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해?” “요즘? 동네에서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고 있지” “일은 안해?” “일? 지금 하고 있는 게 일인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장 안 구하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5년간 다니던 직장을 작년에 그만뒀다. 지역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나름 인정도 받았고 생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이 내가 평생을 걸고 해야할만한 것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나가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마냥 생각 없이 그만둔 건 아니었다. 전부터 몸담고 있었던 지역 청년공동체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소통, 공감, 관계회복을 위해 시작했던 사람도서관 사업부터 마을라디오, 청소년교육, 청년공유공간 조성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법제도 마련을 목적으로 지역 내 청년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기본조례 제정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고 난 뒤 다시금 나 자신에게 질문이 생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러한 고민은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다른 청년활동가들 그리고 청년활동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활동일까 노동일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청년활동가’


청년활동가. 익숙하면서도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사회운동가 혹은 특정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 정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는 청년활동가 담론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청년활동가라고 함은 기존의 활동가 범위를 넘어 청년 사회적기업가, 사회혁신가, 소셜디자이너, 마을활동가 등 ‘제 3의 영역’에서 종사하는 청년집단까지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여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또한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운동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되면서도 경제적 생존이 가능한 일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실패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활동 전반을 포괄한다. 요컨대 사회적경제, 사회혁신활동, 공동체 복원과 같은 일들도 이러한 사회적 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년문제 연구자 류연미는 “노동과 운동이 공존하는 행위, 환언하면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때로는 노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소규모 공동체를 바탕으로 사회적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들이 모두 느슨하게 활동 내지 사회적 활동이라 불리고 있다”고 정의한다. 


청년활동가라는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 청년허브의 탄생시점부터라고 볼 수 있다. 청년허브는 공식적으로는 청년일자리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위탁기구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 문제를 넘어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과 자발적 공동체를 지원하고 청년 개개인을 적극적인 시민이자 혁신적 활동가로 양성하는 공간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2016년까지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은 청년활동가단체의 수는 총 842곳. 이들은 사회활동, 문화기획, 업사이클링, 생태환경, 학습세미나, IT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위한 청년활동가들의 움직임은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에서도 2016년 경기청년네트워크라는 모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청년활동가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전주, 순천,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도 청년활동가들이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우리의 일은 활동인가 노동인가


“노동이냐 활동이냐 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청년들이 공적인 돈을 받아 활동하는데, 사회적으로 볼 때는 뭘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2014년 3월 26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청년의 일, 노동인가 활동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기성 시민단체활동가와 청년활동가, 청년논객 등이 참석한 이날 자리에서는 ‘활동’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놓고 전통적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기성 활동가들과 자율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청년 활동가간의 간극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특히 패널로 참석한 한 청년활동가는 청년활동에서 느끼는 활동-노동에 대한 고민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의 활동은 꼭 가사노동하고 비슷하다. 밖에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필요한 일을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정책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활동, 노동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2016년 10월 서울시 청년주간프로그램의 한 섹션으로 진행된 ‘우리 활동-노동자: 노동과 활동의 영원한 갈등에 대해’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은 이어졌다. “어떻게 한 줄로 나의 일을 소개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이라는 활동가들은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일상의 행복을 갉아먹지 않기를 바랬다. 활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이지만 이들은 종종 노동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 사정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청년활동가 개인 혹은 소수가 모여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어떠한 대가 없이 오히려 자비를 들여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일부 청년활동가의 경우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이나 공사장 잡부, 단기알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보전을 위해 일반기업체나 기관에 입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아직까지 청년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보기보다 사회에 헌신하는 봉사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지자체로 내려올수록 더 심화된다). 요컨대 이는 청년활동가의 노동권 문제와 연결된다.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된다면 청년활동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나의 활동이 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경험과 성장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사회가 제공해줘야 한다. 


지속가능한 청년활동을 위해 


다시 처음 제기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들의 활동은 노동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자부심만으로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청년들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강력한 내적동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외적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 소진되는 것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청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허브를 통해 청년참, 청년활과 같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자리정책의 일환으로 청년활동가양성사업 또한 펼쳐나가고 있다. 서울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또한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논쟁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 사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기존의 실업정책과는 달리 자율적인 사회활동을 지향하는 청년들 또한 제도적 지원망에 포섭한다는 점에 있다. 


