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여러 논의와 쟁점을 통해 대안을 고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에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통일과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진보-보수 청년들이 각자가 상상하는 통일은?

신정현 :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면서 분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구하고 싶어 북한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더불어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고양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대연 : 아르헨티나에서 살다 왔다. 그곳에서 본 북한의 여러 도발은 한 때 성장가도를 달린 남미 여러 국가들의 몰락과 복합적으로 비교되며 자연스럽게 통일·외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외무고시를 준비중이며 바른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수현 : 대학을 다니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여러 진보적 의제들이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걸 느꼈다. 그런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통일경제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초롱 : 테러리즘과 안보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연구에 대한 흥미로 이어져 북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현재는 ‘북한의 투자 위험도 분석’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다.


북핵문제, 미중패권 경쟁에 맞춰야 VS 우리 주도로 풀어내야

이대연 : 애초에 북한이 왜 평화의 대상인지, 통일의 대상인지 의문시 된다. 북한은 김씨 일가가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국가다. 다만 우리 머리 위에 핵과 도발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지, 굳이 통일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

김수현 : 북한과 우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우리 입장에서 북핵이 큰 위협이듯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미군사훈련이 큰 위협일 수 있다. 지금 남북은 전쟁의 위협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이대연 :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한반도 전쟁 위협을 줄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북한이 우리하고 대화하고 교류한다고 해서 도발을 멈추겟는가. 동북아 정세는 미-중 패권경쟁의 큰 측면에서 봐야지,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남북문제를 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선제적 대화 제의와 남북교류는 자칫 호구 잡혀, 넘겨줄 건 다 넘겨주고 얻는 건 아무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본다. 

신정현 : 우선 남북관계가 미중간의 패권관계로만 정의되는 것에 반대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풀어낸 것은 우리 정부였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도발이이라는 액션에 우리 정부가 제재하는 리액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액션하고 북한이 리액션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도 초기 2년은 북한에서 흡수통일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6.15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까지 이어졌다. 특히 개성공단은 북한 군부 입장에서는 몇 개 사단이 후방으로 밀리는 치명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주도적 액션에 북한이 리액션한 것이다. 미중패권 경쟁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북정책 북핵문제 초래 VS 이명박-박근혜 대북제재 아무 효과 없어

이대연 : 우리가 먼저 액션을 하고 리액션을 요구하는 건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우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을 가지게 되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게 자그마치 1994년부터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핵무기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던 만큼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정현 : 먼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핵개발이 진행되었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또한 대북재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고 대외(대중)무역이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자료와 탈북민들의 증언들은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지난 9년의 대북 제재 기간 동안 우리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초롱 : 금강산관광의 수입이 어디로 갔는가. 또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받을 수 있는 수입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많은 돈이 당으로 가고, 김씨 일가에 호주머니로 간 건 사실이지 않은가?

신정현 : 그렇다면 남한에서 돈 쓰면 그게 문재인 돈 줄이 되는가. 북한의 경제 규모 대비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북한이 개성공단 하나로, 금강산관광 하나로 먹고 사는 게 아니지 않는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가지고 북한의 핵무기와 도발의 근거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이 매우 문제 있는 발언이다.


인도적지원, 더 이상 퍼주기 안되 VS 상호 호혜적으로 가야

이초롱 :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에 대해 막무가내식 퍼주기를 한 건 사실로 봐야하지 않은가? 그리고 북한은 그걸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봐야한다.

신정현 : 도대체 어떤점이 막무가내인가?

이대연 : 북한 정권이 대북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한 것이 바로 막무가내다. 북한 국민들을 살리라고 준 돈이 그리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모니터링 없는 대북지원은 그 금액이 100원이건, 1,000원이건 문제는 문제인 것이다.  

신정현 : 그렇다면 지금 대북지원을 하고 있는 EU나 국제기구들도 다 퍼줬다고 설명할 것인가. 물론 모니터링이 안 되는 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대 국가의 관계에서 그 나라의 자금흐름을 샅샅이 보고 운반상황까지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국가간 인도적 지원에 있어 부적절한 개입이며 남북 간의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다. 그래서 모기 퇴치나 개성공단 같은 상호호혜적인 방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교류 중단으로 모든 대화채널이 막혔다. 판문점에서 소리치고 대화하는 게 한반도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야한다.

