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검은 세단안에서 8분 동안 애태웠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8일, 800일도 아닌 

1,000일이 넘는 낮과 밤을 애태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7시간 동안 조서를 꼼꼼히 살피면서


정작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이 없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괴감을 느낀다며 거짓 눈물을 흘릴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슬픈 눈물을 흘려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매일 전속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올리고 있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매일 노란 리본을 올려야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송로버섯과 샥스핀을 먹고 있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생전에 아이들이 좋아한 음식을

팽목항에 놔둔 채 바라보아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무실도 안 나오고 관저에 있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유족충' 이라는 악의적 왜곡에 시달리며 노숙해야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직후

"반드시 진실은 밝혀진다" 라고 했을 때

정작 세월호는 왜 침몰했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진실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지난 3년간 감감 무소식이던 세월호 인양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되자 마자 올라왔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단 하나,

진실을 끌어올리고 그 책임을 물을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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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 오민정 사진작가

"삼풍 무너져도 정부 책임 생각 안 했죠"


가을밤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낯을 익히다 어느덧 불콰해진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던 밤이 있었다. 사랑방을 자처하며 오합지졸들을 끌어 모은 집주인은 묵혀둔 동치미 독 헐 듯 냉장고를 헐어 자꾸만 음식을 내왔고 밤도 좋고 술도 좋고 인심도 좋은 시간이었다. 막차 시간이 코앞이라는 사실 말고는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시간을 재고 있던 내가 적당한 때를 보고 일어서자 집주인이 덜컥 팔을 잡아끌었다. 진짜 보고 가야 할 사람이 아직 안 왔다는 것이다. 그게 누구시냐는 물음에 사랑방 주인장이 답했다. "일단 한번 만나봐."


나는 그날 막차를 놓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사랑방 자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놀고도 흥이 가시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홀로 낄낄거렸다. 악기가 사람을 닮은 것인지, 사람이 악기를 닮은 것인지 여운을 길게 남기는 것이 나타난 사람이나 그가 들고 온 악기나 꼭 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가 배웅가라며 불러 준 천안도 삼거리를 제멋대로 흥얼거리며 아주 그냥 취해버렸다. 다음 날 두통을 부르던 숙취는 없었다. 그 밤엔 술이 아니라 사람에 취했던 것이다.


정민아, 가을밤에 만났던 그녀를 한 계절을 보내고 다시 만났다. 25현의 가야금을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 국악기를 들고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공연하는 '희귀한' 뮤지션, 국악으로 포크와 재즈,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고, 4개의 정규앨범과 다수의 프로젝트 음반을 낸 전업가수. 정민아를 소개하려면 이것저것 화려한 수식들이 많다. 심지어 그녀는 팬 카페와 페이스북 팬 페이지도 보유한 스타였다. (비록 팬 카페주인과 페이지 주인이 본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런 소개보다도 첫 대면과 동시에 속이 뻥 뚫리는 그녀의 호쾌함이 무엇보다 사람을 홀린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는 덤으로 봐도 좋고 망설임 없는 그녀의 행보는 일단 한번 만나보라던 사랑방 주인장의 자신감을 단연 인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가 그 전에는 대한민국의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별 생각 없이 나갔던 광우병 촛불 집회에서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 당시에 수많은 경찰들이 거리를 메우고 길을 못 건너게 하는 거예요.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권력에 의해 한 순간에, 아무 때나 바스라질 수 있는 자유 안에서 살았던 거지요. 그저 길을 건너려고 하는 사람을 권력이 저렇게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을 한 순간에 알게 되면서 제 생각과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용산 참사, 이랜드 노조, 이주노동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폭력을 겪고 있는 여성들, 세월호 참사. 우리 사회의 이면을 앓고 있는 곳이라면 부르면 무조건, 부르지 않아도 찾아서 다녔다. 한 덩치 하는 가야금을 이고 지고 가야 하는 것은 그녀에게 결코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꿔보리라는 포부는 없다. 음악이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는 낙관도 없다. 음악이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힘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해야 한다고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몰랐던 것을 알게 됐으니까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단다. 


