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신청 : https://goo.gl/WTMGFJ


정책배틀 [혐오사이트 어떻게 할 것인가? : 시민배심단]을 모집합니다. 시민정책배심원은 지원자 중 추첨을 통해 50분을 선정, 혐오사이트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해 토론하고 숙의하여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정책배틀’은 2018년 6월 28(목), 오후 7시 서울시청과 을지로입구 사이 NPO지원센터 1층 '품다'에서 진행되며 쟁점에 대한 사전투표, 1시간 전문가 패널 토론, 1시간 배심원 심의 후 혐오사이트를 어떻게 할지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 투표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온라인 투표 시스템 등록을 위하여 배심단으로 선정되신 분들은 6시 30분부터 입장해 주시기 바라며 식사가 제공됩니다.

정책배심단에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도 ‘그림자 배심단’으로 행사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림자 배심단은 시민정책배심단으로 선정되지는 않으셨지만 행사에 참여하실 분들로 선정하며,  선정된 시민정책배심단이 참여하지 못할 때 그림자 배심단에서 추첨하여 충원합니다. 행사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일반 방청객은 참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사항을 간략히 입력해 주십시오. 배심원으로 선정된 분께는 입력해 주신 이메일로 선정 사실과 관련 자료를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정해진 배심원 인원으로 진행되는 행사이니 만큼, 선정되신 분들은 반드시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위기’는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_안토니오 그람시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19살. 비정규직 수리공이었던 그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 하나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2011년,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라는 글을 남긴 한 30대 작가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요절했습니다. 

  

청년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방구석, 학교 도서관, 고시원이나 학원에 숨겨져 있거나, 편의점이나 식당 등지에서 알바를 하는 ‘열정과 노력’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의역에서 컵라면 하나 가방에 넣고 사고로 죽은 청년과 남는 밥과 김치 좀 달라며 죽은 청년의 이야기는 어쩌면 며칠 전 당신의 식사를 서빙하던 청년의 내일일 수 있고,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바코드를 찍던 알바생의 삶과도 맞닿아 있을지 모릅니다.  

비단 불우한 청년 몇몇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청년세대를 착취하는 사회적 구조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힘들게 대학을 가도 높은 등록금에 시달리고, 졸업하면 더 높은 취업의 벽에 부닥칩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살고자하는 집을 구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청년들이 진 빚은 늘어만 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 역시 줄어들지 않고있습니다.

  

철저한 경쟁 사회, 약육강식과 천박한 자본주의가 성공의 척도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푸르름의 대명사인 ‘청년’ 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가혹한 단어일지 모릅니다. 오히려 흙수저, 금수저로 상징되는 부의 되물림 속에서 무한경쟁 하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더 어울리는 표현은 아닐까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담론과 의제는 점차 낡고, 사라져 가는데 미래를 채워나갈 청년들의 현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청년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단지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로 탓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결함이 심각합니다. 지금 청년들의 삶이 이상한 게 맞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위기’입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것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새것은 결국 청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확산하는데 있습니다. 지난 1년간 바꿈은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해왔고,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의 작은 성과물 입니다.

  

이 책에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나누었던 ‘스토리’가 있습니다. 임신했다고 해고당한 청년, 숱한 성희롱과 차별 그리고 야근에도 회사를 참고 다녀야하는 청년,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실습생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채식주의자, 성소수자, 남성 페미니스트와 에이즈 환자와 장애인을 지켜본 이들도 있습니다. 직업군도 다양합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 유치원 선생님, 전직 기자, 자영업자, 노동조합, 시민단체 활동가, 프로게이머까지 있습니다. 우리 사회 청년들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약자라는 이유로, 을(乙)에 속한다는 이유로, 소수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차별과 혐오 그리고 편견에 싸워야했는지도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 책에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 담론과 구상이 담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단지 청년하면 떠오르는 표상적인 단어들을 나열하지도 않았습니다. 청년 담론을 넘어 청년이 주도하는 사회를 꿈꾸고 그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노동, 정치, 사회, 환경, 여성, 인권, 통일 그리고 게임 분야까지, 지금 청년들이 몸으로 직접 부닥친 다양한 현실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지난 1년 간, 각 분과별로 매달 한 차례 이상의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참 수많은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냉소적인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매번 이야기해 왔지만 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청년들에게 거짓 희망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겨울,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목소리들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그 촛불에 기대 이 책에 나온 청년들의 현실이 변화와 희망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봅니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때로는 갈등이 있었고 때로는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마침표를 찍어준 필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각 분과별로 코디 역할을 수행하며 청년들의 토론과 논의를 이끌 접점이 되어준 권윤섭, 박영민, 자유, 추재훈, 조민정, 황희두, 박승하 코디분들께 특별히 더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책의 기획을 위해 모임을 지원해준 서울시와 출판에 애써주신 <민중의 소리>에도 감사드립니다. 불확실한 기획으로 투박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기록한 이 책 한권은 비록 작은 성과에 불과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큰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독자들께서 청년들이 다룬 여러 이슈를 한 번 더 공유해주고, 조금 더 관심을 보여주신다면 낡은 시대와 가치를 넘어, 더 많은 공감과 사회적 목소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대적 위기도 슬기롭게 이겨내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늘 작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청년’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청년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바꿈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17년 여름

42명의 필자를 대신해 홍명근(바꿈 상임활동가 드림)




머리말 - 거듭나기를 꿈꾸며 

  

1부 노동 - 취업과 회사, 우리 안의 이야기 

서른한 살, 내 꿈은 한국을 떠나는 것 - 에이삐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의 삶 - 프리하고 싶은 프리랜서 

바다 위의 졸음 - 나보배 

부장님은 왜 이러실까? - 권윤섭 

취직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 이동철 

실습생 문제를 해결해야 제2의 ‘김군’을 막을 수 있다 - 김종민 

경력 15년차 헤어디자이너입니다 - 우은정  

  

2부 여성 - 세상 그 간극 넘어 

그 여성들은 왜 사라졌을까? - 갱 

당신의 게임 속 그녀가 소비되는 방식 - 양혜진 

‘생리’에 어긋난 사회 - 박영민  

채식주의자, 에코페미니즘을 말하다 - 박지원 

우리를 가두고 있는 코르셋 - 정 

분노와 용서 사이, 그 어딘가 - 두호 

  

3부 인권 - 여기 사람 있어요 

게임의 법칙, 대형스포츠 이벤트의 베일에 가려진 살기 위한 목소리 - 자유 

대학교에서 장애인을 본 적 있으신가요? - 김민해 

박근혜, 최순실도 인권이 있을까? - 조응 

윤가브리엘에게 향한 낙인의 흔적을 지우고 싶다. - 정욜 

대학 내 성소수자 혐오와 탄압, 그리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대표자들 - 동그리 

동물실험 그날 - 윤종훈 

  

4부 통일 - 통일을 위한 청년은 있다 

나는 딱 하나 남은 ‘북한학과’ 학생입니다 - 추재훈 

나는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 박아람 

나는 개성공단에서 일했습니다 - 임지훈 

우리가 올 줄 알았지? 국가보안법이 바꾸어버린 한 청년의 삶 - 김한태경 


5부 환경 - 청년, 환경을 말하다 

미래에 ‘코털인간’이 생긴다고? - 장아림 

우리가 몰랐던 종이의 삶 - 진주보라 

환경권을 박탈당한 청년들 - 이동이 

정형화된 결혼식은 거부한다, 웨딩에 환경을 더하다 - 이우리 

사회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 환경운동가 - 김현경 

우리는 꽃들의 이름을 잊었다 - 심규원 

  

6부 사회 - 대한민국, NO라고 말하기 

도시라는 동물원, ‘불임 권하는 사회’ - 전병조 

‘NO’를 외치는 사람들 -인권활동가들의 인권현황- - 여재희 

020 청년 활동 그리고 노동문제 - 남동진 

결국 ‘노오오오오력’의 노예 - 국도형 

  

7부 게임 - 무엇이 게임을 욕하게 하는가? 

프로게이머 탄생과 게임의 흐름 - 유회중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의 프로게이머 해외 진출 - 길지영 

사이버 동북공정, 전부 다 빼앗길 것인가? - 황희두 

정말 죄인일까? 사회가 게임에게 씌운 누명 - 홍지연 

폭력적인 게임이 범죄자를 만드는 게 아니다 - 한동훈 

  

8부 정치 - 정치하는 청년, 청년이 하는 정치 

청년이 정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 - 박승하 

세상을 바꾸는 힘, ‘정치하는’ 청년 - 이성윤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위한 청년 정치 활성화 - 박규남 

이용당하기 싫으면 이용해라! - 박재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진실이나 정직, 사회 정의와 관계없이 이익만을 추종하는 인간사를 빗대 나온 속담이다. 최근 벌어진 박근혜, 최순실과 그 부역자들의 국정농단이 비근한 예다. 대통령 자격 미달자 박근혜의 사리사욕과 버티기 생떼……, 끝내 천만 촛불은 하늘을 가린 손바닥을 걷어내고 말았다. 


한국 사회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많았고, 감춰진 진실은 다양한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통쾌하게 진실이 밝혀진 경우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가슴 아픈 사건사고로 이어진 뒤 알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19살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이 그랬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30대 작가의 자살이 그랬다. 그런 일이 있고서야 ‘바꾸자.’는 말이 나왔고, 흡족하지 않은 대책이 발표되는 식이었다. 


