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 현실에 눈을 맞춰야 한다


지난 17대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이들은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이 이만큼이나 더 나빠질 수 있구나.’ 하는 좌절과 반성, 그건 많은 이들의 마음을 5년 내내 아프게 만들었다. 그런데 18대 정부가 들어서고, 더 많은 이들이 통렬하게 가슴을 내리친 건 절망이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구나.’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더 치열하게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한 이들의 방심이 낳은 처절한 업보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민사회운동이 고사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렸죠. 그래서 뜻이 있는 이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다가, 201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반 년 동안 논의를 했습니다. 월 두 차례씩 만나면서 나눈 토론의 결론은 청년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죠.”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진보의 틀과 가치가 왜 일그러졌는지, 그런데도 그런 현실을 왜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를 먼저 진단했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NGO)가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래서 매번 386세대의 언어만 반복한다는 것, 또한 여전히 남성 중심이라는 것,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표현방식 자체가 과거 지향적이라는 것, 이런 모든 논의가 꾸준히 문제의식으로 지적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색다른 대목은 이런 문제를 386세대와 그 이전 활동가들이 먼저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1987년 민주화를 이끈 386세대의 업적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세상과 세대는 이미 바뀐 지 오래됐는데 그 정신으로 대화하기는 힘든 현실이 됐잖아요. 그래서 386세대들이 모여 자기반성의 의미로 대화를 나눴던 겁니다. ‘논의의 장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그 자리를 던져줄 때가 됐다. 이런 틀이 생겼으니까, 있는 그대로 마음껏 토론해 봐라!’ 라는 화두를 던졌던 거죠. 그게 바꿈의 시작이 됐고, 그 바꿈이 청년들의 실제 토론의 장으로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겁니다.”


바꿈은 기존의 모든 걸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다. 대신 ‘바뀌어야 할 대상과 지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한다.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질곡을 딛고, 응급실을 벗어나 어렵게 생존해 왔던 게 대한민국이다.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역할과 가치로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도 맞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청년들의 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해답은 이제 스스로 찾아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숨통 트이는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바꿈은 새로운 기획을 모색하고, 기존의 현실을 타개하는 걸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 사회와 정치를 동시에 혁신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공동 논의의 장을 마련해서 집단지성으로 이끌어낸다. 가치 있는 의견들을 발굴해서 명쾌한 메시지로 정리하고 공유하며, 세대 간의 갈등을 조정할 청년 리더십 발굴에 노력한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혁신되기 위해선, 정치개혁이 우선돼야 함을 강조하는 건 물론이다.


“매달 한 번씩 전체 이사회를 열고, 청년 분과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개별적인 일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열립니다. 현재 청년 분과 모임이 열 개의 팀으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각 분과별로 자유로운 토론과 결과 도출이 가능한 거죠.” 바꿈의 상근활동가 홍명근 씨는 각 분과 활동의 큰 비중에 만족을 나타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노동·인간·대학·평화의 4개 분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여성·평화·정치· 인권·노동/일자리·문화·대학·환경·복지에 더불어 연극 분과가 최근에 추가됐다고 한다.


“각 분과별로 치열한 의견 토론을 나누고, 결론이 나지 않을 만큼의 각자의 의견을 나눕니다. 그게 단점일 수 있는데, 그게 오히려 장점이 맞겠다는 답을 얻게 되는 거죠. 아홉 개 분과까지 있었는데, 얼마 전에 연극하는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각각의 극단에서 연극의 인생을 살던 친구들이었는데, 소속된 극단에서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젊은 연기자들의 상황을 타파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 친구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꿈의 책이나 보고서 같은 게 아닌,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연극 무대로 증명하겠다고 동참을 한 거죠. 그래서 생긴 게 열 번째 분과입니다.”


