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2세 뇌병변 중증장애 아들을 돌보는 장애인 부모입니다. 아들은 현재 서울의 한 지체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제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의료사고로 좌뇌가 손상되었어요. 이로인해 뇌병변 사지마비 와상 1급에 지적장애 1급의 중증 장애인이 되어버렸습니다. 현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언어도 표현하지 못합니다.


밥 먹이러 두 번 안 오면 퇴학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아들을 씻기는데 우선 1시간이 걸립니다. 옷 입히는 것도 30분, 밥 먹이는 것도 30분이 걸리는데 아침부터 너무 힘듭니다. 등교 준비에만 이것저것 하다보면 2-3시간이 걸리는 셈이죠. 


중증 장애인 아이들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식사 때면 1대1로 식사보조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바뀌면서 학교에서 밥을 안 먹여 줄 테니 엄마들이 학교에 와서 먹이라고 지침을 바꿨어요. 심지어 모집요강에 밥 먹이러 ‘1년에 두 번 안 오면 학생을 퇴학조치 하겠다.’ 라는 학칙까지 있었어요. 이 학칙은 인권위에 진정을 넣어서 간신히 빠졌어요.


우리 아이들은 일반 휠체어에는 못 앉아서 ‘이너’라는 보조기구가 있어요. 일반학교 아이들의 책걸상과 같은 셈이죠. 근데 이너의 가격이 자그마치 250~500만원이나 해요. 전에는 전부 자부담으로 샀어요. 일반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책걸상을 무상으로 제공해주는데 장애인 학생들만 자부담으로 사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해 교육청에 문제제기 했어요, 그런데 교육청은 비싸다는 이유로 지원 안 했었어요. 장애인 학생들에게는 이너가 책설상이고, 책걸상이 없으면 수업을 못하잖아요? 다행히 인권위까지 가서 진정을 내 결국 특별 예산으로 1억 5천만 원이 내려왔어요. 


또 아이들이 학교에 와 가지고 하루 종일 묶여 있다 보니까 몸이 굳어 버려요.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질 못하니까 몸이 굳는거에요. 전에는 수업에 치료가 있어서 괜찮았는데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생기면서 학교 안에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들이 다 나가게 되었어요. 대신 치료 지원비라고 12만원씩 나와요. 외부에서 하고 싶은 사람은 외부에서 하되, 학교에서 원하는 사람은 학교 안에서 하게끔 해줬으면 좋겠어요.


사소하지만 저희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한 번은 서울시 투어를 하는데 이동시간이 한 2시간 정도 돼서 기저귀를 갈아야 되는데 공간이 없는 거예요. 또 국립박물관을 갔는데 거기도 없었어요. 명절 때 이동하면 기본 4-5시간 이동은 기본인데 성인이라 소변량이 많아요. 그럼 기저귀를 갈아야 되는데 갈 수 있는 곳이 턱없이 부족해요. 그래서 저희가 외부로 나가면 일부로 텐트를 가져가서 치고 기저귀를 갈 때도 있어요. 화장실, 탈의실, 언덕의 턱 하나하나 사소하지만 저희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또 일반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중증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건강검진 시스템은 국립병원에서조차 없어요. 3년에 한 번씩이라도 건강검진이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평범한 삶을 위하여


주변 고등학교에서 점심때 마다 봉사를 와요. 시험 때랑 방학 때만 빠지지 한 번도 안 빠지고 오는데 애들도 그 아이들을 기다리고 봉사 온 학생들도 너무 좋아해요. 이런 게 장애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지역사회에서 가까이 접해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가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또 국가에서 어느 정도는 건강권리를 지킬 수 있게 지원이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된다든지, 장애가 있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건강과 관련된 권리를 못 찾잖아요. 기본적으로 건강할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지원을 해줘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이 좀 몸이 불편하고 뭔가 조금 더 배려의 대상이라는 마음만 가진다면 차별이라는 그 자체 단어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장애인하면 특별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 대하듯이 가볍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역사회에서 집 안에서만이 아니라 나갔다가 저녁에는 일반인들처럼 집으로 들어와서 같이 생활하는 그런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참 좋겠네요.


