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꾸고 싶은 세상을 그리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 http://www.change2020.org/429 <<


문연아 선생님의 지도 아래, 캘리그라피를 시작합니다.

본 캘리그라피는 청년이 쓰는 개헌Book의 표지가 됩니다.

다들 집중하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2030 청년들은 과연 어떤 세상을 그려보았을까요?

각자 헌법에 담고 싶은 내용을 담아보았습니다.

"낡은 법을 힙하게"

우선 87년이후 30년동안 유지되어온 헌법을

힙하게(?) 바꾸었으면 좋겠네요.

"건강할 권리(Health For All)"

건강은 단순히 개인의 습관이나 유전외에도

주거, 노동, 환경 등 다양한 영향을 받습니다.

살충제 달걀 기억하시죠?

우리의 건강을 위협했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제는 건강할 권리! 헌법에 담을 수 있을까요?

"예술도 노동이다."

사람들은 흔히 예술가는 당연히 배고프고 힘들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도 노동이라는 말을 통해

노동권과 국가가 보장해야할 기본적인 삶의 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당신은 생명을 장난처럼 생각하십니까?"

동물권이나 복지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글귀입니다.

"물가를 못 따라가는 작고 귀여운 내 월급"

글씨는 좀... 그런데 표정이 인상깊네요.

마찬가지로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할 노동권을 이야기할 수 있고요

"3일 노동, 3일 돌봄"

가사를 여성의 일로 치환시키는 문제는 심각하죠?

성평등 문제도 헌법에 꼭 들어가야하지 않을까요?

"웃을 수 있는 권리, 행복추구권"

누구나 행복할 권리, 이미 현행 헌법에 있지만

더 구체적으로 보장되면 좋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총 들지 않을 자유 신념대로 살 권리"

분단국인 우리나라 특수성상 평화 보장도 하나의 권리로

헌법에 담을 수 있겠지요.

"열정과 청춘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마무리 문구는 이렇게 마무리 지으면서

향후 미래 우리나라의 근간이 될 헌법을 

미래세대인 2030세대가 각자 상상해보았습니다. 


당신이 바꾸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국민개헌.net 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기울어진 한국 정치 지형에서 진보 정당은 소수지만 꾸준한 역할을 해왔다. 촛불 1주년 즈음하여 진보정당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래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우리미래 소속 청년 5명이 모였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 주최한 “왜 정당이야? 그리고 왜 그 정당이야?” 주제의 간담회가 충무로에 위치한 남학당에서 지난 16일 개최되었다. 간담회에 참여한 진보정당 소속 5명의 청년들은 본인들이 선택한 정당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어떻게 이 당에 입당하게 되었나요?

왕복근(정의당) : 2010년 5월 전역을 앞두고, 군대 후임이 와서 지방선거 캠프에 들어가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게 전역 이틀만에 관악구 구의원 후보선거본부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해당의원은 낙선했지만 지역 정치와 진보정당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속한 관악구 구의회는 의정활동 평가가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노력중 입니다.

정수연(민중당) : 제가 진보정당에 입당할 즈음에는 민주노동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통합진보당을 거쳐 결국은 분열되고, 강제해산 되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진보정치의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당장 오늘을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민중연합당에 비례 1번을 받아 출마하면서 당원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용혜인(노동당) : 2010년에 지방선거 당시 야권연대는 중요한 키워드 였습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겼습니다. 그리고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 노회찬 후보의 출마로 표가 분산되었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의 항의전화가 중앙당에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보정당이 우리사회 대안정당으로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히려 입당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비례 1번으로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허승규(녹색당) : 제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안동은 보수적인 동네입니다. 녹색당을 알게 되고 활동하게 되면서 ‘이 당에서 내가 필요한 역할이 있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입당하고 고향에서 혼자서 활동했지만 총선 앞두고 4명의 안동 당원이 나타났습니다. 4명 중 한명의 집을 가칭 ‘지역당사’로 잡고 지역모임을 시작했고 어느덧 당직자가 되었습니다.

김소희(우리미래) : 저는 입당 스토리말고 창당스토리를 들려야 할 것 같아요. 2012년 청년당이라는 정당이 있었습니다. 비록 총선을 앞두고 한 달여간의 짧은 수명을 가진 정당이 되었지만, 해산 후에 청년들의 삶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창당하고 해산을 했던 큰 경험이 있던 청년당 친구들이 중심되어서 다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우리미래라는 정당을 창당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반만에 5개 시도당 창당과 중앙당 창당, 그리고 전국에서 5,000명의 넘는 당원을 모집하게 됐습니다. 


우리당이 다른 당과 다른 차별점은?


“정의당은 한 마디로 ‘국민의 노동조합’ 입니다.”

왕복근(정의당) : 저는 ‘국민의 노동조합’으로 정의당을 설명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실제로 노조를 조직하지 못하는 사업장과 직종이 많습니다. 정의당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비상구’ 라는 노무 상담 프로그램 입니다. ‘비상구’란 정의당에 소속된 노무사들을 중심으로 언제든지 노무 상담이 가능하게 만든 프로그램 입니다. 실제 최근 파리바게트 문제를 비롯해 여러 노동문제를 국민들에게 알려내고 당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연합정당으로서 가지는 당내 민주성과 평등성”

정수연(민중당) : 민중당은 연합정당 체계입니다. 이 점에서 다른 당과는 내부 조직체계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내 의사결정, 권한, 예산 등 많은 부분이 각 계급, 계층. 직군, 등으로 분리된 구조에 따라 동등한 책임과 역할이 부여됩니다, 실제 민중당에 소속된 노동자 정당이 1만명 규모이고 청년정당인 흙수저당은 2,000명 규모로 5배나 차이나지만 작년 흙수저당이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당에 소속된 당원들의 책임감, 소속감, 참여도가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명확한 문제인식과 대안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획력”

용혜인(노동당) :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는 ‘알바노조’, 우리사회 큰 메시지를 던진 ‘안녕들하십니까?’ 세월호 침묵행동 ‘가만히 있으라’ 등 모두 노동당 청년들이 기획한 캠페인입니다. 노동당은 이런 기획과 운동력을 가진 게 큰 장점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우리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의 종식, 기본소득, 최저임금 1만원 등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다양한 소수자들을 위한 대안정당. 우리는 스티커도 예쁘다,”

허승규(녹색당) : 녹색당에는 20대, 여성 당 대표가 있습니다. 여성과 청소년 등 소수자 친화적인 당을 지향합니다. 여성 당원이 비율이 50%가 넘는 대한민국 유일한 정당입니다. 또한 당내의사결정기구에 여성 참여 50%를 규정하고, 추첨제 대의원의 10%를 소수자에 할당합니다. 무엇보다 세계 100여개의 녹색당과 연결된 글로벌정당입니다. 독일에서는 연정을 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대선 후보도 낸 바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녹색당은 결코 이름이 바뀌지 않습니다. 한 때 정당 득표가 2%가 안 되어서 ‘녹색당 더하기’ 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 있지만 헌법 소원을 통해 녹색당 당명을 다시 되찾기도 했습니다. 감동적인 녹색당가, 예쁜 스티커, 배지도 자랑거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정당”

김소희(우리미래) : 공동대표 평균연령 28세,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정당인 우리미래 입니다. 우리미래는 청년이 만들고 청년이 운영하는 정당입니다. 다른 당과의 차이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단순히 나이가 젊은 것 뿐이라고 별거 아니라고 말 하는 사람이 있는데, 청년들이 직접 정당을 운영하고 직접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정당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들이 우리 당에 가지는 편견 그리고 해명

왕복근(정의당) : 정의당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메갈당이면서 여혐당이라는 양 쪽에서 받는 비판입니다. 아무래도 정의당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생긴 문제인 듯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의당은 여성, 노동, 청소년,  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적극적이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당이라는 점 입니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 투표율이 제일 높게 나온곳이 파주시 월롱면 제 8투표소였습니다. 그 곳에는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있습니다. 여성 기숙사에 있는 수 많은 여성들이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를 한 결과라고 봅니다. 

정수연(민중당) : 민중당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바로 종북몰이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 1번으로 제가 선거운동을 하기 시작한 첫 날, 저는 조선일보 1면에 나았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TV조선과 채널A에서는 이석기 키즈라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프레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든 주홍글씨입니다. 그 주홍글씨가 여전히 혐오와 차별로 드러나고 있고, 우리 몸에 익숙한 배제와 색안경으로 남아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용혜인(노동당) : 노동당에 가면 투쟁 머리띠에 빨간 조끼를 입은 50대 아저씨 정당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노동당은 불안정 비정규직 청년들을 위한 알바노조를 조직한 당이기도 하고, 여성, 성수소자, 문화예술인 활동도 존재합니다. 

허승규(녹색당) : 녹색당원은 마치 원시인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윤리적 실천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녹색당의 성장을 견제하는 기득권의 논리 아닐까요?(웃음) 안보를 중요시 한다고 군복입고 자거나 데이트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녹색당에도 고기 먹는 사람들 있지만 식당 갈 때 채식 하냐고 먼저 물어봅니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녹색을 알리고 바꾸어 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김소희(우리미래) : 우리미래에는 마치 청년들만 존재하고 오직 청년들만 가입할 수 있냐는 질문이 많이 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입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활동 역시 마찬가지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우리당은 000이다 

왕복근(정의당) : 저에게 정의당은 ‘집권 가능한 수권 정당’ 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정의당이 그 가능성을 보였다고 생각하합니다. 특히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왔던 토론회에서 심상정 후보의 1분 발언 찬스는 많은 회자가 되었습니다. 대선 공간에서는 이런 이야기조차 쉽게 하기 힘든게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생각해야할 상식마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비상식으로 억울하게 피해 받고 눈물 흘리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수연(민중당) : 저에게 민중당은 ‘그림자’ 같습니다. 제가 비례대표로 출마할 당시 3만 명의 당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당원은 총선 기간 내내 핸드폰 배경화면에 제 사진을 놓고 저를 뽑아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비례 1번과, 당 대변인을 거치면서 제 자신보다 우리당과 입장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각각의 빚을 가지고 돋보이면서 정당은 그 뒷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저 멀리 목표를 보고 나아가면 내 뒤에 있는 정당은 항상 든든한 그림자 역할을 해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혜인(노동당) : 노동당은 ‘해답이자 과제’이다. 제가 당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건 세월호 참사 이후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동당이 제시하는 대안과 사회전망에는 큰 틀에서 동의합니다. 그러나 당이 가진 문제의식과 대안을 당 안팎의 청년들의 참여로 모아내고 조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점에서 노동당은 제게 해답이자 과제입니다. 