바꿈은 대한민국의 진보가 포괄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는 전제를 놓고, 모든 의제를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물론 원칙이 ‘답’을 얻기 위한 규정이 될 필요는 없다. 그것마저도 벗어던져 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토론이 다 가능하다. 새로운 토론 분야가 필요하면, 공동의 논의를 통해 만들 수도 있다. 연극이라는 분과가 새로 생겼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장애의 분과도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 되는 게 아닐까? <함께걸음>과의 만남이라서가 아니라, 바꿈 정도의 프로젝트라면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영역이 ‘장애’가 아닐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성분과를 책임지는 박영민 씨의 답이 반가웠다.


“당연히 가능하죠. 저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살겠다고 마음먹으며 살고 있는데, 밖에 나가서 그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운 마음의 벗을 만날 수 있는 게 바꿈이거든요. 실제로 마음 놓고 얘기할 상대를 만났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동참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동지를 찾고 싶었다는 거죠.”


바꿈은 특이하다. 5년이라는 기간을 한정하며, 2020년에 해체하겠다는 목표를 앞에 두고 운영하는 단체이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5년? 왜 하필 5년이라는 기간을 선정하는 걸까? 전진한 상임이사가 추임새를 던졌다.


“저희들은 주도권 싸움을 위해 저희 이름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뒤에 물러나서 연결하고 지원하는 사업에 집중합니다. 당연히 바꿈이 전면에 나설 일이 없다는 거죠.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은 자신의 단체명으로 힘을 얻고 지속가능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바꿈이라는 단체명이 지속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고 처음부터 판단을 했거든요. 밀알이 되는 걸로 만족합니다. 대신 최선의 역할을 다할 겁니다. 2017년 말 대선에서 큰 역할을 하고 싶고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그 이후의 답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들이 바꿈 안에서 숨을 쉴 인생의 공간을 찾는 게 충분하겠다는 확신이 든다. 젊은 장애당사자들에게는 뜻밖의 해방구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바꿈에서도 얼마든지 환영하고 반길 준비가 이미 돼 있다고 한다. 세상을 알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바꿈이 제시하는 방법론에 우리가 동참할 필요는 충분하고, 그런 질서를 갈망했던 게 바로 우리의 요구사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꿈의 홈페이지를 남긴다. 홍보의 개념은 아니다. 동참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가 317일간의 사투 끝에 결국 사망했다. 그동안 경찰의 과잉진압과 물대포 운용 지침을 지키지 않은 행위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았고, 강신명 경찰청장이 살인미수로 고발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 중이다. 오히려 경찰은 유가족들과 대책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시도하다 법원으로부터 영장 발부를 거부당했음에도 영장 재청구로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 과정에서 사망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과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민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꼭 닮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 황인성(64) 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황 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서 복귀한 뒤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가 2005년 두 농민의 사망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성명이 나올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한 황인성 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 황인성 위원장은 2005년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할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 박영민


"공권력에 의한 사망, 관심과 성의부터 보여야"


-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2005년 전용철, 홍덕표씨가 여의도 시위에서 사망한 당시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우선 시민사회수석실이 어떤 곳이었는지 말해 달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정국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비서실을 재편했다. 기존의 정무수석실과 국민참여수석실을 없애고 시민사회수석실을 신설했다. 시민사회수석 산하에 시민사회비서관실, 사회조정 1비서관실, 사회조정 2비서관실, 사회조정 3비서관실과 치안비서관실 등 5개 비서관실을 두었다. 국회 및 정당 관련 업무는 정무팀으로 축소하여 비서실장실에 배속했다. 첫 시민사회수석으로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청와대를 떠났던 문재인 변호사를 임명했고 내가 후임이었다."


- 시민사회수석실이 상당히 커진 것인데 왜 그런 재편이 있었나?

"알다시피 참여정부 초기에 원전 방폐장, 사패산 터널. 천성상 터널, 화물연대 파업 같은 사회적 갈등이 많았지 않나? 노 대통령은 공공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소하는 문제가 효율적인 정책 추진과 사회의 민주적 성숙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국회와 정당 관련 사안은 열린우리당이 자율적으로 대응하도록 축소했지만, 정책추진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의 요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추진 부처와의 원활한 소통과 조정을 지원해서 일종의 정책고객인 국민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에는 비중을 크게 둔 것 같다."


