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아 시민이 참여하는 개헌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2030세대 여러 청년들의 상상력을 담은 개헌 이야기를 카드뉴스와 함께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세 번째 기사는 '실습생' 입니다. - 기자 말

작년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9-4승강장, 이곳에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청년 '김군'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가방에 컵라면 하나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 김군의 나이는 이제 고작 19살. 그의 월급은 이것 저것 다 합쳐도 140여만원에 불과했지만 그는 대학에 가기 위해 그 중 무려 100만원을 적금했다고 합니다. 김군의 죽음은 단순히 사고였을까요?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2011년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사망한 실습생

2014년 현대자동차 하청공장에서 야간근무 중 사망한 실습생

2015년 취업을 전제로 E외식업체에서 일하다 사표를 내고 자살한 실습생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2016년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문자를 남기고 자살한 LG휴넷 실습생

그렇습니다. 실습생은 죽음으로서 그 고통을 말해왔습니다.

실습생이 업무를 중도하차하면 그 후배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부담을 주고, 이를 제지할 학교와 교육청은 오히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실습생을 압박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실습생은 대학을 가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포기하면 갈 곳이 없다는 부담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것을 보호하고 지킬 법은 없습니다. 실습생이 법적으로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습생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실습생을 직업 훈련의 목적이 아닌 고강도 저비용 노동 형태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습생 역시 동일한 노동을 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들도 노동자로서 마땅한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실습생의 노동권 확대를 담은 개헌, 당신은 찬성하시나요? 반대하시나요?

>> 개헌안 자세히보기 : http://wouldyouparty.govcraft.org/polls/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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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바꿈 청년네트워크)


수백개의 카메라가 한 사람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고개를 든 그는 크게 도시 이름을 외친다. 적막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환호로 가득찬다. 화면은 곧 발표 상황을 중계를 통해 지켜보던 시민들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수백명이 자신의 일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누구의 아버지는 그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아버지가 물을 팔수도 있는 일이고, 누구의 누이는 경기 진행요원으로 일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몇명이 일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는 수만명이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 한다. 우리 모두의 경사에 흥분이 넘쳐난다. 하지만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가정이 몇이나 될지, 숨 막히는 노동착취에 시달리게 될 이가 몇명에 이를지, 과도한 언론통제와 치안유지정책으로 몇명이나 감옥에 갇히게 될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고 불리는 월드컵, 올림픽 등이 열리는 2년마다 경기장 스펙에서부터 출전 선수와 경기 결과, 각국의 응원열기, 국가 순위에 이르기까지 각종 뉴스가 언론을 통해 쏟아진다. 아시안게임, 동계올림픽, 유니버시아드까지 더하면 그 주기는 더욱 짧아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제퇴거-노동착취-공권력 남용-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이어지는 인권침해가 필연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주목받지 못한다. 대형 스포츠 행사는 인권 취약계층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베이징 올림픽 관련 개발에 의한 철거 현황(2000~2008년)

출처 :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


스위스의 주거권과 퇴거 센터가 발표한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서울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6번의 하계 올림픽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난 사람이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월드컵 등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도시 재개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당국은 스포츠 행사와 연관된 주택 개발과 경기장 건설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지만, 이에 따르는 수익을 취하는 사람은 기득권에 한정된다. 경기장 건설을 위해 철거가 이뤄지는 곳은 저소득층 가구가 거주하는 지역이 다수를 차지하며, 철거는 경기 개최일이라는 '데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토론과 주민투표 등의 민주적 절차는 생략된 채 무리하게 강제로 집행되곤 한다. 당국에서는 낡고 오래된 지역 주택을 재개발한다는 장점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에 새로 지어진 주택은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으로 상승해 입주를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2012년 런던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국이 저소득층을 위해 공급하겠다던 공공주택의 물량은 약속했던 절반 수준에서 최대 31%로 기존 계획에 못 미치고 있다. 


