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여러 논의와 쟁점을 통해 대안을 고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에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통일과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진보-보수 청년들이 각자가 상상하는 통일은?

신정현 :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면서 분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구하고 싶어 북한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더불어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고양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대연 : 아르헨티나에서 살다 왔다. 그곳에서 본 북한의 여러 도발은 한 때 성장가도를 달린 남미 여러 국가들의 몰락과 복합적으로 비교되며 자연스럽게 통일·외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외무고시를 준비중이며 바른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수현 : 대학을 다니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여러 진보적 의제들이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걸 느꼈다. 그런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통일경제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초롱 : 테러리즘과 안보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연구에 대한 흥미로 이어져 북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현재는 ‘북한의 투자 위험도 분석’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다.


북핵문제, 미중패권 경쟁에 맞춰야 VS 우리 주도로 풀어내야

이대연 : 애초에 북한이 왜 평화의 대상인지, 통일의 대상인지 의문시 된다. 북한은 김씨 일가가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국가다. 다만 우리 머리 위에 핵과 도발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지, 굳이 통일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

김수현 : 북한과 우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우리 입장에서 북핵이 큰 위협이듯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미군사훈련이 큰 위협일 수 있다. 지금 남북은 전쟁의 위협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이대연 :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한반도 전쟁 위협을 줄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북한이 우리하고 대화하고 교류한다고 해서 도발을 멈추겟는가. 동북아 정세는 미-중 패권경쟁의 큰 측면에서 봐야지,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남북문제를 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선제적 대화 제의와 남북교류는 자칫 호구 잡혀, 넘겨줄 건 다 넘겨주고 얻는 건 아무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본다. 

신정현 : 우선 남북관계가 미중간의 패권관계로만 정의되는 것에 반대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풀어낸 것은 우리 정부였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도발이이라는 액션에 우리 정부가 제재하는 리액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액션하고 북한이 리액션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도 초기 2년은 북한에서 흡수통일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6.15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까지 이어졌다. 특히 개성공단은 북한 군부 입장에서는 몇 개 사단이 후방으로 밀리는 치명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주도적 액션에 북한이 리액션한 것이다. 미중패권 경쟁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북정책 북핵문제 초래 VS 이명박-박근혜 대북제재 아무 효과 없어

이대연 : 우리가 먼저 액션을 하고 리액션을 요구하는 건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우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을 가지게 되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게 자그마치 1994년부터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핵무기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던 만큼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정현 : 먼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핵개발이 진행되었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또한 대북재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고 대외(대중)무역이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자료와 탈북민들의 증언들은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지난 9년의 대북 제재 기간 동안 우리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초롱 : 금강산관광의 수입이 어디로 갔는가. 또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받을 수 있는 수입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많은 돈이 당으로 가고, 김씨 일가에 호주머니로 간 건 사실이지 않은가?

신정현 : 그렇다면 남한에서 돈 쓰면 그게 문재인 돈 줄이 되는가. 북한의 경제 규모 대비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북한이 개성공단 하나로, 금강산관광 하나로 먹고 사는 게 아니지 않는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가지고 북한의 핵무기와 도발의 근거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이 매우 문제 있는 발언이다.


인도적지원, 더 이상 퍼주기 안되 VS 상호 호혜적으로 가야

이초롱 :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에 대해 막무가내식 퍼주기를 한 건 사실로 봐야하지 않은가? 그리고 북한은 그걸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으로 봐야한다.

신정현 : 도대체 어떤점이 막무가내인가?

이대연 : 북한 정권이 대북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한 것이 바로 막무가내다. 북한 국민들을 살리라고 준 돈이 그리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모니터링 없는 대북지원은 그 금액이 100원이건, 1,000원이건 문제는 문제인 것이다.  

신정현 : 그렇다면 지금 대북지원을 하고 있는 EU나 국제기구들도 다 퍼줬다고 설명할 것인가. 물론 모니터링이 안 되는 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대 국가의 관계에서 그 나라의 자금흐름을 샅샅이 보고 운반상황까지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국가간 인도적 지원에 있어 부적절한 개입이며 남북 간의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다. 그래서 모기 퇴치나 개성공단 같은 상호호혜적인 방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교류 중단으로 모든 대화채널이 막혔다. 판문점에서 소리치고 대화하는 게 한반도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야한다.

이초롱 :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이야기를 하면서 반대로 연평도 포격, 북한의 여러 도발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대화채널을 가지는 건 중요하지만 그 채널을 가지고자 퍼주기식으로 가는 건 반대한다. 무엇보다 대화는 대화대로 하지만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하드파워도 당연히 필요한데 너무 소프트파워만 강조하는 것 아닌가?


남북경협, 북핵으로 이어질 가능성 우려 VS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단

김수현 :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라면 오히려 정치·군사적 접근 보다는 경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개성공단이다. 북핵문제는 이미 한반도와 여러 주변국의 복합적 요인으로 결부되어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은 상대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충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남북은 아주 특수한 관계이고 우리는 서로 접점을 늘려가며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관점에서 경협사업은 꼭 필요하다. 