-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2005년 11월 15일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었나?

"집회해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초기에는 피해발생의 전후 사정이나 직접적 원인과 책임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찰, 농민단체와 야당 사이에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 내에서는 경찰의 자체 진상조사가 있었고, 독립적 국가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됐다."


-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시위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초기 대응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죽었으니까 청와대 비서실 내에서는 사망한 농민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조의를 표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만 해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에서 조화를 보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처리를 주문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공권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인명이 훼손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노력은 진행하더라도 유족과 관계자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조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관심과 성의를 표하고 실질적 대화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 그래서 조화를 보냈나?

"내가 직접 갔다.(황인성 전 수석은 2005년 11월 29일, 고 전용철 씨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유족과 대책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유감을 표하고 진상에 입각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 기자 말) 당시 언론에서는 청와대 수석이 농민들에게 절을 했다고 굉장히 크게 보도했다."


"노 대통령 사과, 모두가 말렸다"


- 2005년 12월 26일 저녁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원회의 결과를 공개하면서 전용철, 홍덕표씨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바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모들의 의견이었나?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는 어렵다. 경찰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소관 부처가 있는데... 시민사회수석으로서도 진상을 숨기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엄정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점에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가지 않았다."


-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었나?

"그렇다. (2005년 12월) 27일 아침에 대통령이 비서실장, 정책실장, 소관 수석인 나를 불러서 농민사망 사태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 참모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만류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각 부처에 직접적인 책임자들도 있었다. 경찰청도 있었고.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는 것은 너무 나가시는 것이라는 신중론이 다수였다."


- 만류에도 강행한 것인가?

"당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따지려면 따져볼 만한 내용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검토할 부분은 있지만 공권력 행사는 엄중한 문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 당시 경찰청의 입장은 어땠나? 반발이 있었을 것 같다. 

"경찰청을 담당하는 수석실이 시민사회수석실로 바뀐 데에는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가장 민생과 밀착해 있는 대민 부서이고, 각종 집회나 시위에 대응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갈등을 올바로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의 사과성명 발표가 확정되자마자 경찰청장에게 전화로 대통령께서 곧 기자회견을 하실 예정이라고 알려주고 이후 대응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해임 요구에 "임기를 보장하기로 한 경찰청장을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결국 12월 29일 스스로 사퇴했다.

"당시 경찰청장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이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정도로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었다고 보지도 않았고, 경찰들의 사기를 생각할 때 대통령의 사과가 과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기자회견 뒤에도 경찰내부에서 뒷말이 나왔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의 사과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요구되는 정당성과 엄정성에 대해 공직사회의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 지나치게 안일해"


▲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대책위와 시민들이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영결식장 입구와 연결 통로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전용철, 홍덕표씨가 사망한 지 정확하게 10년 뒤에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지고 결국 317일 만에 사망했다. 그렇지만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달리 사과가 없다. 어떻게 보고 있나?

"당시 청와대 내부의 논의과정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너무 안일하다. 공권력의 행사와 무관하게 사람이 죽었다면 누가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겠나? 설령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공권력의 행사 과정에 인명피해가 있었다면 같이 아파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 기본이다."