허승규(녹색당) 저에게 녹색당은 ‘연인’입니다. 저의 인생 목표는 좋은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정치를 함께 만드는 파트너가 바로 녹색당 입니다. 지금은 한국 정치에서 무척 어려운 상황이지만, 녹색당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고, 당 내외에 녹색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멀리 보고, 앞으로 한국 녹색당이 최소한 10%의 의회 권력을 얻어서 많은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소희(우리미래) 저에게 우리미래는 곧 ‘나의미래’입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정신없이 활동해 오면서 우리미래는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미래가 되었고 이 활동이 나의 미래를 위한 일이구나를 알게 됐습니다. 언젠가 여기 있는 우리가 의회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당신은 친구의 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중입니다. 친구는 신나는 음악에 취해 점점 속력을 내더니, 제한속도를 넘겨 달렸습니다. 과속하던 친구는 횡단보도를 걷던 사람을 치고 말았습니다. 차에 치인 사람은 죽었습니다. 과속하지 않았다고 거짓 증언을 하면 친구는 감형을 받습니다. 친구는 내게 거짓증언을 부탁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구를 위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사실대로 증언하겠습니까?

사실,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어떤 관계냐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은 왜곡될 수 있는 게 한국사회다.

2009년 PD수첩에도 소개된 '개인의 의리와 공익과의 딜레마 실험' 입니다. 전세계 유명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 스위스 등은 94%가 사실대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26%에 불과했습니다. , 2017년 OECD 35개 국 중 한국의 부정부패인식지수는 29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불이익을 알면서도 왜곡된 진실에 맞서 공익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공익제보자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우리 사회에서 어쩌다슈퍼맨이 된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지키고자 했던 어쩌다 슈퍼맨들을 위해 여러분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사례1.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무려 100명의 환자가 C형 간염에 걸린 사실을 신고한 두 명의 간호조무사가 있습니다. 이 두 명의 공익제보자 덕분에 의료법이 개정되고 C형 간염의 체계적인 관리와 대책이 마련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명의 간호조무사는 병원의 회유와 협박을 받고 신분이 노출돼 결국 권고사직을 당하였습니다.

사례2. 장애인 거주시설의 횡령과 폭행을 제보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 제보로 시설은 폐쇄되었고, 관련자는 형사고발, 재단 임원은 해임었습니다 한 선생님의 용기로 장애인 인권침해가 막아졌습니다. 선생님은 해고되었고,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되었지만 직장 내 따돌림, 근무 차별 등 보복 조치를 당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나 생명을 구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슈퍼맨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많은 슈퍼맨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슈퍼맨은 자기도 원치않게 어쩌쩌다가 슈퍼맨이 되어버린 어쩌다 슈퍼맨도 있습니다. 그 슈퍼맨은 바로 공익제보자 입니다

하지만 어쩌다 슈퍼맨이 되어야 했던 그들에게 세상은 따듯하지 않았습니다. 왜 공익을 위한 일은 삶을 담보로 해야할까요? 당신이 전하는 응원 한 마디가 평범함 삶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슈퍼맨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누구라도 불의를 맞닥뜨렸을 때, 주저없이 용기 낼 수 있는 세상

아름다운재단은 공익을 위한 선택이 삶을 담보로 하지 않도록 공익제보자와 공익활동가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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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건강이란 무엇일까요?

건강의 학술적 개념은 질병∙재해로부터의 자유, 건강과 불건강의 연속, 기능과 잠재역량, 대처능력, 인간의 온전한 상태, 안녕 상태, 질적 삶, 사회적 구성물 등 무척 다양합니다. 

학술적 개념이 아닌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2013년 서울시민회의에서 나온 건강의 개념을 보면 ‘우리에게 건강은 생명과 같음’,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관계적 건강을 아우름’, ‘건강은 봄에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하고 단풍 들고 낙엽이 져서 떨어지는 나무와 같음’ 등 참 창의적이고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 산업재해, 비싼 진료비,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나이, 유전, 생활습관 같은 개인적 요인 뿐 아니라 교육, 노동, 주거, 의료 등 사회적 요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건강, 과연 헌법에 권리로 명시될 수 있을까요?


건강권 실현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권리가 될 수 없다?

건강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권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권리의 조건이라면 ‘차별금지’, ‘의사표현의 자유’, ‘이동과 거주의 자유’, ‘양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노동의 권리’ 등도 권리로서 가능하지 않습니다. 

노동권을 위해 정부가 노동 그 자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위한 환경과 조건을 보장해야 하는 것처럼, 건강권 역시 정부가 건강 그 자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보건의료를 포함하여 교육, 노동, 소득, 주거, 환경 등에서 다양한 정책과 활동을 펼쳐야 합니다.


건강권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권리로서 불가능하다면, ‘신체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선거권’ 등도 권리로서 불가능합니다. 경찰제도, 사법제도, 선거관리 등의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헌법상 의료에 대한 권리가 규정된 핀란드와 규정되지 않은 미국의 보건의료 지출 비용을 비교해보면, 헌법에 의료에 대한 권리가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비용이 훨씬 많이 든 미국 보다 핀란드가 건강 수준이 높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건강이 권리?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가 있습니다.

우선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경우 제20조에 건강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제20조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1948년) 헌법 제20조는 이후 다음과 같이 변화해 왔습니다.

- 제31조 모든 국민은 혼인의 순결과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1962년)

- 제34조 제2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1980년)

- 제36조 제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1987년 - 현재)


국제법에도 근거가 있습니다.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에는 건강과 관련하여 다음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25조 1. 모든 사람은 의식주 ,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 실업 , 질병 , 장애 ,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을 구체화한 1966년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대한민국에는 1990년 국내법적 효력 발생)에도 건강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12조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

2. 이 규약당사국이 동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취할 조치에는 다음 사항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포함된다.

(a) 사산율과 유아사망율의 감소 및 어린이의 건강한 발육

(b) 환경 및 산업위생의 모든 부분의 개선

(c) 전염병, 풍토병, 직업병 및 기타 질병의 예방, 치료 및 통제

(d) 질병 발생시 모든 사람에게 의료와 간호를 확보할 여건의 조성


헌법에 건강권을 넣자!

헌법에 건강권을 규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 번째는 건강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 국가 의무 부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헌법의 건강권 조항에 근거해 보건의료기본법, 국민건강증진법 등의 여러 법률이 제정되고 시행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건강권 침해시 헌법재판을 통해 구제가 가능해지고 동시에 건강권 개념이 명확해 집니다.

이미 대한민국 헌법에는 건강권의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군데 흩어져 있고 기존 건강권을 담은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는 상당히 모호합니다. 

건강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헌법에 들어갈 건강권 조항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건강은 권리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도 건강권이 있다.” “건강 영역에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필수 의료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건강권은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권을 위해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건강권을 위해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등등...

이제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건강권을 말해보세요.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바꿈세상을바꾸는꿈은 “건강할 권리를 헌법에! - 건강할 권리를 외치다.” 라는 주제로 오는 11월28일(화) 오전10시 국회 의원회관 9간담회실에서 건강권 증언대회를 개최합니다. 또 온라인에서도 건강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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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자난 3개월 간 471명이 참여한 가운데 건설재개와 중단을 두고 숙의 과정을 가져왔다. 그 결과 지난 13일 시민참여단이 내린 결정은 ‘신고리 5·6호기는 공사를 재개하되, 정책방향은 탈핵으로 간다.’ 이었다. 결과는 건설중단 40.5%, 건설재개 59.5% 이었다. 

왜 시민들은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숙의민주주의 사실상 첫 사례로서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어떤 의의를 남겼을까? 그리고 한계는 무엇일까?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 지난 27일 개최한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무엇을 남겼나?’ 토론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의 정책참여?

이번 공론조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들이 원전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에 참여할 자격과 능력 없다고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영희 시민환경정책연구소 소장은 “원전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이슈이며, 성격상 기술적 차원, 사회정치경제적 차원, 윤리적 차원이 함께 섞여 있는 복합 이슈이다. 정책 향방에 따라 크게 영향 받는 이해관계자이자 재원을 대는 납세자로서 시민 참여는 당연하다.” 며 반박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과학기술은 기술 자체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그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의 777부대와 나치 독일의 생체실험, 구소련의 유제니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며 시민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서구 선진국과 같은 높은 수준의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공론화가 어렵다는 회의적 반응을 두고 은재호 선임연구위원은 ‘토론은 우리 역사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문제해결방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의사 결정의 수직성과 효율성에 경도된 정치·행정 패러다임이 토론을 낯설게 만들었을 뿐이다.” 라며 반박했다. 


왜 시민들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선택했을까?

신고리5·6공론조사의 백미는 2박3일 토론회였다. 그 현장에서 신고리 5·6공론조사 모더레이터(중재자)로 참여한 김희경 변호사는 ‘시민참여단은 훌륭했고 전문가 패널은 미숙했다.’ 고 평가했다. 

시민참여단은 총 4번의 세션마다 따로 모여 토의를 진행하였는데, 시작하면서 반드시 공유했던 제1원칙이 “모든 의견은 타당하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즉 숙의 과정을 위해 다른 견해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을 기본 원칙으로 세운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 패널은 인신공격을 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쟁점이 아닌 사람을 비난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오히려 참여한 시민들의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김희경 변호사는 건설 재개 측이 가져온 총 4개의 섹션마다 준비한 콘텐츠에도 주목했다. 김 변호사는 ‘건설 재개 측은 다양한 콘텐츠를 적절히 배치하고, 마지막에는 원전 주변에 사는 회사원의 삶을 보여주면서 스토리텔링을 하였다. 이 모습이 시민참여단에게 더 설득력을 가져왔다.’ 는 지적이다. 

반면 원전 반대 측이 강조한 재생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 양측의 공통점이었는데, 중단측은 이 부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참여단이 의구심을 가졌던 LNG 쟁점에는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질의응답시 답을 할 패널을 바로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특히 2030세대는 원전 건설 중단이 아닌 재개를 선택하며 결과가 뒤집어졌다. 숙의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를 이끈 것은 건설반대 측이 종합공정율 28.8%에 집행된 공사비와 1.7조원에 이르는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과감히 철회하게 만드는 설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즉 현실적인 결정을 하는 2030세대들이 매몰비용을 주저하게 된 원인이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신고리 5·6공론조사의 한계는 없었는가?

첫 번째는 대표성 문제였다 ‘원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서생면 주민들을 더 뽑아야하는 것 아닌가?’ ‘미래세대는 빠지는데 포함시켜야 한다.’ 는 의견이다. 이영희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실제 원전이 건설되면 원전 수명 상 그 피해와 책임은 고스란히 미래세대가 짊어지는데 오히려 그들이 공론화 과정에서 빠졌다. 사회적 소수자들은 대변이 잘 안 된 점도 한계’ 라고 지적했다.

연속상의 문제도 지적되었다. 윤종일 한국원자력학회 원자력이슈위원회 겸 카이스트 교수는 ‘국가 에너지정책의 수립은 백년지대계이고 정책의 연속성과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태생적으로 5년간 한시적 권한을 부여받은 정부에서 결정’ 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윤종일 교수는 과정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윤 교수는 ‘원자력발전은 휘발성이 강한 정치사회적 사안임에도 사회적 합의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없이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론화 추진했다. 또한, 원전의 안전성은 전문 기술적 사안임에도 시간적으로도 짧은 숙의과정을 거쳤다,’ 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5·6공론조사의 의의는 크다. 