이초롱 :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이야기를 하면서 반대로 연평도 포격, 북한의 여러 도발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대화채널을 가지는 건 중요하지만 그 채널을 가지고자 퍼주기식으로 가는 건 반대한다. 무엇보다 대화는 대화대로 하지만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하드파워도 당연히 필요한데 너무 소프트파워만 강조하는 것 아닌가?


남북경협, 북핵으로 이어질 가능성 우려 VS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단

김수현 :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라면 오히려 정치·군사적 접근 보다는 경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개성공단이다. 북핵문제는 이미 한반도와 여러 주변국의 복합적 요인으로 결부되어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은 상대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충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남북은 아주 특수한 관계이고 우리는 서로 접점을 늘려가며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관점에서 경협사업은 꼭 필요하다. 

이대연 : 남북경협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4대강 사업도 5년간 22조를 썼다. 그럼 1년에 4-5조원 꼴이고,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단순히 350-400조원으로 잡으면 1년 예산에 4대강 사업은 고작 1-2%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대도 이 나라 전체가 난리였고 모든 건설사가 명운을 걸 정도로 큰 사업이었다. 이처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이 북한에 1-2% 영향만 줘도 정말 크게 영향을 주는것이다. 그런 사업들이 지금 북한 자금줄로 들어가는 건 분명한데 언제까지 무책임하게 북핵문제를 대해야 하는가?

신정현 : 북한이 개성공단이 없었으면 핵개발을 안했을까? 아니다. 개성공단 유무를 떠나 북한은 체재의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마치 개성공단 때문에 빚어진 것처럼 말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저렴한 노동력과 근접성으로 우리 기업과 원청업체까지 많은 이익을 준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미중구도 속 하드파워 보여줘야 VS 남북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던져야

이대연 : 김대중 정부에서 우리 역할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중국이 패권 국가로서 아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후로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었다고 볼 때 김대중 정부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 동북아 균형자론이 국제사회 외면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한반도 운전대를 이야기하는 것 역시 미중 패권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신정현 : 그렇지 않다. 물론 남한이 결정자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조정자 역할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할 첫 번째 역할은 바로 남북관계 회복을 기축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다. 적극적인 남북대화 재개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통해 상호 조건을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대연 :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필요한건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확실하게 제재 하는 것이다. 중국에 한미일 삼각동맹이나 사드 등을 협상 카드로 내세워 북한을 더 강하게 제재하도록 유도해야한다. 그래야만 오히려 제재 끝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로 나올 것이다.

김수현 :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해도 개성공단으로 협상했는데 지금은 개성공단마저 없어지니 서로 주고 받을 카드가 없어졌기 떄문이다. 이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해온 대북제재로는 북한의 태도 변화도, 북핵문제도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에서 첫 번째 할 일은 바로 북한과 대화 창구를 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첨예한 부분이 남북관계와 통일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로서 이런 대립과 갈등의 잔재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지만 함께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리 사회 여러 쟁점들과 의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면서 대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이런 기획을 지속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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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망했다? 그럼 89석은 뭔가

정치공학만 난무, 시대정신 논쟁은 실종

2016.4.1. 오마이뉴스


손우정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현수막이 30일 오후 서울 노원역 인근에 나란히 걸려 있다.

ⓒ 남소연


20대 총선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올랐다. 각 당은 말 많았던 공천을 마무리하고 승리를 위해 질주하고 있다. 판세를 점치는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관전 포인트는 새누리당이 개헌 저지선을 돌파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 이후 노골적인 민주주의 퇴행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한국사회가 격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은 당연지사다. 


예정된 듯 보이는 패배 앞에 그 정도를 축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야권에서는 슬금슬금 후보 단일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중앙당 차원의 야권연대는 물 건너 간 지 오래지만, 지역에서 개별 후보 차원으로 진행되는 단일화 논의는 급물살이다. 이미 몇몇 지역에서 '야권 단일후보'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만큼 유권자들이 주변화 된 총선도 드물다. 루소는 자유민주주의 대의제 하에서 국민은 선거 때만 주인이 된다고 역설했지만, 20대 총선에서 국민은 선거를 앞두고서도 주인행세를 못하고 있다. 선거를 둘러싼 모든 이슈의 초점이 계파갈등, 총선갈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선거를 앞둔 야권연대 논의도 철저한 선거공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은 이미 망했다"는 냉소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이런 식으로 흘러 보내도 좋은 것인가? 