<청년 사이 꿈을 묻다>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날것 그대로 까발린다. 더 이상 가슴 아픈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실을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에 시달리고, 졸업한 뒤 높은 취업의 벽에 부닥치고, 어렵게 취업해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신음하고,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며 비싼 집세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을 여과 없이 그려내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이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에세이 형식의 글뿐만 아니라 글의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카드뉴스’ 식의 슬라이드가 도입부에 배치돼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청년 사이 꿈을 묻다>는 청년들이 썼지만 묵직하다. 청년 42명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임신했다고 해고당한 청년, 숱한 성희롱과 차별 그리고 야근에도 회사를 참고 다녀야 하는 청년,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실습생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청년’이 저작에 참여했다. ‘채식주의자, 성소수자, 남성 페미니스트와 에이즈 환자와 장애인을 지켜본 청년’도 함께 했고,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 유치원 선생님, 전직 기자, 자영업자, 노동조합, 시민단체 활동가, 프로게이머’ 등 다양한 직업군의 청년들’도 가세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힘이 있는 이유는 생지옥인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희망의 낱알을 심어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청년 담론을 넘어 청년이 주도하는 사회를 꿈꾸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여태까지 봤던 그 여느 책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 청년네트워크(change2020.org)'는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2030 청년들의 모임입니다. 2017년 각 사회적 의제별로 청년들의 주도적인 목소리를 담고자 노동·여성·인권·통일·환경·게임·정치·연극 등 8개 분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2017년 7월에 출판된 '청년 사이 꿈을 묻다'는 평범한 청년 42명의 이야기이자,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동시대의 청년에게 날것 그대로 전하고 묻고 답한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2017년 현재, '청년 담론을 넘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세요. 


>>도서구매하기 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6월민주항쟁 30년, 오늘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6월민주포럼’은 세대와 시대를 넘어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인터뷰 기사를 매주 1회 연재한다. 인터뷰는 6월항쟁을 경험한 이들이 오늘날 청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의미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복을 입고 재판에 출석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정에 사복을 입고 선다면, 그건 굳이 이야기하자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동료 변호사들의 덕이다. 이들이 한 일의 혜택을 박 전 대통령이 보게 됐다는 짓궂은 말에 이석태 변호사(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는 웃으며 답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 한 지 시간이 꽤 지나기는 했지만, 민변 동료 변호사들이 재소자 인권 문제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것과 연관이 있어요. 서준식 선생이 1991년 발생한 강기훈 사건과 연관되어 다른 혐의로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때 미결수도 헌법상 무죄 추정이 적용되므로 사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거죠.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그 이후로 법무부에서 교정 규정을 바꾸어 지금처럼 재소자가 원하는 경우 사복 차림으로 공판정에 출석하게 된 거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변은,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옹호를 위하여 애쓰는 변호사들이 모인 법률가 단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민변이 30년 전 6월 민주항쟁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문호를 활짝 연 6월항쟁, 그 이듬해인 1988년 5월 창립된 민변은 사법 제도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 왔다. 민변의 창립 멤버인 이석태 변호사는 사무국장, 회장직을 역임했다. 


이석태 "6월항쟁은 내 삶의 큰 변화" 

때문에 이 변호사에게 6월항쟁은 "삶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온 사건"이다. 6월항쟁 직후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발전을 요구하는 사회적 흐름에 합류해 왔고, 민변과의 인연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년간의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85년 변호사가 되었다. 연수원 시절부터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연수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연수원 생활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에 가 있었어요. 선배 변호사들을 돕고 하다 보니 연수원 수료 후 그 사무실 변호사가 됐죠." 

이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던 로펌은 당시 국내외 큰 기업이 고객인 곳이었다. 대학생 시절 "학생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신문> 기자였기 때문에 그 언저리에서 놀았"던 이 변호사에게는 어쩌면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 모른다. 

"소송을 하면 대개 대리하는 당사자가 당시의 대기업일 수밖에 없는데, 제가 보기에는 법리적으로 노동자들의 주장이 옳은 경우가 많았어요. 제 생각이 사무실의 방향이랑 좀 어긋나 있던 거죠." 

이런 일 등으로 생각이 많던 때 6월항쟁이 터졌다. "당시 변호사들도 국민운동 본부 등에 직접 참여해 호헌 철폐 등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저는 보통의 변호사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어요." 6.10 항쟁 당일에도 거리에 있었던 것 같다고 이 변호사는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제가 일하던 법률 사무소가 당시 남산 초입에 있는 도쿄호텔이라고 부르는 높은 건물 내에 있었어요. 그 건물 8층에 법률 사무소가 있었고, 그 사무소 내에 남대문 시장이 보이는 쪽으로 제 방이 있었죠. 거기서 보면 서울시청까지 보여요. 그 부근에서 매일 시위를 하니까 자연히 구경삼아 들락날락거리게 되고, 그러다가 광장으로 나가게 됐죠. 연세대에서 이한열 군 사망 사건이 터졌을 때(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최루탄에 피격돼, 7월 9일 사망)도 시위 대열에 합류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넥타이를 거의 안 매고 살지만, 그때는 늘 넥타이에 정장하고 있을 때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넥타이 부대라고…. 아무튼 자주 나갔어요."

기업을 대리하는 로펌이라면 눈치를 주지는 않았을까. "굳이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나가는 거죠. 당시 그 로펌은 엄금까지는 아니지만, 변호사가 근무 시간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걸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웠죠. 그래도 변호사는 좀 자유로우니까요." 6월항쟁의 한 복판에 섰던 이 변호사는 그해 가을, 로펌에서 나왔다.  

"변호사 생활의 상당 부분을 민변 업무와 연관 지어 보냈다"

같은 해 겨울, 이 변호사는 민변 전신인 청년변호사회(청변)에 우연히 관여하게 됐다. 대학 동기들이 청변과 이 변호사의 연결고리였다. 

그 무렵 태동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대개 비슷했겠지만, 6월항쟁의 끝에 조직된 청변 또한 학생 운동권의 영향을 다소 받았던 것으로 이 변호사는 기억했다. 

"변호사로서 억울한 사람을 돕는다는 보편적인 측면 외에 변호사일 자체를 사회 운동으로 생각했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변호사 부문운동이라고나 할까요. 사회 발전 과정에서 변호사가 기여할 바를 정하고, 그런 일을 다른 부문과 연관 지으면서 해 나가는 거죠. 처음에는 스터디 그룹 유사하게 10여 명의 변호사가 소규모로 같이 공부하면서 여러 방면의 논의를 했어요."

제대로 된 조직을 구성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자, 당시 주요 시국 사건을 변호하는 선배 변호사들이 만든 단체인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와 합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청변이 해소되고 민변이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없는 젊은 변호사들이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 열정을 바탕으로 조직에 활력이 생기게 된 거지요." 

그렇게 민변이 탄생했다. 민변이라는 이름은 조영래 변호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베어스타운에서 창립모임을 가졌는데, 이름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때 50여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무슨 협회라든가 하는 식으로 의론이 분분했죠. 대체로 좀 딱딱하고 경직된 이름이 많았는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하니까 뜻이 분명하고 부르기 쉽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 이름을 줄여서 민변으로 하게 된 거지요." 

지금 민변은 회원 수가 1000명이 넘지만, 출범 초기에는 51명에 불과했다. "그 중에 젊은 변호사들이 절반쯤 되려나. 당시에 제가 젊은 변호사 축에서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어서 간사 역할을 했는데, 민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서 일이 많았어요. 그 후 차츰 민변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일을 분담하게 되었지만, 제 사무실 동료들 또한 민변 회원이어서 이래저래 민변 업무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게 됐지요. 그러다보니 민변 회장도 했고, 그 전에는 사무국장도 했어요." 그는 “변호사 생활의 상당 부분을 민변 업무와 연관 지어 보냈다고 하면 되겠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운동권들의 혜택을 보고 있다" 

6월항쟁의 결과 탄생한 민변은 법률 전문성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된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민변 변호사가 헌법 소원을 제기했던 미결수의 수의 착용 문제뿐만 아니라, 감옥에서의 인권 문제 역시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을 다수 할 때라 법정이나 감옥에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재판 과정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개선을 요구하게 된 거지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점차 여러 조건들이 나아지게 되었는데, 그 혜택을 우리가 변론한 사람들 외에 다른 피의자나 재소자들이 보게 된 거죠. 예를 들면 변호인 접견권의 보장, 텔레비전 시청이라든가 집필의 편이 등 모두 어느 날 거저 생긴 게 아니고, 일정한 투쟁을 통해 획득해 낸 거예요."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배제시키고자 했던 이들, 이른바 '운동권'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끝끝내 지켜낸 헌법적 가치가 오히려 이들을 단죄하려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권에 까지 이르러 이를 지켜내는 상황(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서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역설에서 6월항쟁 이후 지난 30년 동안 진척된 민주주의를 새삼 목격하게 된다. 

"불과 20년 전에는 피고인들이 재판정 가운데 서서 수갑이나 오랏줄에 묶여 재판을 받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변호사와 피고인들의 노력으로 피고인들의 손이나 팔에서 수갑과 오랏줄을 풀게 하고, 자리에 앉히고, 그리고 변호사 옆에 앉게 된 거죠. 말하자면 이게 다 역사가 있는 겁니다. 6월항쟁의 성과가 모든 면에 미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잘못된 구태를 지적하여 고치고, 형사소송법이 바뀌고 해서 지금처럼 어느 면에서는 미국 영화에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이 됐습니다."

이 변호사는 "예전에는 수사 기관에서 피의자가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가 참여를 하지 못했어요. 접견 시에도 교도관 등이 옆에서 듣는데 하기도 했죠"라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 변호사의 말에 박 전 대통령이 변호사와 함께 검찰 조사를 받고, 7시간 동안 조서를 검토했다는 뉴스가 곧바로 떠올랐다. 

"이런 잘못된 제도나 관행이 고쳐진지 불과 10년이 되지 않았어요. 조사가 끝난 후에야 변호사를 따로 만났고, 조사 때는 변호사가 입회를 할 수 없었어요. 조서의 도장도 본인이 혼자 내용을 보고 찍었습니다. 지금은 조사 자리에서 변호사가 다 보고 확인하지요."

이 변호사가 언급한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은 지난 2007년 6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법률에 명시됐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권리가 법률에 보장된 지 만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역시도 6월항쟁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 법률의 개정을 이끌어낸 대법원 판결(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담당한 김형태 변호사도 청변을 거쳐, 민변의 회원이다. 두 변호사는 함께 법무법인 덕수를 이끌고 있다.