“이번 시민참여단을 경험하면서 적어도 앞으로 우리나라에 4대강 같은 일은 안 생기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든다.” 한 참여단의 소감이다. 

이번 공론조사에는 무작위로 선발된 500명 중 무려 471명이 참여했다. 350명(70%)정도로 예상했던 참여를 훨씬 뛰어넘는 참여율이다. 이영희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긴 힘든 시민 참여였다. 시민들의 숙의 과정에서의 시민 참여 역시 놀라웠다. 일각에서는 지난 40년 원전 뉴스보다 더 많은 뉴스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건 시민에게 권력을 준 결과이다. 이는 지난겨울 광장에서 촛불 정신을 숙의 민주주의로 구현해낸 것이다.’ 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희경 변호사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정부의 소수 정책집단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거대한 국책사업결정으로 곪고 상처 나는 일들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고, 나아가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 방식이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 라며 향후 공론조사 과정의 확대와 숙의 과정의 시민참여를 기대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된 자료집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신고리 토론회 자료집 (수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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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우리미래 공동대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아 시민이 참여하는 개헌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2030세대 여러 청년들의 상상력을 담은 개헌 이야기를 카드뉴스와 함께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두 번째 기사는 '국민주권' 입니다. - 기자 말


이성윤씨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청년 중심의 정당 '우리미래' 공동대표 입니다. 이성윤 대표는 국민주권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시민들의 주권이 표출된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그리고 최근 촛불집회까지... 이성윤 대표는 이러한 주권표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이후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수단이 부재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이성윤 대표는 주권의 정의는 국가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며,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 고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거 때를 재외하고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에게 있다고 느끼기는 힘들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스위스는 국민투표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아일랜드는 시민이 참여하는 개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성윤 대표는 첫째. 국민발안권(국민이 직접 입법에 관하여 제안 할 수 있는 제도), 둘째. 국민소환권(선출직의원이나 공무원을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에 의하여 파면, 소환 하는 일) 셋쨰. 국민투표권(국가의 중대한 사항을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기 위한 투표) 넷째. 대통령피선거권(청년도 도전하고 싶다) 등의 포괄적인 개헌을 주장했습니다.


국민주권 확대를 담은 개헌, 당신은 찬성하시나요? 반대하시나요?

>> 개헌안 자세히보기 : http://wouldyouparty.org/polls/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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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만에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행 헌법의 한계가 개헌 동기는 민주적이었지만, 실제 개헌 내용에는 시민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면 이번 개헌은 어떻게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시민 참여 개헌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에서 제작한 카드뉴스와 함께 연재한다. [편집자말]


촛불, 탄핵과 개헌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촛불시위와 제도 헌정질서 내에서 이루어진 탄핵과정은 우리 헌정질서의 의미,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의 관계, 헌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대응력 등 여러 성찰 지점을 제기하였다. 촛불은 단기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퇴출과 권력의 정상성 회복을, 중장기적으로는 적폐 청산과 제도 개혁 등을 통하여 반복되는 민주주의 훼손행위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고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조치를 요구했다.

민주주의의 진전으로서 개헌이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각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야 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일정 부분 마련되기 시작했다. 현 대통령도 개헌을 시기를 못 박아 공약했다. 대통령 공약 시기인 내년 지방선거 시기까지 정치권에서는 개헌안의 합의를 둘러싼 공방과 논의가 치열해질 것이다.


87년 체제의 복합성과 이번 개헌논의의 과제 

지난 10년간의 정치현실은 87년 체제(헌법)의 취약성과 퇴영적인 실질적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한 취약성를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가능성과 제도를 통한 헌법일탈 행위의 제어가능성을 보여주며 그 복원력도 상당함을 입증했다.

따라서 과거의 개헌과정이 과거 헌법의 부정이었다면, 이번 개헌과정은 발전적 극복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한계 및 부족한 부분의 극복과 보완일 뿐 아니라, 장점을 유지 및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87년 헌법 개정 과정이 최초(?)의 정치권 합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정치권 뿐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 시민과 시민의 합의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촛불의 성과인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강화가 필요한데, 촛불의 의미인 '민주주의의 안전'은 대의제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가 결합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통치구조의 문제만큼이나 기본권 시장에 대한 인식공유가 필요하다. 단순히 헌법 규정의 개정에 그치지 않고,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헌법 규범을 실질화 할 수 있는 하위규범인 법령의 정비, 예를 들어 선거법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 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과제 성취를 위한 시민 주도성

그렇다면 시민이 개헌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은 무엇인가. 개헌은, 민주주의 공론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정치적 이해득실의 문제에 매몰될 우려를 완화하고, 기본권 조항 개혁 작업이 부수화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또한 정치권의 이해와 국민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작업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의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해 관계자의 의견이 우선시되는 문제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난관 내지는 애로점들이 다수 존재한다. 유권자 참여는 후차적인 성질의 것이므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의회와 행정부 등 이를 이끄는 관官의 배려로, 객체화된 참여를 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전문성의 문제로 인해 시민 접근이 떨어질 수 있는데, 전문가의 참여 역시 자문적 기능으로 한정될 우려가 크다. 시민사회 단위에서는 개별적인 흐름을 연계하고, 조정 총괄할 단위가 부재하기 때문에,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조직화 되지 않은 '일반' 시민은 더욱 객체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시민주도형 개헌의 관철 방안

이와 같은 한계 및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기 논의 과정에서부터 최종 국민투표 과정까지, 일련의 기획을 통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회 등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뿐 아니라, 시민 사회 안에서도 논의를 선행하고, 병행해야 한다.

이에 개헌이라는 주제를 통해, 추상적인 대안사회의 미래상을 현실적인 눈높이에서 논의하는 공론장으로 연결할 것을 제안한다. 헌법 조문의 문제가 아닌 가치와 비전의 문제를 먼저 제시하는, 기술적 전문성이 아닌 시민 자신의 문제로 논의를 진행하자는 뜻이다.

대안 사회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열망이 자유롭게 제기되고, 대안적 미래의 포괄적 비전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또, 사람과 조직 중심의 적대적 갈등 구도를 의제를 둘러싼 대안적·긍정적 논쟁 구도로 전환시키고, 개별적인 주장을 단순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논쟁과 토론이 촉발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대안 사회의 어젠다를 포괄할 수 있는 헌법적인 틀은 각기 다른 대안 의제를 추구하는 개인과 개별 단체가 공동의 협력 관계를 맺고 공동의 개혁 동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전문가와 일반 시민 사회의 소통 통로와 시민에게 참여와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 역시 선행되어야 한다. 온-오프라인 논의와 소통 통로를 결합할 필요성도 있다. 이는 민주주의 공론의 장으로써, 개헌 이후의 시민 참여 민주주의의 기반을 놓는 작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바꿈'이 제안하는 시민 참여 개헌 방식

바꿈, 세상을바꾸는꿈이 제안하는 시민 참여 개헌 아이디어는 크게 3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먼저 온라인은 위키 기능과 투표, 게시판 기능을 탑재한 플랫폼을 활용해 의제의 발굴 및 시민의 제안, 제안 의제의 체계적인 정리를 위한 창구로써 활용된다. 87년 헌법을 전면 게재하고, 개헌 요구안에 대한 소규모 투표 기능을 결합하여 무엇이 어떻게 바뀌기를 요구하는지를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개정 조항에 대한 투표는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핵심 조항에 대한 찬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현재 조항과 개정안, 개정안을 제안하는 취지, 관련 자료에 대한 링크를 주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투표와 연관된 각종 자료들은 '관련 자료 게시판'에 별도로 게시된다.

위키는 87년 헌법 전체 조항을 탑재하는 데 활용된다(길면 분야별로 나눠서 게시). 현행 조항 아래에 개정을 제안하는 취지가 적혀 있으며, 찬반 투표 링크도 삽입돼 있다. 다시 말해, 한 눈에 현행 조항과 개정의견을 볼 수 있으며, 링크를 따라 개정 의견에 대한 투표창으로 바로 접속 가능하도록 구현되어 있다. 여기서 개정 의견 및 링크 등은 현행안과 구분될 수 있도록, 색깔 표시가 가능하게 준비하고 있다.

나머지 게시판에는 개정안에 대한 세부 자료 및 뉴스, 오프라인 행사 소식, 개헌 관련 각종 자료 등이 탑재된다.

오프라인에서는 온라인으로 취합된 개정 의견, 신설 의견 등을 확인하고, 심화해 개헌안 콘텐츠를 구성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복수로 제안된 개헌안은 다양한 정치 이벤트(정책 배틀 또는 사회적 합의)와 결합해 쟁점을 정리하고, 대중의 관심도를 재고하는 등을 목표로 공개 행사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오프라인 행사는 기획 단위 차원에서 총괄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기획·개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할 방침이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는 개헌 의제를 가진 단체들의 참여를 통한 개별 사업 기획을 마련하고자 한다.

국민 개헌의 최종 심의와 외부화 방안 역시 오프라인과 연계된다.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의 개헌 방식을 정치 이벤트 형식으로 차용해, '새로운 헌법 제정을 위한 국민 배심단'을 조직, 주요 쟁점안을 정리하고 조문화하여 초안을 정리할 계획이다. 국회 개헌특위 등에서 개헌안을 마련하는 방식에 시민 참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에는 국회에 제출된 개헌안과 시민 참여 개헌안을 비교하고 쟁점을 토론하는 자리 역시 기획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이 진행된 모든 오프라인 행사의 결과를 온라인 플랫폼에 반영, 개헌과 관련된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개정 복수안 또한 시민 배심단, 토론회, 합의 프로세스 등 오프라인 행사 온라인에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바꿈의 '시민참여 개헌'의 마지막 영역은 본 기획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언론사와의 공동 기획이다. 주요 사업에 대한 언론 연재를 통해, 국민 참여형 개헌의 필요성, 프로젝트 방식, 주요 쟁점 아젠다에 대한 해설 등을 제공할 것이다.

- 백승헌 바꿈 이사장

시민참여 개헌 플랫폼 바로가기  http://bit.ly/시민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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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이 힘든 헬조선에서는 인어나 도깨비가 나오는 판타지물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 운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이 시대를 사는 게 오히려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헬조선에서는 신분상승의 욕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우리가 '노오력'만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들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비슷한 이야기로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는 심리적으로 신분제 사회가 견고한 봉건제 시대 사람들이 현대 사람들보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성과주의','노력주의'는 현대화로 인한 전 세계의 추세이지만 인어와 도깨비가 등장하는 걸로 보아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유난한 것 같다. 