경기도 또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을공동체활동가 인증제 도입을 통해 청년활동가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또한 뷰티풀펠로우 방식의 지역 청년활동가들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청년활동가의 지속가능한 지역혁신활동 보장방안 제안’도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는 공적지원이 끊길 경우 자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청년활동은 독일의 미래학자 울리히 벡이 이야기했던 ‘시민노동’의 개념과도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공적 서비스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적노동의 속성이 존재하지만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작동하는 정부 ‘외부’의 공적 노동이란 점에서 전통적인 공적 노동과도 다르다. 또한 이 공적 노동은 능동적인 시민의 자율성 곧 ‘자율활동’의 속성을 요구하고 그에 기반을 둘 때,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자율활동과 공적노동이 중첩된 새로운 범주인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청년활동가는 일차적으로 공적서비스의 단순한 수요자의 위치를 넘어 공공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지식생산자로 참여하고 이차적으론 자신이 제안한 공공정책모델의 혁신경영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즉 정책수요자인 시민이면서도 시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종의 ‘시민노동’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노동의 출현은 역설적으로 노동사회의 위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청년활동가라는 새로운 집단이 장기화된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 여건과 이에 대응하는 청년주체들의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쉽게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이는 곧 활동-노동을 둘러싼 이들의 고민지점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시민노동의 영역이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문제는 향후 몇 년 안에 한국사회의 주요 노동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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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직무 정지, 대통령 직함 이하 생략)과 최순실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뻔한 질문이 밥상 위에 던져졌다. 정답보다 웃음이 먼저 터졌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탓이다.

세상은 나를 언론인이라 부른다. “인권 교육 매체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 향상과 인권 감수성 향상에 기여”(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할 책임이 있는 바로 그 언론이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나는 저 질문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하지만 답이 정해진 저 질문 앞에서 망설였듯, 나는 그리고 이 사회의 언론은 종종(사실 항상) 누구보다 앞서 인권을 모르는 척하고 짓밟는다.

“언론은 한 번 보도하면 끝이잖아요. 그 다음은 우리 몫이죠.” 

지난해 만난 한 취재원의 이야기가 한동안 잊고 지낸 죄책감을 끌어 올렸다. 피해자로서 꽤 여러 언론과 접촉했던 그였다. 나를 만나기에 앞서 그는 주류 언론 소속의 기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일정이 잡혔지만, 해당 기자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기자가 올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나버린 상황이었다.

그 기자는 아마도 피해를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는 종종 이런 피해를 낳는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즘 무척 주목받는 한 언론사에서 일했을 때였다. 프리랜서였던 나는, 담당 기자를 대신해 사례자(취재원)를 인터뷰했다. 그의 상황을 온전히 보도하지 못한다는 점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간절했던 그는 취재에 응했다. 후속 취재를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그의 도움으로 기사는 간신히 전파를 탔다. 문제는 그 뒤였다. 취재원이 처한 문제의 핵심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해당 언론사는 추가 보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참이 지난 뒤, 그를 다시 만났다.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고,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이었다. 

언론 보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사실 적지 않을 것이다.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만해도 또다른 대형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중소기업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피해 기업주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취재진의 일정에 맞추려고, 오밤 중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중 한 사장님의 사연은 취재진의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 누락됐다. 방송되지 않는다는 소식은 방송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통보됐다. 소송에서 이기기 전까지, 그 사장님은 대기업으로부터 또다른 피해를 겪어야 했다. 전파를 탄 사장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추가 피해가 이어졌고,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취재원의 몫이었다. 

좋은 뜻에서 시작됐던 취재도 이렇게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가해자는 물론이다). 그렇지 않은 기사들은 어떨까. 

사실 이 글은 지난해 여름 시작되었다. 박 아무개를 시작으로 남성 연예인을 가해자로 지목한 성범죄 사건이 연일 보도되던 지난해 6월 무렵 말이다. 타사 보도를 지켜보는데,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피고소인(피의자)의 신분이 가감 없이 노출됐고, 혐의 역시 그대로 폭로됐다. 