"강기훈 사건, 더 나은 변호사가 실무를 담당했더라면…"

이 변호사는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소음 피해 소송, 동성동본 금혼 폐지와 호주제 폐지 헌법소원, 일본군 '위안부' 헌법 소원 사건 등 각종 사회적 관심이 큰 재판에도 참여했다. 6월항쟁이 "사법부의 독립에도 좋은 영향을 줬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결과라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  

1987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시민사회운동과의 결합 또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성과를 이야기하면서 이 변호사는 계속 "좋은 동료들과 해서 얻어낸 결과"라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저희가 6월항쟁 이후에 민변을 만들었어요. 또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소송들은 변호사 혼자 할 수 없어요.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협력해야 하는데 그게 컸죠. 일례를 들면, 호주제 폐지문제는 초기에 변호사들이 기획했지만, 여성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계속 진행 해 나가면서 점점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얻어서 된 거예요. 이들 시민사회 단체는 대개 6월항쟁의 산물이었죠." 

하지만 6월항쟁은 군사 독재 세력인 노태우 씨에게 대통령 자리를 또다시 내어 주며 미완의 혁명으로 종료됐다. 그 한계는 여기저기에 상흔으로 남았다. 이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30년의 변호사 활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묻자, 그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1991년)을 꼽았다. 6월항쟁 이후에도 교체해내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의 연장, 노태우 정권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강기훈 씨가 누명을 벗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4년. 지난 2015년 열린 재심 공판에서 대법원은 강기훈 씨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 변호사는 20여 년 동안 변호인단의 일부로 강 씨의 변호를 맡았다.  

"글쎄… 결국 본인은 늦게나마 무죄를 받아서 다행이긴 한데요, 비록 노태우 정권 하라고 해도, 제가 조금 더 경험이 있고 주도면밀했더라면 초기 재판 당시 무죄를 받지 않았을까, 강기훈씨의 억울함을 좀 더 일찍 덜어드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제 역할이 당시 변론을 이끈 작고한 김창국 변호사님과 박연철 변호사님을 도와 실무적인 일을 하는데 있었지만요." 

이 변호사와 강기훈 씨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이 사건을 조작해 낸 이들은 승승장구했다.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씨와 검사 안종택 씨는 모두 검사장을 지냈고,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 씨는 국회의원과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연히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다. 국가와 당시 주임검사 신상규 씨, 강 씨의 필적을 감정한 김형영 씨 등을 대상으로 한 민사 소송만이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국가 책임, 김형영 씨 본인의 책임은 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검사들 책임은 어떨지…"라고 말했다. 형사상 책임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거짓을 만들어 내고, 책임지지 않는 김기춘과 같은 권력들은 그렇게 적폐로 쌓였다. 그리고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던 2014년, 세월호에 과적된 적폐는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박근혜 정부에 의해 강제 종료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 변호사는 이 대형 비극을 어떻게 봤을까. 이 변호사는 일본에서 중고 배를 수입해온 때부터 해운 관련 규제 완화 그리고 구조 과정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들을 단계별로 지적했다. 그리고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실 문제를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사 당일 오전에 뭘 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오후에는 머리를 하고, 세월호가 이미 다 가라앉은 뒤인 오후 5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갔습니다. 총체적으로 재난을 예방하고 참사 발생 시 구조해야 할 국가 재난 관련 기구가 부실한 겁니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거고요."  

세월호 참사를 말하는 이 변호사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다.
  
다행히도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였다. "변호사로서 종종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협력해서 일을 해온 저는 대규모 집회 때는 사실 좀 걱정이 있어요. 저러다가 혹 폭행이나 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대의에 손상이 되지 않을까. 이번에도 보니 촛불집회 초기 시민들이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서로 자제하고, 오히려 차벽에 꽃이나 재미난 내용이 들어 있는 스티커를 붙여 평화적인 집회를 유도하더니, 나중에는 스티커 등을 떼 말끔하게 하는 등, 저 스스로 이번 촛불 집회는 참여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고 공부가 됐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맨 앞에서 집회를 이끌었지요. 때문에 저는 이번 촛불 집회로 박근혜 정부 4년을 지나면서 어려움에 처했던 우리 사회의 민주적 시민 의식이 커다란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변호사는 "만약 6월항쟁 같은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현재 진행형인 6월항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더 이상 독재로 회귀하거나 국민들의 민주적 바람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죠. 촛불은 보다 발전된 형태에요."

6월항쟁의 미래가 촛불집회로 나타났다면, 2017년 촛불집회는 어떤 모습으로 평가해야 할까.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난해한 질문에 이 변호사는 웃었다. 

"우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을 겪으면서 기초가 손상된 사회 정의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것이 무엇이든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민주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해나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공화국 헌법 1조, 국민 자신이 주권자라는 것을 늘 자각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정부가 잘못할 때에는 자기 스스로 먼저, 그리고 동료들과 연대해서 나서고 외쳐야 할 준비를 위해서 말이지요."

이 변호사의 답변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과 무척 흡사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연대를 강조한 이 변호사와 잘 어울리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사무실 입구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故 신영복 선생님께서 써 주신 문구 '함께 하는 삶'이 적혀 있었다.



 >>원문보기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349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트랜드가 된 시대. 끊임없는 타인과의 부딪힘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혼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고 따듯한 느낌이어서 좋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나는 인권활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NO'를 외치는 사람들


2000년대 초반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한 증권사의 CF 광고가 있었다. 아직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고 '웰빙'이 유행했던 시대일지라도 한 개인이 다수자에 맞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노맨’이 되라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평등을 위해 she/he 대신 성중립대명사 Ze/Xe를 사용하자는 '성중립 언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그녀뿐만 아니라 OO맨, XX녀등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단어에 내제된 성차별적 요소는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사회 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는 법, 제도화 이후의 일이므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차별과 혐오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내가 만난 인권활동가들은 공기와 같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인권 침해 요소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감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수를 향해, 권력과 자본을 향해 ‘NO’를 외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자 ‘YES'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연대하는 따듯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2015> 연구조사는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로 지내온 30대 중반의 활동가들이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에 못 미치는 107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캄캄한 밤 풍경 속 불빛만큼 빚이 있는 시대. 숨만 쉬어도 비용이 지출된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 있는 사회에선 영리가 아닌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라도 풀뿌리 후원금은 단체운영에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를 기조로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권의제를 말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은 1~2명의 상임활동가 또는 비상임 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 영역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이나 귀엽거나 불쌍한 '아이' 또는 '동물'을 콘텐츠로 다루지 않아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빗겨나 있고 이는 곧 자원의 부족함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끝없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래만큼의 지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벼룩시장 할인 또는 소비 없는 삶 등으로 지출을 피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인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경제적 급부를 기대하기보단 경제적인 많은 부분의 포기를 각오해야 한다. 안정적 수입은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설문 응답자의 73% 이상이 중요성을 인정했듯 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치는 활동비는 동수저쯤 돼야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도 활동을 포기하는 일 없이 지속할 가능성을 높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어 떠나가는 이들의 난관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얹는 일 아닐까? 공익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인권

 

"한국은 경제로는 '수'를 받으면서도 삶의 질이나 인권 현실은 우·미·양 사이를 헤매고 있는 극히 모순적인 사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경제 논리가 더욱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인권 논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교양인) 중 「대한민국 인권 지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은 우리 삶이 인권에 의해 보호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인권의 제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오늘 하루 존중받으며 보냈는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것이 한국 인권의 현주소다. 보릿고개를 넘기신 나의 부모님세대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지상과제였다면 비교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린 청년세대인 나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인권공화국을 꿈꾼다. 이 인권공화국으로 가는 길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인권임을 잊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인권의 가치를 실천해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 인권활동가는 토론회 자리에서 청중을 향해 인권운동은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이의 말처럼, 나는 신체의 장기 중 유일하게 '마음이 담겨있는 내장'인 이 심장(心腸)에 인권의 첫 걸음인 인권감수성이 있다 믿는다. 인권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결고리가 지금보다 더 넓고 단단해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정욜 (인권재단사람,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윤가브리엘은 에이즈환자다. 이름만 들어도 공포와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바로 그 질병의 당사자다, 그래서 우리 사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던 익숙함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의 질병을 드러내는 것에 늘 주저한다. 하지만 윤가브리엘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하늘을 듣는다」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옥탑방 열기」라는 독립 다큐멘터리에도 직접 출연하면서 에이즈환자에게 덧씌워진 낙인과 차별을 지우기 위해 오랜 시간 활동해왔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라는 단체를 2003년에 설립하면서 에이즈인권운동의 시작을 알렸고,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고 손사래 쳤던 많은 HIV감염인/에이즈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인물이다. 그가 온 몸으로 경험한 차별의 사례들은 셀 수없이 많다. 최근에도 시력과 청력을 잃어 장애1급 판정을 받았는데 활동보조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올 수 있는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있을까” 하는 자조 섞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에게 보이지 않지만 낙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늘 확인하게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에서 에이즈라는 질병이 발병된 지 30년이 지났다. 삼지창을 든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되곤 했던 HIV는 지금도 붉은 반점, 마른 몸의 환자,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습, 불치병, 하늘의 천형, 문란한 성행위 등을 연상하게 한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만 들어가 봐도 질병 정보에 대해 자세히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막연한 편견은 질병 당사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본인이 잘못해 감염되었으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구호단체들이 모금을 위해 아프리카의 에이즈 고아를 광고영상에 등장시키는 것에는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스킨쉽하는 연예인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아이들이 불쌍하다.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우리는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당신은 윤가브리엘과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거나 식사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기침을 하다 침이 튀었다고 치자. 감염될 확률이 있는가. 감염인의 혈액이 내 몸에 묻었다면? 감염인의 혈액을 가지고 있는 모기가 나를 물었다면? 무수히 따라오는 질문목록이 있지만 이 질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정답을 쉽게 맞힐 수 있다. 우선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감염되지 않는다. 김치찌개를 함께 먹어도 괜찮고, 물잔을 같이 써도 괜찮다. HIV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라 곤충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무게와 달리 아주 약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인체 밖에서는 바로 사멸해 버린다. 그래서 감염인의 혈액이 몸에 묻었다고 하더라도, 만졌다고 하더라도, 또 침이 튀었다고 하더라도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키스를 해도 상관없고 콘돔을 사용한다면 감염인과 성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HIV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 치료제를 복용하는 감염인의 경우는 보통 사람과 수명이 비슷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염인을 두려워하고, 이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까.    


