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이자 보수당 당수인 테레사 메이(Theresa Mary May)와 러시아 월드컵 스페인-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은 레알마드리드 소속 세계적인 수비수 나초 페르난데스(Nacho Fernández).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1형 당뇨 환자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당뇨 환자가 약 500만 내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당뇨하면 식습관이나 운동과 같은 자기관리 실패로 흔히 치부하는데요. 1형 당뇨와 2형 당뇨는 혈당수치 변화에 문제가 있다는 점만 빼고는 발병 기전이 다릅니다. 1형 당뇨는 어느 날 갑자기 췌장세포에 문제가 생겨 혈당관리가 안 되는 질병으로 생활습관이나 식생활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병합니다. 그러므로 1형 당뇨는 후천적 원인인 2형 당뇨와 달리 어린아이에게도 발병할 수 있어 흔히 소아당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아당뇨 아이 엄마의 판결은 ‘기소유예’

(실제 영국 메이 총리 왼팔에는 1형 당뇨 센서가, 오른팔에는 센서 자국이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1형 당뇨와 2형 당뇨를 잘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당뇨에 대한 심각한 편견이 있습니다. 채혈을 하거나 주사를 맞는 것을 굉장히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있어서 1형당뇨 환우들은 화장실에서 남몰래 혈당 체크를 하고는 한답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할 정부 기관에서조차 1형 당뇨에 대해 편협하게 접근했다는 점 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꿈,세상을바꾸는꿈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함께하는 스타트업법률지원단이 변론한 김미영씨 사례입니다.


김씨는 1형 당뇨 아이의 엄마입니다. 김씨는 혈당체크를 위해 수시로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는 아이가 안타까웠습니다. 김씨는 잠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해외 커뮤니티를 뒤지던 중 채혈 없이 혈당 체크가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를 발견합니다. 게다가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1형 당뇨 환자와 부모들이 각자 오픈 소스로 연속혈당측정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공유해 놓았다고 합니다. 엔지니어 출신인 김씨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직접 들여와 오픈소스를 활용해 핸드폰으로 아이의 혈당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연동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1형 당뇨 아이 부모들은 김씨에게 연속혈당측정기를 문의하기 시작합니다. 김씨는 많은 환우와 부모들이 이 기기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참 대단한 엄마입니다. 그러나 식약처는 상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불법의료기기수입 및 광고 혐의로 김씨는 무려 3차례나 조사합니다. 그리고는 지난 3월 검찰에 김씨를 송치합니다. 다행히 이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가는 등 크게 이슈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지난 6월 29일에 김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일부 있을 수 있으나 검사가 이를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변론을 맡은 스타트업법률지원단 성춘일 변호사는 기소유예 판결이 아닌 완전 무죄를 받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안했지만 김씨는 너무 지치고 힘들다며 현 상황에서 사실상 가장 좋은 결과인 기소유예 처분에 만족한다고 밝혔습니다. 


1형당뇨 제도개선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김씨 사건 이후 식약처는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원래 희귀병 약의 경우 기업은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시판하지 않아서 국가가 희귀의약품센터를 만들어 희귀병 치료약을 공급 합니다. 그러나 의료기기는 사정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특정 개인이 허가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수입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임상실험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등록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김씨 사건 이후 식약처는 환우 개개인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법을 검토해서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4월에 절차를 모두 완료했습니다. 여전히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연속혈당측정기와 같은 의료기기를 환자가 수입하려면 ‘요건면제수입확인서’를 발급 받으면 가능해졌습니다. 심지어 식약처는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방법을 설명한 카드뉴스와 영상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희귀의약품센터와 같이 의료기기안전정보원을 두어 희소질환 환자들이 사용하는 의료기기에 대해서 국가가 구입, 수입통관까지 대신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비급여 부분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연속혈당측정기 기기와 소모품 비용을 100% 환자와 가족들이 부담했으나 건강보험공단과 복건복지부 간담회에서 9월까지 일부 비용에 대해서는 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세관에서 과거 관세법을 위반 했던 부분에 대해서 각자 기기 수입에 따른 세금을 고지했으나 식약처 사건 이후 세금 고지도 취소했다고 합니다. 