언론들은 알면서도 인권을 무시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피고소인(당시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한 결과가 고소인(당시 피해자)의 인권 침해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고소인들의 신상이 공개됐고 비난은 비등했다. 인권 침해의 한 가운데서 사건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지위가 뒤바뀌는 반전까지 거듭했다. 반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남겨진 것은 만신창이가 된 사건 관계자들 뿐이다. 하루 종일 떠들어대며, 사건 관계자들을 할퀴었던 언론들은 무척이나 무사하다.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2014년 12월 개정판)을 무시한 것이지만, 하루종일 떠들어대며 사건 관계자들을 할퀴었던 언론들은 무척이나 무사하다. 인권보도준칙에는 범죄 보도와 관련한 항목이 즐비한데, 헌법에 보장된 무죄 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지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건을 다룰 때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성폭행) 피해 상황을 설명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등 구체적인 규정 또한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모든 것을 공개했다. ‘성범죄 피해 신고 = 공개될 수 있음’을 경고하듯이 말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피의자 박근혜와 최순실에게는 인권이 없는 것일까. 해방 이래, 아니 단군 이래 최대 게이트를 벌인, 민주주의를 싸그리 무시해버린 이들의 인권까지 고려 대상인걸까. 물론 이들의 범죄는 위에 제시한 사례와 결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인이며,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다. 자신에게 잠시 부여된 권한을 위법적으로 사용했고, 국민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았다. 대답을 망설였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와 최순실, 두 죄인에게도 인권은 있다고 말해야 한다. ‘언론의 인권 침해’라는 커다란 문제에 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탐사 보도 전문 언론인 모임인 ICIJ의 보도 윤리에도 이러한 내용은 포함돼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라 - 공식적인 기소 전에 범죄 용의자의 신원을 지목하는 데에 신중하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해자의 권리와 대중의 알권리에서 균형을 잡아라.” 공직자의 비위, 비리 사실을 보도함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우리 언론은 지금 괜찮은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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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통수를 치는걸까, 

이 글을 처음 쓰기로 마음을 먹고서 맨 처음 든 생각이다. 프리랜서 PD인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던 고마운 선배들 중 대부분은 공채 선배들이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구조적인 문제들의 화살이 새삼 선배들을 향하게 느껴 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혹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후배 PD가 아닌 프리랜서 PD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서 프리랜서 선배에게 처음 들은 조언은 바로 '생존 법칙'이었다. '적어도 3년은 일에 미쳐서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해라 ' 방송이란 무엇이고, 교양 PD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기대했다면 내가 너무 순수하고 무지했던 것일까. 세상에 대한 일침을 하기도 하고 가슴 찡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이 곳 방송국, 그것도 교양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에서 처음 드는 조언이 생존법칙이라니..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내게는 매우 잔인하게 들렸다. 하지만 5년차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 조언은 선배의 경험 속에서 우러난 뼈있는 조언이었음을 느낀다. 어느 직장이야 안 그렇겠냐만들, 방송국의 구조는 그야말로 살아남는 자들만이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PD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몇 가지의 경로가 있다. 각 방송사의 공개 채용을 통한 입사, 외주 제작사에 입사, 혹은 방송국내 파견직으로 입사를 하는 방법.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방송국이 외주 제작사와 파견직, 프리랜서가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꼭 어딘가 가서 나를 소개할 때 '프리랜서 PD'임을 밝힌다. 그냥 PD라고만 이야기하면 공채라고 받아들일 때가 많아서 PD가 맞지만 뭔가 속인 것 같은 느낌에 바로 소개를 덧붙인다. 이 세 가지를 환경에 비유를 해보자면 공채는 안정적인 집, 파견직은 비닐하우스, 외주 제작사는 야생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물론 모두 각자의 장단점 과 고충이 있다.)

나는 파견직으로 처음 방송 일을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파견직이 무슨 비닐하우스냐 더 열악하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겐 4대보험이라는 것이 적용되고 1년 이상 일하고 나면 퇴직금을 주는 최소한의 보호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정말 중간에 파견업체에서 가져가는 돈은 화가 날 정도로 많다. 예를 들어 본사에서 내게 200만원을 주면 그중에 6,70만원 가량을 파견회사에서 가져갔다. 이와중에 명절되면 10만원의 보너스나 햄세트를 받아들고서 좋아했던 내 모습이 스스로도 참 씁쓸할 때가 많았다.