낙인의 흔적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5 에이즈에 대한 지식·태도·신념 및 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에이즈 낙인 점수는 67.2점(100점 만점, 점수 높을수록 낙인 심함)이었다. 점수 추이를 보면 2010년 64.2점, 2012년 64.8점, 2013년 63.1점으로, 2015년 점수가 근래 5년간 가장 높았다. 감염인을 격리해야 한다는 법조항이 1999년에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7%는 감염인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HIV감염인에 대한 공포와 감시, 통제에서 예방, 교육, 지원으로 관점이 전환되어야 하고, HIV감염인의 인권보장이 적절한 치료와 감염예방에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언급했지만 설문에서 39.4%는 감염인의 자유를 제한해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감염인과 같은 물 잔을 사용하는 것이 두렵다고 70%의 응답자들이 ‘그렇다’에 체크했으며, 응답자의 71.7%가 같은 동네에 감염인이 있다면, 같이 어울려 잘 지내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 


절망스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질병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에이즈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다. 두려움과 거부감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꽉 막힌 도로처럼 정체되어 있다. 낙인지수는 더 높아졌다. 그렇다면 질병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감염인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유엔에이즈는 2016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감염인 낙인지표조사를 진행하였다. 설문과 인터뷰에 참여한 감염인들은 직접 차별 받은 경험보다 ‘내재적 낙인’ 지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 내재적인 낙인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기에 별다른 치유법 없이 마음이 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답자의 64.4%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75.0%가 자신을 탓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36.5%가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63.5%가 특정 종교단체으로부터, 74.0%가 언론의 보도행태로부터, 75%가 인터넷 등 미디어의 HIV/AIDS 관련 댓글을 통해 부정적 시선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감염인을 위축되게 만드는 사회적 낙인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이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살 길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혐오로 배척할 것인가. 


2015년 HIV/AIDS 신고현황을 보면 10,000명 이상의 생존 감염인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고, 매해 천 명 이상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예산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차별 앞에 절망을 느낄 또 다른 윤가브리엘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병력에 의한 차별을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더 공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병원의 문턱은 더 높아져 진료거부/의료차별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고, 개인의 질병정보가 노출되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유엔에이즈는 에이즈로 인한 낙인과 차별을 방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법적 환경이 곧 에이즈 치료와 예방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가로막고 있고 인권과 성평등이 증진되어야 에이즈 예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언론에서는 ‘소나무에이즈’라는 표현을 버젓이 사용하며 죽음을 연상케 하고 있고, 에이즈 혐오를 통해 인권을 깎아내리는 이들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윤가브리엘에게 덧씌워진 낙인을 지워야 한다. 인권은 함께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이고 실천이다.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로부터 배제될 이유가 없다. 인권은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감염인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할 때 나의 인권 역시 무너질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제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인권으로서 또 다른 윤가브리엘들과 만났으면 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동그리(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이 글을 쓰기 전, “인권, 인권이 존재하기 위해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봤을 때, 인권은 늘 그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는 여부와 함께 확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물론 이는 선결, 앞뒤의 문제가 아닌 동반자적인 입장이겠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왜 원하지 않는 것일까? 이를 위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끊임없이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그렇고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학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 속에 대학 사회가 있는 것이니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나는 내가 속해있고 접근성이 높은 대학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속해 있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이하 큐브)는 2013년 차별금지법 제정과 대학 내의 성소수자 인권 또한 우리 사회의 인권지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2014년에 만들어진 연대체이다. 이곳은 2016.12.31 기준으로 전국 54개 대학, 59개모임이 모여있다. 이처럼 대학사회는 상대적으로 성소수자에 친화적이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겠다. 하지만 성소수자모임이 많은 만큼, 어떤 경우에 따라 가시화가 되어 있다보니 그 만큼의 반동과 혐오, 탄압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서강대학교의 경우는 학내 성소수자모임인 ‘춤추는 Q’에서 신입학시즌에 게시한 성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교수가 임의대로 철거한 사례가 있었다. 학내에서 게시를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정정차를 다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수는 ‘서강대 학우는 비성소수자들도 있는데, 성소수자 입학생만 축하하는 것이냐 그러면 안된다.’는 말과, 원래 지저분한 것을 잘 떼는 사람이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되기도 하였다. 이에 학생 사회에서 각 학생회가 규탄 서명을 내고 고소장을 접수 하는 등의 대응을 진행하기도 했다. 


보수 기독교 교단의 대학인 총신대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총신대의 경우, 퀴어문화축제에 본 대학모임인 깡충깡충을 색출해 내겠다는 이유로 축제 당일 학교본부와 교단 소속 목사를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퀴어퍼레이드를 하는데 깡충깡충 구성원들의 신원노출을 우려해 대신 깃발을 들었던 사람을 학교에서 고소를 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기독교이기에 채플시간에 혐오발언은 물론 교수들의 혐오발언도 매우 심한 곳이기도 하다.


몇몇 사례일 뿐, 대학이라는 공간의 혐오는 어느때보다 짙고, 반동은 어느 때보다 심하다. 숭실대는 인권영화제에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한다는 이유로 대관거절, 고려대도 마찬가지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대학 사회에서 끊임없이 지우려하고 지움당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고려대 동아리연합회장를 시작으로 연세대 총여학생회장,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계원예대 총학생회장이 생겨났고, 뿐만 아니라 학생사회에서 끊임 없이 커밍아웃을 하고 학생 사회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일까? 왜일까?


이런 대학사회 내 탄압 속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며, 선출직은 아니지만 커밍아웃을 한 채, 인권위원회라는 학생사회 내 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내가 있는 학교는 그렇게 성소수자를 비롯한 혐오가 가시적으로 팽배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입에서 “동성애는 출산을 할 수 없기에 수용할 수 없다.”, “동성애는 죄다.” 라는 말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는 공간이다. 내가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고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것 역시, 교수님들의 동성애 혐오적인 말들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자/남자친구에 대한 물음은 물론, 이성애중심적인 발언이 나오고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이 답답했다. 


또한 학내에서 각종 문제시 되는 인권침해적 상황, 그리고 발언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아무도 제약하거나 조정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인권위원회라는 기구도 없었고, 총학생회 역시 부재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 상황에 있어 몹시 못마땅 하였고 이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모으고 정책과 상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오는 것은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가?”였다. 그래서 내가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당사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커밍아웃을 했고, 학생 대표자들의 인준을 통해 학생회를 할 수 있었다.


학생회를 하면서 학생 사회는 많이 변했다. 각 과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보다 가시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교육들을 각과가 자생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존에 말하지 못하던, 소수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장애인도 장애인권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고, 채식인들의 인권 역시 활발하게 교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로서 나의 커밍아웃은 완성되었다. 


나의 커밍아웃은 맨 처음에는 나의 야망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대학이라는 공간에 있으면서 쉽게 학생회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했던 것도 있다. 그리고 그냥 나를 숨기는 것 자체가 너무 이해가 가지않아서 말한 것도 있다. 내게 커밍아웃의 시작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나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을 무기삼아 치사하게 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커밍아웃은 학교 안에 다른 변화와 의미를 만들어 냈다. 커밍아웃은 단순히 나의 존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었다. 숨겨진 사람들, 존재들이 세상에 거는 대화였던 것이다. 소통이었다. 커밍아웃은.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끊임없이 내재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언어화를 하는 내부의 커밍아웃을 경험하고 그것을 밖에, 세상에 말하는 하는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오히려 나를 커밍아웃을 함으로서 세상으로부터 공격당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의 사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나의 존재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고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로 인해서 학교는 변했다. 교수님들의 문제적 발언을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고, 학생회가 소수자를 위해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을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재하였으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 나의 커밍아웃의 시작은 조금 별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권을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권은 어느 하나, 누구 하나만의 것이 아니다, 정말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면서. 나는 나의 커밍아웃으로 만들고자 했던 학교를 만들 수 있었다. 


나의 존재로 세상에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나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나의 존재가 우리 모두에게 좋다. 좀 더 설쳐보자.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자유(바꿈 청년네트워크)


수백개의 카메라가 한 사람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고개를 든 그는 크게 도시 이름을 외친다. 적막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환호로 가득찬다. 화면은 곧 발표 상황을 중계를 통해 지켜보던 시민들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수백명이 자신의 일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누구의 아버지는 그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아버지가 물을 팔수도 있는 일이고, 누구의 누이는 경기 진행요원으로 일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몇명이 일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는 수만명이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 한다. 우리 모두의 경사에 흥분이 넘쳐난다. 하지만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가정이 몇이나 될지, 숨 막히는 노동착취에 시달리게 될 이가 몇명에 이를지, 과도한 언론통제와 치안유지정책으로 몇명이나 감옥에 갇히게 될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고 불리는 월드컵, 올림픽 등이 열리는 2년마다 경기장 스펙에서부터 출전 선수와 경기 결과, 각국의 응원열기, 국가 순위에 이르기까지 각종 뉴스가 언론을 통해 쏟아진다. 아시안게임, 동계올림픽, 유니버시아드까지 더하면 그 주기는 더욱 짧아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제퇴거-노동착취-공권력 남용-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이어지는 인권침해가 필연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주목받지 못한다. 대형 스포츠 행사는 인권 취약계층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베이징 올림픽 관련 개발에 의한 철거 현황(2000~2008년)

출처 :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


스위스의 주거권과 퇴거 센터가 발표한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서울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6번의 하계 올림픽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난 사람이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월드컵 등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도시 재개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당국은 스포츠 행사와 연관된 주택 개발과 경기장 건설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지만, 이에 따르는 수익을 취하는 사람은 기득권에 한정된다. 경기장 건설을 위해 철거가 이뤄지는 곳은 저소득층 가구가 거주하는 지역이 다수를 차지하며, 철거는 경기 개최일이라는 '데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토론과 주민투표 등의 민주적 절차는 생략된 채 무리하게 강제로 집행되곤 한다. 당국에서는 낡고 오래된 지역 주택을 재개발한다는 장점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에 새로 지어진 주택은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으로 상승해 입주를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2012년 런던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국이 저소득층을 위해 공급하겠다던 공공주택의 물량은 약속했던 절반 수준에서 최대 31%로 기존 계획에 못 미치고 있다. 