특히 청년이라는 우리 세대는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세상 아래 살고 있는데도 어느 것 하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학교, 취업, 결혼 선택되기 위해서 구걸하는 세대이다. 자소설을 쓰지만 누구 하나 우리의 스토리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고 압박면접 준비를 하지만 그 압박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를 '삼포', '오포'를 넘어 'N포' 세대라고 부른다. 

너무 이상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투표’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몇 안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건 투표권, 참정권뿐이다. 가지고 있는 것마저 포기한다면 미래가 없다. 정치 공학적으로 보았을 때 기성세대는 우리가 투표를 하지 않으면 우리를 대놓고 이용할 것이다. 아니, 이용해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정말 중동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유력 대선후보가 말한 것처럼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잔혹한 사실은 우리가 투표를 한다고 해도 정치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우리의 취약성을 이용할 뿐이다. 최근 들어 청년 정책이라는 말이 귀에 익숙할 것이다. 대선이 임박했다는 신호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포퓰리즘이라고 말하고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그렇게 당선되고 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들만 취하고(당선) '나 몰라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용당할 것인지 그들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어낼 것인지, 어떻게 ‘똑똑한 유권자’가 될 것인지는 전부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그렇게 정치인들과 속고 속여야만 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걸지도 모른다.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여기 체포되더라도 절대 죄를 자백하지 않기로 약속한 A와 B가 있다. 두 범죄자가 체포되어 각자 심문을 받고 있다. 여기 그들에게 주어진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두 죄수 모두 자백하지 않으면 각자 1년 형을 받는다. 둘 중 한 명만 자백하면 자백한 자는 석방되고, 자백하지 않은 자는 8년 형을 받게 된다. 둘 다 자백하면 각자 5년 형을 받는다. 두 죄수 모두에게 유리한 선택은 함께 자백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자백할지 배신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무조건 상대방과 협동할 수 있을까? 한정된 정보 안에서 서로 유리한 선택을 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그래서 욕심을 부리다가 둘 다 5년형을 받는 것이 지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에서 청년세대들은 정치인들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고 순진하게 (그것도 단편적으로) 투표를 했었고 정치인들은 항상 우리를 속여 이득을 보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선출하고 방치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투표율은 가공할만한 것들이 못되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 

 

우리는 투표율로 그들을 위협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작년 총선부터 청년 투표율이 가공할만한 숫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집계기관마다 다른 것 같지만 20대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이 4.4% 포인트가 오르고 30대 투표율은 7.7%가 올랐다. 20~30대의 투표율 증가가 여론조사를 뒤집고 여소야대라는 상황으로 현 정부를 심판했고 심지어 3당 체제라는 새로운 시스템까지 만들어 냈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2030세대의 투표 관심은 높았다. 

정치인들은 숫자에 약하다. 빠르게 증가하는 투표율을 잡기 위해서 많은 청년정책이 쏟아질 것이다. 마치 은하수에서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는 것처럼. 청년실업률 해결정책, 육아보육정책 같은 정책들이 다양하게 중구난방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유리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라는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선거 후 금방 사라지고, 다음 선거 직전까지 정치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다시 정치인들은 무릎을 꿇고 퍼포먼스를 하거나 다시 우리에게 선택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투표 후에 선출된 권력을 방치한다면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똑같이 정치인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일들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미래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 이러한 반복을 끝낼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를 풀기 위해 제임스 피어론이라는 학자는 미래의 그림자(shadow of future) 이론을 만들었다. 미래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처럼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 일회성이 아닌 여러 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플레이어들은 서로 협력을 해서 윈윈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투표로부터 한 단계 나아간 청년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이다. 반복해서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대체 가능성을 망각하지 않도록 확인시켜준다면 그들은 우리의 눈치를 더욱더 살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미래의 그림자를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속일 수 없게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누군가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우릴 구원해준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 똑똑한 사람들을 선출했다면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지 항상 반복해서 일깨워 주어야 한다. 선택하고 감시하고 심판하는 일에 우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내놓은 오지선다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 문제 제기와 해결책까지 내놓을 수 있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놓고 집단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대체할 수단이 별로 없다면 우리가 직접 선거에 피선거권자로 나가는 것도 최선의 방법이다. 지역공동체로부터 선출직 피선거권자가 되는 것이다. 군의원,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 구청장, 시장, 군수, 도지사, 교육감 그리고 국회의원 대통령이 있다. 에스엔에스(SNS) 같은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널리 우리의 플랫폼을 알리고 후보를 위해서 전격 지원해야 한다. 실패하고 성공한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일도 잊지 말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 우리 세대의 가장 큰 힘일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 

청년은 이제 가장 정치적인 계층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뛰어난 창의력과 열기로 대기업에 비정상적으로 소수의 경영인들에게 이윤을 남겨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치열한 경쟁력을 갖고 자신과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정시 퇴근과 안정감을 핑계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것도 말이다. 그러한 열정과 경쟁력을 갖고도 정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되려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화 운동에서처럼 모든 것을 다 걸고 참여하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씩 간단하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까운 곳에부터 찾고 서로 공유하고 함께 뜻을 모아 즐거운 일로부터 시작해라. 투표하고 기획하라. 그리고 직접 선거에 나가라. 멋진 아이디어와 젊은 패기를 갖고. 우리가 그런 계층이 된다면 유력 대선후보와 정치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 우리에게 ‘노오력’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는 버니 샌더스 열풍이 불었다. 한국보다 더 비싼 미국 대학에서 교육비 무료화를 내 걸고 월 스트리트 (Wall Street) 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가 이야기하는ᅠ사회 민주주의는 유럽에도 가능하니 미국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많은 청년들이 화답했다. 청년이 아닌 아웃사이더였던 버니 샌더스가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가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년들은 다시 정치 참여에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들은 트럼프를 혐오하면서도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힐러리 후보에게 좀 더 버니 샌더스의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트럼프 승리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청년들은 그런 일회성의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투표는 똑똑하게, 참여는 확실하게, 그래도 안 되면 우리 스스로 나서자. 근본적인 참여가 해법이다.


훌륭한 청년단체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유니온, 동네형들, 체게바라 기획사, 협동조합 성북신나— 등등. 이런 단체들과 마음이 다르다면 사람들을 모으고 직접 조직을 만드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투표하고 참여하고 조직하고 그리고 선거에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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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포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빠띠ᆞ·우주당,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추첨민회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흥사단, 바꿈세상을바꾸는꿈은 오는 2017년 7월 19일(수) 오후 7시 서울시 NPO지원센터 1층 대강당에서 “시민이 직접 쓰는 개헌안,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주최단체들은 본 토론회를 통해 시민 주도적 개헌과 관련해 각 단체에서 진행·기획 중인 사업을 공유하고, 시민참여 개헌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 확산을 통해 향후 개헌 논의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할 예정입니다.


본 토론회 자료를 첨부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부탁드립니다^^


20170719_바꿈_시민참여개헌_토론회 자료집.pdf



⦁ 사회 전민용(6월민주포럼)

⦁ ‘시민이 주도하는 개헌을 제안하며’ ㅣ 백승헌(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젠더 관점에서 본 개헌의제’ l 박차옥경(한국여성단체연합)

⦁ ‘개헌 의제의 쟁점과 과제’ ㅣ김준우(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시민 주도형 개헌사례와 과제’ ㅣ 이지문(추첨민회네트워크)

⦁ ‘개헌정국과 시민사회 대응’ ㅣ이태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시민사회 개헌운동의 흐름과 과제’ ㅣ 김전승 (흥사단)

⦁ 시민 주도 개헌, 온라인에서는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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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69주년 제헌절이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원리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근간을 이루는 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지난 69년 동안 9차례 개정되었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또는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고, 이를 20일간 공고한 후, 60일 안에 국회애서 의결해야 한다. 국회 의결 후에도 30일 안에 국민투표를 실시해야만 개헌이 가능하다.


헌법을 권력유지와 연장을 위해 악용해 온 역사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개헌은 행정수반의 권력 유지나 연장을 위한 꼼수로서 개정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첫 번째 개헌부터 문제였다. 1차 개헌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권력연장을 위한 ‘발췌개헌’이었으며 심지어 이때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2차 개헌도 초대 대통령에 대해 3선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이었다. 특히 이때 개헌은 개헌선인 2/3에서 1표가 부족했으나 사사오입이라는 억지 논리로 부결이 가결로 정정되었다. 이로 인해 2차 개헌을 흔히 ‘사사오입 개헌’ 이라고 부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헌법을 권력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6차 개헌은 3선 연임제한을 없애기 위한 개헌이었다. 당시 여당은 야당의 참석을 막기 위해 새벽 2시 30분 국회 제3별관에서 개헌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더 큰 문제는 유신헌법이라고 불리는 7차 개헌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대통령 간선제와 중임제한을 폐지한 헌법, 국회해산권과 추천권 등을 통한 국회 유명뮤실화, 긴급조치권을 통한 초법적 대통령의 권한 확대는 헌법정신을 크게 훼손시켰다.  


헌법을 수호하고 시민의 힘을 보여준 역사


그러나 개헌이 꼭 독재자들의 수단으로만 악용되어 온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4.19혁명 이후 3차 개헌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의원내각제 변경, 헌법재판소와 지방자치제를 새롭게 정립했다. 이어진 4차 개헌은 3.15 부정선거 반민주행위자, 부정축재자를 소급하여 처벌하기 위한 개헌이었다. 


특히 현행 헌법을 만든 9차 개헌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다. ‘호헌철폐’와 ‘독재타도’의 당시 시민들의 외침은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현행 헌법의 6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또한 국회 국정감사권을 부활시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졌으며, 기본권을 확대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촛불. 이제는 시민 참여를 통한 개헌의 역사를 쓸 차례!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주당(우리가 주인이당)에 시민이 직접 쓰는 새로운 헌법 프로젝를 열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세히보기<<


87년 헌법 개정이후 지난 30여 년간 10차 개헌에 관한 논의는 끊임없이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개헌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고자 임기 내내 반대했던 개헌을 갑작스럽게 들고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현 시점에서 시민 참여를 통한 민주적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워왔고, 오늘(17일)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개헌은 검토 대상이 아니라 국민적 요구이며 정치권의 의무"라며 개헌이 시대적 과제임을 밝혔다. 