나 같은 경우는 2년 동안의 계약 기간을 끝내고 개인 사업자를 등록해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 다음 외주제작사, 외주가 야생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거다. 외주제작사는 본사와 계약을 해서 제작비를 받고서 그 비용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 제작비에는 진행비, 교통비, 인건비 모든 것이 들어간다. 본사에서 일을 하면 배차를 받아서 PD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외주 제작사에서는 PD가 스스로 운전을 하며 취재를 다닌다. 때에 따라서는 배차를 받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배차가 필요한 경우에만 그렇고 대부분은 운전을 해서 다닌다. 직업 특성상 지방 여기저기를 다녀야할 때도 5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와서 바로 편집을 하고 다음날은 방송을 내보는 경우도 많다. 웬만한 체력이 아니고서는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들다. 먹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심한 제작사의 경우에는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식비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스갯 소리로 어느 제작사에는 냉장고에 음료수가 많이 들어있다는게 그 회사가 복지가 좋다는 예의 하나로 이야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주제작사들은 다른 제작사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좋은 컨텐츠를 제작해야하면서도 제작비의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그에 맞게 가장 최고의 퀄리티를 내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본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넉넉하지 않은 제작비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죽어나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피디, 작가, 제작진들이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리랜서 PD인 나는 어떻게 해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송을 하기위해서 밤샘은 기본이다. 집에 다녀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편집실에서 잠을 청하고 씻을 시간이 없어서 잠자는 시간이나 밥먹는 시간을 맞바꿔야 할 때가 태반이다. 주말에 내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방송 스케줄이 따라주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할 때가 많고, 쉬는 날에도 갑자기 취재를 가야할 일이 생기면 바로 취재를 나가야 한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게 일찍 퇴근한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이런 상황을 우선은 처음에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지나서 버티는 사람만 남았을 때는 실력으로 경쟁한다. 프리랜서 PD도 각자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작은 외주 제작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철처하게 평가받는 존재다. 여러명의 프리랜서 중에서 나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동료, 선 후배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과의 경쟁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정말 김빠지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각 방송사마다 공채로 입사했을 때 처음으로 받는 연봉에 대한 기사였다. 그 중에 최고 많은 연봉은 5100만원. 4년차인 나의 연봉은 2600만원이다.(주급 50만원으로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주급 5~60만원 선) 보통 수준의 연봉이다) 저 금액을 듣는 순간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텨보려고 했었던 스스로의 모습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직원과 같은 수준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막 입사한 사람과 4년차인 나의 연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실력을 높여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되면 저 차이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이 레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자꾸만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같은 공간에서 방송을 만들기 위해 같이 밤을 새고, 노동을 하지만 그에 비해서 임금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글을 쓰면서 조심하려고 했던 부분은 프리랜서 PD와 상관없이 어느 직종에서도 존재하는 일을 나에게만 특정된 것처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프리랜서이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상응하는 임금과 함께. 끝으로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모든 PD들에게 지치지 말고 힘내보자는 말을 건네며 마무리를 하려한다.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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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바꿈 포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언론과 민주주의"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가?-



○ 일시: 2016년 5월 26일(목) 18:30

○ 장소: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

○ 주최: [미디어공공성포럼], [6월민주포럼],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후원: [국민TV]

 

 

○ 사회: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발제: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토론:

 -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 성재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본부장)

 - 신학림 (미디어오늘 대표)

 - 이용마 (MBC 해직기자)

 -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이명박, 박근혜 정권 8년간, 대한민국 언론은 본연의 목적인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 현 주소를 진단하고 공론의 장에서 논의와 토론을 통해, 향후 대한민국 언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았습니다.



바꿈 언론 포럼(20160526) 자료집.pdf




 


본 포럼은 강상현(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발제를 맡은 정연우(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한국 언론과 민주주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였습니다. 

