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행 헌법의 한계가 개헌 동기는 민주적이었지만, 실제 개헌 내용에는 시민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면 이번 개헌은 어떻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시민 참여 개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에서 제작한 카드뉴스와 함께 연재한다. [편집자말]

현재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 이주영, 이하 개헌특위)가 구성되어 있고, 각 분야 전문가와 헌법 관련 사회운동 활동가 등 50여 명으로 구성된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지난 6개월 간의 활동을 통해 헌법 각 분야에 대한 자문위원 의견의 대강을 작성하여 각 분야별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개헌특위와 자문위원회는 여야 각 정당과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여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공약한 것을 염두에 두고 그 활동기한을 내년 6월까지로 연장하였다. 자문위원회 논의를 토대로 개헌특위는, 소위원회를 열어 7월-8월까지 분야별 주요쟁점에 대한 합의사항 및 이견사항을 정리하여 국민의견수렴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국민대토론회, 5000명 국민대표 원탁토론 등을 진행한 후 다시 헌법개정안 작성을 위한 기초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개정안을 완성한 뒤 전체회의, 본회의, 국민투표 등의 절차를 밟겠다는 활동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헌특위는 특히 국민의견수렴을 위하여 온라인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국민의 개헌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국회에 2곳의 자유발언대와 주요 도시로 찾아가는 자유발언대를 운영하며, 소위원회 기간(7-8월)동안 국회 방송을 통한 연속 TV토론을 비롯하여, 전국 주요도시 순회 국민토론회와 공중파 및 종합편성채널 TV토론 및 여론조사 등의 국민참여형 공론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5000명 개헌 국민대표를 구성하여 원탁토론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최소 2-4배수의 개헌국민대표를 공모하여 성별, 연령별, 지역별 대표성을 기준으로 1차로 선발된 사람들에게 참가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최종적으로 5000명을 선발하여 수도권 등 4개 권역에서 총 4차례, 4시간가량의 원탁토론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개헌국민대표 방안은 개헌과정에서의 시민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위해 김종민 의원이 지난 2월 15일 발의한 '국민 참여에 의한 헌법개정의 절차에 관한 법률안(이하 개헌절차법)'의 일부를 제한된 형태로 수용한 방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5000명의 선발기준이 아직 불분명한 것은 차차 개선될 것이라 이해하더라도, 총 4개 권역에서 1000명 이상이 모여 4시간 총 4번의 토론으로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지, 이런 절차에 과연 '숙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자칫 요식행위로 그칠 것이 우려된다.

국민자유발언대 역시 필자가 개헌특위 시작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이었으나, 국회 마당 혹은 특정 건물을 정치개혁과 개헌논의를 위해 온전히 개방하자는 본래 제안과는 동떨어진 단순한 형식적인 발언대 설치로 그치는 느낌이다. 이미 새 정부가 국민인수위원회를 광화문에 설치한 사례도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국회개방 및 개헌 공론화 계획의 수립이 아쉽다.


헌법개정 주권실현 국민행동 제안 

국회 개헌특위가 제안하는 방안들은 현재로서는 매우 요식적어서,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어떤 좋은 제안에도 각계 각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개헌 논의는 빈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다.

우선, 각 부문과 지역에서 개헌 논의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주권적‧인권적 요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조합과 각 직능단체, 지역주민단체, 각 분야 인권단체와 환경단체,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단체와 권력 감시 단체 등이 해당 의제나 분야에 관련된 다양한 시민토론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권리선언과 제안을 정식화해야 한다.

둘째, 국회에서의 개헌논의, 정부 각 기관에서의 (이제 본격화될) 개헌논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국적인 시민사회 개헌논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각계각층이 국회 개헌논의의 자문역만 수행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회특위 자문위원회가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민의회도 가장 바람직하긴 하지만, 시민의 참여를 촉진할 시민사회 자신의 마당 혹은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일을 진행할 전국적인 연석회의 혹은 연대체가 필요하다.

셋째, 국회 및 정부 개헌논의에 대한 모니터와 개입이 절실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개헌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변죽만 울리고 실제 조문작업에는 참여하지 못하거나, 막판 절충에 가장 중요한 주권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국회에서 열리는 모든 헌법 관련 회의의 공개를 요구하고 누구나 모니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개헌특위와 특위 자문위원회, 나아가 국회와의 바람직한 시민참여를 위한 협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개헌특위가 제안한 요식적인 개헌에 관한 국회 자유발언대가 아니라 정치개혁을 포함해 '정치개혁과 개헌을 위한 시민대토론 마당'이 국회에 마련되도록 협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시에 4-5개의 토론회를 동시에 개최할 수 있고, 만민공동회가 가능하며, 수시로 누구든지 제안을 접수하고 발언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아고라를 국회 안에 마련하는 사업을 협의할 수 있다. 또한 요식적인 5000명 개헌 국민대표가 아니라 쟁점별로 실질적인 시민 합의 회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협의할 수 있다.


헌법개정 주권실현 연석회의를 구성하자

이에 '헌법개정 주권실현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구성을 제안한다. 연석회의는 헌법 개정 논의에 촛불시민혁명을 이끈 주권자들이 보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촛불 이후의 대한민국을 보다 주권과 인권의 기반 위에 올려놓고 국가권력과 헌정질서가 그 주인인 시민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안전, 나아가 모든 생명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복무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석회의는 헌법 개정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기를 원하는 각계각층 사회단체와 인사들의 협력기구이자,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개헌 논의 혹은 권리 선언을 연결하고 소통하며 증폭하는 디딤돌, 가교, 마당, 혹은 확성기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헌법 개정 과정에 시민사회의 발언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기획‧추진하고, 각계각층 주권자들의 민주적 토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권리와 헌법적 장치들을 제안하고 공론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개헌논의가 국회의원과 일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나 특정 정치-사회 세력의 이해관계에 갇히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며, 견인하고 협력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요구와 권리를 헌법 개정 논의에 반영하고자 하는 시민, 특히 사회적 약자들과의 공동 협력과 법률적 이론적 지원 및 대변 활동을 수행하고자 한다.

연석회의에 참여하는 단위는 헌법 개정과 새로운 권리의 제도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회단체 및 모임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 직능단체는 물론, 지역주민단체나 모임, 부문단체나 모임, 연구자나 연구자 단체, 각종 인권-환경-시민단체, 개별단체와 연대기구 등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우선, 촛불권리선언을 비롯한 분야별 권리선언과 선언들을 헌법 조문화하는 작업이다. 노조, 단체, 모임, 지역 등에서 실정에 맞는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개헌 토론회 및 간담회를 통해 권리선언을 작성하고, 이를 헌법화하는 것이다. 또한 촛불권리선언 참여 주체들과 테이블 토론회나 개헌 만민공동회 형식을 빌린 자리를 마련하여 권리선언 항목별 개헌쟁점에 관해 논의할 수도 있다.