카타르월드컵 인도·네팔출신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 


대형스포츠 이벤트 사망자 수

출처 : ITUC(국제노동조합연맹)


2022 카타르 월드컵 1200 (2010년12월부터 2015년5월까지 사망자 추정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60

2014 브라질 월드컵 10

2008 베이징 올림픽 6

2010 남아공 월드컵 2

2012 런던 올림픽 1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1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2022년에는 사망자 수가 7000명이 넘을 것이라 ITUC(국제노동조합총연맹)는 예측하고 있음


짧은 시간 안에 경기장을 세우는 고된 일은 이주노동자의 몫이다.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The ugly side of the beautiful game)'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의 90%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이며 이들은 참혹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섭씨 50도에 이르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더럽고 좁은 숙소에서 여러 명이 생활해 전염병이 유행하기도 한다. 카타르 정부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카팔라(Kafala)’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출국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노동 착취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귀환을 막기 위해 일부러 임금을 체불하거나 여권을 빼앗고 근무조건에 항의하는 이들에게 출국을 막겠다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이 국제사회에 대대적으로 공개되었음에도 카타르 정부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의 글로벌기업은 어마어마한 마케팅 기회가 될 ‘스포츠 축제’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후원을 계획 중이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출처 : ‘리우데자네이루주 공공안전교육원’


당국의 용인 아래 기업이 개발과 홍보에 열을 올리는 사이 공권력은 시민을 향해 칼을 겨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한 브라질의 경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치안 정책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사망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5명 중 1명은 경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희생자 대다수가 빈민가나 소외지역에 사는 젊은 흑인 남성으로 알려졌다. 월드컵이 개최된 2014년에 경찰에 의한 사망률이 전년도보다 39.4% 증가했으며, 올림픽을 앞둔 2015년에는 2014년보다 11% 더 증가했다. 스포츠 행사를 빌미로 강화한 치안 정책은 무분별한 공권력 사용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고, 국가 폭력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이러한 문제가 곪고 터지는 사이 모두가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현상을 목격한 시민과 언론은 당국에 항의하고, 기사를 보도하고,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무작위로 구금되었고 몇몇은 범죄활동과 관련됐다는 불문명한 이유를 들어 법적 제재를 받았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데 스포츠를 악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중국 정부는 사회질서 문란행위 단속을 명목으로 시민운동가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교화를 위한 노동’에 동원했으며, 사회운동 단체들이 올림픽 종료 때까지 허가 없이 베이징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 기간 동안 영장 없는 임의구속 건수가 크게 늘었고 구치소 내 폭행 사건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티베트, 파룬궁 등과 관련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는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중에도 조명은 여전히 화려한 경기장을 비추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분투했다.

삶의 터전이 짓밟히고 밀렸다. 버티던 이들은 끌려나간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거대한 아레나가 들어선다. 땅을 다지고 골조를 세우는 사이 저평가된 노동력 수천은 고혈을 쥐어짠다. 이제 곧 막이 오를 경기장을 중심으로 주변마을에 대한 심상치 않은 공권력이 사용된다. 주변을 정리한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가진 여럿은 카메라 렌즈 밖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그들은 갇히고 매질을 당하고 총을 맞았다. 아레나에는 함성이 터지고 욕망이 분출된다.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는 억압의 굴레가 숨통을 조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의 법칙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박근혜 대통령(직무 정지, 대통령 직함 이하 생략)과 최순실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뻔한 질문이 밥상 위에 던져졌다. 정답보다 웃음이 먼저 터졌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탓이다.

세상은 나를 언론인이라 부른다. “인권 교육 매체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 향상과 인권 감수성 향상에 기여”(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할 책임이 있는 바로 그 언론이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나는 저 질문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하지만 답이 정해진 저 질문 앞에서 망설였듯, 나는 그리고 이 사회의 언론은 종종(사실 항상) 누구보다 앞서 인권을 모르는 척하고 짓밟는다.

“언론은 한 번 보도하면 끝이잖아요. 그 다음은 우리 몫이죠.” 

지난해 만난 한 취재원의 이야기가 한동안 잊고 지낸 죄책감을 끌어 올렸다. 피해자로서 꽤 여러 언론과 접촉했던 그였다. 나를 만나기에 앞서 그는 주류 언론 소속의 기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일정이 잡혔지만, 해당 기자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기자가 올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나버린 상황이었다.

그 기자는 아마도 피해를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는 종종 이런 피해를 낳는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즘 무척 주목받는 한 언론사에서 일했을 때였다. 프리랜서였던 나는, 담당 기자를 대신해 사례자(취재원)를 인터뷰했다. 그의 상황을 온전히 보도하지 못한다는 점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간절했던 그는 취재에 응했다. 후속 취재를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그의 도움으로 기사는 간신히 전파를 탔다. 문제는 그 뒤였다. 취재원이 처한 문제의 핵심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해당 언론사는 추가 보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참이 지난 뒤, 그를 다시 만났다.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고,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이었다. 

언론 보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사실 적지 않을 것이다.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만해도 또다른 대형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중소기업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피해 기업주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취재진의 일정에 맞추려고, 오밤 중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중 한 사장님의 사연은 취재진의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 누락됐다. 방송되지 않는다는 소식은 방송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통보됐다. 소송에서 이기기 전까지, 그 사장님은 대기업으로부터 또다른 피해를 겪어야 했다. 전파를 탄 사장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추가 피해가 이어졌고,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취재원의 몫이었다. 

좋은 뜻에서 시작됐던 취재도 이렇게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가해자는 물론이다). 그렇지 않은 기사들은 어떨까. 

사실 이 글은 지난해 여름 시작되었다. 박 아무개를 시작으로 남성 연예인을 가해자로 지목한 성범죄 사건이 연일 보도되던 지난해 6월 무렵 말이다. 타사 보도를 지켜보는데,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피고소인(피의자)의 신분이 가감 없이 노출됐고, 혐의 역시 그대로 폭로됐다. 

언론들은 알면서도 인권을 무시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피고소인(당시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한 결과가 고소인(당시 피해자)의 인권 침해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고소인들의 신상이 공개됐고 비난은 비등했다. 인권 침해의 한 가운데서 사건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지위가 뒤바뀌는 반전까지 거듭했다. 반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남겨진 것은 만신창이가 된 사건 관계자들 뿐이다. 하루 종일 떠들어대며, 사건 관계자들을 할퀴었던 언론들은 무척이나 무사하다.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2014년 12월 개정판)을 무시한 것이지만, 하루종일 떠들어대며 사건 관계자들을 할퀴었던 언론들은 무척이나 무사하다. 인권보도준칙에는 범죄 보도와 관련한 항목이 즐비한데, 헌법에 보장된 무죄 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지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건을 다룰 때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성폭행) 피해 상황을 설명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등 구체적인 규정 또한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모든 것을 공개했다. ‘성범죄 피해 신고 = 공개될 수 있음’을 경고하듯이 말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피의자 박근혜와 최순실에게는 인권이 없는 것일까. 해방 이래, 아니 단군 이래 최대 게이트를 벌인, 민주주의를 싸그리 무시해버린 이들의 인권까지 고려 대상인걸까. 물론 이들의 범죄는 위에 제시한 사례와 결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인이며,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다. 자신에게 잠시 부여된 권한을 위법적으로 사용했고, 국민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았다. 대답을 망설였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와 최순실, 두 죄인에게도 인권은 있다고 말해야 한다. ‘언론의 인권 침해’라는 커다란 문제에 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탐사 보도 전문 언론인 모임인 ICIJ의 보도 윤리에도 이러한 내용은 포함돼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라 - 공식적인 기소 전에 범죄 용의자의 신원을 지목하는 데에 신중하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해자의 권리와 대중의 알권리에서 균형을 잡아라.” 공직자의 비위, 비리 사실을 보도함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우리 언론은 지금 괜찮은걸까. -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도전하는 청년을 응원합니다" 라는 주제로 다음 스토리펀딩을 진행중입니다.


다섯번째 순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

(너무나도 바쁜?) 인권활동가 정욜씨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5930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2016년 11월 29일

지난 5월부터 출발해 어느덧 반환점을 돈 바꿈 청년네트워크 2기사업의 세 번째 전체모임이 열렸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리사회의 의제를 모으고 토론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끊임없이 만들어왔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이야기와 고민들을 나눠왔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https://sway.com/MBTFnjWIdMRURI7r

지난 6개월간의 활동은 위에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날은 정치, 노동, 인권, 환경, 게임, 여성, 통일 이렇게 7개 분과의 토론내용이 있었습니다

각 분과별 준비해온 기획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없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서로 궁금증을 나눴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어지러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이 본인 의제에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바꿈 청년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과 문제인식,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내년 5월경, 출간되는 도서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단지 대통령 한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닌

더 공고해지고, 더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공고한 벽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한 노력이 지금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알차고 좋은 내용을 담기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입니다.

여러분,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마음은 서울대학병원에 있지만 몸은 쉽게 이동할 수 없는 많은 분들이

지금의 슬픔, 애도, 분노,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가 317일간의 사투 끝에 결국 사망했다. 그동안 경찰의 과잉진압과 물대포 운용 지침을 지키지 않은 행위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았고, 강신명 경찰청장이 살인미수로 고발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 중이다. 오히려 경찰은 유가족들과 대책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시도하다 법원으로부터 영장 발부를 거부당했음에도 영장 재청구로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 과정에서 사망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과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민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꼭 닮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 황인성(64) 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황 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서 복귀한 뒤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가 2005년 두 농민의 사망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성명이 나올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한 황인성 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 황인성 위원장은 2005년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할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 박영민


"공권력에 의한 사망, 관심과 성의부터 보여야"


-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2005년 전용철, 홍덕표씨가 여의도 시위에서 사망한 당시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우선 시민사회수석실이 어떤 곳이었는지 말해 달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정국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비서실을 재편했다. 기존의 정무수석실과 국민참여수석실을 없애고 시민사회수석실을 신설했다. 시민사회수석 산하에 시민사회비서관실, 사회조정 1비서관실, 사회조정 2비서관실, 사회조정 3비서관실과 치안비서관실 등 5개 비서관실을 두었다. 국회 및 정당 관련 업무는 정무팀으로 축소하여 비서실장실에 배속했다. 첫 시민사회수석으로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청와대를 떠났던 문재인 변호사를 임명했고 내가 후임이었다."