지금은 진보도 퇴행도 가능한 시대정신의 불안정한 각축기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까? 또 어디로 가야 할 것일까? 이런 질문은 항상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가 또 없다. 지금은 우리가 이제까지 지내온 시간과 다른, 새로운 어떤 체제를 예고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존재한다. 흔히 1987년 헌법개정으로 촉발된 정치체제의 변화와 함께 한국사회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 '87년체제'라고 보는 입장도 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체제인 '97년체제'로 보기도 한다. 그 외 여전히 53년체제라는 주장과 새로운 08년체제라는 주장 등 현시기를 규정하는 다양한 논의가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활발히 일어났다. 


이런 다양한 주장 중 무엇이 타당한지를 따질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시기가 생명을 다한 기존의 체제를 넘어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1987년 이후 우리의 삶과 태도를 강하게 규정했던 요인들은 모두 그 정당성을 상실했다. 뿌리 깊은 분단체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으로 흔들렸으며, 무한경쟁을 모토로 한 신자유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부터 마지막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1987년 개헌의 최대 성과였던 자유민주주의적 대의질서 역시 마찬가지다. 체육관에서 뽑던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것이 시대과제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위임자와 수임자의 질적 괴리,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의 한계 역시 이미 드러났다. 국회는 국민들의 신뢰를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은 87년 정치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기존 시스템의 한계가 자동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명을 다한 이 낡은 체제와 완전히 작별하지 못했다. 낡은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은 출현하지 않는 지적 방황과 혼란의 시기는 2008년부터 계속 진행 중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과 방향은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그 방향은 마치 시계추가 좌우를 왕복하듯 87년 이전 시대로의 퇴행을 향해가기도 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향하기도 한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보다 진보적인 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할 듯 보였던 시계추는 현 정부 들어 다시 오른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소위 '민주화' 이전처럼 국가의 감시와 통제는 강화되고 있으며,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시도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의 민주적 성과가 아무리 보잘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노골적인 퇴행 앞에서도 '스톱'을 외치는 목소리조차 점차 작아지고 있다. 문제제기 수준의 이견이 '배신의 정치'라는 수식어 속에, 모호한 총선승리의 구호 속에 과감히 내쳐지고 있는 지금, 정치적 퇴행은 분명한 현상이다. 


의석이 없으면 진보할 수 없는가? 


지금의 시대가 진보도, 퇴행도 가능한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불과 몇 해 전의 새로운 장밋빛 전망도, 지금의 퇴행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지금이 퇴행기라면 진보의 공간도 있었다. 알다시피 2008년 촛불은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구현하자는 집단적 움직임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공간은 존재하는데 말문을 닫아버린 야권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퇴행을 막기 위해, 더 나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힘을 합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낮아졌다. 그나마 2008년 이후에는 가치에 기초한 단일화를 통해 새시대의 비전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철저히 선거공학적인 판단만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의 상황은 2012년 19대 총선의 분위기와 무척이나 다르다. 오히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분노의 심판론이 몰아쳤던 17대 총선 이후, 뉴라이트의 등장과 북핵 문제의 확산 등 전사회적인 보수화 바람이 불어 닥친 후에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과 유사하다. 당시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일군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153석을 얻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152석보다 단 한 석만 많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달랐다.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이 18석을 얻었고, 친박연대가 14석을 얻었다. 여기에 대부분 보수성향이었던 무소속까지 포함하면 보수진영의 의석수는 최대 210석에 달했다. 반면, 당시 더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이 81석, 창조한국당 3석, 민주노동당 5석 등 진보·개혁 진영의 의석수는 모두 합쳐도 89석에 지나지 않았다.


▲ 2008년 18대 총선 결과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보수진영은 최대 210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반면, 진보개혁적야권은 89석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이 127석을 얻은 19대 국회가 2008년 이후 야당보다 더 잘 싸웠다는 근거는 없다. 2008년 이후 사회적 진보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왔다.