카타르월드컵 인도·네팔출신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 


대형스포츠 이벤트 사망자 수

출처 : ITUC(국제노동조합연맹)


2022 카타르 월드컵 1200 (2010년12월부터 2015년5월까지 사망자 추정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60

2014 브라질 월드컵 10

2008 베이징 올림픽 6

2010 남아공 월드컵 2

2012 런던 올림픽 1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1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2022년에는 사망자 수가 7000명이 넘을 것이라 ITUC(국제노동조합총연맹)는 예측하고 있음


짧은 시간 안에 경기장을 세우는 고된 일은 이주노동자의 몫이다.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The ugly side of the beautiful game)'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의 90%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이며 이들은 참혹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섭씨 50도에 이르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더럽고 좁은 숙소에서 여러 명이 생활해 전염병이 유행하기도 한다. 카타르 정부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카팔라(Kafala)’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출국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노동 착취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귀환을 막기 위해 일부러 임금을 체불하거나 여권을 빼앗고 근무조건에 항의하는 이들에게 출국을 막겠다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이 국제사회에 대대적으로 공개되었음에도 카타르 정부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의 글로벌기업은 어마어마한 마케팅 기회가 될 ‘스포츠 축제’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후원을 계획 중이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출처 : ‘리우데자네이루주 공공안전교육원’


당국의 용인 아래 기업이 개발과 홍보에 열을 올리는 사이 공권력은 시민을 향해 칼을 겨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한 브라질의 경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치안 정책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사망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5명 중 1명은 경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희생자 대다수가 빈민가나 소외지역에 사는 젊은 흑인 남성으로 알려졌다. 월드컵이 개최된 2014년에 경찰에 의한 사망률이 전년도보다 39.4% 증가했으며, 올림픽을 앞둔 2015년에는 2014년보다 11% 더 증가했다. 스포츠 행사를 빌미로 강화한 치안 정책은 무분별한 공권력 사용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고, 국가 폭력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이러한 문제가 곪고 터지는 사이 모두가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현상을 목격한 시민과 언론은 당국에 항의하고, 기사를 보도하고,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무작위로 구금되었고 몇몇은 범죄활동과 관련됐다는 불문명한 이유를 들어 법적 제재를 받았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데 스포츠를 악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중국 정부는 사회질서 문란행위 단속을 명목으로 시민운동가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교화를 위한 노동’에 동원했으며, 사회운동 단체들이 올림픽 종료 때까지 허가 없이 베이징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 기간 동안 영장 없는 임의구속 건수가 크게 늘었고 구치소 내 폭행 사건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티베트, 파룬궁 등과 관련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는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중에도 조명은 여전히 화려한 경기장을 비추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분투했다.

삶의 터전이 짓밟히고 밀렸다. 버티던 이들은 끌려나간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거대한 아레나가 들어선다. 땅을 다지고 골조를 세우는 사이 저평가된 노동력 수천은 고혈을 쥐어짠다. 이제 곧 막이 오를 경기장을 중심으로 주변마을에 대한 심상치 않은 공권력이 사용된다. 주변을 정리한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가진 여럿은 카메라 렌즈 밖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그들은 갇히고 매질을 당하고 총을 맞았다. 아레나에는 함성이 터지고 욕망이 분출된다.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는 억압의 굴레가 숨통을 조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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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다 -

바꿈 청년네트워크 지음, 궁리 출판사, 304쪽, 15,000원




"2,30대 청년 25명이 바라본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원인, 그 대안까지"


"청년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에 대해 큰 산을 그릴 수 있는 책"


"처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말 그대로 '입문서'"


"마치 친한 친구 또는 선배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절"



<책 소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의 풍경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서문에서 인용한 만화 송곳의 대사이다.

오늘날 청년이 서 있는 공간과 과거 청년이 서 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다. 과거와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불쌍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청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받아들여 대책을 고심해야 한다.


청년들이 ‘서 있는 곳’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아니라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세대의 시선으로


사회에서 비교적 성공했거나 글쓰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과 해법을 이야기해주는

'외부자' 시각이 아닌, ‘청년 스스로 쓴 청년 사회입문서’이다.

바꿈청년네트워크에는 대학생, 백수,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활동가 등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있다.

전에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써보자’는 하나의 이유로 모였다.

바꿈 청년들이 스스로 만드는 책이니만큼 ‘청년의 시각’,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 바꾸어가고자 합니다!


어떤 정답이나 대안을 이야기하기보다 그걸 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소통하고 조율되어야만 ‘청년들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책에도 청년들이 생각하는 대안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바꿈의 이야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소통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바꿈이 추구하는 대안은 ‘정답’이라기보다 ‘방법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곁에 있는 또래의 청년들, 청년과 소통하기 원하는 기성세대와 함께 토론하면 좋을 책이다.