"저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정부 책임이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당시 제가 봤던 어떤 보도에서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사고가 났구나 하는 정도로 알고 무심히 넘겼던 거예요.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반드시 미래에 되돌아온다'. 이건 되게 명백한 진실 같아요. 세월호 참사를 그때의 저처럼 단순한 사고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 사건이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말을 해줘야 해요. 제 음악과 활동들은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길 봐달라고 하는 외침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우리가 지켜보고 있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지난해 5월 홍대역과 합정역 사이에서 예술인 100팀의 버스킹(거리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 행위)이 있었다. 1인 시위의 기준이 되는 20미터씩을 사이에 두고 인간 띠처럼 이어 진행한 공연이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릴레이 1인 시위를 기획한 것도 그녀였다. 세월호 참사 500일에 맞춰 15인의 음악인이 함께 만든 '다시, 봄' 이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유쾌하게 그리고 더 없이 진지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에 그녀의 눈망울이 유독 커다란 이유를 알게 됐다. 바라보고 있는 것도, 담아낼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이쯤에서 그녀의 음악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 음악에 문외한이자 겨우 그녀의 말을 받아쓰는 게 일인 내가 음악을 말하겠다는 게 무척 우습지만, 음악이라 써놓고 정민아의 일상이라 읽으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가 작사 작곡하는 모든 노래가 생활밀착형이다. 



"국악고를 거쳐 음대에 입학하면서 나름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엔 계급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좀 더 우월하게 살 것이다, 국립국악원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좋은 학벌의 집안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살겠다고 생각했죠. 정작 부유하게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부유한 미래를 꿈꾸는 철딱서니였어요. 그런데 이런 황당한 생각이 깨지게 된 게 생계를 위해 전화상담원 일을 하게 된 경험이었어요. 금방 그만두겠다던 그 일을 4년 반 정도 하게 됐는데 그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보게 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직업을 갖고 그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깨우쳤죠."


세상물정 모르던 철없는 음대생은 '국립'이 붙는 탄탄한 직장을 얻는데 족히 7번은 실패하고 당장 급한 생계부터 해결하고자 전화상담원 일을 시작했다. 엄마의 빚을 떠안고 살던 은미를 만난 곳이다. 집나간 엄마를 대신해 은미가 빚을 갚으며 집안 살림을 꾸리고 있을 때 은미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은미는 3일장을 끝내고 돌아와 다시 전화기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민아는 은미의 허락을 받고 곡을 만들었다. '은미 이야기'다. 1집 <상사몽>을 발표하고 전화상담원을 그만둔 정민아는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서 매일 아침 주먹밥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1집이 1만 장이나 팔리는 성과에 힘입어 과감히 퇴직을 결단했지만 보릿고개는 금방 찾아왔다. 주먹밥 장사를 시작한 첫날 2000원짜리 주먹밥이 36개나 팔렸다. 그 후 단 하루도 첫날보다 많이 팔아본 적이 없다. 쫄딱 망했지만 노래 한곡이 남아 3집 앨범에 실렸다. 곡 이름은 '주먹밥'.



정민아는 중학교 2학년 때 동네의 작은 교습소에서 가야금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가야금을 타면서도 락키드였던 그녀는 홍대 라이브 클럽을 들락거리며 록, 재즈, 헤비메탈 등의 라이브 공연에 흠뻑 빠져 살았다. 그런 그녀가 클럽 공연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야금을 들고 무대에 서기까지 실용음악학원에서 화성과 기타, 피아노 등을 배웠다. 작곡의 기본을 익히고 밴드들이 하는 앙상블 수업에 가야금을 갖고 들어가 장르가 다른 음악과 접목도 해봤다. 정민아의 음악은 그렇게 다져지기 시작했다.

 

"저는 제가 상위 1%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1%가 아니라, 음악가로 먹고 살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상위 1%라고 생각하거든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제 전화상담원을 하거나 주먹밥을 판다거나 하지 않아도 공연하고 음반팔고 하는 정도로 먹고 살 수는 있어요. 되게 감사한 일이에요."