ⓒ 손우정


2012년 총선에서 제1야당이 127석을 얻었고, 지금은 국민의당과 분당했지만 그래도 107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반이 아니라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변명이 사실이라면, 2008년 총선 이후 2012년까지의 시기는 한국 정치 최대 암흑기여야 했다. 그러나 현실이 그랬는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촛불의 등장 이후, 오히려 죽을 쑤던 야권은 생기를 얻었다. 야권연대도 단지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갔다. 시민사회까지 적극적으로 결합해 야권연대를 추진했던 2010년 6.2지방선거에서는 각 중앙당 차원의 야권연대가 무산된 이후, 개별 후보 간 단일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당시 광범위하게 '반MB연대'(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가 제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후보단일화에 머물지 않았다. 내용 상의 가치연대를 추진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것이 이른바 '공동정부 전술'이었다.


모든 야당이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서울의 경우 서대문, 노원, 강서, 동대문, 성북구에서 후보단일화와 공동정부를 위한 공동정책합의서를 도출했고, 경기도에서는 고양, 부천, 성남, 수원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졌다. 강원도, 경상남도, 대전시에서도 후보단일화와 지방공동정부, 공동 정책이 합의되었다.


물론 공동정부 구성과 합의된 진보적 의제가 선거 이후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소한 당시에 추진된 후보단일화가 '묻지마 단일화'거나 정치공학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이 단일화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비록 추상적이지만 지금의 낡은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에 진행된 단일화 논의에는 '공동정책합의문'도 포함되었다. 그 합의를 얼마나 지켰는지와는 별개로, 최소한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가치 기반의 연대가 추진되었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의 성과는 지방선거 이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등으로 나타났고 최소한 '형식적'일지라도 여당 후보의 대선공약에도 포함되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권력의지'는 없고 '권력욕'만 있는가


총선을 앞두고 현재 제기되고 있는 후보별 단일화 움직임에 대해 재를 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난 3년간 집권여당이 보인 퇴행을 지켜보노라면, 그들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시계추를 멈춰 세우는 것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울며 겨자먹기'로 사태를 관망하기에는 지금의 시점이 너무나 엄중하다. 선거공학에만 빠져 있는 야당의 모습에서 '권력의지'가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권력의지를 '집권을 향한 열망'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니체가 말했던 '권력의지'는 집권이 아니라 '새로움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새로움을 구현하지 못하는 집권 열망은 권력의지가 아니라 권력욕과 다르지 않다. 이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 최악을 저지하기 위해 차악이라도 택하라는 오래된 정치공학적 산물은 아직도 분명히 존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선거에서,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가 '다시 2012년 19대 총선 직후 정도'라면, 그래서 기껏해야 19대 국회 기간의 모습들의 반복만이 예상된다면  그래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되겠는가?


단지 선거 결과, 의석 수 몇 개에 집착하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시야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엄중한 상황이다. 총선 결과는 단지 의석수 몇 개로 결론 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거대한 사회변화를 이루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실망감이 큰 이번 총선이라 할지라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다. 


또 하나.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국민이다. 2008년 총선에서 야권의 참혹한 패배 뒤에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긍정적 방향으로 이끈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 힘이었다. 기성정당에 실망했다고 뒷짐 지고 냉소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찾아보면, 여전히 국민이 할 일은 많고 그 힘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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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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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

[토론회]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시민사회의 대응

민중의 소리 2016.2.1. 이정무 기자



28일 열린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참여적 지식인들의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정치학) 교수의 발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럼 이제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 나치의 쿠데타, 아니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까요?”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의 베를린 풍경을 묘사한 소설의 한 대목이다. 


물론 이 교수가 30년대 독일의 상황과 지금의 한국사회를 1대1로 비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을 한국으로 바꿔서 “그럼 이제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시민사회의 대응 토론회에서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점진 쿠데타(creeping coup d'état)

이 교수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점진 쿠데타(creeping coup d'état)’로 설명한다. 이 개념은 마치 쿠데타처럼 1987년 이후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지만, 이를 군사정변 대신 선거절차를 통해 정당화하고 있는 정권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다. 