<목차>


발간사 

서문 


1부 | 노동을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것들

1 청년 일자리 

2 열정을 가지고 참고 견디라고요? 

3 당신의 노동은 얼마입니까? 

4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비빌 언덕, 4대 보험에 대하여 

5 ‘노동자’ 모두 여~기여기 모여라(feat, 헌법33조) 


2부 |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1 인권은 감정이다 

2 인권 결핍의 대한민국 군대 

3 우리 사회 혐오읽기-여성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4 광화문역에는 장애인이 살고 있어요 

5 다름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세계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6 메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송파 세 모녀에게 우리가 돌려주어야 할 말, ‘죄송합니다’ 


3부 | 대학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들

1 대학공략법 

2 자신의 미래를 빛내러 온 대학에서 빚만 내는 대학생들 

3 엇나간 교수와 학생의 사이 

4 비리재단은 현재 진행중 

5 대학을 권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라! 

6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 

7 아직도 우리는 대학에서 희망을 찾는다 


4부 | 평화, 통일보다 낯선

1 통일이라 쓰고 탈분단이라 읽는다 

2 분단 모순 극복으로서의 통일 

3 이게 우리가 싸워야 할 일이 아니야! 

4 청년 실업 ‘중동’보다 ‘남북경협’에서 

5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 

6 스무 살, 분단을 인식하고 평화에 공감하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자: 바꿈청년네트워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20~30대 청년 활동가의 모임이다. 2015년 2월 '세상을 바꾸는 청년 사회입문서' 제작을 목표로 대학, 노동, 인권, 평화.통일 등 4개 분과로 운영되어 왔다.


강태경(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강혜진(숭실대학교 학생)

김성은(홍익대학교 졸업생)

김윤영(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정숙(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단청(여성학을 배우는 학생)

리온소연(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운영자)

박영민(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재학생)

박혜영(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변규홍(청년녹색당 전국위원/전 KAIST 학부 동아리연합회 회장)

손우정(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바꿈 이사)

신정현(사람도서관 리드미 관장/청소년통일교육 전문가)

오세연(전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유애리(예비 사회활동가)

윤지선(손잡고 활동가)

이다솜(독립다큐멘터리스트)

이동철(한국노총 법률원 부천상담소 상담간사)

이인섭(전 군인권센터 활동가)

이진수(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초등교사)

임지훈(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박사과정 재학생)

전진한(알권리연구소 소장/바꿈 이사)

전진희(대학고발자 운영자)

정별(홍익대학교 학생)

정욜(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최수지(학교통일교육 전문강사)

최형순(전 경기대학교 총학생회장)

홍명근(시민의날개 상임활동가)



서평 "익숙해지지 말자, 착취당하는 것에" 성영이 상임활동가 2016.4.4. 오마이뉴스


저자 후기 "청년은 이미 사회를 바꾸고 있다" 박영민 자원활동가 2016.4.4


서평 "‘스텐수저’를 꿈꾸는 청춘들 입문서" 양리리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2016.4.1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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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

[토론회]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시민사회의 대응

민중의 소리 2016.2.1. 이정무 기자



28일 열린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참여적 지식인들의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정치학) 교수의 발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럼 이제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 나치의 쿠데타, 아니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까요?”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의 베를린 풍경을 묘사한 소설의 한 대목이다. 


물론 이 교수가 30년대 독일의 상황과 지금의 한국사회를 1대1로 비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을 한국으로 바꿔서 “그럼 이제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시민사회의 대응 토론회에서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점진 쿠데타(creeping coup d'état)

이 교수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점진 쿠데타(creeping coup d'état)’로 설명한다. 이 개념은 마치 쿠데타처럼 1987년 이후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지만, 이를 군사정변 대신 선거절차를 통해 정당화하고 있는 정권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다. 