토론은 성재호(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본부장의 "망가진 대표 공영방송 어떻게 고칠 것인가?" / 이용마(MBC 해직기자) 기자 "언론 민주주의, 이제 무엇을 할것인가?" / 김동원(전국언론노조) 국장 "20대 총선 이후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 신학림(미디어오늘) 대표 '언론 바로 세우기' 이창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위험사회와 한국언론, 그 핵심 키워드"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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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인권선언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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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김진 변호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세월호 특위,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원고 송부를 차일피일 미루다 더는 밀려날 구석이 없어서, 이제는 정말 써보겠다 마음을 다잡았다. 여전히 자신은 없다. 실은 지난 주말 안에 탈고하겠다고 끙끙 싸매고 앉아 있었다. 세월호 특조위,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시행령안, 검색어를 바꿔가며 지독하게 시간을 물고 늘어졌지만 겨우겨우 몇 자 쓰다만 것이 다였다. 그 밤, 광화문 광장에서 농민 한 분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캡사이신이 섞인 물거품이 광장을 뒤덮을 때 나는 마른 발을 비벼대며 백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하루를 살면 꼭 하루만큼의 죄가 불어나는 시간이 차마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제가 든 생각은 이걸 내가 못한다고 할 주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못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 제안이 왜 저한테까지 왔나 알아보니 정말 선뜻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나서지 못한) 그 사람들이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사안 자체가 너무 무거우니까요. 이 일이 제게 온 이유가 있겠지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석태 위원장님을 만나러 갔죠."

세월호와 광화문을 양쪽에 두고 무력함에 신열을 앓을 때 번뜩 그의 말이 떠올랐다. 야당추천인사로 임명되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있는 김진 변호사였다. 그는 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직 제안이 들어왔을 때, 이 일 못 하겠다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가 주로 맡고 있는 노동문제도 산적해 있고 개인적으로 박사논문도 써야 하는 바쁜 시기였지만 세월호는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월호 특조위가 꾸려질 때 부담감 때문에 다들 고사하는 분위기였는데, 유족분들이 이석태 위원장님께 유족대표를 부탁하시면서 막 우시더래요. 그때 이석태 위원장님이 드신 생각이, 대체 왜 이분들이 미안해하고 울어야 하지? 라는 거였대요. 특조위 활동을 하게 된 배경이 저랑 비슷한 거죠."

못한다고 할 주제도 아니라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더듬더듬 지금의 글을 쓴다. 김진 변호사의 진심을 따라 쓰기로 했다. 무능을 탓하기 전에 아픔을 보고, 누구나 피하고 싶은 무게를 끌어안은 것, 매일매일 세월호를 본인의 눈앞으로, 사람들의 눈앞으로 불러 오는 것. 어렵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애도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뿐,

김진 변호사도 알고 있었다. 특조위를 바라보는 날선 시선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600만 명의 서명으로 지난해 11월 7월 제정된 세월호 특별법과 12월에 꾸려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국민들의 기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으며 출발했다. 그러나 법이 제정 된지 일 년이 넘은 상황이고 특조위의 활동도 곧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특조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시행령안과 올 7월까지 한 푼도 지급되지 않은 예산(그나마 뒤늦게 책정 된 예산은 특조위가 신청한 예산의 3분의 1수준이다), 주요 보직의 늦은 임명과 정부여당의 비협조, 특조위에 우호적이지 않은 주류 언론들, 세어보자면 손가락이 모자란 걸림돌을 넘어가며 지금까지 왔지만 여전히 넘어서야 할 것들이 많고 그 사이 국민들 사이에 쌓이고 있는 오해를 풀 길도 당장은 막막하다.

"이 법이 정말 피와 눈물로 만든 법인데 위원회가 1년 동안 너무 무력한 모습을 보이니까 유족들의 실망과 원망도 받고 있어요. 정말 면목이 없고 부끄러워요. 정부여당이 방해를 한다는 얘기도 많이 있는데, 그건 주어진 조건이니까 거기서 사실은 위원들이 많은 일을 했어야 했죠...지난 1년 동안 위원회를 쥐고 흔들었던 절차적이고 의무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업무는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는 특조위가 갖고 있는 환경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특조위는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유족추천, 야당추천 위원)과, 이들과는 달리 정부여당과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위원(여당추천 위원)이 함께 모여 있다. 모두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모이거나 그 반대의 비율로 구성되었던 대개의 상황들과 사뭇 다른 것이다.