둘째, 국회 개헌특위 안과는 별도의 '시민개헌안'을 조문화할 수 있다. 바람직한 개헌 방안에 대한 시리즈 토론회를 개최하여,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개헌 과제들 가운데 공통된 사항과 토론해야 할 사항을 정리하고, 소통을 통해 이들 개헌 과제들을 분류 및 종합하여 시민개헌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무작위추첨 방식에 의한 시민합의회를 개최, 특정 개헌 쟁점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다. 이 작업은 국회 혹은 신문 및 방송사들과의 공동 개최도 가능하다.

헌법권리찾기 시민학습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개헌의 필요성과 의미, 쟁점, 새로운 권리 목록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한 소책자 발간이 첫째 방안이다. 헌법과 주권자 권리에 관한 강사단을 구성, 운영 및 강의 매뉴얼을 개발하여, 각종 단체를 비롯한 학교, 모임 등에 파견을 나가는 '찾아가는 학교'도 만들 수 있다.

기존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제휴하여, 시민참여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형성하는 작업 또한 요구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는 시민 발언과 조문 토론 등의 작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와의 공동 사업이다. 국회 개헌특위와 공동 토론회 및 시민 참여 방안에 관한 간담회를 진행하고, 정치 개혁과 개헌을 위한 광장을 열어 국회 특위가 제시한 개헌 자유 발언대를 실질적으로 시민 참여가 가능하도록 개선하고, 기타 정치 개혁과 개헌에 관한 국회와의 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참여 개헌 플랫폼 바로가기 http://bit.ly/시민개헌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촛불광장에 페미니스트가 있었음을 기억하라

 

바꿈 활동가 박영민 


인터뷰 전 날, 김금옥 센터장(여성미래센터)을 만났다. 어느 단체의 페미니즘 관련 행사, 그곳에서 촛불과 뉴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계보가 되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대학에 다닐 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던 언니들과의 만남이 참으로 즐겁다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오후 다시 만난 김금옥 센터장은 일단 차나 한 잔 마시자며 반겨주었다



집회를 함께 만들어 간, 집회에는 없는 사람들.

“610, 아마 거리에 있었는지, 지금 생각은 잘 안 나요. 아니면 학교에서 지금으로 하면 홍보물, 이거를 밀든지 뭘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6월 항쟁 때가 대학교 4학년 때였기 때문에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전부 다 거리에, 가두시위가 있으면 나가고 하는데 우리는 또 다음날을 준비해야 하잖아요. 메시지 같은 걸. 그래서 아마 가두시위가 아니었으면 총학생회 사무실 어디선가 이벌식 타자기를 두드리고, 수동식 등사기를 밀고 (유인물을 찍고). 어떤 때는 그럴 시간이 없으면 철필로 써서 찍고 다음 날 거리에서 시민들한테 나눠줬거든요.”

인터뷰 연재 초기에 만났던 황인성 이사장(수원민주화계승사업회)의 말들이 생각이 났다. 민주헌법쟁취운동본부(이하 국본)의 상임집행위원으로 6월항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전 날부터 미리 나와 있었던 상황, ‘007작전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암호를 전달하는 등의 행동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김금옥 센터장도 마찬가지였다. 6월민주항쟁의 주역이라 불렸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1기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 환호하는 광장에 내가 있었나, 6.29때는 분명 있었는데, 환호하고 옆 사람 끌어안고. 610일날은 잘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왜냐면 집회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늘 광장에서 함께 할 수만은 없거든요.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그걸 못 보거든요.

6월민주항쟁 때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전국에 비상상황, 그 때 계엄이 선포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잡혀가면 뭘 하고 옆에서 챙기는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비상연락망 짜고 누가 다치면 병원가고, 누가 잡혀가면 변호사 연결해서 무료변론 해줘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도 역할이 있었으니까 매번 광장에 거기 가서 있지는 못했어요. 우리는 막 그 광장에 가고 싶었죠.”

매일 매일 거리에 있던 삶이었고 그렇기에 그 날, 610일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에 순간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투쟁하는 삶을 살고 있는, 지난 30년 간 쉬지 않고 활동해온 그에게 적절치 못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집회를 준비하느라 집회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는 말, 기록되지 않은 역사 속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을 30년 전의 활동가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잡히지 않았다면 삼거리에 있는 공중전화박스, 거기에 달려있는 전화번호 책에 표시를 할 것. 그 표시를 확인하면 약속된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 면회를 가는 이들에게 질문을 부탁하고 답변을 전달받고. 그저 일상의 대화인 줄 아는 내용, 결국은 암호를 번역하고. 첩보영화 저리가라는 내용을 준비하고 달달 외웠을 이들을 생각하니 마냥 즐겁진 않았겠다고 하는, 철저히 준비할 만큼 무섭고 두려운 느낌도 있었겠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역보다 더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김금옥 센터장이 있었던 전라북도는 당시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았던 광주의 기억을 어느 곳보다 절실히 간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웃 광주에서 계엄령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아직 그것을, 피해도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여전히 군부가 있었던 거예요. 억압했던 사람이 정권을 연장했는데,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나오니까 거의 막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그런 두려움이 있었던 거죠. 그런 소문도 돌았던 거예요, 계엄이 선포 될 거라고.”

이번 촛불에서는 엉뚱한 집단이 계엄을 요구했지만 실제로 계엄의 공포를 느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87년의 성과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꼭 계엄령 때문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집회 속에 없는 집회를 만든 사람들은 존재했다.

여성단체에서 운동할 때도 3.8(세계여성의 날)때 우리 활동가들은 그걸(행사 전체를 ) 못 봐요. 활동가들은 죽어라 자기가 만들었던,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구현된 모습을 자기는 모른단 말이에요. 뭐 일하고 무선하고, 현장에서 뛰어다니느라.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백조의 발들이잖아요. 또 활동가들이 일하는 사진은 아무도 안 찍어, 다 환호하는 사진만 찍잖아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후원의 밤이나 3.8행사 때는 활동가들 일하는 걸 쫓아다니면서 찍어서 보내주기도 했어요.”

아마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저 무대를 세우는 데 얼마가 들었을까, 누가 세웠을까, 곳곳에 있는 스피커는 누가 가져다놨을까. 매주 진행되는 집회에서 식순은 누가 정리했을까, 발언은 누가 수집했을까.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행사에서 나타나는 질서정연함은 그저 시민의식의 발전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이 질문들의 답은 대부분 퇴진행동의 활동가들에게 있을 듯하다. 촛불이 더 높게, 더 활활 타오르도록 그 밑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활동가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거리에 나가고 싶어 했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지금은 행사 때 마다 활동가들의 사진을 꼭 꼭 찍어준다고 한다. 당신도 분명 이 역사 안에 있었고, 우리가 그것을 기억한다고.