이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노태우-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보수정권이다. 그러나 노태우-김영삼 정부가 1987년 이후의 흐름을 역전시키는 대신 수용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했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다만 쿠데타처럼 급진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를 중단시킬 수 없으니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질적 전환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처럼 “공동체의 위기의식이 심화되지만 이러한 위기의식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바꿔낼 수 있다면 이러한 시도는 성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야권만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도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 보수진영의 ‘위기’론 뒤에는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roll-back)’ 전략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을 단순히 역주행이나 보수와 진보 사이의 선거를 통한 정권 주고받기의 과정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올해가 역주행이 임계점을 넘어 ‘영구집권’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 민주노총에 대한 소요죄 적용 시도, 국정원의 정치 도구화, 테러방지법 추진 같은 현상을 일회적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1987년의 6월항쟁을 통해 정립된 거버넌스가 ‘민주주의’와 이를 제약하는 ‘분단체제’의 타협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7년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국가운영의 원칙으로 되었지만, 국가보안법처럼 이에 반하는 요소들이 뒷문으로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보수 기득권세력에게 불편하지만 참을 만 했던 이런 ‘예외상태’는 김대중 정부의 남북화해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보수세력내에서는 이들을 ‘종북’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의 정치적 생존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롤백(roll-back)’ 전략의 첫번째 성과였던 이명박 정부는 그렇기에 노태우-김영삼 정부와는 다른 성격을 띠게된다. 남북관계에 대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앞선 보수정부들과 다른 것도 당연한 셈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롤백 시도는 촛불시위와 2010년 지방선거(천안함 침몰 직후 진행된!)에서의 패배 등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승리한 보수세력은 그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롤백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 - 이제는 점진적 쿠데타라고 부를 - 이라는 주장이다.

무능과 무위:박근혜노믹스의 얼굴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시민사회의 대응 토론회에서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발제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두번째 발표를 맡은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현재 상황을 2007~8년의 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국면으로 분석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나름대로 목표는 잘 세웠지만, 실제 하는 일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과 ‘무위’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원은 2007년 이후 위기에서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은 높아졌지만, 그로인해 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되는 결과를 빚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물론, 자본 역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이를 책임져야 할 국가도 부채가 쌓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연구원은 의도가 무엇이었건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과감한 복지공약을 내건 것은 시대적 흐름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고용률 70% 달성 목표나 ‘미래 먹거리 찾기’ 차원에서 제기된 창조경제론도 그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같은 맥락에서 2014년에 나온 ‘통일대박론’ 역시 자본의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차원에서 이해할만한 것이 된다.


하지만 김 연구원이 제시한 다양한 수치가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 모든 목표에서 ‘무능’했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무위)’는 점이었다. 복지정책의 후퇴는 물론 교용률이나 남북교역추이 등이 이런 무능과 무위의 증거다.


대신 박근혜 정부의 일거리가 된 것은 부동산 경기 띄우기였다. 김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를 띄워 경기회복의 실마리로 삼겠다는 정책 만큼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면서 “작년의 성장률에 (그나마) 기여한 부문은 민간소비나 설비투자가 아니라 건설투자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건설투자가 본질적으로 미래에 발생할 투자인 주택소비를 현재를 끌어오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김 연구원은 이를 ‘가불형 성장’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가불’ 방식은 반드시 후과를 남기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블랙프라이데이같은 행사로 국민들을 부추겨 내년에 살 스마트폰을 미리 사게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벌써 정부내에서조차 주택의 과잉공급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소비절벽의 조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좌우에서의 비판도 나와

박근혜 정부의 ‘성격’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에 대한 토론이었던 만큼 반론도 이어졌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성격규정과 같은) 큰 그림도 필요하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행태와 연결된 전략 개념이 더 좋겠다”면서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보수회귀적 아젠다를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연구원은 “박근혜 정부는 보수회귀적 측면이 있지만 여론을 매우 중시하는 등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자신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점진적 쿠데타같은 개념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했다.

왼쪽으로부터의 비판도 있었다.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1987년 이후의 ‘현존하는 민주주의’가 정상이고, 지금은 비정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획복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면서”라면서 “1987년 이후의 민주주의, 나아가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 정부가 낳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을 낳았고 이것이 두 우익 정부의 등장을 만들어낸 이유”라고 꼬집었다.

또 시민사회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충분한 의견이 제시되지는 못했다.

다만 김공회 연구원이 ‘최저임금영향률’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에 의해 자신의 임금이 정해지는 노동자가 14% 수준이며, 최저임금에 사실상 연동되어 임금인상률이 결정되는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최저임금의 영향력은 막강한 수준”이라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이번 4월 총선에서 여야의 주요 정치세력으로부터 ‘불가역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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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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