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


나는 환경운동가로 살고 있다.


어쩌다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흘러가는 대로 걸어온 다양한 삶들이 나를 환경운동가의 길로 이끌었던 것 같다. 우습게도 내 꿈은 12년의 학업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림쟁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중산층의 탈을 쓴 흙수저에게는 그림쟁이도 과분한 꿈이었다. 수출용 아동복 포장, 전단지, 문구점, 사무보조, 모형회사 아르바이트 및 학교 근로봉사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대학을 그럭저럭 졸업했다. 


그리고 88만원세대에서 얻은 첫 직장은 어린이집 보조교사였다. 보조교사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교육학 공부에 3년을 투자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하며 접하게 된 평생교육과 환경교육 분야는 나를 시민사회단체로 이끌었다. 여러 가지에 호기심이 많고 배우고자하는 욕구, 정의감이 있는 성격인데다 이전까지 접해온 다양한 경험들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유용한 밑거름이 되었다.


공부를 마친 20대 중반에 2년반 동안 소비자단체에서 환경과 농업파트를 담당했고, 20대 말미에는 지역사회교육운동을 했다. 30대 들어서 시작하여 현재 30대 중반인 나는 6년째 세상에서 말하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아직도 환경문제와 환경권을 주장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봐도 우리 생활 속에 환경 문제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만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배부른 소리’로 넘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환경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이상 노동권, 인권, 성차별, 복지 등 각종 문제들 가운데 삶의 우선순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라는 삶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얻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 환경운동을 하며 자연을 접하고 많은 사람을 대하며 내성적인 성격도 외향적인 성격으로 발전했다. 장미, 백합 같은 원예종의 꽃만 알던 내게 들판이나 길가에 핀 손톱보다도 작은 꽃들은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2017년은 내가 시민사회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10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나는 이 일을 하게 된 것에 만족해하며 감사하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근래 가장 핵심 키워드는 단연코 ‘생물다양성’일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단순히 멸종위기에 처한 어떤 생물종의 보호를 넘어서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생물종류, 개체수, 서식지 보전 등 생물종을 둘러싼 생태계 환경 전반이 하나의 체계로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 시대는 모두가 같은 길을 동경하며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는 사회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환경운동가는 생물다양성의 개념처럼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한 축을 이루는 사람이다. 환경운동가는 개발만이 경제성장이라 부르짖는 사회 가운데 보전도 발전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이다. 넓은 길만 보며 획일화된 삶을 선택하기보다 좁은 길인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선배활동가와 동료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또한 지구의 파수꾼이자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는 미래 환경운동가로 살아가고 있을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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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해?” “요즘? 동네에서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고 있지” “일은 안해?” “일? 지금 하고 있는 게 일인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장 안 구하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5년간 다니던 직장을 작년에 그만뒀다. 지역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나름 인정도 받았고 생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이 내가 평생을 걸고 해야할만한 것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나가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마냥 생각 없이 그만둔 건 아니었다. 전부터 몸담고 있었던 지역 청년공동체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소통, 공감, 관계회복을 위해 시작했던 사람도서관 사업부터 마을라디오, 청소년교육, 청년공유공간 조성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청년문제해결을 위한 법제도 마련을 목적으로 지역 내 청년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기본조례 제정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해를 정신없이 보내고 난 뒤 다시금 나 자신에게 질문이 생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러한 고민은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다른 청년활동가들 그리고 청년활동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활동일까 노동일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청년활동가’


청년활동가. 익숙하면서도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사회운동가 혹은 특정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 정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는 청년활동가 담론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청년활동가라고 함은 기존의 활동가 범위를 넘어 청년 사회적기업가, 사회혁신가, 소셜디자이너, 마을활동가 등 ‘제 3의 영역’에서 종사하는 청년집단까지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여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또한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운동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되면서도 경제적 생존이 가능한 일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 실패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활동 전반을 포괄한다. 요컨대 사회적경제, 사회혁신활동, 공동체 복원과 같은 일들도 이러한 사회적 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년문제 연구자 류연미는 “노동과 운동이 공존하는 행위, 환언하면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사회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행위, 그리고 때로는 노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소규모 공동체를 바탕으로 사회적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들이 모두 느슨하게 활동 내지 사회적 활동이라 불리고 있다”고 정의한다. 


청년활동가라는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 청년허브의 탄생시점부터라고 볼 수 있다. 청년허브는 공식적으로는 청년일자리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위탁기구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 문제를 넘어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과 자발적 공동체를 지원하고 청년 개개인을 적극적인 시민이자 혁신적 활동가로 양성하는 공간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2016년까지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은 청년활동가단체의 수는 총 842곳. 이들은 사회활동, 문화기획, 업사이클링, 생태환경, 학습세미나, IT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위한 청년활동가들의 움직임은 서울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에서도 2016년 경기청년네트워크라는 모임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청년활동가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전주, 순천,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도 청년활동가들이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우리의 일은 활동인가 노동인가