여성의 운동과 여성운동

학생운동을 하는 속에서 여학생들도 사회 진보적 의식화를 했는데 맨날 중요한 결정은 남학생들이 하고. 화염병 던질 때는 우리를 보호한다며 뒤로 빠져라, 돌멩이를 치마에 담아서 와라, 하는 식이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별 분업이 있는 거죠. 집에서 엄마가 하는 일은 여학생들이, 아빠가 하는 일은 남학생들이, 그런 게 아무도 어색하지 않은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쫙 역할 분담이 되는 거야. 그러나 그 중에 그게 불편한 사람들이 있겠죠? 저 같은 사람들?”

열심히 공부를 했다. 노동, 역사, 철학. 동기들과 스터디를 하고 의식화에 함께 뛰어들었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의 환경들은 사진에 찍히지 않는 활동가처럼 여성을 운동의 주체로 여기지 않고 줌-아웃(Zoom-Out)시키기 일쑤였다. 여성들은 분노했고, 목소리를 찾아 나섰다. 남학생회가 되어버린 총학생회 외에 총여학생회를 출범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도 여학생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남학생회도 있냐, 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너희는 총학생회 자체가 남학생회니까 (라고 했어요). 여학생들의 권리만이 아니라 우리도 여기서 여성들이 주체로서 사회변혁의 학생운동을 참여하겠다, 하면서 여학생회 만드는 걸 한 거지.”

총여학생회를 만들고, 단과대별 여학생회까지 조직했다. 없는곳은 없는 대로, 있는 곳은 있는 대로 '선출범 후인식'으로 일단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가능한 단과대 별로 여학생회를 만들고 출범에 성공했다. 경쟁자 없는 단선의 선거였지만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여학우는 와서 항의한 적도 있어요. 자기는 여성으로서 곱게 대학 졸업하고, 자기 집은 먹고 살만도 하고, 그냥 시집 잘 가서 자기 편하게 살았으면 되는데 왜 나한테 이런 걸 알려줘서, 여성이 차별받고 살고 있는 걸 알려줘서, 힘들게 살게 하냐고. 왜냐면 그 때는 주체로 선다는 건 그런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뜻이었어요. 우리(운동권)는 또 달랐지만 그런 사람들, 소위 일반 학우들 생각에는 싫잖아요, 예전에는 편했는데, 이런 걸 직면하고 나서 갑자기 나의 삶이 불행하고. 그렇다고 이 세상이 금방 바뀔 것 같진 않고 너무 힘들어.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 모든 여성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 중엔 빨간 약을 먹어버린 네오처럼 더 이상 되돌아갈 출구도 없는 곳으로 들어와 버린 이들도 있었고, 때문에 한탄도 있었다.

그러면 차라리 몰랐던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푸념도 했지만 결국 이미 알아차려버린 걸 어떻게 할 거야,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같이 그런 사람이 모여서 또 활동을 했죠.”

재밌게도 푸념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여학생회는 활기를 띠었고, 5개 단과대로 시작했던 여학생회가 전 단과대에 생길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었다. 물론 여성들의 움직임은 비단 학내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876월항쟁을 겪기 전부터 개별 사건마다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어왔다.

“85년도에 25세 조기 정년제를 폐지하는 운동을 했어요. 너무 웃기죠, 놀랬죠. 25살 먹었으면 여자는 시집을 갈 나이기 때문에 퇴직하라는 거야. 그 사건으로 그 때 있었던 단체의 여성단위들이 모여서 대책위를 꾸려서 싸움을 했어요. 그러다가 87년도에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되고, 그 때 당시에 부정선거가 많으니까 공정선거 감시 운동을 한 거죠. 그래서 여성유권자 감시단, KBS시청거부 같은 것을 여성운동이 했었어요.

선거가 끝나고 그 대책위(25세 조기정년투쟁)가 우리도 여성문제를 여성들이 상시적으로 제기하면서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조직을 만들자, 상설기구를. 그래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을 만들게 되요, 872월에. 그래서 올해로 여연이 30년이 됐어요. 85년도 조기정년투쟁의 그 연대의 경험, 그리고 권인숙 성고문 사건 공동대응, 그리고 여성유권자공정선거감시운동 등의 운동의 경험들이 쌓여서 상설화된 게 여연의 역사에요.”

그는 여연의 역사, 그리고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하던 중 최근 촛불광장의 페미존(Femi-Zone)’의 발생과 조금은 유사한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생각 혹은 바른 말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구역설정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가 말하는 안전공간이라는 또 다르겠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서, 페미존이라고 해서, 구역을 조성하면서 목소리를 내잖아요. 용기와 바른 말을 아무데서나 하는 게 아니라. 왜냐하면 안전하지 않으니까, 공격당하니까. 그래서 그런 걸 만들어서 그 목소리를 규합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 같아요. 그걸 대비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도 여성단체연합, 여성운동하는 곳, 여학생회 등 어쩌면 우리가 용기를 내서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 같아요. 여성운동조직은 그런 공간인 거예요. 우리는 거기서 거리낌이 없었던 거지.”


민주주의는 여성혐오와 함께 갈 수 없다.

더 이상 놀라고 강조하는 것도 무색하리만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현재의 뜨거운 키워드다. 그러나 또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운동을 30년 넘게 해온 김금옥 센터장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오랜 시간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그의 앞에 신인류가 등장한 것이다.

김 센터장이 경험한 87년의 항쟁, 그 당시의 민주주의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문제인식은 깊어졌고 사고의 폭은 넓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성숙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고 했던 주체들 중에는 일명 뉴 페미니스트(이하 뉴페미),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메르스 갤러리의 탄생 이후 등장한 2030 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촛불 광장에 정권교체가 목표여서 나온 사람도 있고, 정말 이 시대를 바꿔야 된다, 가치를 바꿔야 한다, 세대를 교체해야 된다, 정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 더 근본적인 개혁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이 나온 거예요. 어쨌든 정권교체까지는 동의를 하니까 연대를 했고, 그리고 진짜 우리가 이 사회를 새롭게 바꾼다는 것에 대해 동의가 됐어요, 그래서 새로운 민주주의로 내용이 바뀌고 확장해야 된다고, 직접민주주의를 더 확대해야 된다고, 이게 다 맞았어요.