김씨 고발 사건 이후 약 반년 사이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기자는 이 기사를 쓰면서 한 가지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왜 정부는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1형당뇨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이후 김씨와 아이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 전에는 아이의 혈당에 문제가 생길까 학교 근처에서 상시 대기하던 엄마는 이제 집에서도 원격으로 아이에게 인슐린 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아침에 배나 팔에 연속혈당측정기를 찰 때나 또는 수영 같은 운동을 할 때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과거 혈당 체크와 채혈의 어려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이 성격도 밝아지고 활동성도 커졌다고 합니다. 


국내 1형 당뇨 환자는 2만명에서 - 4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 중 18세 이하 1형 당뇨 환자는 약 4-5천명으로 추정되며 이들을 24시간 꾸준히 혈당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혈당관리만 잘 된다면 일상생활은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나초 페르난데스나 영국의 정치 거물 테레사 메이처럼 말이죠. 외국에서는 이미 어릴적부터 눈이 나빠서 안경 쓰는 것과 비슷한 인식을 가질수 있도록 교육도 받는다고 합니다. 테레사 메이 총리가 민소매로 당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이유도 편견 없는 인식에서 나오는 거겠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당뇨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감염병이라는 말도 안되는 편견이 있기도 하며 무엇보다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를 놓는 것이 일상인데 이를 안 좋게 보는 시선으로 당뇨인들이 위축되기도 합니다. 실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반에서 나가라고 하거나, 카페에서 주사를 놓다가 제지 받거나, 심지어 마약으로 오인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We are not waiting.(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 전 세계 1형 당뇨 커뮤니티 문구에 써 있는 슬로건입니다. 1형 당뇨는 어느 날 갑자기 올 수 있습니다. 김씨 사례로 1형 당뇨와 관련된 여러 제도가 개선되었다면 이번에는 인식 개선을 위한 카카오 같이가치 펀딩도 진행중 입니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4047)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다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동!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자료집을 첨부합니다.


스법단_소아당뇨_자료집_최종_1.pdf


김미영씨 아이는 생후 36개월, 이제 막 기저귀를 떼고 말을 시작할 때 1형 당뇨를 진단 받았습니다. 1형 당뇨는 2형 당뇨와 달리 인슐린 자체가 몸에서 생성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평생 혈당관리와 인슐린 주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이가 매일 4번의 주사를 맞는 것도 힘든일이지만 그 보다 더 힘든 것은 혈당 관리를 위한 지속적으로 채혈을 해야 한다는 점 입니다. 아이의 손을 수시로 바늘로 찌르며 혈당을 체크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너무나 힘든일 입니다. 한 1형 당뇨 아이는 학교에서 채혈을 하는 것은 보고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하니 나가서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되새깁니다. “우리 아이가 전염병도 아닌데…….” 




1형 당뇨 아이 엄마를 식약처는 검찰로 송치했습니다.


김미영씨는 이런 아이를 위해 해외에서 채혈 없이 혈당 측정이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를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볼 수 있게 개조했습니다. 처음 연속혈당측정기를 아이 몸에 묶어 측정하는 순간 아이의 첫 마디는 이랬습니다. “어? (채혈과 달리)안 아프네.”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고부터 김미영씨의 아이는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김미영씨는 달라진 아이 모습을 보고 커뮤니티에 기계를 올려 다른 1형 당뇨 아이들에게도 소개하고 여러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 12월 김미영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출석 요청을 받았습니다. 식약처는 연속혈당측정기의 데이터를 김미영씨가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을 두고 불법 의료기기 제조 행위로 본 것입니다. 식약처 조사는 무려 3개월이나 진행되었고 그 기간 동안 김미영씨는 힘들고 지치는 수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김미영씨는 식약처가 전후 사정을 파악해 다른 대안을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김미영씨를 결국 검찰로 송치 하였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는 의료기기법과 식약처



본 사건을 두고 바꿈,세상을바꾸는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함께 진행중인 ‘스타트업법률지원단’은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의원,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 주최로 지난 28일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국회 간담회실은 참석한 소아당뇨 환우 엄마들로 가득 찼습니다. 