"다수의 위원들이 야당추천, 유족추천 인사들이다 보니 위원회 내부를 보면 저희가 다수인 것 같아 보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예산도 안 줘, 직원도 못 뽑아, 자료도 안 보여줘, 이런 식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예요. 다수인 당신들이 뭐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기에는 무력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지요. 정말 황당한 상황이 있는데, 위원회에 진상규명국장이라는 자리가 있어요. 별정직 중에서는 제일 높은 직급이고 제일 중요한 직급인데 아직까지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안 해줘서 채용을 못했어요. 정부여당의 계산대로 따지자면 올 1월 1일부터 위원들의 임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12월 31일로 법적인 1차 활동기간이 끝나거든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일 중요한 국장자리를 임명을 안 해줘요."

이런 상황에서 오는 12월 14일부터 16일에는 세월호 참사 특조위의 첫 번째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다. 그가 처음 특조위 활동에 뛰어들었을 때, 해경청장, 사회지방청장까지는 책임을 묻겠다, 적어도 진실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설 것이라는 낙관이 있었다고 했다. '멍청한 낙관' 이었다고 그가 말했다. 정작 위원회에 들어와 보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벽은 견고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을 찾아 들어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물어보세요. 세월호 청문회에서 무엇을 밝힐 수 있겠냐고. 소박하지만 큰 목표가 있는데, 2014년 4월 16일, 그때 과연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큰 그림을 그려 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책임 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될 것이고 밝혀져야 될 의혹이 있다면 밝혀야 할 것이고, 만약 밝히지 못한 게 있다면 왜, 무엇 때문에 밝히지 못했는가 까지 남기는 것, 그리고 진상규명국장을 임용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남기는 것이 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고요. 만약 그것이 저의 임기나 또 이 정부 안에서 해결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있는 정부가 탄생했을 때 반드시 2기 위원회를 해야 한다는 것까지 남기는 것이 위원회의 역할이에요. 그래서 제가 유가족 분들께도 말씀드리는 것은, 이번 위원회가 끝이 아니다, 이번 청문회도 정말 중요하지만 계속 이어질 전체 청문회 그림 속에서 봐 달라고 하고 있어요."

세금도둑으로 몰리는 모욕과 활동제약 속에서도 김진 변호사는 늘 약속된 특조위 회의에 나가 싸우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고개를 숙인다. 한심스럽다는 손가락질을 받아 내더라도 위원회를 지키고 위원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진척 없는 특조위 활동을 그만두라는 주변 권유도 있었지만, 위원회에서 유가족들의 외로움을 만날수록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단다. 

특조위 활동을 하며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지난한 싸움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얼굴에 날 생채기가 두렵고 수족의 안녕을 바랐다면 아마 이 자리에 그가 서있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그가 바라는 날은 그의 몸이 꺾어지고 분질러져, 세월호가 품은 진실의 꽃병에 꽂아지는 날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그는 바스러지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이나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김진 변호사 덕분이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난 진작 포기하고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졸작의 원고는 여기서 끝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특조위의 역할도 계속 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을 기억하며, 진실에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끝내지 않겠다는 그에게, 마침표가 없는 시 한편을 응원과 신뢰의 마음을 대신해 전한다.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 병 에 꽃 아 다 오 



덧) 
김진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며칠 후 진상규명국장이 1년 만에 내정되었다는 보도(한겨레, 11월 14일자)가 있었다. 원고에 인용된 시는 최승자의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에서 부분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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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전진한'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준비위원]간결한 정보의 힘으로 사회 바꿀 것

내일신문 2015.03.31. 이재걸


"매년 중요한 정부기록, 연구보고서가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들끼리만 공유될 뿐 태반은 일반 시민에게 전해지지 않아요. 어렵고 복잡하니까요."

정보의 홍수 시대. 사람들은 복잡하고 거창하기보다 간결하고 삶에 와 닿는 정보에 쉽게 귀 기울인다. 모바일이 주를 이루자 정보가 '손바닥'에서 넘치면 외면받는 상황까지 갔다. 정치·언론은 물론 시민사회도 '간결한 정보' 만들기가 숙제인 이유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바꿈)'은 정보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목표인 신생 시민사회단체다. 전 민변 회장인 백승헌 변호사를 비롯해 대학교수, 치과의사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 90여명이 참여 중이다.
 