그런데 이 민주주의 내용에서 딱 걸린 거예요. 민주주의 안에는 성평등이라고 하는 것,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그런 평등이 있어야 그게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인데. 이 다양한 정체성과 주체들이 다 주체로 서야 한다는 것을 말하니까 이제 불편해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중에하자 성평등 문제는, 일단 정권교체가 중요하지. 87년에는 그런 게 통했어요. 왜냐면 독재타도, 민주쟁취 그게 너무 큰 상황이라서 거기에 집중한 거예요. 그 안에 차이라든가, 어떤 다양성을 드러내가지고 그것이 가시화될 상황이 못 됐었어요. 물론 그 안에 그런 마음에 가지고, 그런 주체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게 들어날 수 있는 시대적, 사회 인식적, 주체들의 상황이나 정치적 맥락이 그랬던 것 같고.

그런데 이번 2016, 2017년 안에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나도 거기 갔어, 정권교체 외쳐, 소수자도 왔고 누구도 왔고 나도 깃발 들고 왔어, 나도 정권교체 세력이야.’ 그런데 갑자기 이제 성차별과 이런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니까 옛날 버릇이 나와서 또 지엽적인 말을 하지 말라, 그러면 또 이게 왜 지엽적이냐,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죠.”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페미존이 넓어지는 만큼 여성운동단체도 활발했다. 촛불광장이라는 것은 시민의 힘으로, 시민이 만든 만큼 누구도 배제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확실히 했다. 집회에서 수화통역을 할 것을 제안한다거나 여성혐오적, 소수자혐오적 발언에 문제제기를 한다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소위 시니어그룹의 페미니스트들 역시 발맞춰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집회였지만 우습게도 논란은 한 가수의 공연여부에서 비롯되었다.

“(DJ DOC 공연에 대해) ‘여성단체는 반대했다’. 다양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이 노래를 무대에서 공연하지 않으면 안 오겠다는 사람은 없지만 이 노래가 불편해서 오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냥 한다면 그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뜻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안 했으면 모르겠지만 이미 했는데. 우리가 어떤 자격으로 그 사람들을 못 오게 하냐 이거예요. 퇴진행동이 그동안 합의 해왔던 것에 비추어서도 이런 상황이면 공연을 진행하기 어려운 거지요. 그런데 '일부여성단체들이 반대해서 공연이 취소 됐다'는 기사들로 인해 난리가 났지. ‘니들이 뭔데 못 하게 하냐도 있고 잘했다도 있고.”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그의 말처럼 그 노래 공연이 없으면 안 오는 사람은 없지만 진행하면 안 오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다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지 않으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는 이 일은 ‘DOC 사건쯤으로 불리며 이번 촛불시위에서 꽤 굵직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여성운동을 하며 공격 받는 일은 흔했다고 한다. 이번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이 덜 비판적으로 산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하는 농담처럼 일베에서 소위 신상 털리기를 당하면 오히려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고. 그러나 이번 공격은 당혹스러웠다. 일베가 아닌 '촛불집회 참가자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이들'이라는 사람들에게 '친박페미'라는 말을 듣는 것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사과를 받기도 했었다.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아주 많았던 것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하는 페미니스트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양립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대 되었지만 여전히 함께 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꽤 많았던 이번 촛불이 탄생시킨 대통령은 다름 아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다. 성차별은 없애도록 노력하겠다, 소수자와 함께 하겠다는 선언도 아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

물론 선언만 하면 자동으로 페미니스트 자격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삐걱거림은 잦았다. ‘나중에사건이라든지 동성애 반대 발언이라든지, 왜 굳이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했을까, 그 진정성에 회의를 가질 수 있는 일들도 존재했다.

페미니스트, 그 개념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모든 차별에 반대하고 그런 차별을 만드는 구조를 바꿔내기 위해서 실천을 해야 되잖아요, 실천까지 포함하는 건데. 본인이 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는지, 어떤 의미로 했는지, 대중에게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는 계속 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 그 선언도 고맙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그랬으며 어떻게 할 거야. 그런데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으니까 이렇게 해야 페미니스트야’, 라고 요구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 것은 긍정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그러나 이미 여러 여성인사들이 내각구성 후보에 올랐고 그 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국가보훈처 처장으로 지목된 피우진 중령이었다. 선거운동 기간의 불협화음과 달리 내각의 성비를 적절히 맞춰나가겠다는 공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김금옥 센터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도 전했다. 피우진 중령이 보훈처장에 지목된 아주 기쁜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작전이 있었고, 어느 대위에게는 징역 2년이 구형되었으니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상반된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문재인 대통령을 마냥 옹호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과, 촛불광장에서 그랬듯이 계속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야한다는 목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이 정부가 스스로가 촛불정권이라고 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되고, 그 촛불광장에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는 것, ‘87년체제라고 하는 한계를 넘어 더 큰 민주주의, 확장된 민주주의를 열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한다거나 후순위로 취급하는 것은 이 정권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각인시키면서 견인하는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 거예요."

김금옥 센터장은 힘의 균형이 깨져 있는 사회에서 결국 우리는 연대를 통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은 전했다. 페미니스트들과 다른 운동과의 연대,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연대, 제대로 된 젠더 거버넌스. 이게 나라냐는 물음에서 , 그러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시대. 그 시대의 서막을 연 촛불광장은 따로, 또 같이를 실현할 수 있을까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6월민주항쟁 30년, 오늘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6월민주포럼’은 세대와 시대를 넘어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인터뷰 기사를 매주 1회 연재한다. 인터뷰는 6월항쟁을 경험한 이들이 오늘날 청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의미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시민의 변화, 6월민주항쟁의 핵심" 


1987년 6월 10일. 그는 며칠 전부터 집을 나와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사전에 가택연금을 한다거나 연행을 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당시 상임집행위원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에 몸을 담고 있었던 황인성 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30년 전 일을 어제 일인 양 또렷이 기억했다.  
 
"오후 9시부터 10분간 텔레비전을 끄고 전등을 끄자고 했어요. 그게 얼마나 실천될까, 이게 아주 관심거리였어요. 그때 내가 이화동, 저쪽으로 내려가면 종로5가 사거린데, 이쪽쯤에 내가 서 있었어요. 이 근처에는 사무용 건물이 있었고, 저쪽 낙산에는 서민아파트들이 주욱 서 있었어요. 대개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서민아파트였는데, 내가 볼 때 여기저기 창문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반 가까이가 꺼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뭐라고 해야 하나. 등골에 찬 기운이 쫙 흐르는 거야… ." 당시 국본이 배포한 '6.10 국민대회 행동요강'의 4항에는 ‘전 국민은 오후 9시에서 9시 10분까지 10분간 소등하고, KBS, MBC 뉴스 시청을 거부함으로 국민적 합의를 깬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 항의하고 민주쟁취의 의지를 표시할 수 있는 기도, 묵상, 독경 등의 행동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엄청난 감격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앞서 오후 6시 태극기 하강시간에 맞춰 시청 앞에서도 지나가는 택시나 버스가 일제히 경적을 울리고, 차안에 있는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손수건이나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 '아,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되고 있다. 숨죽이고 있던 국민들과 운동본부가...' 이런 걸 확인하면서 몸이 떨렸거든. 그런데 소등한다는 것은 몸이 거리에 있지 않고 집에 있지만 이런 큰 국민적 저항행동에 나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것도 한 가족 단위로.… ." 