본 사건의 변론을 맡은 성춘일 변호사는 ‘김미영씨는 연속혈당측정기가 이미 생성한 데이터를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하여 스마트폰 화면에 그대로 보여주도록 전송만 하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만일 식약처의 해석대로라면 건강에 관련된 보조적 기능을 갖춘 모든 기기들이 식약처에 의료기기로서 허가를 받고 판매를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의료기기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형사처벌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과 유추해석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입니다.“ 라며 식약처의 무분별한 권한 남용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김정욱 변호사는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상업 광고로 볼 수 없으며, 환자들의 정보 및 치료, 환자 관리 방법 정보 등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와 정보접근권을 근거로 하여 표현의 자유로서 광범위하게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며 식약처가 환우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부분도 지적했습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역시 “식약처의 검찰 송치는 그동안 식약처 공무원이 얼마나 가슴과 머리가 없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일하면서 아이와 엄마를 고통속에 절망하게 해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라며 식약처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다른 환우회의 연속혈당기사용 촉구도 이어졌습니다. 당원병(채내 특정 효소 결핍으로 혈당 체크가 꼭 필요한 질환) 환우회 소속인 박주욱씨 역시 “당원병 환자들도 연속혈당 측정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조속히 승인하여 주시고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줄 것.” 을 촉구했습니다. 고인슐린혈증 환아들 역시 같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본 사건의 법적 쟁점이 된 의료기기법에 대한 법 제도 개선도 촉구 되었습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최근 소아당뇨 환아들을 위한 연속혈당측정기 해외직구 사건 발생의 근본원인은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의 경우 자가 치료용 의료기기 희소의료기기·필수의료기기의 공급을 대행해 주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와 정부는 희소의료기기와 필수의료기기 관련 환자 접근권 보장을 위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신속히 해야 한다.” 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식약처가 국민 보건향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고요?



물론 식약처는 수많은 종류의 의료기기를 검사하고 규제하는 기관입니다. 실제 이 과정에서 의료기기와 직간접적으로 질의와 요구, 그리고 때로는 질타를 받기도 합니다. 김희찬 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 교수는 “이러한 걸림돌(식약처의 규제)은 우리 각자가 추구하고 있는 의료기기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이라는 최종의 목적을 향해 나가는 우리들의 자세를 좀 더 경건하고 진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산업에 있어서는 후발주자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신준수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정책과 과장에 따르면 식약처는 올해 2월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소아당뇨 환우들의 연속혈당측정기의 해외직구 사건처럼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에게 긴급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으나 국내에 대체의료기기가 없는 경우를 규정에 명시하여 개정했다고 합니다. 


또한 관련 법과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중이며 “앞으로도 국민 보건향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규제의 불합리한 사항으로 인하여 국민건강에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관련 규제의 개선에 적극 반영할 예정입니다.” 라며 토론을 끝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식약처가 이번 문제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지난 9일 방영된 KBS 제보자들을 보면 현장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KBS의 요청을 식약처는 거절하고 이후 전화 인터뷰에서도 국회에서 이미 입장을 다 밝혔다고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약처가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입니다. 1형 당뇨 엄마 김미영씨가 지고 있는 짐의 무게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셈 입니다. 1형 당뇨 엄마들이 더 적합한 의료기기를 찾아 헤맬 때 식약처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1형 당뇨 엄마 김미영씨가 스스로 발견한 합리적인 치료 기기마저 식약처는 형사처벌 남발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런 식약처가 국민 보건 향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걸까요?




성춘일 변호사



김미영 한국 1형 당뇨병 환우회 대표

소아당뇨 아이 엄마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김정욱 변호사



박주욱 당우병 환우회 대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김희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기본정치자금을 제안한다!


- 모든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후원 권리를 평등하게 나누어 주자 –



강남훈 (한신대학교)


10만원을 후원하면 10만원을 되돌려 주는 현재의 정치후원금 제도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60~70%의 유권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서 차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정치인이나 정당의 후원에만 쓸 수 있는 매년 1인당 3만원 정도의 기본정치자금을 전체 유권자에게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후원하면 나중에 환급해 주는 현재의 제도를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후원하는 제도로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정치적 영향력이 부여되고, 다수를 위한 정책의 채택이 용이해지고, 정치가 투명하게 되며, 좋은 정치인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가려면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 속에는 인간은 정치를 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정치에 참여할 때에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뜻도 있다.