상위 1%치고는 참 소박한 생활을 하는 중이지만 그 덕에 4집 앨범까지 나올 수 있었다. 4집 앨범을 준비하며 그녀 스스로 가사를 주우러 다녔다고 하는데, 팔도의 도서관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이십여 년 전 서른세 살이던 엄마와 손을 잡고 찾아갔던 수리산 한증막도 다시 갔다 왔다. 서울 수원 전주 부산을 왔다 갔다 하며 그녀가 주워담은 순간은 다름 아닌 사람의 순간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하고 바라 본 사람들의 작고 외로운 순간순간들을 곡으로 담아냈다. 벌거벗은 몸으로 태어나 벌거벗은 몸으로 가는 것이 사람이라고 담백하게 노래해 주는 이, 젊은 엄마의 외로움을 알아봐준 이, 작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충분히 아름답다 말해주는 이, 가난한 아가씨의 뒷모습을 바라봐 주는 이가 있다는 게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정민아의 음악이 전하는 진심이었다.



"만약 운이 좋아서 악단시험에 붙었다면 이런 세상을 몰랐겠죠. 이제는 세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이상해요. 저번에 세월호 미사에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중에 세월호 이전과 이후에 뭐가 변화됐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그냥 그 이전과 이후에 변화된 삶을 사는 거라고. 제가 광우병 집회에 나가 일순간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처럼 그 이전과 이후는 절대 같지가 않잖아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이제 그냥 제 이야기로만 노래를 만들 수 없어진 거예요.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가 그렇게 변화됐으니까. 화상입기 전과 후의 삶이 다른 것처럼."


그녀를 만나면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웃음도 많고 입담도 좋지만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그 품이 넉넉해서 한 자리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사는 얘기 풀어놓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언제고 오래 머물러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이냐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모르죠'와 '무계획'이었다. 그런 건 없단다. 그럼 당장 할 일은 무엇이냐 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콘서트'란다. 


정말 못 말린다. 아니 말리지 않고 싶다. 삶에 대한 거창한 계획을 늘여놓지 않은 그녀가, 하루하루 필요한 곳에 가서 자리하겠다는 정민아의 즉흥이 너무 미더워서 그렇다. 누군가 내게 정민아를 어디서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가보시라, 그곳에 그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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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4.11총선에서 10만3811표 얻었어요"


"아이고, 뭐 이렇게 빨간 책을 들고 다니시나?"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내 손에 들린 책을 보고 풉~ 하고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빨갛다고? 내가 들고 있던 책은 누가 봐도 초록 일색인 표지에 심지어 낱낱의 책장도 연둣빛을 은근하게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 큼지막하게 적힌 책 제목도 이랬다. '행복하려면, 녹색'. 빨갛다는 친구의 농담이 다소 과격했다. 그래도 이 친구, 알아봐 준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친구는 거기까지였다. 나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눈치껏, 대충, 어렴풋이 그쪽이겠거니. <행복하려면, 녹색>(하승수, 서형원 지음, 이매진)은 하승수 위원장을 만나기로 하고 빈 머리로 갈 수 없어 뽑아든 책이었다. 그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데 나도 녹색당에 대한 풍문은 그만 주워듣자 싶어 급한 대로 찾아 읽던 차였다. 

2012년 3월 4일 창당해 그해 4월 11일 총선에 뛰어든 녹색당, 결과는 참담했다. 0.48%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두 명의 지역구 후보는 모두 낙선했고 비례대표를 통한 원내진입도 실패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득표율이 2%에 미달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정당법에 따라 총선 다음날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곡절을 겪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4.11 총선에서 10만3811표를 얻었어요." 

비례대표 의원 당선을 위한 득표율인 3%에는 한참 모자란 수였다며 뒤통수를 긁던 하승수 위원장이 당시 득표수를 정확하게 읊었다. 지역구 당선의원이 압도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와 지역기반으로 세워진 거대 양당제로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에서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생명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녹색당을 지지한 10만3811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가 집어삼킨 사표가 아니라 녹색당을 함께 가꾸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손길이었다. 10만3811표를 곱씹는 담담한 그의 목소리엔 녹색당에 대한 미더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정당등록 취소 위헌소송을 통해 녹색당을 지켜냈다.

"정당 활동은 노동 강도도 세고 엔지오 활동보다 몇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저는 사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역 풀뿌리 정치에 관심을 두고 내 동네, 내 지역에서 정치를 바꿔보자 했었는데, 제가 좀 늦게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 사건 이후로 국가 정치,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건, 2011년 3월 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녹색당이 창당 된 2012년 전에도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5개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정당법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고 이후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녹색당 창당에 뛰어 들었다. 하승수 위원장도 그랬다. 

