시간을 차마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가 있던 자리에 나를 갖다 놓는 상상력은 마음껏 발휘했다. 김홍선 선생은 그렇게 만나야 한다. 밀로의 비너스를 만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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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을 왜 시작했는가?

더 플랜B 2015.4.5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준비위원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면서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주변에 많은 활동가들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스멀스멀 용솟음 치고 있는 방사능 걱정으로 한숨 짓기 바빴다.

반면 일반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미국 쪽으로 갈 것이라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웃던 친구가 있었다. 너무 기가차서 각종 수산물과 공산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으니,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 친구는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흉측한 괴 생명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이렇게 되냐며 나에게 묻곤 했다.

당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우리 활동가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 운동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핵발전소 및 방사능의 각종 어려운 용어는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 우리가 직접 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쓰면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3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핵발전소 문제 및 방사능 문제를 인포 그래픽으로 정리한 ‘방사능 와치(http://www.nukeknock.net)’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전문가들과 홍익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도움을 얻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환경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다. 사이트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 사이트의 개설과 동시에 트래픽량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페이지뷰가 800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경험은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방사능와치에 올라와있는 인포그래픽

그러나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자고 했다. 자료를 찾을수록 엄청난 비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선박들의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려주었던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속출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서는 2010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생산한 보고서에 해양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하고, 안전관리매뉴얼의 분량이 많으며, 심지어 선원의 나이가 많고 선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4년이나 방치해 둔 것이다.

해양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목포여객터미널에 12척의 배를 2시간 20분 동안 점검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었다. 한 척당 13분이다.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할 시간으로 선박을 검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자신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매뉴얼에는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큰 재난사고가 나면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언론의 경쟁적 취재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를 미리 발견해 시민들과 소통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이런 자료들은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도,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자료들,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향후 시민운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선 기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를 살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결과물들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웹툰으로 제작된 미생, 송곳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또 다른 결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일어날 사고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용역서, 학계 논문, 통계, 빅데이터 등을 찾으면서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핵발전소 등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위험 예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출처 : The Library by Zhu, on Flickr)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 이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인포그래픽, 웹툰, 카드뉴스, 동영상 등으로 가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을 찾아서 공개할 예정이다. ‘바꿈’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 복지공동체, 안전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최대한 쉽게 가공해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컨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사회의 부패하고 썩은 곳을 지적하는 내용은 잘 찾을 수 없다.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반면에 구석구석 시민들을 위해 훌륭한 컨텐츠를 만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내용의 전문성과 딱딱함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꿈’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향후 ‘바꿈’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창립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나조차도 기대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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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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