정치는 공동선을 논의하는 행위이다. 공동선에 대한 논의는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입법이나 사법에 참여하였다. 사법은 추첨을 통해 선발된 배심원이 담당하였다. 그런데 페리클레스는 배심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급진 민주주의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배심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하루 일당을 벌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부자만 배심원이 될 것이다. 부자 배심원은 부자들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다.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배심원에게 급여를 지급해야지만 가난한 사람도 배심원이 될 수 있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에는 많은 사람의 활동과 자금이 필요하다. 정치자금을 개인이 부담하도록 하면 부자들이나 부자의 지원을 받는 사람만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자금의 상당부분을 공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15%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한 후보자에게는 법정 선거자금의 대부분을 선관위에서 환급해 준다. 그리고 평소에도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연말이 되면 국회의원실로부터 정치자금 후원을 호소하는 문자가 온다. 10만원을 후원하면 10만원 세액공제를 해주기 때문에 후원자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부담이 없다. 이 제도 덕분에 국회의원들이 정치자금 모으기가 수월해졌고, 재벌들에 대한 자금 의존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제도이다.


현행 정치후원금 제도의 문제점


현재의 정치후원금제도는 과거에 비해서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문제점이 남아있다.


첫째로, 현행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제도는 유권자를 불평등하게 다룬다. 부자 유권자들만 정치후원금 환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10만원을 후원하면 10만원 세액공제를 해 주면, 애초부터 소득세(근로소득세나 사업소득세)를 안 내는 사람은 환급받을 길이 없다. 전업주부, 대학생, 노인 등 비경제활동인구는 정치후원금을 내도 환급받을 길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라고 할지라도 소득세를 10만원 이상 내는 근로자에게만 환급이 된다. 그런데 2015년 전체 근로소득세 신고자의 47%가 과세미달자였다. 이들은 정치후원금을 내도 환급을 받지 못한다. 결국 전체 유권자의 약 60~70% 정도에게는 한 푼도 환급되지 않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등 약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입법이 안 이루어지고, 고등교육 예산이 증액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정치인 스스로 부담해야 할 정치자금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세액공제 혜택에서 제외되고, 선 후원 후 환급이므로 유권자들은 잘 후원하지 않게 된다. 일부의 아주 유명한 정치인들을 제외하고는 후원금 상한을 못 채우게 된다. 자금이 부족한 정치인들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큰손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더욱 부족하다. 법정 선거비용은 실제로 들어가는 선거비용보다 낮은 수준에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법정 선거비용도 전부 환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95% 정도만 환급해 준다. 나머지 자금은 정치인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 자금이라고 해도 일반 정치인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이다.


셋째로, 정치적 후원이 정치적 지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누가 얼마를 후원했는지 알게 되면 후원한 금액에 비례해서 영향력이 생기게 된다. 많은 돈을 후원한 사람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 사이의 영향력 불균등도 큰 문제이다. 예를 들어 단체 활동이 보장되어 규모가 큰 정규직 단체와 그렇지 않아서 규모가 작은 비정규직 단체가 있다고 한다면, 정치인들은 비정규직 단체보다 정규직 단체의 입장을 지지하게 되기 쉽다. 유권자들이 균등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려면 후원을 비밀로 만들어야 한다. 비밀후원은 비밀투표의 원리와 같다. 비밀투표는 투표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투표의 매매 행위를 막는 수단도 된다. 누구를 찍었는지 입증할 수 없다면 찍은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후원금도 마찬가지이다. 비밀후원금이 되어야지만 정책의 매매 행위를 막을 수 있다.


넷째로,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후원이 비례하지 않는다. 10% 이하의 지지를 받는 후보는 한 푼도 환급받지 못한다. 이것은 정치 신인이 진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15%만 넘으면 똑같이 95% 정도 환급해 준다. 더 이상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치자금 큰손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큰손들이 싫어하는 정책을 공약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공약할수록 당선 가능성도 높아지고 정치 자금도 확보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본정치자금이란


현재의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제도를 폐지하고, 그 대신 매년 1인당 3만원 정도의 기본정치자금을 모든 유권자들에게 지급한다. 기본정치자금은 선관위에서 유권자별로 만든 가상계좌에 입금된다. 유권자는 이 자금을 정치인 및 정당의 후원에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아무데나 쓸 수 있는 온전한 현금이 아니고 사용처가 제한된 바우처라고 볼 수 있다.