“노동이냐 활동이냐 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청년들이 공적인 돈을 받아 활동하는데, 사회적으로 볼 때는 뭘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2014년 3월 26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청년의 일, 노동인가 활동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기성 시민단체활동가와 청년활동가, 청년논객 등이 참석한 이날 자리에서는 ‘활동’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놓고 전통적 시민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기성 활동가들과 자율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청년 활동가간의 간극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특히 패널로 참석한 한 청년활동가는 청년활동에서 느끼는 활동-노동에 대한 고민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의 활동은 꼭 가사노동하고 비슷하다. 밖에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필요한 일을 한다. 하지만 공적자금, 정책자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활동, 노동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2016년 10월 서울시 청년주간프로그램의 한 섹션으로 진행된 ‘우리 활동-노동자: 노동과 활동의 영원한 갈등에 대해’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은 이어졌다. “어떻게 한 줄로 나의 일을 소개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이라는 활동가들은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일상의 행복을 갉아먹지 않기를 바랬다. 활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이지만 이들은 종종 노동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 사정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청년활동가 개인 혹은 소수가 모여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어떠한 대가 없이 오히려 자비를 들여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일부 청년활동가의 경우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이나 공사장 잡부, 단기알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보전을 위해 일반기업체나 기관에 입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아직까지 청년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보기보다 사회에 헌신하는 봉사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지자체로 내려올수록 더 심화된다). 요컨대 이는 청년활동가의 노동권 문제와 연결된다.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된다면 청년활동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나의 활동이 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나를 소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경험과 성장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사회가 제공해줘야 한다. 


지속가능한 청년활동을 위해 


다시 처음 제기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들의 활동은 노동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자부심만으로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청년들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강력한 내적동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외적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 소진되는 것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청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허브를 통해 청년참, 청년활과 같은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자리정책의 일환으로 청년활동가양성사업 또한 펼쳐나가고 있다. 서울시 청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또한 마찬가지다. 포퓰리즘 논쟁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 사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기존의 실업정책과는 달리 자율적인 사회활동을 지향하는 청년들 또한 제도적 지원망에 포섭한다는 점에 있다. 


경기도 또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을공동체활동가 인증제 도입을 통해 청년활동가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또한 뷰티풀펠로우 방식의 지역 청년활동가들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청년활동가의 지속가능한 지역혁신활동 보장방안 제안’도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는 공적지원이 끊길 경우 자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청년활동은 독일의 미래학자 울리히 벡이 이야기했던 ‘시민노동’의 개념과도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공적 서비스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적노동의 속성이 존재하지만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작동하는 정부 ‘외부’의 공적 노동이란 점에서 전통적인 공적 노동과도 다르다. 또한 이 공적 노동은 능동적인 시민의 자율성 곧 ‘자율활동’의 속성을 요구하고 그에 기반을 둘 때,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자율활동과 공적노동이 중첩된 새로운 범주인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청년활동가는 일차적으로 공적서비스의 단순한 수요자의 위치를 넘어 공공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지식생산자로 참여하고 이차적으론 자신이 제안한 공공정책모델의 혁신경영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즉 정책수요자인 시민이면서도 시민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종의 ‘시민노동’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노동의 출현은 역설적으로 노동사회의 위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청년활동가라는 새로운 집단이 장기화된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 여건과 이에 대응하는 청년주체들의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쉽게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이는 곧 활동-노동을 둘러싼 이들의 고민지점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시민노동의 영역이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문제는 향후 몇 년 안에 한국사회의 주요 노동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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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을 왜 시작했는가?

더 플랜B 2015.4.5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준비위원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면서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주변에 많은 활동가들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스멀스멀 용솟음 치고 있는 방사능 걱정으로 한숨 짓기 바빴다.

반면 일반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미국 쪽으로 갈 것이라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웃던 친구가 있었다. 너무 기가차서 각종 수산물과 공산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으니,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 친구는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흉측한 괴 생명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이렇게 되냐며 나에게 묻곤 했다.

당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우리 활동가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 운동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핵발전소 및 방사능의 각종 어려운 용어는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 우리가 직접 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쓰면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3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핵발전소 문제 및 방사능 문제를 인포 그래픽으로 정리한 ‘방사능 와치(http://www.nukeknock.net)’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전문가들과 홍익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도움을 얻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환경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다. 사이트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 사이트의 개설과 동시에 트래픽량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페이지뷰가 800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경험은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방사능와치에 올라와있는 인포그래픽

그러나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자고 했다. 자료를 찾을수록 엄청난 비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선박들의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려주었던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속출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서는 2010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생산한 보고서에 해양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하고, 안전관리매뉴얼의 분량이 많으며, 심지어 선원의 나이가 많고 선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4년이나 방치해 둔 것이다.

해양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목포여객터미널에 12척의 배를 2시간 20분 동안 점검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었다. 한 척당 13분이다.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할 시간으로 선박을 검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자신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매뉴얼에는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큰 재난사고가 나면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언론의 경쟁적 취재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를 미리 발견해 시민들과 소통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이런 자료들은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도,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자료들,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향후 시민운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선 기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를 살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결과물들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웹툰으로 제작된 미생, 송곳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또 다른 결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일어날 사고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용역서, 학계 논문, 통계, 빅데이터 등을 찾으면서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핵발전소 등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위험 예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출처 : The Library by Zhu, on Flickr)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 이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인포그래픽, 웹툰, 카드뉴스, 동영상 등으로 가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을 찾아서 공개할 예정이다. ‘바꿈’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 복지공동체, 안전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최대한 쉽게 가공해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컨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사회의 부패하고 썩은 곳을 지적하는 내용은 잘 찾을 수 없다.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반면에 구석구석 시민들을 위해 훌륭한 컨텐츠를 만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내용의 전문성과 딱딱함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꿈’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향후 ‘바꿈’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창립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나조차도 기대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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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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