"저는 환경운동보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데 후쿠시마 사고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후쿠시마도 로컬푸드운동이 있던 곳이고 생협도 있는 지역인데 한 순간에 지역 사람들이 몇 십년간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버렸잖아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단순히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유지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게 된 사건이었어요. 지금까지 나는 내가 사는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해오며 살았는데, 그나마 이정도의 사회도 유지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무리 지역 풀뿌리 운동과 시민운동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한순간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거죠." 

정당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던 그가 창당에 뛰어들 만큼 시대적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로 개입하지 않고서는 원전사고와 같은 참사를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왜 녹색당일까. 우리나라 정치지형에서 군소정당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다년간의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던 그가 모를 리 없다.  

"녹색당은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매출증대가 목표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국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좋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요.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순간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환경, 인권, 먹을거리, 이런 것들은 뒤로 밀리게 되어 있어요. 경쟁에 뒤처지는 사람은 배제되고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차별이 생기고 소외가 나타나잖아요. 경제성장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좋은 삶을 만드는 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녹색당이 유일하게 하고 있어요." 

그도 한때는 체제 내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정도로 삶을 계획했었다. 제도권에 들어가 양심적으로 살아볼까 싶었다. 그래서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됐다. 2006년부터는 국립대 교수직도 맡았었다. 그러나 하승수 위원장은 변호사도, 교수직도 스스로 그만뒀다. 변호사 생활은 시민운동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갈 수 없었고 대학에선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그가 선택한 곳은 늘 시민과 함께 하는 운동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치다. 선거 때마다 50% 내외를 겨우 오가는 투표율이 보여주듯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치, 그것도 탈핵과 탈성장이라는 녹색 정치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녹색 정치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었다.

"누군가와 나를ㅁ 비교하고, 내가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이런 것들이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비교하다보면 자기다운 삶을 찾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가 뭐가 다를까 비교해 보고, 대한민국 사회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와 서로 비교해 보고. 이런 비교를 하다보면 상상력이 나오잖아요.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많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꿈이나 상상력을 가져야 이 사회가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승수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출마는 당선을 위한 출마는 아니라고 했다. 녹색당의 가치와 정책을 알리려는데 집중하는 모양이다. 더불어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 나설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데 벌써부터 담금질을 하고 있다. 녹색당이 낼 비례대표는 당원들이 추천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게 되고 순번 역시 당원투표로 정해진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공개 된다. 

녹색당은 녹색이다. 어설픈 농담이 들어설 틈이 없는, 꽉 찬 녹색이다. 생태적 지혜와 사회정의,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지속가능성, 다양성 옹호, 지구적 행동과 국제연대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 녹색당. 이 정당 강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푸릇푸릇하고 보드라운 싹으로 움터 올라 거친 바닥을 덮고, 그 위를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볼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아, 물론 알고 있다. 현 정치권이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는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와 정치개혁 없이는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승수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녹색당은 이름을 바꾸지 않고 100년 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유럽을 비롯해 지구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각국 녹색당도 창당 이후 초반엔 어려웠다. 그렇다고 정치적 시민권을 얻어 원내에 진입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데 100년까지는 안 걸렸다. 이 땅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자. 그리고 무작정 녹색을 떠올려보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녹색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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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전진한'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준비위원]간결한 정보의 힘으로 사회 바꿀 것

내일신문 2015.03.31. 이재걸


"매년 중요한 정부기록, 연구보고서가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들끼리만 공유될 뿐 태반은 일반 시민에게 전해지지 않아요. 어렵고 복잡하니까요."

정보의 홍수 시대. 사람들은 복잡하고 거창하기보다 간결하고 삶에 와 닿는 정보에 쉽게 귀 기울인다. 모바일이 주를 이루자 정보가 '손바닥'에서 넘치면 외면받는 상황까지 갔다. 정치·언론은 물론 시민사회도 '간결한 정보' 만들기가 숙제인 이유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바꿈)'은 정보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목표인 신생 시민사회단체다. 전 민변 회장인 백승헌 변호사를 비롯해 대학교수, 치과의사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 90여명이 참여 중이다.
 