후원을 받으려는 정치인의 범위는 선관위에 정해야 할 것이다. 정당 소속이 아니면 다소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가 후원을 하면 선관위에서 모아서 주기적으로 정치인, 정당별로 개설한 계좌에 실제로 입금을 해 준다. 이 때 후원자 이름은 가상번호로 처리되어 누가 후원했는지 알 수 없도록 한다. 기본정치자금을 넘는 금액을 자기 돈으로 후원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것도 반드시 선관위를 매개로 해야 한다. 선관위를 매개하지 않고 실명으로 직접 전달되는 정치자금은 모두 불법으로 간주한다. 1인당 후원 한도를 설정하고, 한도를 넘는 후원금은 소속 정당에 귀속되도록 한다.


1인당 3만원의 금액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후원하는 비율이 10% 미만이라면 너무 작은 금액이고 100%로 늘어난다면 너무 많은 금액이다. 금액은 후원의 추이를 보아가며 조절하도록 한다.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 시작하는 것이 금액 조정에 용이할 것이다.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는 금액을 늘려서 등록된 (예비)후보에게만 지원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기존의 선거비용 보전 금액도 정치자금 후원의 추이를 보아가면서 보전 비율을 낮추어 간다.


기본정치자금은 소득세를 내는 유권자에게만 환급해 주는 현재의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제도를 순서를 바꾸고(먼저 사용하면 자금을 환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금을 주고 사용하지 않으면 환수한다), 모든 유권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제도의 잠재적 예산 부담은 현재와 같다. 현재 제도 하에서도 더 많은 유권자가 정치후원을 하게 되면 그만큼 예산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본정치자금의 효과


첫째, 모든 유권자들에게 동일한 정치자금이 지급된다. 누구나 원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부담 없이 후원할 수 있다. 소득세를 못 내서 정치자금에서 차별받던 비정규직과 여성들이 정치자금 제공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된다.


둘째,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이 채택되기 쉬워진다. 정치인들은 정치자금을 얻기 위해서라도 다수의 유권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공약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운동도 개미들의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정규직에게 동등한 정치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셋째, 부정과 비리가 줄어든다. 모든 정치 후원금은 선관위 계좌를 통하여 가상번호로 전달되기 때문에 더 이상 큰손들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부족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큰손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치자금 수사를 무기로 정치인을 위협하는 것도 사라질 것이므로, 정치인에게는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


넷째,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치에 뛰어드는 신인들이 늘어나면서 양심적인 사람들도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정치시장에서 나쁜 상품이 판치는 것은 시장이 두텁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터운 시장이 되어야 좋은 상품이 많아진다.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은 1인 1표 단계에 와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제가 실시되면 1표 1가치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다 기본정치자금이 제공되면 1인 1원의 수준까지 발전하게 된다. 민중의 정치(of the people), 민중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를 넘어서서 민중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정치 혁신을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먼저 후원하고 나중에 지급하는 정치후원금 제도를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후원하는 제도로 순서만 바꾸면 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헬조선을 리모델링 해볼까요?

2016년 광장의 촛불은 대통령 퇴진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했습닌다.

되돌아보면 역사의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시민은 광장에 나왔지만 그 끝은 패배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기획해보았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의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함께그대] 프로젝트입니다.시민배심단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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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최유진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회 위원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54.5세 국회의원은 '헬조선' 못 바꾼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서른>에 나오는 주인공 수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읊조린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수인이 이미 겪어본 아이들의 미래는 이렇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은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다니기가 버거울 것이다. 졸업 후에도 빠듯한 살림살이가 이어질 것이고, 고수익 보장이라는 말에 속아 다단계 조직에 발을 들여 놓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살갑게 지내던 누군가를 그 지옥에 불러들여야 할 때도 있고, 나를 대신한 그이가 불어난 빚과 망가진 인간관계에 시달리다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십년간 자취방을 여섯 번이나 옮겨 다니게 될 테지만 제대로 된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십 대의 젊은 소설가가 그려놓은 대한민국 청년의 삶이 이렇다. 교육, 주거, 취업, 인간관계까지 한 편의 짧은 소설에 청년의 삶 면면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리고 여기, 소설이 채 말하지 않은 청년 이야기를 풀어 놓는 이가 있다. 최유진 위원이다. 김애란의 소설에 그의 이야기를 더하면 대한민국 청년의 서글픈 초상이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그가 집중해서 활동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소설에는 쓰이지 않은 청년정치이기 때문이다.