- 만일 지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경찰은 물대포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이라고 항변하면서 죽음에 이른 건 본인(고 백남기씨-기자 말)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를 밝히는 것은 그 과정대로 하더라도 유감을 표하고 공권력 행사에 과잉이나 불법이 없었는지는 자체조사해서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는 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면 그런 조언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일 년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가족이 원치 않는데도 시신까지 부검하려고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민간단체가 행사하는 물리력과 공권력은 그 성질과 질, 양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다. 공권력 행사는 엄정하게 집행되도록 더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기본적인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결사의 자유다. 그래서 기본권이다. 기본권의 존중을 우선시 하면서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공권력이 우위에 있고, 이것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국민의 권리 행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그래야 갈등으로 인해 부딪쳐도 연성대치가 되지 강성대치로 나아가지 않는다. 강성 대치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희생이 나온다. 연성대치 속에서 갈등조정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 해 고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지 2일이 지난 11월 16일,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미국에서는 (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시위대를) 패 버리지 않느냐.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을 받기도 한다"며 경찰당국을 옹호했다. 2015년 12월 18일, 경찰은 백남기씨가 쓰러진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가 오래 전부터 폭력 집회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기획, 모의한 것이라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여당과 경찰의 초기 대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 발생 42일 만에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고 백남기씨의 317일간의 사투 동안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국민의 인권은 공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대국민 사과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공권력의 행사에 관한 구절은 고 백남기씨의 사망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상식'이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 2005년 12월 27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중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진행 : 손우정(바꿈. 이사)



2016년 5월 3일. 한 사내가 양재동 서희빌딩 14층으로 들어섰다. 그의 이름은 홍명근. 이제 창립 1년을 맞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의 유일한 풀 상근 활동가다. 예전보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인기가 사라지고 있는 이 때, 그는 왜 바꿈 활동가가 되었을까?


장맛비가 쏟아지던 7월 5일 나른한 오후, 바꿈 사무실에서 올해 31살의 유부남, 홍명근을 만났다. 두둥~



바꿈 와서 좋은 점은....“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



- 간략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식곤증 때문에 피곤하니 30초 이내로 말하라. 

“올해 31살로 바꿈에서 상임하는 홍명근이다. 상임활동가가 된 지는 이제 2개월이 지났다. 그 전에 경실련에서 평화통일쪽 사업을 3년 반 정도 담당했다. 좀 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싶어서 두 달 전에 바꿈에 왔다.”


- 흠. 30초도 안됐고, 별로 재미도 없다. 시민사회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교 다닐 때 솔직히 말해서 자기 소개서에 한 줄 채워 넣으려고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이사장의 종주를 따라간 적이 있다. 지리산에서 출발해서 백두산까지 걸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휴전선에서 막히니까 설악산까지 가는 거다. 한 50일 동안 주구장창 걸었다. 힘들고, 뒤지겠고, 냄새 쩔고... 여름이라 거지처럼 걸었다. 그때 종주한 사람이 5명이었는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때 NGO활동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금, 내가, 바람’이라는 청년 정치참여 단체에서 회장을 해보기도 했고, 희망제작소 인턴도 했다. 그러다 4학년 2학기 때 경실련에서 평화통일쪽 일을 했다.”


- 박원순 시장이랑 친했다는 주장인데... 그럼 왜 서울시로 따라 들어가지 않았나? 

“응? 날? 왜 날 데리고 가나?”


- 흠. 그렇군. 3년 반을 일했던 경실련에서 옮겼다. 월급 많이 주는 쪽으로 옮겼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런 질문 하지 마라. 없어 보인다.”


- 지금의 근로조건에는 만족하나?

“맛있는 걸 많이 사줘서 좋다. 대충 만족한다.”


- ‘대충’?

“아따...넘어 가자”


- 좋다. 넘어가자. 바꿈에 온 진짜 이유가 뭔가?

“경실련에 있을 때는 기본 업무나 통일 관련 이슈를 확산시키는 일은 잘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네트워킹하는 건 미진했던 것 같다. 바꿈은 네트워킹과 연대 사업을 통해서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의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서 역할 하는 것은 사회의 발전에도, 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고운 자태로 청년코디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홍명근 활동가. 청년 모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디에서 뭘 먹을까?’이다. 



- 지난 해 1기 바꿈 청년네트워크 평화통일분과 코디로 참여했다. 네트워킹의 목마름이 풀렸나?

“청년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데... 아니 아예 없다. 그런데 바꿈이 그걸 만들면서 우리 사회의 의제를 함께 이야기 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 올해도 진행하는 것으로 아는데? 2기 바꿈청년네트워크 총괄 코디네이터를 맡지 않았나?