- 시민사회수석실이 상당히 커진 것인데 왜 그런 재편이 있었나?

"알다시피 참여정부 초기에 원전 방폐장, 사패산 터널. 천성상 터널, 화물연대 파업 같은 사회적 갈등이 많았지 않나? 노 대통령은 공공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소하는 문제가 효율적인 정책 추진과 사회의 민주적 성숙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국회와 정당 관련 사안은 열린우리당이 자율적으로 대응하도록 축소했지만, 정책추진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의 요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추진 부처와의 원활한 소통과 조정을 지원해서 일종의 정책고객인 국민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에는 비중을 크게 둔 것 같다."


-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2005년 11월 15일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었나?

"집회해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초기에는 피해발생의 전후 사정이나 직접적 원인과 책임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찰, 농민단체와 야당 사이에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 내에서는 경찰의 자체 진상조사가 있었고, 독립적 국가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됐다."


-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시위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초기 대응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죽었으니까 청와대 비서실 내에서는 사망한 농민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조의를 표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만 해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에서 조화를 보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처리를 주문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공권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인명이 훼손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노력은 진행하더라도 유족과 관계자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조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관심과 성의를 표하고 실질적 대화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 그래서 조화를 보냈나?

"내가 직접 갔다.(황인성 전 수석은 2005년 11월 29일, 고 전용철 씨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유족과 대책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유감을 표하고 진상에 입각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 기자 말) 당시 언론에서는 청와대 수석이 농민들에게 절을 했다고 굉장히 크게 보도했다."


"노 대통령 사과, 모두가 말렸다"


- 2005년 12월 26일 저녁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원회의 결과를 공개하면서 전용철, 홍덕표씨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바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모들의 의견이었나?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는 어렵다. 경찰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소관 부처가 있는데... 시민사회수석으로서도 진상을 숨기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엄정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점에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가지 않았다."


-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었나?

"그렇다. (2005년 12월) 27일 아침에 대통령이 비서실장, 정책실장, 소관 수석인 나를 불러서 농민사망 사태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 참모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만류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각 부처에 직접적인 책임자들도 있었다. 경찰청도 있었고.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는 것은 너무 나가시는 것이라는 신중론이 다수였다."


- 만류에도 강행한 것인가?

"당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따지려면 따져볼 만한 내용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검토할 부분은 있지만 공권력 행사는 엄중한 문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 당시 경찰청의 입장은 어땠나? 반발이 있었을 것 같다. 

"경찰청을 담당하는 수석실이 시민사회수석실로 바뀐 데에는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가장 민생과 밀착해 있는 대민 부서이고, 각종 집회나 시위에 대응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갈등을 올바로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의 사과성명 발표가 확정되자마자 경찰청장에게 전화로 대통령께서 곧 기자회견을 하실 예정이라고 알려주고 이후 대응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해임 요구에 "임기를 보장하기로 한 경찰청장을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결국 12월 29일 스스로 사퇴했다.

"당시 경찰청장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이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정도로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었다고 보지도 않았고, 경찰들의 사기를 생각할 때 대통령의 사과가 과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기자회견 뒤에도 경찰내부에서 뒷말이 나왔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의 사과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요구되는 정당성과 엄정성에 대해 공직사회의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 지나치게 안일해"


▲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대책위와 시민들이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영결식장 입구와 연결 통로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전용철, 홍덕표씨가 사망한 지 정확하게 10년 뒤에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지고 결국 317일 만에 사망했다. 그렇지만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달리 사과가 없다. 어떻게 보고 있나?

"당시 청와대 내부의 논의과정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너무 안일하다. 공권력의 행사와 무관하게 사람이 죽었다면 누가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겠나? 설령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공권력의 행사 과정에 인명피해가 있었다면 같이 아파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 기본이다."


- 만일 지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경찰은 물대포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이라고 항변하면서 죽음에 이른 건 본인(고 백남기씨-기자 말)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를 밝히는 것은 그 과정대로 하더라도 유감을 표하고 공권력 행사에 과잉이나 불법이 없었는지는 자체조사해서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는 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면 그런 조언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일 년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가족이 원치 않는데도 시신까지 부검하려고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민간단체가 행사하는 물리력과 공권력은 그 성질과 질, 양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다. 공권력 행사는 엄정하게 집행되도록 더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기본적인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결사의 자유다. 그래서 기본권이다. 기본권의 존중을 우선시 하면서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공권력이 우위에 있고, 이것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국민의 권리 행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그래야 갈등으로 인해 부딪쳐도 연성대치가 되지 강성대치로 나아가지 않는다. 강성 대치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희생이 나온다. 연성대치 속에서 갈등조정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 해 고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지 2일이 지난 11월 16일,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미국에서는 (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시위대를) 패 버리지 않느냐.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을 받기도 한다"며 경찰당국을 옹호했다. 2015년 12월 18일, 경찰은 백남기씨가 쓰러진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가 오래 전부터 폭력 집회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기획, 모의한 것이라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여당과 경찰의 초기 대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 발생 42일 만에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고 백남기씨의 317일간의 사투 동안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국민의 인권은 공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대국민 사과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공권력의 행사에 관한 구절은 고 백남기씨의 사망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상식'이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 2005년 12월 27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중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익숙해지지 말자, 착취 당하는 것에

20, 30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오마이뉴스 2016.4.4.


성영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활동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잠깐 즐겨보던 웹툰이 있다. 직장 내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웹툰인데 그 중 한 에피소드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끓는 물 속 개구리' 이야기. 끓는 물에 개구리를 갑자기 넣으면 뜨거워서 팍 뛰쳐나간다. 하지만 찬 물에서 점차 끓이면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온도 차를 느끼지 못하고 조용히 죽어간다. 이 정도는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 웹툰은 다른 충격을 주었다. 아무리 천천히 삶아도 온도가 높아지면 개구리도 위험을 감지한다. 하지만 뛰쳐나갈 수 없다. 이미 다리가 익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과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울고 있었다. 후배는 한 잡지사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밤 10시, 11시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는데 월급은 40만 원 남짓. 패션계와 미용계에서 도제식으로 착취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지만 돈 많은 대형 잡지사에서도 이런 식인 줄 몰랐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지금 다 이런 식이다. 이제 막 졸업을 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학과 내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동기는 약 30명 정도, 이 중 정규직이 되었다는 소식은 단 두 명, 일찌감치 대학원을 간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외에는 자격증 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하거나 인턴, 계약직, 어시스턴트 등을 하면서 열심히 스펙을 쌓고 있다. 나름대로 서울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다녔고 학교 다니는 내내 스펙을 쌓았는데 여전히 우리는 앞날을 잘 모르겠다.


이상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원하는 정도의 직장에 진입하지 못할까. 어느 정도로 '갖춰야', '미쳐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인가. 결국 이 또한 극복해야 하는가.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에 따르면 '일자리'는 이미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눈만 높아서 이 지경인가? 아니, 그 존재하는 일자리의 수준이 대체적으로 낮아서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는 청년들이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시대이기 때문에. 


청년 일자리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가 수십 년간 추구해 온 성장 정책에 대한 결과로서 기존의 '노동체제'가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울음을 그치고 "괜찮아요. 언니. 극복해야죠 뭐"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약해서 못 버티는 게 아니야. 넌 착취당하고 있어. 그것도 엄청난... 따라서 너무 수고하고 있고 너무 고생하고 있다."


고용, 주거, 부채, 교육. 지금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청년문제들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풀지 못한 각종 사회문제들의 총체적 결과물이고, 이는 곧 우리 사회의 낡은 체제가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 변화의 실마리가 될 청년들은 지금 어떤 취급을 당하며 있는가. 끊임없이 기성세대의 기준에 맞추려고 자신을 비판한다.


문득 반기를 든다. 좀 더 숙련되고 정제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창의력과 상상력은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가고 사회를 변화시킬 원동력이다. 사회문제에 익숙해지고 이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존재인 것이다.


제멋대로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시키는 대학, 지나친 월세, 서포터즈 또는 인턴이라는 이름의 열정페이. 누구나 한 번쯤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헬조선, 노오력, 흙수저라는 말의 등장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문에 그 누구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초중고, 심지어 대학교까지. 언론도 충분치 않다.


그래서 나는 후배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이 책은 20, 30대 청년 25명이 청년 스스로의 시각에서 바라본 청년문제와 기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설명해놓은 책이다. 노동/인권/대학/평화통일 4개 분야에서 문제점과 원인, 그 대안까지 마치 친한 친구 또는 선배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절하다. 


청년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에 대해 큰 산을 그릴 수 있는 책이다. 처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말 그대로 '입문서'다. 게다가 올 초에 나온 신간도서로 최근 화제가 된 사건들(여성혐오, 대학 구조조정, 메르스, 송파 세 모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공감이 간다.


하지만 25명이 챕터를 나눠서 써서 그런지 앞서 언급한 사실이 중복되어 나오거나 어떤 글은 조금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청년들 안에서도 수많은 이견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논쟁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제대로 된 논쟁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논쟁을 위한 발제문이다. 25명의 청년들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청년들이여, 착취당하는 데 익숙해지지 말자. 점점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사람도 익숙해지더라. 곧바로 행동을 취할 수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알자. 같이 알고 있자. 뭔가 잘못되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원문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쓰는 청년교과서가 발간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 입문서(궁리출판)」는 노동, 인권, 대학, 평화·통일 파트로 구성된 청년들을 위한 교과서이다. 수많은 문제를 봉착한 청년들이 이 책 한권으로 각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했다. 