87년의 재야, 종교, 야당 정치인 등의 민주인사들은 그간 비밀리에 준비해 온 국본을 5월 27일 결성대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발족했다. 이 자리에서 6.10 국민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 대회이후의 계획은 뚜렷하게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한 달 만에 저 사람들이(독재 정권) 자신의 의지를 꺾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당시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국민의 호응이 있었고, 그럼으로 해서 국민적 분노와 전두환 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 확인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국민의 호응도, 6.29선언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황 이사장의 말에 "그렇다면 예상하신 것은 무엇이냐"고 장난 섞인 질문을 던졌다.

 

 

 황인성 수원민주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김지혜 바꿈 활동가

 

 

그해 초에 발생한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살인 사건 당시 개최된 국민추도대회(2.7.)와 평화대행진(3.3.) 때보다 대회 규모가 분명 커져 있었다. 4.13 호헌조치에 대한 국민적 반대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징표였다. 참여한 시민들의 규모가 정부와 여당을 정치적으로 몰아붙이는 계기가 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대회를 기점으로 국민적 저항 행동이 지속적, 그리고 폭발적 양상으로 분출되어 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위학생들을 연행하려는 경찰들에게 멀리서 야유를 보내는 식으로 시위를 응원하던 시민들이, 쫒기는 학생들을 자신의 가게에 숨겨주고, 결국에는 최루탄 자욱한 거리에 함께 서게 되는 변화를 보면서 뭔가 '일을 내겠다'는 색다른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직적으로 거리투쟁에 나선 학생이나 재야단체 회원들, 정당원들과 달리 말없이 숨죽여 살아오던 보통시민들이 국민행동요강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손수건 흔들기, 차량경적 울리기, 전등 끄기 등), 탄압에 대한 공포를 뚫고 한 사람 한 사람 시민의 작지만 분명한 결단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가 느꼈던 희망과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기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80년 광주가 학생들로 하여금 뭔가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게 하는 일종의 명령을 내리는 그런 것과 같은 거예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은 광주의 죽음에 대한 빚진 마음, 이런 게 엄청 강했던 것이고, 그걸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지만,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어요."


계속되는 군사독재정권, 죽어가는 학생들, 고문, 최루탄, 그리고 5.18 광주항쟁. 자신의 집안에서 불을 끄는 일조차 무서웠을 시절에 그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온 거리와 광장은 흡사 그에게 기적이 아니었을까.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 30년 간 깊어진 문제의식" 


2017년 촛불이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비폭력이라는 기조도 한 몫 했지만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구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장애, 여성, 성소수자, 채식 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구호들. 자신의 처지와 연결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17년의 변화라고 하는 건 87년보다는 문제의식이 훨씬 깊고 넓죠. 왜냐. 87년은 눌려 있었으니 일차적 요구가 대통령직선제(정부선택권)와 민주헌법 쟁취로 모였잖아요, 그게 됐어요. 그대로 된 거야. 됐는데 이런 제도적 변화가 왔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느냐, 아니에요.

87년에 우리가 직선제 개헌을 했다고는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 발전하고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2017년의 변화라고 하는 것,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간 변화 또한 더 큰 변화를 위한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하는 걸, 6월항쟁 이후 30년이 가르쳐 준 거라고 생각해요." 

 

 

황인성 수원민주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김지혜 바꿈 활동가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결국 당선자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였다. 정치권은 분열됐고, 재야세력 내부에서도 상호불신이 커졌다. 대안이 되어야 할 재야운동에 내적으로 균열이 생겼고, 이후 정세에 통일적으로 대응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개헌 후 대선 날짜가 결정되자 국본 상집위원 내에서도 비판적 지지그룹,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본부, 후보단일화 그룹 등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갔다. 황 이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이래저래 정파적이지 못한’ 몇 사람만 국본에 남았고, '상처뿐인 국민운동본부'가 되어버렸다. 뿔뿔이 흩어진 대가는 컸다.  


사실상 군부정권의 연장이라는 참담한 대통령 선거결과였다. 그렇지만 투쟁의 성과인 국민기본권의 확대로 시민적 공간이 열리면서 새롭게 시민사회의 다양한 운동이 나타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쟁취한 현행 헌법의 틀 내에서 시민들은 멈춰있지 않고 가능한 틈새를 찾아 끊임없이 자기성장을 도모해 왔음을 이번 촛불광장에서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억압된 상황 속에서는 문제는 있지만 주요하게 부각되지 않은 ‘가치’,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가 온 거에요. 여성이라고 하는 가치, 환경, 평화·통일, 그 다음에 경제정의와 같은 이런 시민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는 6월항쟁 이후 있었던 많은 문제들과 그것에 대항했던 시민들의 공동의 경험은 누적되었고, 우리는 그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을 학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7년의 6월이, 2002년의 효순·미선이가, 2008년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이, 2015년의 백남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촛불과 탄핵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정치권의 미진한 결정들, 결국 변화는 시민들의 손으로"


동의가 어렵지 않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자각한 대중의 힘, 피플파워(people power)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망라해 역사가 증명해 주는 사실이니 말이다. 다만 그에게 조금 더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1987년 6월을 바탕으로 성장된 시민의 힘으로 故김대중 전 대통령과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이게 나라냐'를 외쳐야만 했느냐는 것이었다. DJ정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이었고, 참여정부 당시 시민사회수석을 맡았던 그에게 역진한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조금은 묻고 싶었다. 


"헌재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가 기각되어 다시 국정에 복귀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노 대통령께서 몇몇 시민사회 단체인사들을 초치해 간담회를 가졌지요. 그날 저녁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중요하다는 말을 했어요. 왜냐. 제대로 된 변화는 정부, 관료나 국회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시민사회라고 하는 국민, 국민과 동맹을 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게 뭔가 조금 통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양반(故노무현)한테…."  


그때(참여정부) 왜 그러셨어요, 후회되는 것은 없으셨나요, 하는 다음 질문들을 마음 속에 담아뒀지만 결국 묻지는 못했다. '그(청와대) 안에 있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과는 참 많이 다르더라'는 그의 말. '내가 지금까지 내려온 결정들이 모두 미진했던 것만은 분명한데 그게 과연 잘못된 선택이었기 때문일까 혹은 이 역사의 한계였을까'하는 그의 고민. 굳이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밝혀내야 하는 수많은 죽음들, 이미 자살로 종결되어 오로지 가해자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만 남아있거나 아예 관련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국가기관의 현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 속에서 진상규명위원회의 진로를 두고 발생한 동료들 간의 다툼. 어느 가치에 설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을 바꿔도 전문성을 앞세운 관료조직의 관성과 이해관계가 변화를 은근히 가로막거나 정책을 변질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왜 그걸 못했어!, 못한 건 사실인데(웃음), 그럼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지, 하고 생각해보면 참 답이 없는 것도 있어요." 