이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노태우-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보수정권이다. 그러나 노태우-김영삼 정부가 1987년 이후의 흐름을 역전시키는 대신 수용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했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다만 쿠데타처럼 급진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를 중단시킬 수 없으니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질적 전환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처럼 “공동체의 위기의식이 심화되지만 이러한 위기의식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바꿔낼 수 있다면 이러한 시도는 성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야권만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도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 보수진영의 ‘위기’론 뒤에는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roll-back)’ 전략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을 단순히 역주행이나 보수와 진보 사이의 선거를 통한 정권 주고받기의 과정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올해가 역주행이 임계점을 넘어 ‘영구집권’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 민주노총에 대한 소요죄 적용 시도, 국정원의 정치 도구화, 테러방지법 추진 같은 현상을 일회적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1987년의 6월항쟁을 통해 정립된 거버넌스가 ‘민주주의’와 이를 제약하는 ‘분단체제’의 타협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7년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국가운영의 원칙으로 되었지만, 국가보안법처럼 이에 반하는 요소들이 뒷문으로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보수 기득권세력에게 불편하지만 참을 만 했던 이런 ‘예외상태’는 김대중 정부의 남북화해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보수세력내에서는 이들을 ‘종북’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의 정치적 생존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롤백(roll-back)’ 전략의 첫번째 성과였던 이명박 정부는 그렇기에 노태우-김영삼 정부와는 다른 성격을 띠게된다. 남북관계에 대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앞선 보수정부들과 다른 것도 당연한 셈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롤백 시도는 촛불시위와 2010년 지방선거(천안함 침몰 직후 진행된!)에서의 패배 등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다시 승리한 보수세력은 그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롤백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 - 이제는 점진적 쿠데타라고 부를 - 이라는 주장이다.

무능과 무위:박근혜노믹스의 얼굴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시민사회의 대응 토론회에서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발제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두번째 발표를 맡은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현재 상황을 2007~8년의 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국면으로 분석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나름대로 목표는 잘 세웠지만, 실제 하는 일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과 ‘무위’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원은 2007년 이후 위기에서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은 높아졌지만, 그로인해 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되는 결과를 빚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물론, 자본 역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이를 책임져야 할 국가도 부채가 쌓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연구원은 의도가 무엇이었건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과감한 복지공약을 내건 것은 시대적 흐름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고용률 70% 달성 목표나 ‘미래 먹거리 찾기’ 차원에서 제기된 창조경제론도 그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같은 맥락에서 2014년에 나온 ‘통일대박론’ 역시 자본의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차원에서 이해할만한 것이 된다.


하지만 김 연구원이 제시한 다양한 수치가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 모든 목표에서 ‘무능’했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무위)’는 점이었다. 복지정책의 후퇴는 물론 교용률이나 남북교역추이 등이 이런 무능과 무위의 증거다.


대신 박근혜 정부의 일거리가 된 것은 부동산 경기 띄우기였다. 김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를 띄워 경기회복의 실마리로 삼겠다는 정책 만큼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면서 “작년의 성장률에 (그나마) 기여한 부문은 민간소비나 설비투자가 아니라 건설투자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건설투자가 본질적으로 미래에 발생할 투자인 주택소비를 현재를 끌어오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김 연구원은 이를 ‘가불형 성장’이라고 부르면서 이런 ‘가불’ 방식은 반드시 후과를 남기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블랙프라이데이같은 행사로 국민들을 부추겨 내년에 살 스마트폰을 미리 사게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벌써 정부내에서조차 주택의 과잉공급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소비절벽의 조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좌우에서의 비판도 나와

박근혜 정부의 ‘성격’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에 대한 토론이었던 만큼 반론도 이어졌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성격규정과 같은) 큰 그림도 필요하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행태와 연결된 전략 개념이 더 좋겠다”면서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보수회귀적 아젠다를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연구원은 “박근혜 정부는 보수회귀적 측면이 있지만 여론을 매우 중시하는 등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자신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점진적 쿠데타같은 개념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했다.

왼쪽으로부터의 비판도 있었다.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1987년 이후의 ‘현존하는 민주주의’가 정상이고, 지금은 비정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획복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면서”라면서 “1987년 이후의 민주주의, 나아가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 정부가 낳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을 낳았고 이것이 두 우익 정부의 등장을 만들어낸 이유”라고 꼬집었다.

또 시민사회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충분한 의견이 제시되지는 못했다.