본 카드뉴스는 2017년 11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의 사례 발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자세하고 다양한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bit.ly/건강할권리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다 -

바꿈 청년네트워크 지음, 궁리 출판사, 304쪽, 15,000원




"2,30대 청년 25명이 바라본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원인, 그 대안까지"


"청년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에 대해 큰 산을 그릴 수 있는 책"


"처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말 그대로 '입문서'"


"마치 친한 친구 또는 선배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절"



<책 소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의 풍경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서문에서 인용한 만화 송곳의 대사이다.

오늘날 청년이 서 있는 공간과 과거 청년이 서 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다. 과거와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불쌍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청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받아들여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


청년들이 ‘서 있는 곳’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아니라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세대의 시선으로


사회에서 비교적 성공했거나 글쓰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과 해법을 이야기해주는

'외부자' 시각이 아닌, ‘청년 스스로 쓴 청년 사회입문서’이다.

바꿈청년네트워크에는 대학생, 백수,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활동가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있다.

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써보자’는 하나의 이유로 모였다.

바꿈 청년들이 스스로 만드는 책이니만큼 ‘청년의 시각’,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바꾸어가고자 합니다!


어떤 정답이나 대안을 이야기하기보다 그걸 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소통하고 조율되어야만 ‘청년들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책에도 청년들이 생각하는 대안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바꿈의 이야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바꿈이 추구하는 대안은 ‘정답’이라기보다 ‘방법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곁에 있는 또래의 청년들, 청년과 소통하기 원하는 기성세대와 함께 토론하면 좋을 책이다.




<목차>


발간사 

서문 


1부 | 노동을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것들

1 청년 일자리 

2 열정을 가지고 참고 견디라고요? 

3 당신의 노동은 얼마입니까? 

4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비빌 언덕, 4대 보험에 대하여 

5 ‘노동자’ 모두 여~기여기 모여라(feat, 헌법33조) 


2부 |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1 인권은 감정이다 

2 인권 결핍의 대한민국 군대 

3 우리 사회 혐오읽기-여성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4 광화문역에는 장애인이 살고 있어요 

5 다름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세계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6 메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송파 세 모녀에게 우리가 돌려주어야 할 말, ‘죄송합니다’ 


3부 | 대학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1 대학공략법 

2 자신의 미래를 빛내러 온 대학에서 빚만 내는 대학생들 

3 엇나간 교수와 학생의 사이 

4 비리재단은 현재 진행중 

5 대학을 권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라! 

6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 

7 아직도 우리는 대학에서 희망을 찾는다 


4부 | 평화, 통일보다 낯선

1 통일이라 쓰고 탈분단이라 읽는다 

2 분단 모순 극복으로서의 통일 

3 이게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이 아니야! 

4 청년 실업 ‘중동’보다 ‘남북경협’에서 

5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 

6 스무 살, 분단을 인식하고 평화에 공감하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자: 바꿈청년네트워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20~30대 청년 활동가의 모임이다. 2015년 2월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제작을 목표로 대학, 노동, 인권, 평화.통일 등 4개 분과로 운영되어 왔다.


강태경(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강혜진(숭실대학교 학생)

김성은(홍익대학교 졸업생)

김윤영(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정숙(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단청(여성학을 배우는 학생)

리온소연(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운영자)

박영민(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재학생)

박혜영(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변규홍(청년녹색당 전국위원/전 KAIST 학부 동아리연합회 회장)

손우정(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바꿈 이사)

신정현(사람도서관 리드미 관장/청소년통일교육 전문가)

오세연(전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유애리(예비 사회활동가)

윤지선(손잡고 활동가)

이다솜(독립다큐멘터리스트)

이동철(한국노총 법률원 부천상담소 상담간사)

이인섭(전 군인권센터 활동가)

이진수(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초등교사)

임지훈(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박사과정 재학생)

전진한(알권리연구소 소장/바꿈 이사)

전진희(대학고발자 운영자)

정별(홍익대학교 학생)

정욜(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최수지(학교통일교육 전문강사)

최형순(전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홍명근(시민의날개 상임활동가)



서평 "익숙해지지 말자, 착취당하는 것에" 성영이 상임활동가 2016.4.4. 오마이뉴스


저자 후기 "청년은 이미 사회를 바꾸고 있다" 박영민 자원활동가 2016.4.4


서평 "‘스텐수저’를 꿈꾸는 청춘들 입문서" 양리리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2016.4.1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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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김홍선 오사카국제대학 인권교육 강사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오사카에서 만난 '밀로의 비너스'