미진한 선택들이었다는 고백은, 결국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결코 저 위의 권력자가 아닌 내 옆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했다. 의미 있는 변화는 여의도(국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국민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되는 항쟁의 결과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으로서 말이다.         


"그걸 이번에 뒤집어 놓은 건 누구냐, 투표라고 하는 종이 돌을 던져서 국민들이 바꿔놓은 거예요(지난 해 4.13총선). 이 보이지 않는 종이 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행사한 것도 흩어져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었고, 삐뚤빼뚤 이래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는 국회의원들한테 퇴진은 말할 것도 없고 퇴진 안 한다고 하면 그 때는 할 수 없다, 탄핵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선택해야한다, 이렇게 만든 건 광장에 나선 국민들이었다고.."


"잘 늙어가는 충실한 시민적 삶"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바꿔나가는 세상. 말이야 낭만적이지만 그게 쉽나, 생각해보니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원동력을 갖고 있기에 30년, 40년의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켰는지, 30차도 채 안 되는 주말의 촛불집회도 매 주 참가하기 버거운 삶인데 말이다.  


"일단은 이게 뒤에 쫄쫄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어쩌다보니 내가 제일 가운데 있고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선배들은 다 잡혀가고 내가 젤 앞에 있는 거야(웃음)."

 

 


황인성 수원민주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김지혜 바꿈 활동가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다음 질문을 던지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40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현재와 같은 삶을 사실 것이냐 묻자, '지금처럼은 안 살 것 같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샤이'했던 고등학생 황인성은 기자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외교관이 되면 그도 연미복을 입고 파티나 다니는 것이 일인 줄 알았다고. 외교학과에 가고 싶다고 하니 학교에서는 서울대에 안전하게 합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전혀 원치 않는 독어독문학과 원서를 써주셨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시위 같은 것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나 존경할 만한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도시빈민 실태조사를 나갔다가 엄청난 빈부격차와 비인간적인 삶에 분노하면서 주저했던 마음도 잠시, 탁 하고 시작된 운동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관념적인 사명감이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처음부터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순간의 결단을 거쳐 어느새 여기에 와있는 것이라고. 매번 힘든 결단들을 해왔을 그의 젊은 날들이 고되게 느껴지는 찰나에 그가 해준 말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청와대에서 나와서부터 인생관이 달라졌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뭔가 해야 되는 사람, 뭔가 앞장서서 고민을 하고 남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거나 가르쳐야 하거나. 약간 엘리트 의식이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 것들이 오히려 나를 옥죄어 왔다,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생각. 어떤 뭔가 내가 보통사람들보다 조금 더 헌신적이고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이래야 한다는 거, 그건 조금 오만한 생각 같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아주 거대한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가 고루 발전해야 그 힘으로 뭐가 되는 거지. 어떤 특정 집단의 대단한 능력, 의지 이것 가지고 세상이 변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충실한 시민적 삶. 이런 것이 뭘까. 그런 걸 어떻게 할까. 그래서 우리가 21세기에 잘 늙어가는 사람이 되자(웃음), 시민으로서."


무려 4시간동안 나눈 이야기 속에서 무수한 말을 쏟아냈지만 결국 그의 메시지는 하나였다. '충실한 시민적 삶'.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알릴 시간을 벌기위해 학생들이 건물옥상에 건 밧줄에 매달려 소리를 질렀던 시절부터 그의 표현대로 '삐까번쩍'한 2017년의 촛불집회까지, 지난 40년의 역사 속에서 고군분투한 그가 깨닫고 유지한 메시지였다.


1987년의 청년들이 6월민주항쟁으로 갚고자 했던 광주시민, 광주영령에 대한 빚. 지금의 청년이 용산에게, 세월호에게, 백남기 농민에게, 그리고 2017년 촛불에게 진 빚은 또 어떻게 갚아야 할까. 분명 그 답은 황 이사장의 삶처럼 돌고 돌더라도 결국은 ‘충실한 시민적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문 바로가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919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헬조선을 리모델링 해볼까요?

2016년 광장의 촛불은 대통령 퇴진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했습닌다.

되돌아보면 역사의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시민은 광장에 나왔지만 그 끝은 패배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기획해보았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의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함께그대] 프로젝트입니다.시민배심단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톡으로 후원하면 무료 후원이 가능합니다! 
꼭 많은 후원 부탁드려요!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정다운 (바꿈 청년네트워크 /매니페스토 청년협동조합 부대표)

2030청년세대에서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0%를 기록했다. 세계 정치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2016, ‘쓰레기통에 버려진 기분이라고 말하는 2030젊은층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태에 가장 분노하고 있는 세대임이 분명하다.

왜 분노하는 걸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무엇을 느꼈기에 이토록 분노하는 걸까. 민주화를 책으로만 배운 청년들이 말만 들어도 어려운 주권훼손’, ‘헌정유린’, ‘국정농단이라는 이유로 분노를 하는 걸까? 아니면, 권력형 부정부패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게 하는 걸까. 나 역시, 적극적으로 분노하는 2030세대 중 일인이다. 저마다 광장으로 나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30살 공정거래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청년정치운동을 하는 내가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정치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정치라고 생각한다.

비선실세를 엄마로 둔 정유라로 표현되는 불공정한 사다리, 최순실로 보여지는 국가권력의 사유화, 무능한 대통령 박근혜가 보여주는 비상식적인 행태, 비공식 단식 이정현을 대표로 둔 집권여당의 정치 붕괴, 내가 분노하는 이유는 이렇게 크게 4가지다

대한민국 사회가 불공정한 사회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를 보면서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느냐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보고 있잖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대한민국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에 제일 화가 났다.

나는 제주도 우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셨고, 어머니는 해녀이다. 아버지는 코피가 터지도록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차디찬 겨울바다에 몸을 던지셨다. 그렇게 나를 키워내셨다.