다만 김공회 연구원이 ‘최저임금영향률’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에 의해 자신의 임금이 정해지는 노동자가 14% 수준이며, 최저임금에 사실상 연동되어 임금인상률이 결정되는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최저임금의 영향력은 막강한 수준”이라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이번 4월 총선에서 여야의 주요 정치세력으로부터 ‘불가역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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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 전태일 재단 이사장 이수호

*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 바꿈이 만난 얼굴들>은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연재입니다. 그가 누구든, 어디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의 증인과 삶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바꿈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기억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오민정 사진작가

"현실이 이러니 우리가 할말이 없지요"

창신동 전태일 재단을 찾아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초행길이라면 재단 건물을 쉬이 지나칠 지도 모른다. 건물의 외관이 주변 봉제공장들과 허물없이 생긴 통에 그렇다. 전태일 재단 이사장인 이수호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골목을 더듬거리며 다니느라 진이 빠진 상태에서 건물 내부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계단을 밟아 오르며 선생이 지나온 자리를 하나씩 곱씹었다. 국어교사, 전교조위원장, 민주노총위원장,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내 딴에 어설프게 알아 봐둔 약력만으로도 이러했다. 선생이 머무르는 재단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큰 숨을 고르게 된 것이 오직 계단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이수호 선생을 만나기 전 공부가 필요했다면 너무 부끄러운 고백일까.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선생이 교육운동,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투쟁하던 80년대는 내가 태어난 시대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월이기에 그의 삶을 어쭙잖게라도 아는 체 하려면 사전공부가 필요했다. 그러나 선생의 인생을 몇 줄 이력으로 알아보려는 무모함은 이수호 선생의 인자함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찾아 온 이들을 향한 애정 어린 그의 눈빛에 나는 그만 고백해버렸다. 선생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고 말이다. 나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사람 좋게 웃으며 1948년, 경북 영덕에서의 출생부터 털어놨다.
 

영덕에서 태어나 대구 변두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가난한 집안 살림을 생각해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선생님의 권유로 야간학교를 가게 됐는데, 교직 이수가 가능한 국문학과였다. 실은 대학을 가게 된다면 꽃을 만지는 농대에 가고 싶었다며 선생이 멋쩍어 했다. 꽃을 만지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 노동계의 최전선에 서서 투쟁을 이끌던 그였다. 그러나 이내 원예도 그가 하면 참 어울렸겠단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 쓰는 위원장, 시 읽어주는 위원장이었다. 

"노동조합에 상근하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은 탄압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싸움, 투쟁을 주로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어요. 또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을 이겨내는 우악스러움 같은 것들도 있죠. 그럴수록 정서적이고 따듯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민주노총 위원장일 때 회의 시작 전에 짧은 시를 읽었어요. 거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마음 속엔 항상 따듯함을 간직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것을 살려내고 싶었어요." 

노동 운동의 부드러운 결을 알아보고 밖으로 되살리려 했던 그의 안목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꽃을 사랑하던 소년 이수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와 운동의 간극은 크다. 물렁함이 오히려 독이 되지는 않았을까, 부드러움이 도리어 해가 되는 건 아닐까.  

"도종환 시인의 시 중에 <부드러운 직선> 이라는 말이 있어요. 직선이라는 것은 힘 있게 쭉 뻗어가는 것인데, 그것도 사실은 부드러울 때 더 힘이 있고 강해지고 그러면서 부러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잖아요. 부드러우면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태도가 굉장히 중요해요."

부드러운 직선, 도종환 시인에게서 탄생한 시어가 이수호 선생의 삶으로 살아지고 있는 듯 했다.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다 학교에서 해직당하고 반복되는 투옥을 경험했지만 물러섬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그만의 부드러운 기개로 부러지지 않고 지난한 시절을 이겨왔을 것이다. 


"지금 현실을 보면 우리 세대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이런 사회는 안 물려줬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제가 겪어 온 시절과는 개념이 조금 달라졌지만 청년실업과 빈곤문제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심하고 구체적인 문제로 남아있어요. 현실이 이러니 저희 같은 선배세대가 할 말이 없어요..."

그러나 선생의 단단함도 지금의 현실을 얘기할 때만큼은 급히 초라해졌다.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에서 착잡함이 묻어났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자기들이 살아갈 시대에 맞는 정답을 써야 하는데 당신 세대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태일 재단에도 젊은이들이 북적였으면 좋겠다했다. 전태일 정신을 박물로 남기지 않고 젊은 세대와 함께 살아 숨 쉬게 하려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마음만큼 젊은 세대와 더불어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역력했다.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지금의 제가 아주 작은 만큼이라도(이 마음도 버려야 하는데)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를 수단으로 삼으세요."