2014년 초부터 기획과 필진을 모집하고 필자들 전체가 한 달에 2번 정도의 모임을 통해 내용을 쌓아갔다. 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글을 쓰고, 글을 수정하는 노력 끝에 드디어 세상 밖에 나오게 된 나름 역사적인 작품이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법무법인 <지향>의 후원으로 제대로 된 청년교과서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벌써부터 뜨거운(?) 반응에 새삼 놀라고 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하겠다고만 하면 되요' 뭐 이런 제안이 다 있나 싶었지만 당장 할 일도 없었고, 막무가내의 자신감이 재밌기도 해서 흔쾌히 오케이를 던졌다. 그 대답이 1년 이상의 시간을 쓰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청년이 쓰고, 청년이 읽는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다양한 논의를 담고 있는 청년입문서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특히나 관점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이들이 조언하듯 쏟아낸 말들은 청년들의 공감을 사기에 역부족이었다. 여러 단체에서 실제로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자신이 먼저 경험한 사회적 문턱의 문제를 다루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북한학과 재학생인 만큼 평화·통일 분과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와 통일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인지, 분단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회의가 진행되었다. 시민단체 간사, 통일교육 강사, 북한학 석사과정 학생, 인권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속원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평화이고, 무엇이 통일인지 결정하는 일 조차 어려운 과정이었다. 심지어 '청년'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노동, 인권, 대학으로 이루어진 다른 분과 사정도 다르지는 않았다. 어렵사리 시작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곳도 있었고 이미 썼던 글들을 모두 지운 곳도 있었다.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에 봉착하는 광경을 보며 분명 같은 가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임에도 무수히 많은 이견들이 생기는 구나,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정말 멀고 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숱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멈추지 않았다.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었지만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향해 움직인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청년이기에 알 수 있는 부조리함이 만연했었고 그렇기에 청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책 제목을 '모르면, 사기 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정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색다른 시선도 한몫 했다. '캐러멜 마끼아또' 보다 청년 시급이 더 싼 현실, 낭만적인 캠퍼스가 아닌 처참한 대학 현실, 선후배가 군대에서 겪고 있는 반인권적인 일 등 청년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려고 했다. 평화·통일 분과의 경우 역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단에 집중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헬조선'과 분단이 얼마나 닮아있는지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누군가는 청년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 말하고, 누군가는 '요즘 애들'은 세상을 바꾸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진짜 청년을 모르기 때문에 던진 말이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또한 비슷한 처지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목소리를 전달하려 한다.


당신의 삶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고, 이 책 속에 녹아있는 20여명의 청년의 삶은 당신과 꽤 닮아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응원하고 스스로 전진하는 청년들의 앞길에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 입문서」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힘냅시다, 청춘.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다 -

바꿈 청년네트워크 지음, 궁리 출판사, 304쪽, 15,000원




"2,30대 청년 25명이 바라본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원인, 그 대안까지"


"청년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에 대해 큰 산을 그릴 수 있는 책"


"처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말 그대로 '입문서'"


"마치 친한 친구 또는 선배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절"



<책 소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의 풍경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서문에서 인용한 만화 송곳의 대사이다.

오늘날 청년이 서 있는 공간과 과거 청년이 서 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다. 과거와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불쌍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청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받아들여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


청년들이 ‘서 있는 곳’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아니라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세대의 시선으로


사회에서 비교적 성공했거나 글쓰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과 해법을 이야기해주는

'외부자' 시각이 아닌, ‘청년 스스로 쓴 청년 사회입문서’이다.

바꿈청년네트워크에는 대학생, 백수,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활동가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있다.

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써보자’는 하나의 이유로 모였다.

바꿈 청년들이 스스로 만드는 책이니만큼 ‘청년의 시각’,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바꾸어가고자 합니다!


어떤 정답이나 대안을 이야기하기보다 그걸 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소통하고 조율되어야만 ‘청년들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책에도 청년들이 생각하는 대안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바꿈의 이야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바꿈이 추구하는 대안은 ‘정답’이라기보다 ‘방법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곁에 있는 또래의 청년들, 청년과 소통하기 원하는 기성세대와 함께 토론하면 좋을 책이다.




<목차>


발간사 

서문 


1부 | 노동을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것들

1 청년 일자리 

2 열정을 가지고 참고 견디라고요? 

3 당신의 노동은 얼마입니까? 

4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비빌 언덕, 4대 보험에 대하여 

5 ‘노동자’ 모두 여~기여기 모여라(feat, 헌법33조) 


2부 |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1 인권은 감정이다 

2 인권 결핍의 대한민국 군대 

3 우리 사회 혐오읽기-여성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4 광화문역에는 장애인이 살고 있어요 

5 다름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세계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6 메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송파 세 모녀에게 우리가 돌려주어야 할 말, ‘죄송합니다’ 


3부 | 대학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1 대학공략법 

2 자신의 미래를 빛내러 온 대학에서 빚만 내는 대학생들 

3 엇나간 교수와 학생의 사이 

4 비리재단은 현재 진행중 

5 대학을 권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라! 

6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 

7 아직도 우리는 대학에서 희망을 찾는다 


4부 | 평화, 통일보다 낯선

1 통일이라 쓰고 탈분단이라 읽는다 

2 분단 모순 극복으로서의 통일 

3 이게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이 아니야! 

4 청년 실업 ‘중동’보다 ‘남북경협’에서 

5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 

6 스무 살, 분단을 인식하고 평화에 공감하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자: 바꿈청년네트워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20~30대 청년 활동가의 모임이다. 2015년 2월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제작을 목표로 대학, 노동, 인권, 평화.통일 등 4개 분과로 운영되어 왔다.


강태경(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강혜진(숭실대학교 학생)

김성은(홍익대학교 졸업생)

김윤영(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정숙(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단청(여성학을 배우는 학생)

리온소연(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운영자)

박영민(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재학생)

박혜영(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변규홍(청년녹색당 전국위원/전 KAIST 학부 동아리연합회 회장)

손우정(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바꿈 이사)

신정현(사람도서관 리드미 관장/청소년통일교육 전문가)

오세연(전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유애리(예비 사회활동가)

윤지선(손잡고 활동가)

이다솜(독립다큐멘터리스트)

이동철(한국노총 법률원 부천상담소 상담간사)

이인섭(전 군인권센터 활동가)

이진수(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초등교사)

임지훈(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박사과정 재학생)

전진한(알권리연구소 소장/바꿈 이사)

전진희(대학고발자 운영자)

정별(홍익대학교 학생)

정욜(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최수지(학교통일교육 전문강사)

최형순(전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홍명근(시민의날개 상임활동가)



서평 "익숙해지지 말자, 착취당하는 것에" 성영이 상임활동가 2016.4.4. 오마이뉴스


저자 후기 "청년은 이미 사회를 바꾸고 있다" 박영민 자원활동가 2016.4.4


서평 "‘스텐수저’를 꿈꾸는 청춘들 입문서" 양리리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2016.4.1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서점 바로가기

알라딘

yes24

교보문고

인터파크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를 펴낸 바꿈청년네트워크 인터뷰(출판사 궁리)


2016.3.17


Q  우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를 펴낸 ‘바꿈청년네트워크’ 총괄코디네이터이자 바꿈 이사인 손우정입니다. 바꿈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협력 사업을 펼쳐보고자 2015년 7월 7일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신상’ 단체입니다. 청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활동가 25명을 모아서 ‘바꿈청년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격려 부탁드려요. 



Q  이번에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우선 바꿈청년네트워크라는 모임이 조금 낯섭니다. 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바꿈은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기보다 우리가 조금만 힘을 합치면 다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단체, 개인에 대한 지원·협력 사업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요즘 가장 힘든 것이 청년이잖아요? 그래서 첫 번째 주력 사업 중 하나로 청년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 이야기를 직접 해보자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20~30대 청년 활동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모인 25명의 청년이 바로 ‘바꿈청년네트워크’입니다. 이제 책을 냈으니, 독자 여러분들이 많이 읽어주시면 그만큼 활발한 활동이 가능하겠지요? 무엇을 할지 딱 결정된 것은 없지만 더 많은 청년들과 사회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Q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는 기존에 나왔던 청년을 주제로 한 다른 책들과 어떤 점에 차별화를 두고자 했는지요? 이 글을 쓴 필진들 또한 궁금합니다. 

A  청년들의 힘든 삶이 주목받으면서 청년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은 ‘외부자’의 시각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사회에서 비교적 성공했거나 뛰어난 글쓰기 재능을 가진 분들이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과 해법을 이야기해주는 것이죠. 이번에 나온 책은 ‘청년 스스로 쓴 청년 사회입문서’라는 것이 가장 특징인 것 같아요. 바꿈청년네트워크에는 대학생, 백수,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활동가 등 매우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있습니다. 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써보자’는 하나의 이유로 모였어요. 전문가들이 쓴 청년도서보다 조금 전문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 만드는 책이니만큼 ‘우리의 시각’,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Q  전체 4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인권, 노동, 대학, 통일’을 큰 주제로 잡아 필진이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다른 주제들은 ‘청년’ 하면 늘상 떠오르는 의제들이었는데, ‘통일’이 포함된 것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이렇게 네 주제를 배치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A  ‘청년’이라는 범주로 묶여 있지만, 사실 모인 사람들 대부분 서로 고민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어요.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요. 우리의 계획은 모든 청년의제, 사회문제를 다루기보다 우리의 관심사부터,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평화통일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하나 둘씩 모이니까 ‘평화통일분과’가 만들어지고, 대학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모이니까 ‘대학분과’가 만들어지는 식이었어요. 아쉬운 것은 좀 더 많은, 좀 더 다양한 분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보는 것이 지금 청년의 현실에서 더 필요한 도전 아닐까요?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Q  예전에 청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한 나라의 미래를 이끄는 집단으로 여겨졌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청년들이 측은지심의 대상으로, 여전히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진단을 하고 있는지요?

A  서문에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는 만화 송곳의 대사를 인용했어요. 오늘날 청년이 서 있는 공간과 과거 청년이 서 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에요. 과거와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년들이 불쌍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청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힘을 내’, ‘도전을 해봐’, ‘참여해야지’ 하고 과거의 모습에 견줘 요구하기보다 이 구조, 청년들이 ‘서 있는 곳’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아니라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아울러 바꿈 청년네트워크에서 청년문제에 제시하는 신선한 대안이 궁금합니다. 