바꿈은 정부기록을 비롯해 학계·기관 보고서와 시민단체 조사결과 등을 가리지 않고 연구·가공해 오는 5월부터 시민들에게 인포그래픽·그림 등으로 알기 쉽게 제공할 예정이다.

전진한(사진) 바꿈 준비위원은 "시민을 움직일 만큼 콘텐츠 생산능력이 뛰어남에도 이를 쉽게 전달하는 데 애먹는 단체들과 협업해 (정보를) 유통할 계획"며 "핵심은 정보의 간결화와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전 위원은 정보공개운동만 13년째인 기록 전문가다.

2000년대 초반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에 몸담으며 국가기록물 관리실태를 살피다가 아예 '기록관리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땄다. 기록관리학이란 정부기록을 분석·관리·이관하는 일이다. 전공을 이수한 대학원 동기들이 대부분 아키비스트(정부기록 전담 공무원)로 취업한 반면 그는 계속 시민사회에 남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만들고 활동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후인 2013년에는 원전 관련 정보들을 망라·재구성한 '방사능와치' 사이트를 만들어 무려 방문자 80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사이트로는 드문 기록이다.

그는 요즘 '바꿈' 공식출범을 앞두고 안전·정치·복지·청년·동북아평화 5가지 주제와 관련한 논문들을 분석 중이다. 안전에 관한 것만 2217권 찾았다. 해양, 건축, 철도를 비롯해 김밥, 감기약, 향수 등에 관한 것까지 각양각색의 조사자료가 나오더란다.

전 위원은 "지난해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해양안전에 관한 자료들을 집중분석했는데 2009년에 공개된 것만으로도 이미 참사가 예견된 상태였다"며 "이런 내용들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돌고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사전에 경종을 울리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언론은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지만 우리는 발생할 사건을 미리 짚어내는 게 목표"라며 "이미 만들어진 수많은 기록을 분석하면 앞으로 벌어질 사회문제를 예견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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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을 왜 시작했는가?

더 플랜B 2015.4.5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준비위원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면서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주변에 많은 활동가들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스멀스멀 용솟음 치고 있는 방사능 걱정으로 한숨 짓기 바빴다.

반면 일반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미국 쪽으로 갈 것이라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웃던 친구가 있었다. 너무 기가차서 각종 수산물과 공산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으니,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 친구는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흉측한 괴 생명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이렇게 되냐며 나에게 묻곤 했다.

당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우리 활동가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 운동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핵발전소 및 방사능의 각종 어려운 용어는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 우리가 직접 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쓰면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3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핵발전소 문제 및 방사능 문제를 인포 그래픽으로 정리한 ‘방사능 와치(http://www.nukeknock.net)’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전문가들과 홍익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도움을 얻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환경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다. 사이트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 사이트의 개설과 동시에 트래픽량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페이지뷰가 800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경험은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방사능와치에 올라와있는 인포그래픽

그러나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자고 했다. 자료를 찾을수록 엄청난 비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선박들의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려주었던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속출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서는 2010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생산한 보고서에 해양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하고, 안전관리매뉴얼의 분량이 많으며, 심지어 선원의 나이가 많고 선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4년이나 방치해 둔 것이다.

해양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목포여객터미널에 12척의 배를 2시간 20분 동안 점검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었다. 한 척당 13분이다.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할 시간으로 선박을 검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자신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매뉴얼에는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큰 재난사고가 나면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언론의 경쟁적 취재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를 미리 발견해 시민들과 소통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이런 자료들은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도,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자료들,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향후 시민운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선 기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를 살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결과물들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웹툰으로 제작된 미생, 송곳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또 다른 결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일어날 사고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용역서, 학계 논문, 통계, 빅데이터 등을 찾으면서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핵발전소 등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위험 예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출처 : The Library by Zhu, on Flickr)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 이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인포그래픽, 웹툰, 카드뉴스, 동영상 등으로 가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을 찾아서 공개할 예정이다. ‘바꿈’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 복지공동체, 안전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최대한 쉽게 가공해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컨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사회의 부패하고 썩은 곳을 지적하는 내용은 잘 찾을 수 없다.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반면에 구석구석 시민들을 위해 훌륭한 컨텐츠를 만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내용의 전문성과 딱딱함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꿈’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향후 ‘바꿈’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창립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나조차도 기대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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