나는 자신이 보내온 세월을 한 없이 낮추는 선생의 초연함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서글펐다. 단지 우리가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배 세대들의 통렬한 반성문을 받아 볼 자격이 있나 스스로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청년은 답이 아니다. 건강한 시대를 만드는 합은 서로를 그러안는 세대 간의 포옹이 아니던가. 이수호 선생이 청년에게 거는 기대는 쭈뼛거리는 청년에게 그가 먼저 내밀어 준 손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밀었던 그의 손을 이번엔 나도 덥석 잡고 가능한 오래 함께 걷고 싶다.


"이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뒤에서 밀어주는 일이겠지요. 제가 운동을 해오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우리가 기울인 노력이 씨앗이라면 봄과 같은 조건만 되면 일시에 새파랗게 싹을 틔운다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런 과정의 총합으로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젊은 그대들이 착 피어날 때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해요." 

선생의 위로와 배웅을 받고 건물을 나와 걷다가 문득 돌아봤다. 창신동 골목길에 오롯이 자리한 전태일 재단. 그곳에 가면, 다시 시인의 말을 빌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이수호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위로가 말장난처럼 번져가는 세상에서 온 몸으로 마음을 전하는 어른이 거기 있었다.  




덧) 이수호 선생님은 1974년 울진군 제동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해직이 될 때까지 서울 신일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했습니다. 전교조 활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두 번에 걸쳐 구속되어 2년의 투옥생활을 했고 전교조가 합법화 되면서 1998년 10년 만에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복직하여 2008년까지 33년을 교사로서 살았습니다. 그 동안 전교조 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 노동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전태일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이사장, 한국갈등해결센터의 상임이사,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돕는 손잡고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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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뭐했어?" 이런 말 좀 하지마세요

내가 좋아서 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일... 왜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나
오마이뉴스 2015.09.27.

이윤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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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8월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이 주관하는 '2007 방송엔터테인먼트 채용박람회'가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한 아나운서 아카데미 부스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그냥 우물쭈물 거리며 "이것저것 하는 프리랜서예요"라고 답한다. 프리랜서면 백수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백수는 아니다. 

"일 좀 그만 해"라고 버릇처럼 핀잔주시는 울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리는 라디오, 내 얼굴이 나오는 TV를 꼭꼭 챙겨 보신다. 그렇다. 나는 무명 프리랜서 방송인(아나운서 겸 작가)이다. 

무명이라 나 하나쯤은 이 바닥에 있어도 없어도 티 나지 않을 정도지만, 누가 뭐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 만큼 단 하루의 게으름도 없이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냐, 내가 정말 사랑해서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원했던 분야가 애초의 꿈과는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 등 떠밀어 갖게 된 직업도 아니고, 정말 내가 되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다. 

그래, 프리랜서가 되기 전까지는 공채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공채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일은 각각의 능력에 따라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릇이 달랐겠지. 아무튼 나는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프리랜서는 돈 끌어모으면 안 되나요?

나는 입버릇처럼, 나를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꺼이 가겠다고 말해 왔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해야 인맥도 넓어지고, 참여하는 방송도 많아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물론 내가 생각한 '어디든'은 '아무데나'도 아니고, '아무렇게나'도 아니었다. 비록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의 신념을 가진 방송인으로서 그 열정을 바치고 싶다는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그러나 나 홀로 생각한 마음의 소리일 뿐이었다. 정말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미혼이고 젊은데 뭐 그렇게 돈이 필요해?", "집 좀 살지 않아?", "소문에 돈 끌어 모은다는 얘기가 있던데."

미안하다, 우리 집은 좀 살지도 않고 나는 돈을 끌어 모은 적도 없다. 그런데 내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한 것과 미혼이고 젊은 것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다. 프리랜서 아나운서겸 작가로 활동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출연료나 원고료가 입금될 시기가 되면 특히 많이 듣게 되는, 나를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프리랜서는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좋은 벌이 기회가 자주 주어진다. 하지만 안정적이지도 않고,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있다 해도 절차가 복잡하거나 어떤 제도가 있는지 알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에 만 분의 일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직장인들도 직장생활에 애환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내 이야기를 풀기로 했으니, 좀 더 풀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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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진 아나운서, '카트'에 공감 지난 2014년 9월 30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카트>제작보고회에서 박혜진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있다. <카트>는 주류영화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로, 한국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노동현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 이정민



어느 날 갑자기 협의도 없이 나의 출연료가 깎였다. 이유는 '회사 사정' 때문이었다. 연차는 쌓이는데 출연료가 깎인다는 것은 '나가'라는 소리거나, 정말 실력이 없거나(그럼 교체해야지)의 이유이지 않을까? 특별한 이유 없이 회사사정 때문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일개 대기업이 단돈 5만 원을 깎아 어디에 쓰려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열정에 찬물을 부은 것에 분함을 느끼며 다른 곳으로 옮겨갈 기회를 노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은 그렇게 많이 시키는지...