살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고민의 여지도 없었던 것들, 국가, 국적, 국어, 이런 것들 말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히 부여 받았다 생각했는데 사실 이것들은 때로 기막히기도 하고 우연하기도 한 시간과 사건의 결과였다. 굴곡 많은 이 땅의 역사를 생각하자니 더욱 그렇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 의해 강제 연행 되었던 나의 할아버지가 일본을 탈출해 당신의 고향인 충청도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황해도가 고향인 나의 외조부모가 6.25 전쟁 때 이남으로 피난을 오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속한 집안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이루어진 선대의 크고 작은 결정들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국가, 갖고 있는 국적, 쓰고 있는 언어를 하나로 동일하게 만들었다. 우연한 일이다.


지난 11월,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김홍선 선생을 만났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하거니와 영락없는 오사카 아줌마가 따로 없다. 쾌활하고 수다스럽고 웃음이 많다. 그러나 예의 그 웃음 가득한 얼굴로 풀어 놓는 이야기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재일교포 2세인 그의 가족사를 들어보면 이렇다.


"일제의 수탈로 생계가 어려웠던 부모님께서 1939년 4월, 일본 시모노세키로 건너오셨어요, 그 후 오사카에 자리 잡고 신발을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일본의 징용 명령이 떨어졌지요. 아버지께서는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강제 징용까지 하라고 하니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숨어 다니셨어요. 징용을 시키려는 일본 경찰의 폭압이 점점 심해지자 아버지는 온 가족을 데리고 히로시마 현의 산골로 도망쳐버렸습니다.“



1945년 8월 5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일본이 패전을 맞이하자 생계를 위해, 일제의 강제 연행과 징용으로 인해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많은 한국인들이 내쫓기듯 일본 땅을 벗어나게 된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어렵사리 구해서 타고 간 귀국선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고(1945년 8월 24일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다수 타고 있던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가 교토 근교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5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수몰되었다.) 한반도에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끝내 귀국선을 마련하지 못한 김홍선 선생의 가족들은 히로시마에서 조금 더 생활하다가 종전직후의 혼란한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현재의 60만 재일교포의 시작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나와 김홍선 선생이 각각 태어난 국가가 달라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김홍선 선생은 1951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3살이 되던 해 온 가족이 오사카로 터전을 옮긴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파친코 가게에 화재가 나면서 히로시마에서의 생활기반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갈 곳이 없던 가족은 한인들이 모여 살던 부락에 자리를 잡았다.


"그 곳은 미군기지 건설공사에 인부로 일하던 교포들이 그대로 공사장 근처에 정착해 살게 된 부락이에요. 막노동꾼들이 합숙소로 쓰던 판잣집 같은 곳에 칸막이를 해놓고 여러 가구가 나눠 살았는데, 우리 가족도 한 칸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때 살던 집근처에 건국학교라는 한국계 학교가 있었어요. 조국을 늘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언젠가 가족과 함께 고향에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고 저희 형제들을 그 민족학교에 보냈어요. 한국어를 배우게 하려고요."


민족의식이 유별났던 그의 아버지는 곤궁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일본학교보다 학비가 비싼 한국 학교로 아이들을 등교시켰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에 따라 김홍선 선생 역시 건국소학교를 졸업하고 건국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김홍선 선생은 중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사고가 있었다.


"당시 큰 오빠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기계 한 대를 장만해 밥그릇이나 젓가락을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재일교포들이 주로 하는 막노동일 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서였죠. 여름방학을 보내던 저도 가서 일을 돕게 됐지요. 기계가 찍어낸 플라스틱 제품을 빼내다 사고가 났어요. 기계에 양손이 끼어들어가 손가락이 모두 으스러졌지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생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라 만으로 겨우 12살 때 벌어진 일이에요."


"겨우 12살이었잖아요" 하며 그가 웃었다. 뭘 몰랐다며 웃었다. 기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모르고 두 손을 다 집어넣는 어린애였다. 으스러진 손가락은 접합수술조차 할 수 없어 손목 아래로 모두 절단해야 했다. 가난한 살림에다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재일교포였기에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퇴원을 서둘렀다. 사고와 함께 찾아온 사춘기는 혹독했다.