실제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개헌특위는 2018년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개헌특위는 이원집정부제, 4년중임제 등 다양한 권력구조 개편 외에도 지방분권 강화, 기본권 보장, 고위공직자비리수차처(공수처) 신설, 5.18 정신 포함 등 다각적 개헌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민참여’이다. 지난 9차례 헌법 개정이 독재자의 권력 유지나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4.19, 6월항쟁으로 시민들로부터 추동되었으나 정작 내용적 측면에서는 시민 참여가 배제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박근혜 탄핵과 평화적 정권교체를 만들어낸 시민들의 촛불의 최종 종착점을 개헌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시민사회 역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추첨민회네트워크, 대화문화아카데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흥사단, 바꿈세상을바꾸는꿈(바꿈) 등 여러 단체에서 다양한 개헌논의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개헌과는 다르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민주주의 발전은 시민참여 개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위키와 찬반 기능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의 등장은 시민참여 개헌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빠띠의 ‘우주당’이다. ‘우주당’은 ‘우리가 주인이당’의 약자로 더 이상 정당 중심,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만 존재하지 않도록 더 쉽고 재미있고 실용적인 우리의 정치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정당이다. 여기에 바꿈은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이라는 이름으로 개헌 프로젝트를 열었다.(http://bit.ly/시민개헌 ) 이들의 목표는 앞서 말한 시민참여형 개헌. 즉 누구나 개헌논의에 참여해 시민이 쓰는 헌법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개헌이 예정대로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국회 의결은 최소 한 달 전인 5월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 보다 앞서 대통령의 공고 기간까지 생각한다면 내년 초에는 개헌안을 발의되어야 한다. ‘촛불’로 보여준 시민참여의 힘이 개헌이라는 구체적 결과물로 이루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기존의 전문가, 국회 중심의 개헌 논의와는 전혀 다른 시민참여 개헌 논의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관심과 주목을 끌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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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남


우리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고 고단하다. 국가의 성장 중심적 경제정책은 화려한 성공을 가져왔지만, 사회적 부작용도 동시에 출몰시켰다. 대한민국은 고용 불안정, 소득 불평등, 저출산 및 고령화 등 각종 사회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은 일반 시민들의 삶의 영역에 고스란히 침투하여 생활여건을 급속히 악화시켰다. 이렇게 불안과 위기로 점철된 사회는 시민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줄 수 없다. 구체적인 해법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책적 한계는 앞으로도 시민들의 생존권을 더욱 옥죌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인 청년이 이러한 부작용을 전면적으로 감내해야 할 자리에 서 있다. 취업난, 주거 빈곤 등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청년 세대에게 압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청년들이 현실 정치문제를 외면한 채 살아가기 어렵다. 정치는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 유용한 수단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향한 혐오와 냉소적 시선은 사회적 위기의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곤궁한 삶의 극복과 생활환경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정치의 새로운 주체로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 한국 정치의 주요 특징으로 법률가, 언론인,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영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전문 지식인을 충원하여 해당 분야의 사회적 갈등을 포착하고 정책 능력을 강화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전문 정치인을 양성하는데 취약점을 노출한다. 정치 영역 밖의 전문가는 정치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과 능력을 지니지 못할 수도 있다. 체계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국가와 사회를 운영할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외부 지식인의 투입보다 전문 정치인의 육성이 올바른 정치의 모습일 수 있고, 그 대상은 청년이어야 한다.


눈을 돌려 외국을 살펴보면 젊은 정치인의 성공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정치 경험을 쌓고 중앙정치에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2살에 영국 보수당의 정책연구소 특별보좌관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토니 블레어 총리도 22살에 입당해 41세에 최연소 노동당 대표가 됐다. 스웨덴 정치인들은 청년 시절부터 정치권에 뛰어들어 각종 훈련과 경력을 거치면서 정치인의 자질과 능력을 길러간다.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도 10대 중반에 보수당 청년위원회에 가입했고, 마흔이 넘어 총리가 됐을 때 이미 16년의 정치적 경륜이 묻어 있었다.


외국 사례에서 살펴보듯 이른 나이에 정치를 시작할 때 정치적 역량과 경륜을 쌓을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의 등장은 선의의 목적과 상관없이 사회적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 젊었을 때부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반복적인 정치적 훈련과 학습을 통해 기본기를 습득하고, 정치인이 지녀야 할 덕목을 축적하는 것이 좋은 방향일 수 있다. 그래야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설득과 타협을 통해 사회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이제 청년들은 선거철만 되면 호명되는 정치적 동원 대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실정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와 인물이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정치적 경험과 자산은 위기의 한국사회를 혁신할 수 있고, 청년들이 정치적 주체로 당당히 설 때 대한민국의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의 청년 지도자를 맞이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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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30년, 오늘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6월민주포럼’은 세대와 시대를 넘어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인터뷰 기사를 매주 1회 연재한다. 인터뷰는 6월항쟁을 경험한 이들이 오늘날 청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의미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시민의 변화, 6월민주항쟁의 핵심" 


1987년 6월 10일. 그는 며칠 전부터 집을 나와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사전에 가택연금을 한다거나 연행을 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당시 상임집행위원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에 몸을 담고 있었던 황인성 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30년 전 일을 어제 일인 양 또렷이 기억했다.  
 
"오후 9시부터 10분간 텔레비전을 끄고 전등을 끄자고 했어요. 그게 얼마나 실천될까, 이게 아주 관심거리였어요. 그때 내가 이화동, 저쪽으로 내려가면 종로5가 사거린데, 이쪽쯤에 내가 서 있었어요. 이 근처에는 사무용 건물이 있었고, 저쪽 낙산에는 서민아파트들이 주욱 서 있었어요. 대개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서민아파트였는데, 내가 볼 때 여기저기 창문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반 가까이가 꺼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뭐라고 해야 하나. 등골에 찬 기운이 쫙 흐르는 거야… ." 당시 국본이 배포한 '6.10 국민대회 행동요강'의 4항에는 ‘전 국민은 오후 9시에서 9시 10분까지 10분간 소등하고, KBS, MBC 뉴스 시청을 거부함으로 국민적 합의를 깬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 항의하고 민주쟁취의 의지를 표시할 수 있는 기도, 묵상, 독경 등의 행동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엄청난 감격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앞서 오후 6시 태극기 하강시간에 맞춰 시청 앞에서도 지나가는 택시나 버스가 일제히 경적을 울리고, 차안에 있는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손수건이나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 '아,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되고 있다. 숨죽이고 있던 국민들과 운동본부가...' 이런 걸 확인하면서 몸이 떨렸거든. 그런데 소등한다는 것은 몸이 거리에 있지 않고 집에 있지만 이런 큰 국민적 저항행동에 나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것도 한 가족 단위로.… ." 


87년의 재야, 종교, 야당 정치인 등의 민주인사들은 그간 비밀리에 준비해 온 국본을 5월 27일 결성대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발족했다. 이 자리에서 6.10 국민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 대회이후의 계획은 뚜렷하게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한 달 만에 저 사람들이(독재 정권) 자신의 의지를 꺾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당시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국민의 호응이 있었고, 그럼으로 해서 국민적 분노와 전두환 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 확인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국민의 호응도, 6.29선언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황 이사장의 말에 "그렇다면 예상하신 것은 무엇이냐"고 장난 섞인 질문을 던졌다.

 

 

 황인성 수원민주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김지혜 바꿈 활동가

 

 

그해 초에 발생한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살인 사건 당시 개최된 국민추도대회(2.7.)와 평화대행진(3.3.) 때보다 대회 규모가 분명 커져 있었다. 4.13 호헌조치에 대한 국민적 반대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징표였다. 참여한 시민들의 규모가 정부와 여당을 정치적으로 몰아붙이는 계기가 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대회를 기점으로 국민적 저항 행동이 지속적, 그리고 폭발적 양상으로 분출되어 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위학생들을 연행하려는 경찰들에게 멀리서 야유를 보내는 식으로 시위를 응원하던 시민들이, 쫒기는 학생들을 자신의 가게에 숨겨주고, 결국에는 최루탄 자욱한 거리에 함께 서게 되는 변화를 보면서 뭔가 '일을 내겠다'는 색다른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직적으로 거리투쟁에 나선 학생이나 재야단체 회원들, 정당원들과 달리 말없이 숨죽여 살아오던 보통시민들이 국민행동요강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손수건 흔들기, 차량경적 울리기, 전등 끄기 등), 탄압에 대한 공포를 뚫고 한 사람 한 사람 시민의 작지만 분명한 결단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가 느꼈던 희망과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기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80년 광주가 학생들로 하여금 뭔가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게 하는 일종의 명령을 내리는 그런 것과 같은 거예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은 광주의 죽음에 대한 빚진 마음, 이런 게 엄청 강했던 것이고, 그걸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지만,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어요."


계속되는 군사독재정권, 죽어가는 학생들, 고문, 최루탄, 그리고 5.18 광주항쟁. 자신의 집안에서 불을 끄는 일조차 무서웠을 시절에 그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온 거리와 광장은 흡사 그에게 기적이 아니었을까.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 30년 간 깊어진 문제의식" 


2017년 촛불이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비폭력이라는 기조도 한 몫 했지만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구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장애, 여성, 성소수자, 채식 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구호들. 자신의 처지와 연결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17년의 변화라고 하는 건 87년보다는 문제의식이 훨씬 깊고 넓죠. 왜냐. 87년은 눌려 있었으니 일차적 요구가 대통령직선제(정부선택권)와 민주헌법 쟁취로 모였잖아요, 그게 됐어요. 그대로 된 거야. 됐는데 이런 제도적 변화가 왔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느냐, 아니에요.

87년에 우리가 직선제 개헌을 했다고는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 발전하고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2017년의 변화라고 하는 것,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간 변화 또한 더 큰 변화를 위한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하는 걸, 6월항쟁 이후 30년이 가르쳐 준 거라고 생각해요." 

 

 

황인성 수원민주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김지혜 바꿈 활동가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결국 당선자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였다. 정치권은 분열됐고, 재야세력 내부에서도 상호불신이 커졌다. 대안이 되어야 할 재야운동에 내적으로 균열이 생겼고, 이후 정세에 통일적으로 대응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개헌 후 대선 날짜가 결정되자 국본 상집위원 내에서도 비판적 지지그룹,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본부, 후보단일화 그룹 등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갔다. 황 이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이래저래 정파적이지 못한’ 몇 사람만 국본에 남았고, '상처뿐인 국민운동본부'가 되어버렸다. 뿔뿔이 흩어진 대가는 컸다.  


사실상 군부정권의 연장이라는 참담한 대통령 선거결과였다. 그렇지만 투쟁의 성과인 국민기본권의 확대로 시민적 공간이 열리면서 새롭게 시민사회의 다양한 운동이 나타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쟁취한 현행 헌법의 틀 내에서 시민들은 멈춰있지 않고 가능한 틈새를 찾아 끊임없이 자기성장을 도모해 왔음을 이번 촛불광장에서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억압된 상황 속에서는 문제는 있지만 주요하게 부각되지 않은 ‘가치’,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가 온 거에요. 여성이라고 하는 가치, 환경, 평화·통일, 그 다음에 경제정의와 같은 이런 시민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는 6월항쟁 이후 있었던 많은 문제들과 그것에 대항했던 시민들의 공동의 경험은 누적되었고, 우리는 그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을 학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7년의 6월이, 2002년의 효순·미선이가, 2008년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이, 2015년의 백남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촛불과 탄핵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정치권의 미진한 결정들, 결국 변화는 시민들의 손으로"


동의가 어렵지 않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자각한 대중의 힘, 피플파워(people power)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망라해 역사가 증명해 주는 사실이니 말이다. 다만 그에게 조금 더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1987년 6월을 바탕으로 성장된 시민의 힘으로 故김대중 전 대통령과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이게 나라냐'를 외쳐야만 했느냐는 것이었다. DJ정권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이었고, 참여정부 당시 시민사회수석을 맡았던 그에게 역진한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조금은 묻고 싶었다. 