"아이들한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희망이 있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하고... 또 한편으론 화도 나요. 사람이 어떤 기회를 얻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 발전도 하는 거고 새로운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건데, 지금 청년세대는 삶에 대한 새로운 기회조차 못 잡고 있는 게 현실이죠."



<서른>을 쓴 소설가와 최유진 위원은 아마도 일면식이 없을 테지만 그 둘이 공유하고 있는 감수성이 퍽 닮았다. 문학의 언어와 정치의 언어가 갖는 온도차는 있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당사자들의 비슷한 체험이 문학과 정치라는 각자의 그릇에 담겨 있는 셈이다.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헬조선, 흙수저, 노답사회 이런 표현 자체가 청년들이 불공정한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끊긴 상태인 거죠. 정당별로 청년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청년들이 가져갈 수 있는 파이를 나눠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청년들도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요. 캐나다에서 40대 총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10대, 20대부터 정치적 경험을 쌓게 하고 사람을 길러내는 인재 육성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 정치권처럼 선거철 보여주기 식으로 청년을 호명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죠."


우리나라 총 인구 중 20,30대의 비율은 30%다. 그러나 20,30대의 당사자성을 갖고 있는 19대 국회의원은 단 4명뿐이다. 쉽게 말해 20,30대 연령의 국회의원 수가 겨우 4명이라는 거다. (그나마도 20대 국회의원의 수는 0명이다) 19대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이 54.5세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 국회가 세대의 다양성을 대변하는데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청년정치가 부재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인관련 법안은 청년에게 혜택을 주는 법안의 4배에 달하고, 현행 정치자금법에서는 청년세대를 위한 예산의 정도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청년들의 투표율이 낮다고 하는데, 지역정치, 지역구 선거 자체가 현재 청년들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아요.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 원룸에서 살고 고시원에서 살아요.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걸 아는 정치인들은 공보물을 원룸촌, 고시촌 이런 곳엔 보내지 않아요. 청년 투표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거죠.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엘리트 위주의 정치로 일관해 오던 기득권 정치가 바뀌지 않고 제론토크라시, 노인 정치가 계속된다면 인구절벽을 앞둔 한국은 더 이상 성장하거나 발전하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어요. 청년을 포함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정치에 뛰어들어 변화의 에너지를 만들어야 미래를 꿈꿀 수 있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는 부정한 힘을 알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문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면 이런 과정을 타고 흐를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유용하며 직접적이다. 정치가 발휘되는 방향에 따라 당장 우리의 일상생활부터 달라지기 마련이다. 최유진 위원은 왜 우리 삶을 바꿔 줄 희망의 씨앗을 정치에서 찾고 있을까?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하고 조형물 작품을 냈던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오히려 앞에 것, 유용하지 않은 예술을 써먹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말이다.


"대학 1학년 때 하반신이 마비가 되는 사고가 있었어요. 전쟁기념관에 있는 기념탑을 만들다 떨어졌는데 마비의 원인을 찾지 못해서 두 달을 천장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때 누구나 장애가 생길 수 있고 누구든지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그리고 평생 누워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제야 이 사회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없는 곳인지 알게 됐어요."


제주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최 위원은 서울에 있는 예술고에 입학했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름 대신 '제주도'로 불렸고 같은 이유로 왕따와 구타를 당했다.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으며 맨발로 뛰놀던 아름다운 추억이 주류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청소년기의 상처와 대학에서의 사고는 미술가의 길을 걸으려 했던 그를 사회운동에 뛰어들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극도의 입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환영할 수 없었고 하반신 마비의 환자와 더불어 살아갈 여유가 이 사회엔 없었다.


원인 모를 하반신 마비는 척추신경에 박혀 있던 작은 뼛조각이 문제였다. 치료 후 두 다리로 땅을 다시 디뎠을 때 그에게 아낄 몸 같은 건 없었다. 다양한 사회문제에 몸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학내에서는 등록금 투쟁에 앞장섰고 서울대 일제잔재청산위원회를 조직해 친일 인명사전도 만들었다. 진보정당에 들어가 사회진보 운동도 열심히 했다. 2009년엔 다큐 <오체투지 다이어리> 공동 연출도 맡았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었던 해였다.