"14살이 되던 해 외국인등록증을 만들러 구청에 가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당시엔 사진을 찍고 지문을 남겨야 하는 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손가락이 없잖아요. 그게 너무 걱정이고 사람들의 시선도 무서웠어요. 다행히 구청 직원이 제 상태를 확인해주는 도장을 찍어줘서 일본에서 살 수 있는 등록증은 나왔지만 그때 제가 장애인이라는 것과 외국인,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고 후 학교를 그만 둔 그가 집에서 한 일이라고는 책읽기와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보기였다. 12살의 김홍선은 어느덧 18살이 되었다.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재택장애인이었던 그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 건 펜팔이었다.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영화잡지에 실린 펜팔모집 광고를 보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글씨 쓰기는 문제 되지 않았다. 글씨 쓰는 연습을 지독히 해온 것이다. 대화를 하는 중에 그가 직접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양 손목 사이에 낀 펜은 그 누구의 손가락 사이에서보다 정교하게 움직였다. 획수가 많은 한자도, 곡선이 많은 히라가나도, 자음과 모음의 간격이 까다로운 한글도 모두 반듯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일본사회에서 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펜팔 편지를 안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숨기고 가짜 일본 이름을 만들어서 편지를 주고받고 했어요. 그리고 손이 없는 사람은 더욱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그것도 숨겼어요. 그렇게 진짜 나를 숨기고 펜팔 친구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가짜모습으로 친구를 갖고 있는 게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결심을 하고 고백했지요. 그 후 절반의 친구는 편지를 주지 않았지만 계속 편지를 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일본 사람 중에서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덕분에 세상에 나갈 용기도 생겼고, 제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맞는 계기도 생겼죠."


펜팔로 용기를 얻은 그는 오사카 문학학교에 등록했다. 1970년의 일이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 듣는 문학 강좌였지만 중학교 1학년 이후 처음 나가기 시작한 학교였다. 그곳에서 재일교포 시인 김시종 선생을 만난다.  


"김시종 선생님이 밀로의 비너스엔 팔이 없는데 왜 우리는 아름답다 느끼느냐 물으셨어요. 왜일까요? 비너스에게 없는 팔과 손을 우리가 상상해서 보니까 아름다운거래요. 그때 저는 너무 놀랐어요. 양손이 없는 제 자신에게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 때였는데, 우리의 상상력 덕분에 저도 손이 없는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어요. 그때야 저도 이제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아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시종 시인이 김홍선 선생에게 남긴 말은 "시인에게 마이너스란 없다"였다. 손이 없는 것은 마이너스의 의미가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으로 다채롭게 채워 나갈 공간이 생겼다는 것으로 느꼈다. 오사카 문학학교 이후 김홍선 선생의 삶을 보면 실로 그렇다.


1974년, 재일교포 3세들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해 11년을 꾸준히 했다. 이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어 강의를 맡았다. 1991년부터 시작한 이 강의는 2011년 3월까지 지속했고 2006년부터는 오사카국제대학에서 인권교육론을 담당하는 비상근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저를 둘러싼 세 가지의 안 좋은 조건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찾아 살게 됐으니까요. 외국인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온 재일교포에, 중증 장애인에, 중학교도 못 나온 학력, 이런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잖아요. 자기의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니에요. 불행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행복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남들 보기에 그까짓 게 뭐가 행복하냐고 해도 상관없어요. 무엇이든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고 전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행복을 말하는 그의 얼굴이 꽃잎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처음 사회생활을 했던 회사에서 받았던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 한복을 입은 날이면 어김없이 달라붙던 불쾌한 시선들, 절단된 손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던 어린 날의 기억들. 그가 말하는 행복은 불행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쳐본 선험자가 들려주는 아주 핍진한 진심이었다.


김홍선 선생이 재일교포 2세라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타고 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조부모 세대가 한반도 남쪽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한 탓에 지금 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민족이니까, 가혹한 삶에 대한 동정심으로, 역사적인 책임감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당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 생각할 때 이해의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로의 삶이 뒤바뀌거나 어쩌면 비슷해질 수 있었다는 우연의 가능성을 열어놨을 때 타인의 삶에 대한 오해 없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의 시간을 차마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가 있던 자리에 나를 갖다 놓는 상상력은 마음껏 발휘했다. 김홍선 선생은 그렇게 만나야 한다. 밀로의 비너스를 만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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