네가 공부를 잘 하면 부모와 같이 못 배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네가 돈을 많이 벌면 부모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데 써라.” 아버지께서 늘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부모님의 힘든 노동의 대가로 나는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진짜 열심히 살았다.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를, 사회에 나와서는 인정받기 위해, 매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는 없었다. 나는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취업하기 위해, 사회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청년들은 진짜 열심히 산다. 그런데도 삼포세대등으로 불릴 만큼 안정적인 삶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청년 세대의 현주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주저 말고 행동하고, 할 말은 당당히 하고 살라"고 하시던 아버지 교육 철학에 힘입어 나는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지난 20대 총선, 세월호 유가족에게 막말한 강원도 춘천 김진태 의원이 국회 대신 집에서 쉬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김진태 등 총선넷 낙선 기자회견에 단순 참여했다가 피의자 신분이 된 것이다. 정치인의 잘못을 알리는 것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불법으로 간주한다. 참 답 없는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라는 내가 노력해도 갈 수 있을 말까 한 대학을, 누군가 노력해도 딸 수 있을 말까한 금메달을, 대통령 비선실세 부모를 만난 것도 능력이라서 쉽게 얻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열심히 살아 뭐하나' 인생의 회의감이 들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쉽게 가진 정유라가 부러웠던 것 같다정유라가 만약 김진태 의원의 낙선운동을 했다면, 경찰소환을 받지 않았겠지 하면서 말이다. 최순실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이런 시국에도 정유라는 매우 안전하다. 학교 입학 단순 취소 등으로 학력이 중졸이 되는 게 그녀가 먹고 사는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생각하니, 또 열 받는다.

최순실은 어떤가? 그녀는 우리 부모님이 하루 24시간 일을 해도 벌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권력으로 훔쳐 얻었다. 심지어, 그 돈은 우리 부모님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납세한 혈세다. 진짜 참을 수 없이 분노가 나를 감싼다.

참을 수 없는 분노 때문에 나도 "박근혜 퇴진"  힘차게 외치며 집회에 나갔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넘도록 주말이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박근혜 탄핵과 퇴진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꿔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박근혜는 분명 탄핵되어야 하고 퇴진해야 마땅하다. 이번 사태에 책임 있는 재벌들을 포함한 모두가 처벌 받아야 한다.

박근혜가 탄핵받고, 퇴진하고, 대통령이 바뀌고, 이 사태의 책임자들이 모두 처벌 받으면, 과연, 우리의 삶이 나아질까? 특히, 가장 분노하는 2030세대의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난 쉽게 ""라고 대답을 못하겠다.

아마 여전히 삼포세대등으로 불리면서 우리는 여전히 질 낮은 노동시장으로 내몰릴 것이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대학에서는 취업준비,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면서 청춘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이제 막, 아기 아버지가 된 내 남동생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고, 비정규직인 내 여동생은 여전히 비정규직 일 것이며, 나도 취업을 해야 하는 이 시대에 청년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박근혜가 퇴진해도 우리의 삶은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까. 그렇게 한다면 진짜 희망조차 안 보이겠지?

오늘과 같은 자괴감이 가득한 모습을 대한민국 미래에 다시 보고 싶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탄핵 이후에 다음 3단계 자세를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제안에 앞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표와 정치가 국민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중요한지 깨달았을 것이다.


1단계, 앞으로의 모든 선거에 무조건 투표하라.

박근혜는 약 100만 표차로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 2030세대는 당시 유권자 비율에 37.9%, 1,500만 이상의 표를 가졌고, 2030세대 투표율은 약 69.23%로 투표자 수가 약 1,100만 명 정도였다. 우리 세대는 400만 이상의 표를 포기했다. 2030세대가 5060대처럼(투표율 80%이상) 적극적으로 투표했다면 최소한 오늘과 같은 꼴은 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대한민국 헌법을 이제 전 초등학생들까지 다 아는 법이 되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당신의 주권을 헌신처럼 버리지 말고 제발 제대로 사용해주기 바란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어떤 후보를 뽑든 어떤 정당을 뽑든 상관없다. 제발 무조건 투표해라. 청년투표율 100%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제발 평균 투표율만이라도 우리 무조건 투표하자.


2단계, 정치를 외면하지마라.

이번 사태를 보고 '정치가 뭐 그렇지'하며 정치를 절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것, 역시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으로 만들어 낸 의회 정치가 해낸 일이다. 최소한 청년들이 한 목소리로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거나, 정당에라도 가입하여 목소리를 내고, 가능하다면 앞으로 진행되는 선거에 적극적으로 출마까지 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고 싶어 하는데 정치를 인정하지 않는 청년들에 행태들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이번에는 제안 정도로 하겠다. 정치의 문제는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 투표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고, 우리는 우리 미래를 위해 정치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3단계, 정치인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워라. 즉 공부하라는 소리다.

우리 세대를 위한 좋은 정치인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무조건 나이가 적고, 어리다 해서 우리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진보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미래 지향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 세대, 나아가 미래 세대들을 위한 정책을 공부하고 하자.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세대는 제대로 공부하고, 선택하자. 동정심 따위로 대통령을 선택하지 말자.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목된 청년의 목소리가 그저 메아리처럼 우리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무조건 투표하고, 적극적으로 출마해라. 개인적으로 나는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치권에 청년의 움직임이 없다면 우리에게, 당신에게 오늘의 대한민국과 같은 미래만 존재 할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번 총선은 망했다? 그럼 89석은 뭔가

정치공학만 난무, 시대정신 논쟁은 실종

2016.4.1. 오마이뉴스


손우정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현수막이 30일 오후 서울 노원역 인근에 나란히 걸려 있다.

ⓒ 남소연


20대 총선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올랐다. 각 당은 말 많았던 공천을 마무리하고 승리를 위해 질주하고 있다. 판세를 점치는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관전 포인트는 새누리당이 개헌 저지선을 돌파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 이후 노골적인 민주주의 퇴행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한국사회가 격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은 당연지사다. 


예정된 듯 보이는 패배 앞에 그 정도를 축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야권에서는 슬금슬금 후보 단일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중앙당 차원의 야권연대는 물 건너 간 지 오래지만, 지역에서 개별 후보 차원으로 진행되는 단일화 논의는 급물살이다. 이미 몇몇 지역에서 '야권 단일후보'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만큼 유권자들이 주변화 된 총선도 드물다. 루소는 자유민주주의 대의제 하에서 국민은 선거 때만 주인이 된다고 역설했지만, 20대 총선에서 국민은 선거를 앞두고서도 주인행세를 못하고 있다. 선거를 둘러싼 모든 이슈의 초점이 계파갈등, 총선갈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선거를 앞둔 야권연대 논의도 철저한 선거공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은 이미 망했다"는 냉소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이런 식으로 흘러 보내도 좋은 것인가? 


지금은 진보도 퇴행도 가능한 시대정신의 불안정한 각축기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까? 또 어디로 가야 할 것일까? 이런 질문은 항상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가 또 없다. 지금은 우리가 이제까지 지내온 시간과 다른, 새로운 어떤 체제를 예고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존재한다. 흔히 1987년 헌법개정으로 촉발된 정치체제의 변화와 함께 한국사회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 '87년체제'라고 보는 입장도 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체제인 '97년체제'로 보기도 한다. 그 외 여전히 53년체제라는 주장과 새로운 08년체제라는 주장 등 현시기를 규정하는 다양한 논의가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활발히 일어났다. 