"오체투지는 신체의 다섯 군데를 바닥에 닿게 하는 가장 낮고 겸손한 수행이에요. 2008년, 사회적 약자들이 더욱 열악한 조건에 내몰리고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려되던 상황이었는데, 문규현, 정종훈 신부님과 수경스님이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는 순례를 떠난다기에 카메라 촬영법을 급히 배워 수행단에 합류했어요. 순례를 기록하기 위해 참여하긴 했지만 당시 제 개인적으로 자기반성도 필요했고 새로운 시작점을 찾아야 했을 시기라 저 역시 수행한다는 심정으로 동행했어요."


이십대 초부터 다양한 정치사회운동에 참여해오며 나름 잔뼈가 굵어졌을 시기에 관성적으로 사회문제를 보고 접근하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고 있던 진보운동은 점점 힘들어졌고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최 위원이 선택한 것이 오체투지 순례길이다. 고생스러웠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단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느라 빚도 좀 생겼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작품이 제2회 DMZ다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의미를 남겼다. 상금도 받았는데 빚 갚는데 고스란히 쓰였다고 한다. 


상도 상이지만 그에게 <오체투지 다이어리>가 남긴 의미는 사실 따로 있다. 약자의 외침을 대신해 고행하는 수행자들 곁에 소박하게, 더러는 아프게 살아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들이 울고 웃으며 풀어놓는 사는 이야기를 가까이 들으며 최 위원은 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와 저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야말로 좋은 사회와 좋은 정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치에 있어서 당사자들의 직접참여는 최 위원이 인터뷰 내내 강조하던 내용이기도 하다.


"제가 작업해오던 공공 설치 미술은 다른 미술보다는 생활에 밀접한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예술을 통해 절박한 현실을 직접 바꾸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죠. 정치는 직접적이에요.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에 달려 있고, 우리가 처한 답답한 현실을 우리 손으로 직접 풀 수 있는 수단이 정치이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 청년뿐만 아니라 다양한 당사자들이 정당 안으로 들어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김애란의 <서른>을 읽는다. 


도시에 어둠이 내리면 아파트마다 회사 로고를 본뜬 네온등에 불을 밝힌다. 손잡이도 없는 작은 창 너머로 세기의 문장(紋章)처럼 박혀있는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수인은 그가 살고 있는 이 방이 공간이나 장소가 아닌 어디론가 계속 이동 중인 물체처럼 느껴진다. 창밖의 세계와는 같은 시공을 공유할 수 없는 채로, 묵직한 가속도를 내며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우주선처럼 말이다. 


"청년정치는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가치를 스스로 찾고,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죠. 끊임없이 경쟁만을 쫓기듯 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룰을 깨고 다수의 청년들을 패배자로 만드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면 해요. 그런 움직임 속에서 제 역할이 있다면, 많은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진입로는 만드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송곳이 낸 작은 구멍이 나중에 큰 물길을 트듯이 제가 그 작은 구멍을 내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청년들이 허공에서 보내는 타전은 땅에 채 닿기도 전에 희미해지고, 그들이 타고 있는 우주선은 방향을 잃은 채 자꾸만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청년이 정치적 약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청년들의 고독한 우주선은 더 많이, 더 멀리, 더 빨리 지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청년정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최유진 위원이지만 그의 열정만으로는 저 많은 우주선을 다시 지구로 회귀시키는 건 아마도 불가능 할 것이다. 


최유진 위원에게 청년문제의 모든 짐을 지워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청년 정치인이 귀한 이 시대에 그가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희망이 있다는 말로 대신하고도 싶지만 아무래도 희망이란 단어는 익숙하지 않아 차마 못쓰겠다. 그러나 그도 말했듯 작은 구멍을 낸다고 했다. 최유진 위원이 낸 구멍이 비록 송곳만큼의 크기라도 그것은 메시지가 수신되고 발신되는 소통의 창구가 될 것이고, 그 길을 따라 청년들의 우주선이 다시금 지구별에 착륙하는 날도 올지 모르겠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애쓰고 있는 아이들이 결국 서른 살 수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서늘한 예감은 허공에 날려 버린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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