A  우리가 만든 책은 ‘사회입문서’예요. 다시 말해 어떤 우리만의 정답이나 대안을 이야기하기보다 그걸 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죠. 우리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소통하고 조율되어야만 ‘청년들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고 봐요. 책에도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저런 대안이 담겨 있긴 합니다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으로 소통하면서 정말 ‘청년의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신선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은 ‘정답’이라기보다 ‘방법론’에 가깝습니다. 독자분들도 좋은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 함께 하셔야 하고, 그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꿈청년네트워크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Q  독자들, 특히 청년 친구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준다면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서 읽어 주십시오! 하하. 농담이고요, 이 책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정답을 담은 책이 아니예요. 동의하기 어렵거나 책보다 더 좋은 생각을 가진 독자분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 옆에 있는 같은 청년들, 청년과 소통하기 원하는 기성세대와 토론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나는 생각이 달라. 이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든다면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서로 대화하고, 더 좋은 대안을 찾는 밑거름으로 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의도하는 바입니다. 대화할 사람, 소통할 사람이 없다면 바꿈으로 연락주세요. 바꿈은 그런 대안들, 소중한 고민들을 서로 연결하고 지원하기 위한 곳이니까요. 바꿈이 만든 ‘청년 사회입문서’의 활용법은 철저히 독자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책소개 보러 가기



원문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416인권선언 함께하기




















416인권선언 선언인 동참하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4.11총선에서 10만3811표 얻었어요"


"아이고, 뭐 이렇게 빨간 책을 들고 다니시나?"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내 손에 들린 책을 보고 풉~ 하고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빨갛다고? 내가 들고 있던 책은 누가 봐도 초록 일색인 표지에 심지어 낱낱의 책장도 연둣빛을 은근하게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 큼지막하게 적힌 책 제목도 이랬다. '행복하려면, 녹색'. 빨갛다는 친구의 농담이 다소 과격했다. 그래도 이 친구, 알아봐 준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친구는 거기까지였다. 나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눈치껏, 대충, 어렴풋이 그쪽이겠거니. <행복하려면, 녹색>(하승수, 서형원 지음, 이매진)은 하승수 위원장을 만나기로 하고 빈 머리로 갈 수 없어 뽑아든 책이었다. 그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데 나도 녹색당에 대한 풍문은 그만 주워듣자 싶어 급한 대로 찾아 읽던 차였다. 

2012년 3월 4일 창당해 그해 4월 11일 총선에 뛰어든 녹색당, 결과는 참담했다. 0.48%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두 명의 지역구 후보는 모두 낙선했고 비례대표를 통한 원내진입도 실패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득표율이 2%에 미달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정당법에 따라 총선 다음날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곡절을 겪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4.11 총선에서 10만3811표를 얻었어요." 

비례대표 의원 당선을 위한 득표율인 3%에는 한참 모자란 수였다며 뒤통수를 긁던 하승수 위원장이 당시 득표수를 정확하게 읊었다. 지역구 당선의원이 압도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와 지역기반으로 세워진 거대 양당제로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에서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생명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녹색당을 지지한 10만3811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가 집어삼킨 사표가 아니라 녹색당을 함께 가꾸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손길이었다. 10만3811표를 곱씹는 담담한 그의 목소리엔 녹색당에 대한 미더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정당등록 취소 위헌소송을 통해 녹색당을 지켜냈다.

"정당 활동은 노동 강도도 세고 엔지오 활동보다 몇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저는 사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역 풀뿌리 정치에 관심을 두고 내 동네, 내 지역에서 정치를 바꿔보자 했었는데, 제가 좀 늦게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 사건 이후로 국가 정치,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건, 2011년 3월 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녹색당이 창당 된 2012년 전에도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5개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정당법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고 이후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녹색당 창당에 뛰어 들었다. 하승수 위원장도 그랬다. 

"저는 환경운동보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데 후쿠시마 사고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후쿠시마도 로컬푸드운동이 있던 곳이고 생협도 있는 지역인데 한 순간에 지역 사람들이 몇 십년간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버렸잖아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단순히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유지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게 된 사건이었어요. 지금까지 나는 내가 사는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해오며 살았는데, 그나마 이정도의 사회도 유지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무리 지역 풀뿌리 운동과 시민운동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한순간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거죠." 

정당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던 그가 창당에 뛰어들 만큼 시대적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로 개입하지 않고서는 원전사고와 같은 참사를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왜 녹색당일까. 우리나라 정치지형에서 군소정당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다년간의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던 그가 모를 리 없다.  

"녹색당은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매출증대가 목표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국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좋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요.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순간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환경, 인권, 먹을거리, 이런 것들은 뒤로 밀리게 되어 있어요. 경쟁에 뒤처지는 사람은 배제되고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차별이 생기고 소외가 나타나잖아요. 경제성장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좋은 삶을 만드는 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녹색당이 유일하게 하고 있어요." 

그도 한때는 체제 내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정도로 삶을 계획했었다. 제도권에 들어가 양심적으로 살아볼까 싶었다. 그래서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됐다. 2006년부터는 국립대 교수직도 맡았었다. 그러나 하승수 위원장은 변호사도, 교수직도 스스로 그만뒀다. 변호사 생활은 시민운동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갈 수 없었고 대학에선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그가 선택한 곳은 늘 시민과 함께 하는 운동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치다. 선거 때마다 50% 내외를 겨우 오가는 투표율이 보여주듯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치, 그것도 탈핵과 탈성장이라는 녹색 정치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녹색 정치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었다.

"누군가와 나를ㅁ 비교하고, 내가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이런 것들이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비교하다보면 자기다운 삶을 찾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가 뭐가 다를까 비교해 보고, 대한민국 사회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와 서로 비교해 보고. 이런 비교를 하다보면 상상력이 나오잖아요.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많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꿈이나 상상력을 가져야 이 사회가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승수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출마는 당선을 위한 출마는 아니라고 했다. 녹색당의 가치와 정책을 알리려는데 집중하는 모양이다. 더불어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 나설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데 벌써부터 담금질을 하고 있다. 녹색당이 낼 비례대표는 당원들이 추천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게 되고 순번 역시 당원투표로 정해진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공개 된다. 

녹색당은 녹색이다. 어설픈 농담이 들어설 틈이 없는, 꽉 찬 녹색이다. 생태적 지혜와 사회정의,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지속가능성, 다양성 옹호, 지구적 행동과 국제연대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 녹색당. 이 정당 강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푸릇푸릇하고 보드라운 싹으로 움터 올라 거친 바닥을 덮고, 그 위를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볼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아, 물론 알고 있다. 현 정치권이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는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와 정치개혁 없이는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승수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녹색당은 이름을 바꾸지 않고 100년 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유럽을 비롯해 지구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각국 녹색당도 창당 이후 초반엔 어려웠다. 그렇다고 정치적 시민권을 얻어 원내에 진입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데 100년까지는 안 걸렸다. 이 땅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자. 그리고 무작정 녹색을 떠올려보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녹색의 힘이다. 



원문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박근혜, 메뉴얼도 있었는데 골든타임 놓쳤다

행정의 골든타임과 메르스 사태

프레시안 2015.06.07.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설립준비위원, 알권리 연구소 소장


정부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첫 확진 이후 18(67일 오전 11) 만에 메르스 발생 및 경유 병원 정보를 공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한 정보 공개 요청과 싸늘해진 민심에 중앙 정부가 드디어 반응을 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접촉자들이 발생했고, 민심은 들끓고 있으며 전 세계는 한국의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으며, 향후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분석해보도록 하자.

 

이번 사태는 전형적인 행정의 골든타임을 놓친 결과이다.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국가 행정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재난이 발생하면 최대한 신속하게 국가 행정은 국민들에게 위험성을 공지하고,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 정보를 공개하는 시점은 전문가들과 의논해야 하고, 공개의 위험성과 실익에 대해 이익형량을 평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시민들은 동요하고 불안해한다. 그 결과 사적 정보 유통을 의존하게 되고, 유언비어가 창궐하게 되며,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바로 지난 18일 동안 생생하게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는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으며, 각종 모임은 취소되고, 국제 사회에서는 메르스 '민폐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사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정부 3.0 캠페인'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정부 3.0 캠페인을 위해 수많은 교육과 재정을 쏟아 부었으며, 각 공무원들도 성과를 내기 위해서 많은 공력을 들였다.

 

그러면 각 공공 기관마다 각종 포스터와 현수막에 장식되어 있는 정부 3.0 캠페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정부 3.0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시된 이미지. 개방/공유/소통/협력을 핵심 콘셉트로 내걸고 있다.


정부 3.0이란 신뢰 받는 정부, 국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공공 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며 소통·협력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에 대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에 최대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정부 운영의 패러다임이다.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3.0 캠페인을 메르스 사태 해결 과정과 접목시켜 보자.

 

메르스 환자가 확진되면 국민 행복을 위해 관련 병원 정보와 환자 치료 과정 및 접촉자들의 이동 경로를 적극적으로 개방, 공유한다. 또 청와대와 중앙 정부(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등) 및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에게 위 정보를 전파해 칸막이를 없애고 범정부적인 대책본부를 만든다. 아울러 불안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각종 예방법과 위험성을 연령에 맞게 맞춤형 정보를 각종 매체 및 문자를 통해 제공해, 시민들을 진정시킨 뒤 이번사태를 차분히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18일 동안 관련 병원의 반발과 시민들이 불안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정보를 비공개로 일관했고, 시민들은 관련 정보를 사적으로 유통시키며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바빴다. 재난 문자는 시태 발생 17일이 지난 66일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나마 문자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 불만을 쏟아냈다. 많은 시민들은 이런 뒤늦은 정부의 움직임에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 3.0 캠페인은 이런 국가 비상사태와 분리해서 시행하라고 있는 캠페인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 3.0 캠페인은 이번 사태에 전혀 적용되지 않아 또 다른 부처 칸막이를 만들었다.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정부 3.0 추진위원회는 이번 사태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오히려 논란은 있었지만 이번 사태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정확한 인지한 서울시청이 메르스 사태 해결의 고리를 제공했다.

 

이제 메르스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향후 보건복지부를 포함해 관련 부처들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상황이 발생하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관련 전문가들과 논의해 정보 공개의 범위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숨겨져 있던 민낯을 다시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정부의 리더십은 행정의 골든타임에서 결정되고 골든타임의 성패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향후 메르스 사태의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원문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