이런 다양한 주장 중 무엇이 타당한지를 따질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시기가 생명을 다한 기존의 체제를 넘어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1987년 이후 우리의 삶과 태도를 강하게 규정했던 요인들은 모두 그 정당성을 상실했다. 뿌리 깊은 분단체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으로 흔들렸으며, 무한경쟁을 모토로 한 신자유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부터 마지막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1987년 개헌의 최대 성과였던 자유민주주의적 대의질서 역시 마찬가지다. 체육관에서 뽑던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것이 시대과제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위임자와 수임자의 질적 괴리,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의 한계 역시 이미 드러났다. 국회는 국민들의 신뢰를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은 87년 정치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기존 시스템의 한계가 자동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명을 다한 이 낡은 체제와 완전히 작별하지 못했다. 낡은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은 출현하지 않는 지적 방황과 혼란의 시기는 2008년부터 계속 진행 중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과 방향은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그 방향은 마치 시계추가 좌우를 왕복하듯 87년 이전 시대로의 퇴행을 향해가기도 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향하기도 한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보다 진보적인 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할 듯 보였던 시계추는 현 정부 들어 다시 오른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소위 '민주화' 이전처럼 국가의 감시와 통제는 강화되고 있으며,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시도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의 민주적 성과가 아무리 보잘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노골적인 퇴행 앞에서도 '스톱'을 외치는 목소리조차 점차 작아지고 있다. 문제제기 수준의 이견이 '배신의 정치'라는 수식어 속에, 모호한 총선승리의 구호 속에 과감히 내쳐지고 있는 지금, 정치적 퇴행은 분명한 현상이다. 


의석이 없으면 진보할 수 없는가? 


지금의 시대가 진보도, 퇴행도 가능한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불과 몇 해 전의 새로운 장밋빛 전망도, 지금의 퇴행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지금이 퇴행기라면 진보의 공간도 있었다. 알다시피 2008년 촛불은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구현하자는 집단적 움직임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공간은 존재하는데 말문을 닫아버린 야권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퇴행을 막기 위해, 더 나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힘을 합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낮아졌다. 그나마 2008년 이후에는 가치에 기초한 단일화를 통해 새시대의 비전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철저히 선거공학적인 판단만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의 상황은 2012년 19대 총선의 분위기와 무척이나 다르다. 오히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분노의 심판론이 몰아쳤던 17대 총선 이후, 뉴라이트의 등장과 북핵 문제의 확산 등 전사회적인 보수화 바람이 불어 닥친 후에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과 유사하다. 당시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일군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153석을 얻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152석보다 단 한 석만 많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달랐다.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이 18석을 얻었고, 친박연대가 14석을 얻었다. 여기에 대부분 보수성향이었던 무소속까지 포함하면 보수진영의 의석수는 최대 210석에 달했다. 반면, 당시 더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이 81석, 창조한국당 3석, 민주노동당 5석 등 진보·개혁 진영의 의석수는 모두 합쳐도 89석에 지나지 않았다.


▲ 2008년 18대 총선 결과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보수진영은 최대 210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반면, 진보개혁적야권은 89석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이 127석을 얻은 19대 국회가 2008년 이후 야당보다 더 잘 싸웠다는 근거는 없다. 2008년 이후 사회적 진보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왔다.

ⓒ 손우정


2012년 총선에서 제1야당이 127석을 얻었고, 지금은 국민의당과 분당했지만 그래도 107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반이 아니라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변명이 사실이라면, 2008년 총선 이후 2012년까지의 시기는 한국 정치 최대 암흑기여야 했다. 그러나 현실이 그랬는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촛불의 등장 이후, 오히려 죽을 쑤던 야권은 생기를 얻었다. 야권연대도 단지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갔다. 시민사회까지 적극적으로 결합해 야권연대를 추진했던 2010년 6.2지방선거에서는 각 중앙당 차원의 야권연대가 무산된 이후, 개별 후보 간 단일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당시 광범위하게 '반MB연대'(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가 제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후보단일화에 머물지 않았다. 내용 상의 가치연대를 추진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것이 이른바 '공동정부 전술'이었다.


모든 야당이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서울의 경우 서대문, 노원, 강서, 동대문, 성북구에서 후보단일화와 공동정부를 위한 공동정책합의서를 도출했고, 경기도에서는 고양, 부천, 성남, 수원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졌다. 강원도, 경상남도, 대전시에서도 후보단일화와 지방공동정부, 공동 정책이 합의되었다.


물론 공동정부 구성과 합의된 진보적 의제가 선거 이후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소한 당시에 추진된 후보단일화가 '묻지마 단일화'거나 정치공학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이 단일화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비록 추상적이지만 지금의 낡은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에 진행된 단일화 논의에는 '공동정책합의문'도 포함되었다. 그 합의를 얼마나 지켰는지와는 별개로, 최소한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가치 기반의 연대가 추진되었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의 성과는 지방선거 이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등으로 나타났고 최소한 '형식적'일지라도 여당 후보의 대선공약에도 포함되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권력의지'는 없고 '권력욕'만 있는가


총선을 앞두고 현재 제기되고 있는 후보별 단일화 움직임에 대해 재를 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난 3년간 집권여당이 보인 퇴행을 지켜보노라면, 그들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시계추를 멈춰 세우는 것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울며 겨자먹기'로 사태를 관망하기에는 지금의 시점이 너무나 엄중하다. 선거공학에만 빠져 있는 야당의 모습에서 '권력의지'가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권력의지를 '집권을 향한 열망'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니체가 말했던 '권력의지'는 집권이 아니라 '새로움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새로움을 구현하지 못하는 집권 열망은 권력의지가 아니라 권력욕과 다르지 않다. 이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 최악을 저지하기 위해 차악이라도 택하라는 오래된 정치공학적 산물은 아직도 분명히 존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선거에서,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가 '다시 2012년 19대 총선 직후 정도'라면, 그래서 기껏해야 19대 국회 기간의 모습들의 반복만이 예상된다면  그래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되겠는가?


단지 선거 결과, 의석 수 몇 개에 집착하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시야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엄중한 상황이다. 총선 결과는 단지 의석수 몇 개로 결론 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거대한 사회변화를 이루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실망감이 큰 이번 총선이라 할지라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다. 


또 하나.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국민이다. 2008년 총선에서 야권의 참혹한 패배 뒤에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긍정적 방향으로 이끈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 힘이었다. 기성정당에 실망했다고 뒷짐 지고 냉소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찾아보면, 여전히 국민이 할 일은 많고 그 힘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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