"헌재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가 기각되어 다시 국정에 복귀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노 대통령께서 몇몇 시민사회 단체인사들을 초치해 간담회를 가졌지요. 그날 저녁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중요하다는 말을 했어요. 왜냐. 제대로 된 변화는 정부, 관료나 국회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시민사회라고 하는 국민, 국민과 동맹을 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게 뭔가 조금 통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양반(故노무현)한테…."  


그때(참여정부) 왜 그러셨어요, 후회되는 것은 없으셨나요, 하는 다음 질문들을 마음 속에 담아뒀지만 결국 묻지는 못했다. '그(청와대) 안에 있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과는 참 많이 다르더라'는 그의 말. '내가 지금까지 내려온 결정들이 모두 미진했던 것만은 분명한데 그게 과연 잘못된 선택이었기 때문일까 혹은 이 역사의 한계였을까'하는 그의 고민. 굳이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밝혀내야 하는 수많은 죽음들, 이미 자살로 종결되어 오로지 가해자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만 남아있거나 아예 관련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국가기관의 현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 속에서 진상규명위원회의 진로를 두고 발생한 동료들 간의 다툼. 어느 가치에 설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을 바꿔도 전문성을 앞세운 관료조직의 관성과 이해관계가 변화를 은근히 가로막거나 정책을 변질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왜 그걸 못했어!, 못한 건 사실인데(웃음), 그럼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지, 하고 생각해보면 참 답이 없는 것도 있어요." 


미진한 선택들이었다는 고백은, 결국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결코 저 위의 권력자가 아닌 내 옆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했다. 의미 있는 변화는 여의도(국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국민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되는 항쟁의 결과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으로서 말이다.         


"그걸 이번에 뒤집어 놓은 건 누구냐, 투표라고 하는 종이 돌을 던져서 국민들이 바꿔놓은 거예요(지난 해 4.13총선). 이 보이지 않는 종이 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행사한 것도 흩어져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었고, 삐뚤빼뚤 이래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는 국회의원들한테 퇴진은 말할 것도 없고 퇴진 안 한다고 하면 그 때는 할 수 없다, 탄핵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선택해야한다, 이렇게 만든 건 광장에 나선 국민들이었다고.."


"잘 늙어가는 충실한 시민적 삶"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바꿔나가는 세상. 말이야 낭만적이지만 그게 쉽나, 생각해보니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원동력을 갖고 있기에 30년, 40년의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켰는지, 30차도 채 안 되는 주말의 촛불집회도 매 주 참가하기 버거운 삶인데 말이다.  


"일단은 이게 뒤에 쫄쫄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어쩌다보니 내가 제일 가운데 있고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선배들은 다 잡혀가고 내가 젤 앞에 있는 거야(웃음)."

 

 


황인성 수원민주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김지혜 바꿈 활동가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다음 질문을 던지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40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현재와 같은 삶을 사실 것이냐 묻자, '지금처럼은 안 살 것 같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샤이'했던 고등학생 황인성은 기자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외교관이 되면 그도 연미복을 입고 파티나 다니는 것이 일인 줄 알았다고. 외교학과에 가고 싶다고 하니 학교에서는 서울대에 안전하게 합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전혀 원치 않는 독어독문학과 원서를 써주셨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시위 같은 것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나 존경할 만한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도시빈민 실태조사를 나갔다가 엄청난 빈부격차와 비인간적인 삶에 분노하면서 주저했던 마음도 잠시, 탁 하고 시작된 운동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관념적인 사명감이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처음부터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순간의 결단을 거쳐 어느새 여기에 와있는 것이라고. 매번 힘든 결단들을 해왔을 그의 젊은 날들이 고되게 느껴지는 찰나에 그가 해준 말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청와대에서 나와서부터 인생관이 달라졌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뭔가 해야 되는 사람, 뭔가 앞장서서 고민을 하고 남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거나 가르쳐야 하거나. 약간 엘리트 의식이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 것들이 오히려 나를 옥죄어 왔다,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생각. 어떤 뭔가 내가 보통사람들보다 조금 더 헌신적이고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이래야 한다는 거, 그건 조금 오만한 생각 같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아주 거대한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가 고루 발전해야 그 힘으로 뭐가 되는 거지. 어떤 특정 집단의 대단한 능력, 의지 이것 가지고 세상이 변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충실한 시민적 삶. 이런 것이 뭘까. 그런 걸 어떻게 할까. 그래서 우리가 21세기에 잘 늙어가는 사람이 되자(웃음), 시민으로서."


무려 4시간동안 나눈 이야기 속에서 무수한 말을 쏟아냈지만 결국 그의 메시지는 하나였다. '충실한 시민적 삶'.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알릴 시간을 벌기위해 학생들이 건물옥상에 건 밧줄에 매달려 소리를 질렀던 시절부터 그의 표현대로 '삐까번쩍'한 2017년의 촛불집회까지, 지난 40년의 역사 속에서 고군분투한 그가 깨닫고 유지한 메시지였다.


1987년의 청년들이 6월민주항쟁으로 갚고자 했던 광주시민, 광주영령에 대한 빚. 지금의 청년이 용산에게, 세월호에게, 백남기 농민에게, 그리고 2017년 촛불에게 진 빚은 또 어떻게 갚아야 할까. 분명 그 답은 황 이사장의 삶처럼 돌고 돌더라도 결국은 ‘충실한 시민적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문 바로가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919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트랜드가 된 시대. 끊임없는 타인과의 부딪힘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혼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고 따듯한 느낌이어서 좋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나는 인권활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NO'를 외치는 사람들


2000년대 초반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한 증권사의 CF 광고가 있었다. 아직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고 '웰빙'이 유행했던 시대일지라도 한 개인이 다수자에 맞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노맨’이 되라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평등을 위해 she/he 대신 성중립대명사 Ze/Xe를 사용하자는 '성중립 언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그녀뿐만 아니라 OO맨, XX녀등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단어에 내제된 성차별적 요소는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사회 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는 법, 제도화 이후의 일이므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차별과 혐오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내가 만난 인권활동가들은 공기와 같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인권 침해 요소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감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수를 향해, 권력과 자본을 향해 ‘NO’를 외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자 ‘YES'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연대하는 따듯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2015> 연구조사는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로 지내온 30대 중반의 활동가들이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에 못 미치는 107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캄캄한 밤 풍경 속 불빛만큼 빚이 있는 시대. 숨만 쉬어도 비용이 지출된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 있는 사회에선 영리가 아닌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라도 풀뿌리 후원금은 단체운영에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를 기조로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권의제를 말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은 1~2명의 상임활동가 또는 비상임 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 영역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이나 귀엽거나 불쌍한 '아이' 또는 '동물'을 콘텐츠로 다루지 않아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빗겨나 있고 이는 곧 자원의 부족함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끝없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래만큼의 지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벼룩시장 할인 또는 소비 없는 삶 등으로 지출을 피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인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경제적 급부를 기대하기보단 경제적인 많은 부분의 포기를 각오해야 한다. 안정적 수입은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설문 응답자의 73% 이상이 중요성을 인정했듯 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치는 활동비는 동수저쯤 돼야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도 활동을 포기하는 일 없이 지속할 가능성을 높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어 떠나가는 이들의 난관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얹는 일 아닐까? 공익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인권

 

"한국은 경제로는 '수'를 받으면서도 삶의 질이나 인권 현실은 우·미·양 사이를 헤매고 있는 극히 모순적인 사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경제 논리가 더욱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인권 논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교양인) 중 「대한민국 인권 지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은 우리 삶이 인권에 의해 보호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인권의 제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오늘 하루 존중받으며 보냈는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것이 한국 인권의 현주소다. 보릿고개를 넘기신 나의 부모님세대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지상과제였다면 비교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린 청년세대인 나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인권공화국을 꿈꾼다. 이 인권공화국으로 가는 길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인권임을 잊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인권의 가치를 실천해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 인권활동가는 토론회 자리에서 청중을 향해 인권운동은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이의 말처럼, 나는 신체의 장기 중 유일하게 '마음이 담겨있는 내장'인 이 심장(心腸)에 인권의 첫 걸음인 인권감수성이 있다 믿는다. 인권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결고리가 지금보다 더 넓고 단단해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헬조선을 리모델링 해볼까요?

2016년 광장의 촛불은 대통령 퇴진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했습닌다.

되돌아보면 역사의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시민은 광장에 나왔지만 그 끝은 패배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기획해보았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의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함께그대] 프로젝트입니다.시민배심단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톡으로 후원하면 무료 후원이 가능합니다! 
꼭 많은 후원 부탁드려요!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도전하는 청년을 응원합니다" 라는 주제로 다음 스토리펀딩을 진행중입니다.

6번째 주인공은 빠흐띠의 권오현 대표입니다.


온라인 플랫폼 유행속에 그걸 진지하게 현실화 시키고 있는 청년.

IT 기술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청년 

각자 자기영역, 자기분야에서 자기만의 촛불을 들고 노력하는

권오현 대표의 스토리펀딩을 응원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6399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박승하(바꿈 청년네트워크)

현재 야권 최다선인 7선 이해찬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상황은 1987년 6월 항쟁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에 준해 당이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 24시간 대기한다는 비상한 마음으로 현 국면을 타개해야 한다." 비장함이 전해진다.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1987년 6월 항쟁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30년 시차를 초월해 2016년 우리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1987년 6월 항쟁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먼저 기억할 대목은 1987년 6월 항쟁은 6월 한 달 사이에 발생한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1980년 광주의 비극 이후 도도히 성장한 민주화 운동의 절정이자 결실이었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눈 정권의 만행은 구전과 기록으로 퍼져나갔고, 광주의 진실을 접한 청년들은 시대적 아픔에 공명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4년 하반기 대학 총학생회가 부활했고, 1985년 2월 총선에서 관제야당 민한당이 몰락하고 김대중과 김영삼이 창당한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신민당은 1986년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을 추진했다. 정치적으로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선명야당이, 사회적으로는 재야와 청년을 중심으로 한 조직운동이, 전두환 정권과 각을 세우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민주화 운동의 성장과 확산을 경계한 전두환 정권의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1985년 민청련 의장 김근태는 남영동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했고,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폭로되었다.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은 물고문 끝에 사망했다.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이 저지른 고문 범죄를 은폐하고 조작했다.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양심적 종교인과 지식인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다. 그러자 전두환은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면서 정권을 연장하려는 꼼수를 획책했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 담긴 헌법 개정 논의를 중단하고, 1988년 2월 자신이 정권을 이양한다는 내용의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1987년 5월 대통령 직선제를 거부한 전두환의 호헌조치에 맞서 야당과 각계 운동단체는 해방 후 최대 규모 연합기구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국민운동본부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적 지도력을 확보하고, 호헌 철폐와 직선제 개헌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대회> 개최를 결정하고 준비했다. 6월 9일 국민대회 출정식에 참여했던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의 최루탄 총에 맞아 쓰러졌다.