또 연차와 능력에 맞게 임금을 협상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특히 아나운서 업무는 더더욱 치열했다. 인정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너 말고도 싼 값에 하려는 애들이 많다"라고 하며 말도 안 되는 비용을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먹고 살기 위해 치사하지만 해야만 했다. 일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이곳에 발을 들일 이름 모를 어린 후배들에게 미안함의 부채의식을 갖게 됐다. 누군가는 나의 전철을 밟아 말도 안 되는 비용에 자신의 열정을 팔고 있을 거라는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이 일을 위해, 부당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별다른 항변을 못하는 게 억울했다. 

프리랜서는 한 군데가 아닌 여러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A직장에서 B직장에 소속된 것을 티내거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어떤 일도 쉬운 일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안다. 

"어젯밤에 뭐했어?" 이 질문은 하지 마세요

하지만, 최저 생계비도 안 될 돈을 주며 생색내는 모습에는 할 말을 잃었다. 남의 지갑 벌리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일까? 꿈 한번 잘못 꿔서 이런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걸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이런 곳이 산재해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내가 아니라 해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될 테니 말이다. 

'열정'을 불사르는 중이라며 자기위안도 수천, 수만 번을 했다. 그럼에도 부당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사흘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주고 15분짜리 구성물 4편을 만들어 오라는 오더가 내려오는가 하면(고료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일단 글부터 쓰고 원고료를 책정해 주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새벽에 깨워 일 시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녹화를 위해 무거운 눈꺼풀을 깨워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초라했다. 

내부 변심 문제로 된통 맞은 적도 있었다. 분명 그들과 협의한 대로 원고를 썼지만, 그들의 변심에 나는 원고료 한푼도 받지 못하는 꼴이 됐다. 좋은 글이었든 나쁜 글이었든, 본인들의 변심이든 노동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심한 업무 강도에 나는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자지도 못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했다. 그런데도 피곤기 있는 얼굴을 보이면 따뜻한 위로보단 "어젯밤에 뭐했어?", "그래서 되겠어" 식의 비아냥거림만 있었다. 차라리 진심으로 걱정해 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젯밤 당신네들이 시킨 일을 하느라 못 잤단 말이다. 맡은 바 책임을 지겠다는 어리숙함 때문에 열정과 건강을 맞바꾸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기계처럼 말하고, 공장처럼 찍어내듯 글을 쓰는 게 내 직업이었구나. 그래서 선뜻 내 직업이 '무엇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하는 일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돈벌이가 시원찮아서도 아니고, 하는 일이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정말 거지같은 취급을 받고 사는 내 스스로가 불쌍해서였다. 
       
우리는 보다 인간답게 살아 가기 위해 일한다. 하지만, 그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일하기도 한다. 비단 나의 직업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이 글을 함께 읽고 있는 누군가도 이하동문이라며 울분을 토할 것이고, 누군가는 울음에 목이 메여 소리조차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병폐에 대항할, 당연한 권리를 찾아줄, 한 목소리를 내줄, 진정한 '지붕'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프리랜서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용자로서 당연히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나처럼 이렇게 힘없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작가, 피디들을 위해 싸워줄 이가 있을까? 우리끼리 모여 한 목소리를 낸다고 들어줄까? 아니 들리기나 할까? 이 땅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것 같다. 힘없는 사람을 보호해줄 제대로 된 법조차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신고조차 접수되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내년이 총선이다. 법의 사각지대의 놓여있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대표가 300명 중에 꼭 한 명은 있었으면 좋겠다. 허울뿐인 법 새로 하나 제정해 주고, 맡은 바를 묵묵히 하는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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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장발한 그이의 속사정

[주장]비례대표 축소라니...예술인 복지 전문가 비례대표가 필요합니다

오마이뉴스 2015.09.11


이소망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


얼마 전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편의상 박 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박 선배는 목 뒤까지 늘어진 까만 생머리를 찰랑이며 나타났습니다. 까맣고 긴 생머리가 마르고 피부가 하얀 선배의 얼굴에 썩 어울려 보였습니다. 작년 겨울에 만나고 올해 들어 처음 보는 거였습니다. 그새 머리를 길렀나 봅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자주 만나던 사이였습니다.