“그렇다. 올해는 지난 해 보다 청년 사업 규모가 늘었다. 지난 해는 4개 분과로 시작해 한권의 책을 내는 것이 목표였다면, 올해는 10개 분과를 조직하고 10개의 책을 내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벌써 12개 분과가 만들어졌다. 반응도 뜨겁다. 부담도 되지만 열심히 해볼라고...하하.”


- 2기 바꿈 청년네트워크에는 몇 명 정도가 모여 있나? 

“얼핏 50명? 작년에는 청년활동가, 준전문가들이 많이 모였는데, 올해는 분야에 관심 있거나 의욕이 있는 분들이 모였다. 전문성은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참신하고 다양한 내용이 담길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시작은 50여 명이지만 계속 늘 것 같다.”



“풀 상근 활동가 한명...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



- 예상대로 답변이 별로 재미없다. 자신이 남들보다 잘 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뭔가?

“넘치는 에너지와 발랄함, 긍정적 마인드라고나 할까? 어떤 어려움과 문제점도 돌파해 내는 돌파력이 있다고 자부한다.”


- 그래 보인다. 그런데 바꿈에 와서 그 에너지와 발랄함이 많이 죽은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지금은 아닌데? 바꿈까지 출퇴근 시간이 왕복 4시간 걸린다. 너무 멀다. 흑흑. 평생을 강북에서 살고 활동하다보니 강남 터가 좀 안 맞는 것 같다. 강남 음식도 입에 잘 안 맞는다.”


- 좀 전에는 맛있는 걸 많이 먹어서 좋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비싼 것은 맛있다. 하하. 그런데 가성비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 흠. 바꿈 회원들이 자주 놀러 와서 맛있는 음식을 사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받아들이겠다. 지금 풀 상근하는 활동가가 한명인데, 외롭지는 않나?

“정신없이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다. 사무실에 왔다 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상근활동가는 혼자지만 사실상 혼자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일은 좀 많다.”


- 백승헌 이사장님과 같은 사무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자주 와서 괴롭히지는 않나?

“방이 다르다. 가끔 찾아오실 때만 빼면 괜찮다.”


- 흠. 자주 찾아오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로 읽겠다. 2개월 간 바꿈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것 같다. 가장 짜증나는 건 뭔가?

“회계할 때 비밀번호를 4번이나 입력해야 하는 것이 가장 짜증난다. 수수료도 많이 떼고. 회계 업무할 때 가장 힘들다.”


- 더 많을 것 같은데 역시 낙천적이다. 지금 바꿈에서 가장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뭔가?

“CMS 회원이 너무 적다. 한 500명만 됐어도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다. 바꿈 회원들이 조금씩 노력해 주시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본인도 모르게 오마이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메인 모델이 된 경실련 시절의 홍명근 간사. 지난 정부의 의혹을 해명하라며 방긋 웃고 있다. 



-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사실 다음은 없다), 마지막으로 바꿈 회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CMS 회원 많이 늘려 주십시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꿈은 상임활동가가 나 한명이라 나 한명만 먹여 살리면 된다. 나 한 사람 먹여 살린다 생각하고 도와 달라. 결초보은의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



바꿈 사무실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일하는 홍명근을 본 적 있는가? 온갖 잡무에 바꿈청년네트워크 조직화에 그는 늘 정신이 없다. 목소리도 하이톤이다. 특히 바쁠 때면 두 세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분주해 진다. 그러나 그는 어지간하면 지치는 법이 없다.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 탓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낙천적 성격에도, 돌파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 한계를 높여주고 그에게 무한 에너지를 불어 넣는 것은 바꿈 회원들의 역할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한 명만 먹여 살리면 된다.’ 그의 낙천적 성격이 바꿈 회원에게도 전염되어 무궁무진한 바꿈의 가능성을 현실화 시켜 보자!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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