엄청난 반발과 저항이 몰아쳤다. 6월 10일 전국 514곳에서 총 50여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한 번 폭발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전국적 규모의 집회가 계속됐다. 도로의 차들은 경적을 울렸고, 거리에는 넥타이 부대가 가세했다. 6월 26일 열린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에는 전국 각지에서 180만 명이 참여했다. 6월 10일 이후 17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두 2천1백45회에 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비상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은 후계자 노태우를 내세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한다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훗날 밝혀졌지만 6∙29 선언은 국면전환을 위해 전두환이 기획하고, 노태우가 실행한 집권세력의 합동 공연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시민들은 6∙29 선언을 정권의 항복으로 받아들였고, 야당은 직선제 이후 전개될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 6월 항쟁의 중심이었던 야당, 청년, 노동자, 시민은 구심을 잃었고 정국의 축은 급속히 재편됐다. 그렇게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다. 결과는 828만 표를 얻은 노태우의 승리였다. 김영삼은 633만 표, 김대중은 611만 표를 얻었다. 민주진영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선거를 마치고 나서야 정권 교체와 시대 교체의 사명을 걷어찬 과오가 보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지금은 2016년이다. 

2016년으로 돌아오자. 지난 11월 5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는 20만 시민이 들어찼다. 시민들은 최순실에게 막강한 권한이 위임되었고, 미르∙K재단의 각종 비리와 유착에 대통령이 관계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성난 민심은 대통령 퇴진과 하야를 외치며 거리를 밝혔다. 대통령 지지율은 조사 이래 최저인 5%로 추락했다. 최순실에게 도움 받은 것을 인정한 첫 번째 사과와 관계단절을 선언한 두 번째 사과가 있었으나 민심을 돌리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병준 교수를 총리로 지명해 반전을 노렸으나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이 부정과 비리에 연루 되었다는 혐의를 벗지 못함으로써 정치적 권위와 권능을 상실했다. 전국 각지 시민들은 물론이고 이재명, 박원순, 안철수 등 야당 소속 정치인들이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47명은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11월 12일 <민중총궐기>와 12일 이후 대응이 주목 받고 있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확고하고, 명분과 이유 또한 확실하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범죄에 대한 책임과 최순실과의 관계가 맞물려 있다. 수사기관이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진실 규명에 편안한 조건에서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하야,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통과해야 하는 탄핵, 2선 퇴진 후 거국내각 구성 등 어떤 방법이 구현되어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국은 점점 엄중해지고 있다. 이해찬 의원 말대로 1987년 6월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앞에서 봤듯이 6월 항쟁은 불완전한, 절반의 시민혁명이었다. 2016년에도 집권세력은 대통령 거취와 무관하게 정국 전환을 시도할 것이고 상대의 실책과 균열을 유도할 것이다. 2016년에 1987년을 대입하려면, 성공과 실패를 분별해 실패를 줄이고 성공을 확대하는 경로를, 변화한 시대적 조건에 맞게 찾아야 한다. 
  
6월항쟁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1987년 6월 항쟁은 ① 정권의 폭력성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 ② 분노와 저항을 조직하여 표현할 수 있는 민주화 운동 그룹이 연합을 통해 일관된 메시지와 행동 전개 (호헌 철폐, 직선제 쟁취) ③ 넥타이 부대 등 중간층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 덕분에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① 정권 폭력 규탄, 호헌 철폐, 직선제 쟁취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고 ② 대선 국면을 맞아 연합이 해체되며, 분열과 반목을 거듭했으며 ③ 넥타이 부대 등 민주화 운동의 주력이 아닌 시민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추상적이고 강경한 이론과 구호에 치우침으로써 전두환이 설계한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보완하고 채워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2016년 한국의 시민들은 ① 박근혜, 최순실, 정유라 등이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축적하고 부정한 방법과 특혜를 활용해 결실을 누려온 것과 대통령의 공적인 권한을 사적으로 나눈 것에 강력한 분노를 공유하고 있으며 ② 최대 규모 연합은 존재하지 않지만, SNS를 통해 메시지와 행동을 조율한다. (#그런데 최순실은?) ③ 그리고 이런 국면을 주시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은 1987년 넥타이 부대에 해당하는 시민들이다. 수십만이 결의했던 운동 단체는 사라졌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사람들과 민주화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세대가 사회를 받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보완하고 채워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11월 12일 <민중총궐기>까지 그리고 최소한 당일에는 시민들이 공유한 분노의 범위에서 이슈를 찾아내어 문제를 제기하자. 기업, 언론, 기타 모든 사회 문제를 11월 12일에 해소하려 애쓰지 말자.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박근혜의 범죄를 가려내는 것과 합당한 징벌을 내리는 것이다.
  
둘째. 박근혜 이후 추진해야 하는 문제와 대안을 시민과 함께 작성하자. 특히 여성․청년․청소년의 참여와 권한을 대폭 확대하자. 과거와 다른 시민 네트워크의 실체는 이들 단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때 조직적 기반을 갖춘 단체 및 정당의 시스템과 역량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광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성취의 기억과 경험이다. 
  
셋째. 연대와 단합은 박근혜 대통령 하야로 인해 60일 안에 선거를 실시할 때, 다른 문제들과 함께 다루어질 수 있다. 연대와 단합을 자주 주장한다고 힘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경직된 메시지와 행동 통일은 활력과 긴장을 떨어뜨린다. 정당과 시민이, 문재인과 박원순이, 다른 의견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시대 과제를 새롭게 쓰는 것이다. 1987년 이후 30년의 과오를 청산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해방과 동시에 강제된 국민의 자리에서 많은 일을 했다. 1987년은 국민에서 시민으로 진화한 첫 관문이었다. 청년 학생의 헌신, 정치 거목과 사회 원로의 무게감이 관문을 통과하는 중심이 되었다. 그 후 30년이 지났다. 시민지성은 고비마다 참여와 투표, 행동으로 현대사의 방향을 잡아줬다. 정치적 리더십 구조와 시민을 중심에 둔 거리와 제도의 교감은 늘 확인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분노와 저항, 청산의 힘이 새누리당 지지자 전반을 향할 이유는 없다. 오늘의 파국에 대한 지지 집단의 회고와 성찰은 여론과 투표를 거쳐 반영될 것이며, 이명박과 박근혜를 안 찍었다고 우월한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보수는 극단적 변태를 마감하고 생존과 회복을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며, 2016년 시민혁명은 이러한 변화를 견인하거나 포용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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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가 317일간의 사투 끝에 결국 사망했다. 그동안 경찰의 과잉진압과 물대포 운용 지침을 지키지 않은 행위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았고, 강신명 경찰청장이 살인미수로 고발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 중이다. 오히려 경찰은 유가족들과 대책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시도하다 법원으로부터 영장 발부를 거부당했음에도 영장 재청구로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 과정에서 사망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과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민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꼭 닮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 황인성(64) 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황 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서 복귀한 뒤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가 2005년 두 농민의 사망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성명이 나올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한 황인성 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 황인성 위원장은 2005년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할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 박영민


"공권력에 의한 사망, 관심과 성의부터 보여야"


-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2005년 전용철, 홍덕표씨가 여의도 시위에서 사망한 당시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다. 우선 시민사회수석실이 어떤 곳이었는지 말해 달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정국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비서실을 재편했다. 기존의 정무수석실과 국민참여수석실을 없애고 시민사회수석실을 신설했다. 시민사회수석 산하에 시민사회비서관실, 사회조정 1비서관실, 사회조정 2비서관실, 사회조정 3비서관실과 치안비서관실 등 5개 비서관실을 두었다. 국회 및 정당 관련 업무는 정무팀으로 축소하여 비서실장실에 배속했다. 첫 시민사회수석으로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청와대를 떠났던 문재인 변호사를 임명했고 내가 후임이었다."


- 시민사회수석실이 상당히 커진 것인데 왜 그런 재편이 있었나?

"알다시피 참여정부 초기에 원전 방폐장, 사패산 터널. 천성상 터널, 화물연대 파업 같은 사회적 갈등이 많았지 않나? 노 대통령은 공공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소하는 문제가 효율적인 정책 추진과 사회의 민주적 성숙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국회와 정당 관련 사안은 열린우리당이 자율적으로 대응하도록 축소했지만, 정책추진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의 요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추진 부처와의 원활한 소통과 조정을 지원해서 일종의 정책고객인 국민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에는 비중을 크게 둔 것 같다."


-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2005년 11월 15일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었나?

"집회해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초기에는 피해발생의 전후 사정이나 직접적 원인과 책임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찰, 농민단체와 야당 사이에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 내에서는 경찰의 자체 진상조사가 있었고, 독립적 국가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됐다."


-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시위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초기 대응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죽었으니까 청와대 비서실 내에서는 사망한 농민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조의를 표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만 해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에서 조화를 보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처리를 주문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공권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인명이 훼손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노력은 진행하더라도 유족과 관계자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조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관심과 성의를 표하고 실질적 대화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 그래서 조화를 보냈나?

"내가 직접 갔다.(황인성 전 수석은 2005년 11월 29일, 고 전용철 씨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유족과 대책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유감을 표하고 진상에 입각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 기자 말) 당시 언론에서는 청와대 수석이 농민들에게 절을 했다고 굉장히 크게 보도했다."


"노 대통령 사과, 모두가 말렸다"


- 2005년 12월 26일 저녁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원회의 결과를 공개하면서 전용철, 홍덕표씨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바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모들의 의견이었나?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는 어렵다. 경찰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소관 부처가 있는데... 시민사회수석으로서도 진상을 숨기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엄정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점에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가지 않았다."


-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었나?

"그렇다. (2005년 12월) 27일 아침에 대통령이 비서실장, 정책실장, 소관 수석인 나를 불러서 농민사망 사태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 참모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만류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각 부처에 직접적인 책임자들도 있었다. 경찰청도 있었고.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는 것은 너무 나가시는 것이라는 신중론이 다수였다."


- 만류에도 강행한 것인가?

"당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따지려면 따져볼 만한 내용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검토할 부분은 있지만 공권력 행사는 엄중한 문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 당시 경찰청의 입장은 어땠나? 반발이 있었을 것 같다. 