창작지원금 받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박 선배와 저는 사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우리의 후배, 동기, 선배들은 전공과 어울리는 길을 걷거나, 이해되는 정도로 빗겨가거나, 전혀 다른 길을 가되 누가 봐도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 사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취업 이후 바빠진 친구들과는 마음껏 만날 수 없었지만 우리 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우리는 취직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박 선배와 제가 영 놀고먹기만 하는 한심한 종자들은 아닙니다. 박 선배는 연극배우가 되고자 했고 저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뿐입니다만, 우리는 배우가 되고 글쟁이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편의점과 식당, 행사장, 일용직 업무를 위해 써야 했습니다. 우리도 처음엔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처럼 격려와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해, 두해, 시간이 흘러 몇 해가 지나도 변변치 않은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니 우리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 한심한 눈초리로 바뀌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상한 것은, 박 선배가 연극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고 제가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음에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자질에 대한 의심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일용직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말하자면 예술을 온전한 직업의 형태로, 그러니까 직업의 사전적 풀이에 따라, 온전히 생계를 유지하는 데 써먹고 있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 선배와 저는 생계와 작업 두 상황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아슬아슬 타며 지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생계 유지도, 연기도, 글쓰기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요. 그리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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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2011년 11월,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혜택은 포함되지 않았고 산재보험은 가입이 가능하지만 예술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예술인 복지법'을 통해 2013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1인당 300만 원씩 3개월간 창작지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원대상으로 뽑히는 게 까다로워 대상이 되더라도 지원금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매우 번거롭게 되어 있습니다. 

예술인 본인을 포함해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소득 수준까지 증명해야 하는 터라 혹자는 얼마나 가난한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절차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지원금을 주는 정부도 꽤나 떨떠름한가 봅니다. 올해는 복지재단이 신청한 예산을 지난 6월까지 편성하지 않고 있다가 7월 고 판영진, 고 김운하 배우님의 잇따른 사망 이후 부랴부랴 집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받기도 싫고 주기도 싫은 이름만 좋은 창작지원금입니다.

한여름에 장발한 선배, 사정 듣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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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진후 원내대표 등 대표단이 지난 1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비례대표 축소 저지, 3당 회담 수용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 남소연


박 선배의 장발은 배역을 위해 일부러 기른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쑥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발할 돈이 없다고 말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일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낮에는 무대와 오디션에 매달리느라 야간 편의점 일을 찾았는데, 그나마도 주인이 인건비를 아낀다고 그만 나오라 했답니다. 

먹을 돈과 차비는 쥐고 있어도 이발할 돈은 없었던 겁니다. 박 선배를 만난 그날은 하필이면 늦더위가 맵게 달아오른 날이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그의 머리칼 사이로 벌겋게 열이 오른 목덜미가 보였습니다.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요새 제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뭐냐고 말입니다. 

그의 대답은,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거였습니다. 아름다운 연기로 아름다운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뒷목에 붙은 머리칼을 털며 더위를 몰아내는 이 남자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작지원금, 차라리 안 받는 것이 속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한테 무슨 돈까지 주느냐'는 불편한 시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인을 근로자나 노동자로 봐주는 시선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써 노동하고 진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있습니다. 

요즘 비례대표와 관련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정치권이 너무 걱정스러운 것은 비례대표제를 줄인다는 소식입니다. 비례를 줄이다니요? 세상에 이렇게 저와 제 선배처럼 힘들고 괴로운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역을 위해서 일하는 의원을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예술인을 이해하고 대신하여 제대로 된 법안을 발의하는 대표자가 선출되려면 비례대표제는 확대되어야 합니다. 

비례대표제 확대로 예술인 복지 전문가가 당선될 수 있다면, 예술인들도 사회의 건강과 선을 위해 '일하는 시민'으로 받아 주십사 부탁드리는 것이, 이들을 사회보장 체계에 편입하고 제도적인 지원 체계를 행정이 아닌 현장중심으로 만들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보며 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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