바꿈은 정부기록을 비롯해 학계·기관 보고서와 시민단체 조사결과 등을 가리지 않고 연구·가공해 오는 5월부터 시민들에게 인포그래픽·그림 등으로 알기 쉽게 제공할 예정이다.

전진한(사진) 바꿈 준비위원은 "시민을 움직일 만큼 콘텐츠 생산능력이 뛰어남에도 이를 쉽게 전달하는 데 애먹는 단체들과 협업해 (정보를) 유통할 계획"며 "핵심은 정보의 간결화와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전 위원은 정보공개운동만 13년째인 기록 전문가다.

2000년대 초반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에 몸담으며 국가기록물 관리실태를 살피다가 아예 '기록관리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땄다. 기록관리학이란 정부기록을 분석·관리·이관하는 일이다. 전공을 이수한 대학원 동기들이 대부분 아키비스트(정부기록 전담 공무원)로 취업한 반면 그는 계속 시민사회에 남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만들고 활동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후인 2013년에는 원전 관련 정보들을 망라·재구성한 '방사능와치' 사이트를 만들어 무려 방문자 80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사이트로는 드문 기록이다.

그는 요즘 '바꿈' 공식출범을 앞두고 안전·정치·복지·청년·동북아평화 5가지 주제와 관련한 논문들을 분석 중이다. 안전에 관한 것만 2217권 찾았다. 해양, 건축, 철도를 비롯해 김밥, 감기약, 향수 등에 관한 것까지 각양각색의 조사자료가 나오더란다.

전 위원은 "지난해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해양안전에 관한 자료들을 집중분석했는데 2009년에 공개된 것만으로도 이미 참사가 예견된 상태였다"며 "이런 내용들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돌고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사전에 경종을 울리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언론은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지만 우리는 발생할 사건을 미리 짚어내는 게 목표"라며 "이미 만들어진 수많은 기록을 분석하면 앞으로 벌어질 사회문제를 예견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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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을 왜 시작했는가?

더 플랜B 2015.4.5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준비위원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면서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주변에 많은 활동가들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스멀스멀 용솟음 치고 있는 방사능 걱정으로 한숨 짓기 바빴다.

반면 일반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미국 쪽으로 갈 것이라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웃던 친구가 있었다. 너무 기가차서 각종 수산물과 공산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으니,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 친구는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흉측한 괴 생명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이렇게 되냐며 나에게 묻곤 했다.

당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우리 활동가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 운동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핵발전소 및 방사능의 각종 어려운 용어는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 우리가 직접 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쓰면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3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핵발전소 문제 및 방사능 문제를 인포 그래픽으로 정리한 ‘방사능 와치(http://www.nukeknock.net)’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전문가들과 홍익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도움을 얻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환경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다. 사이트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 사이트의 개설과 동시에 트래픽량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페이지뷰가 800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경험은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방사능와치에 올라와있는 인포그래픽

그러나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자고 했다. 자료를 찾을수록 엄청난 비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선박들의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려주었던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속출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서는 2010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생산한 보고서에 해양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하고, 안전관리매뉴얼의 분량이 많으며, 심지어 선원의 나이가 많고 선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4년이나 방치해 둔 것이다.

해양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목포여객터미널에 12척의 배를 2시간 20분 동안 점검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었다. 한 척당 13분이다.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할 시간으로 선박을 검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자신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매뉴얼에는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큰 재난사고가 나면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언론의 경쟁적 취재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를 미리 발견해 시민들과 소통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이런 자료들은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도,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자료들,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향후 시민운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선 기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를 살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결과물들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웹툰으로 제작된 미생, 송곳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또 다른 결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일어날 사고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용역서, 학계 논문, 통계, 빅데이터 등을 찾으면서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핵발전소 등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위험 예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출처 : The Library by Zhu, on Flickr)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 이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인포그래픽, 웹툰, 카드뉴스, 동영상 등으로 가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을 찾아서 공개할 예정이다. ‘바꿈’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 복지공동체, 안전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최대한 쉽게 가공해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컨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사회의 부패하고 썩은 곳을 지적하는 내용은 잘 찾을 수 없다.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반면에 구석구석 시민들을 위해 훌륭한 컨텐츠를 만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내용의 전문성과 딱딱함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꿈’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향후 ‘바꿈’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창립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나조차도 기대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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