"경찰청을 담당하는 수석실이 시민사회수석실로 바뀐 데에는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가장 민생과 밀착해 있는 대민 부서이고, 각종 집회나 시위에 대응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갈등을 올바로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의 사과성명 발표가 확정되자마자 경찰청장에게 전화로 대통령께서 곧 기자회견을 하실 예정이라고 알려주고 이후 대응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해임 요구에 "임기를 보장하기로 한 경찰청장을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결국 12월 29일 스스로 사퇴했다.

"당시 경찰청장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이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정도로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었다고 보지도 않았고, 경찰들의 사기를 생각할 때 대통령의 사과가 과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기자회견 뒤에도 경찰내부에서 뒷말이 나왔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의 사과가 공권력을 행사할 때 요구되는 정당성과 엄정성에 대해 공직사회의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 지나치게 안일해"


▲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대책위와 시민들이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영결식장 입구와 연결 통로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전용철, 홍덕표씨가 사망한 지 정확하게 10년 뒤에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지고 결국 317일 만에 사망했다. 그렇지만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달리 사과가 없다. 어떻게 보고 있나?

"당시 청와대 내부의 논의과정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너무 안일하다. 공권력의 행사와 무관하게 사람이 죽었다면 누가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겠나? 설령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공권력의 행사 과정에 인명피해가 있었다면 같이 아파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 기본이다."


- 만일 지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경찰은 물대포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이라고 항변하면서 죽음에 이른 건 본인(고 백남기씨-기자 말)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를 밝히는 것은 그 과정대로 하더라도 유감을 표하고 공권력 행사에 과잉이나 불법이 없었는지는 자체조사해서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는 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면 그런 조언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일 년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가족이 원치 않는데도 시신까지 부검하려고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민간단체가 행사하는 물리력과 공권력은 그 성질과 질, 양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다. 공권력 행사는 엄정하게 집행되도록 더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기본적인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결사의 자유다. 그래서 기본권이다. 기본권의 존중을 우선시 하면서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공권력이 우위에 있고, 이것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국민의 권리 행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그래야 갈등으로 인해 부딪쳐도 연성대치가 되지 강성대치로 나아가지 않는다. 강성 대치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희생이 나온다. 연성대치 속에서 갈등조정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 해 고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지 2일이 지난 11월 16일,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미국에서는 (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시위대를) 패 버리지 않느냐.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을 받기도 한다"며 경찰당국을 옹호했다. 2015년 12월 18일, 경찰은 백남기씨가 쓰러진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가 오래 전부터 폭력 집회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기획, 모의한 것이라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여당과 경찰의 초기 대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 발생 42일 만에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고 백남기씨의 317일간의 사투 동안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국민의 인권은 공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대국민 사과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공권력의 행사에 관한 구절은 고 백남기씨의 사망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상식'이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 2005년 12월 27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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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총선 집담회>


“시민의 삶과 지역 시민사회운동,

그리고 2016년 총선”


■ 일시: 2016.1.12.화 오후3시

■ 장소: 대전광역시 NGO 센터



어느새 2016년 총선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정치심판할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아직 크지 않습니다.

바꿈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나누고자 여러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2일(화)에는 대전광역시 NGO센터에서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등지의 지역 시민사회 인사 30명 가량이 모였습니다.

이번 집담회는 대한민국 공동체 운영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각을 공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구상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지지를 부탁 드립니다.



160112_지역사회 총선 집담회_자료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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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장발한 그이의 속사정

[주장]비례대표 축소라니...예술인 복지 전문가 비례대표가 필요합니다

오마이뉴스 2015.09.11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얼마 전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편의상 박 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박 선배는 목 뒤까지 늘어진 까만 생머리를 찰랑이며 나타났습니다. 까맣고 긴 생머리가 마르고 피부가 하얀 선배의 얼굴에 썩 어울려 보였습니다. 작년 겨울에 만나고 올해 들어 처음 보는 거였습니다. 그새 머리를 길렀나 봅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자주 만나던 사이였습니다.


창작지원금 받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박 선배와 저는 사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우리의 후배, 동기, 선배들은 전공과 어울리는 길을 걷거나, 이해되는 정도로 빗겨가거나, 전혀 다른 길을 가되 누가 봐도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 사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취업 이후 바빠진 친구들과는 마음껏 만날 수 없었지만 우리 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우리는 취직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박 선배와 제가 영 놀고먹기만 하는 한심한 종자들은 아닙니다. 박 선배는 연극배우가 되고자 했고 저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뿐입니다만, 우리는 배우가 되고 글쟁이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편의점과 식당, 행사장, 일용직 업무를 위해 써야 했습니다. 우리도 처음엔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처럼 격려와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해, 두해, 시간이 흘러 몇 해가 지나도 변변치 않은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니 우리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 한심한 눈초리로 바뀌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상한 것은, 박 선배가 연극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고 제가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음에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자질에 대한 의심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일용직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말하자면 예술을 온전한 직업의 형태로, 그러니까 직업의 사전적 풀이에 따라, 온전히 생계를 유지하는 데 써먹고 있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 선배와 저는 생계와 작업 두 상황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아슬아슬 타며 지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생계 유지도, 연기도, 글쓰기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요. 그리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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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2011년 11월,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혜택은 포함되지 않았고 산재보험은 가입이 가능하지만 예술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예술인 복지법'을 통해 2013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1인당 300만 원씩 3개월간 창작지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원대상으로 뽑히는 게 까다로워 대상이 되더라도 지원금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매우 번거롭게 되어 있습니다. 

예술인 본인을 포함해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소득 수준까지 증명해야 하는 터라 혹자는 얼마나 가난한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절차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지원금을 주는 정부도 꽤나 떨떠름한가 봅니다. 올해는 복지재단이 신청한 예산을 지난 6월까지 편성하지 않고 있다가 7월 고 판영진, 고 김운하 배우님의 잇따른 사망 이후 부랴부랴 집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받기도 싫고 주기도 싫은 이름만 좋은 창작지원금입니다.

한여름에 장발한 선배, 사정 듣고 나니

기사 관련 사진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진후 원내대표 등 대표단이 지난 1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비례대표 축소 저지, 3당 회담 수용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 남소연


박 선배의 장발은 배역을 위해 일부러 기른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쑥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발할 돈이 없다고 말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일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낮에는 무대와 오디션에 매달리느라 야간 편의점 일을 찾았는데, 그나마도 주인이 인건비를 아낀다고 그만 나오라 했답니다. 

먹을 돈과 차비는 쥐고 있어도 이발할 돈은 없었던 겁니다. 박 선배를 만난 그날은 하필이면 늦더위가 맵게 달아오른 날이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그의 머리칼 사이로 벌겋게 열이 오른 목덜미가 보였습니다.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요새 제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뭐냐고 말입니다. 

그의 대답은,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거였습니다. 아름다운 연기로 아름다운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뒷목에 붙은 머리칼을 털며 더위를 몰아내는 이 남자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작지원금, 차라리 안 받는 것이 속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한테 무슨 돈까지 주느냐'는 불편한 시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인을 근로자나 노동자로 봐주는 시선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써 노동하고 진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있습니다. 

요즘 비례대표와 관련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정치권이 너무 걱정스러운 것은 비례대표제를 줄인다는 소식입니다. 비례를 줄이다니요? 세상에 이렇게 저와 제 선배처럼 힘들고 괴로운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역을 위해서 일하는 의원을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예술인을 이해하고 대신하여 제대로 된 법안을 발의하는 대표자가 선출되려면 비례대표제는 확대되어야 합니다. 

비례대표제 확대로 예술인 복지 전문가가 당선될 수 있다면, 예술인들도 사회의 건강과 선을 위해 '일하는 시민'으로 받아 주십사 부탁드리는 것이, 이들을 사회보장 체계에 편입하고 제도적인 지원 체계를 행정이 아닌 현장중심으로 만들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보며 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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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대응 잘하던 한국, 메르스엔 왜 속수무책?
중국이 본받던 한국, 왜 이렇게 됐을까
프레시안 2015.06.03.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설립준비위원, [알권리연구소] 소장


 중동에서 발병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국에서 크게 유행할 조짐을 보인다. 수많은 시민이 메르스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부의 부실하고 무원칙한 대응에 분노하고 있다. 서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대한민국 수도가 맞는지 답답하기까지 하다.

 지난 2002년 11월 중국 남부 광둥(廣東) 성에서 발생, 홍콩을 거쳐 세계로 퍼진 전염병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대응해 한국 정부가 보여줬던 기민한 모습과는 정반대다. 당시 한국 정부는 사스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국내에서는 사스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세계 보건기구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모범적인 전염병 방역 국가였다.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사스의 발생지로 지목받았던 중국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필자는 2010년 아시아재단과 베이징대학교 '공공참여 연구와 지지센터'(공공참여센터)의 초청으로 베이징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인민의 알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정보공개청구제도(정보공개법)를 도입했는데, 필자에게 이 법의 운영과정 전반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다. 

 그때 공공참여센터 담당자들과 중국의 정보공개제도 도입 과정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놀라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중국 공산당과 인민은 2003년 당시 중국 관료들이 사스 대응 과정에서 보인 무능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사스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대책 하나를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 관료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것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참고 대상이 한국 정부였다. 사스 발발 당시 한국 관료들의 신속하고 전문적인 대응을 보면서, 중국 관료와 한국 관료의 차이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 바로 정보공개법의 도입 여부였다. 

▲ '3차 감염'이 나오면서 메르스 감염자 세계 3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한 한국.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지난 1998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관료들이 생산한 정보가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시민이 정보공개 청구권을 가짐에 따라 공공기관의 투명한 행정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공무원은 시민과의 접촉면이 늘어났고, 인민 위에서 군림하려고 했던 중국 관료들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공공참여센터 담당자들의 설명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중국도 원자바오 총리를 중심으로 정보공개법의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정보공개제도 선진국 사례들을 꾸준히 모으고 조언을 받으면서 중국은 정보공개제도 도입을 결국 이루어냈다. 

 이로써 2008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거의 모든 공공기관의 재정, 예산, 결산 등 통계자료와 행정사업, 공공위생과 식·의약품 안전 등에 관한 긴급사항, 토지 개발, 환경 규제 등의 정보가 공개 대상이 되었다. 또한, 중국 인민과 기관이 관련 정보를 청구하면 행정기관은 15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필자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어떤 정보의 공개를 청구하는지, 그 청구가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담당자들은 정보공개제도로 인한 한국의 변화상에 대해 매우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고, 한국에서 일어난 정보공개운동을 중국에서도 펼쳐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 결과 2015년 현재까지 중국의 정보공개제도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메르스 관찰 대상자만 1000명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각종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학교는 휴교에 들어가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12년 전과 비교하면 무엇이 어떻게 변했기에 한국 관료들이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바뀐 것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관료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세월호 사건 이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국민안전처의 담당자가 "300만 명이 메르스에 감염되어야 비상상황"이라고 발언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가에 큰 사태가 발생할수록 대통령과 정치권은 책임지는 리더십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시스템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예산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한국 정부의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12년 전 사스 사태를 겪고 철저히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해왔음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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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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