이대연 : 남북경협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4대강 사업도 5년간 22조를 썼다. 그럼 1년에 4-5조원 꼴이고,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단순히 350-400조원으로 잡으면 1년 예산에 4대강 사업은 고작 1-2%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대도 이 나라 전체가 난리였고 모든 건설사가 명운을 걸 정도로 큰 사업이었다. 이처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이 북한에 1-2% 영향만 줘도 정말 크게 영향을 주는것이다. 그런 사업들이 지금 북한 자금줄로 들어가는 건 분명한데 언제까지 무책임하게 북핵문제를 대해야 하는가?

신정현 : 북한이 개성공단이 없었으면 핵개발을 안했을까? 아니다. 개성공단 유무를 떠나 북한은 체재의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마치 개성공단 때문에 빚어진 것처럼 말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저렴한 노동력과 근접성으로 우리 기업과 원청업체까지 많은 이익을 준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미중구도 속 하드파워 보여줘야 VS 남북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던져야

이대연 : 김대중 정부에서 우리 역할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중국이 패권 국가로서 아직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후로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었다고 볼 때 김대중 정부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 동북아 균형자론이 국제사회 외면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한반도 운전대를 이야기하는 것 역시 미중 패권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신정현 : 그렇지 않다. 물론 남한이 결정자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조정자 역할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할 첫 번째 역할은 바로 남북관계 회복을 기축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다. 적극적인 남북대화 재개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통해 상호 조건을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대연 :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필요한건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확실하게 제재 하는 것이다. 중국에 한미일 삼각동맹이나 사드 등을 협상 카드로 내세워 북한을 더 강하게 제재하도록 유도해야한다. 그래야만 오히려 제재 끝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로 나올 것이다.

김수현 :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해도 개성공단으로 협상했는데 지금은 개성공단마저 없어지니 서로 주고 받을 카드가 없어졌기 떄문이다. 이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해온 대북제재로는 북한의 태도 변화도, 북핵문제도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에서 첫 번째 할 일은 바로 북한과 대화 창구를 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첨예한 부분이 남북관계와 통일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로서 이런 대립과 갈등의 잔재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지만 함께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리 사회 여러 쟁점들과 의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면서 대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이런 기획을 지속 할 예정입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홍명근(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드문제와 해묵은 숙제인 북핵문제, 일본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산적한 외교·안보 현안 속에 꼭 잊지 말아야 한 가지가 있어 이렇게 편지를 전합니다. 바로 ‘개성공단’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개성공단은 작년 2월 폐쇄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 외화유입 차단 위한 것" 이라며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했지만 그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개성공단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남북관계의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처럼 버텨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조치인 5.24조치로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되었을 때도 개성공단만은 유일하게 남아 전체 남북교류의 99%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성공단 하나만으로도 전체 남북교류협력이 오히려 증가하는 이상 현상도 있었습니다. 


대북제재로 신규투자가 금지되었음에도 개성공단이 성장세가 지속된 것은 개성공단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 모두 win-win 하는 남북경협사업입니다. 저렴한 노동력과 인접성, 같은 언어 사용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개성공단은 지난 10여년 간 30배 넘는 성장을 해왔고, 남북 노동자는 5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모든 게 3단계로 계획된 개성공단 계획 중 1단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그 자체가 한반도 ‘평화’였습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면 남북대화의 창구로서 상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개성공단을 출구전략 없이 무작정 폐쇄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북경협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관련 종사자들과 거래처, 관계 업체들 모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통일과 관련된 꿈을 키운 청년들의 바람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싶었다는 한 20대 청년은 대학때부터 학생회, 대외활동 모두 ‘통일’에 집중해왔다고 합니다. 실제 북한대학원대학교에도 진학하고 입학금도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학한지 한 달만에 개성공단은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상황실에서 일했다는 30대 청년도 만났습니다. 남북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한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안 북한사람은 그저 동료였다고 합니다. 작은 통일과 탈분단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개성공단이었다고 이야기한 그는 남북관계 악화로 고작 1년 전 일을 옛날 이야기처럼 느끼는 듯 했습니다.


대학 학과 중에는 이제 동국대 북한학과만 남았습니다. 고려대는 작년 ‘북한학과’를 ‘통일외교안보전공’으로 개편한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2006년에는 관동대 북한학과가 폐지되었고, 2008년에는 선문대 북한학과가, 2010년에는 명지대 북한학과가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 남은 동국대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최소 규모의 정원만 유지하며 폐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남북경협이 모두 중단된 와중에 그들이 ‘북한’이라는 현실적으로 특화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남북교류 중단은 청년세대 통일인식 악화로도 이어졌습니다. 2015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과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20대는 20.3%로 30대(30.6%), 40대(27.1%), 50대(33.7%)보다 더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20대는 74.5%가 가능하다고 응답해 30대(71%), 40대(70%), 60대 이상(68.8%) 보다 더 높아 심각한 안보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건 개성공단은 북핵이나 사드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과는 별개의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점을 미국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실제 도라산역을 방문하면 그곳에는 ‘입국’ 대신 ‘입경’ 이라고 쓰여 있고 ‘출국’ 대신 ‘출경’ 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헌법상에 나와있듯이 남북은 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중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곳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과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을 의미를 되새기며 서명한 철도 침목이 놓여있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 서명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철도가 한민족을 이어주기를 기원합니다.’ 즉 미국도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통일대박의 헛된 구호와 통일준비위원회, DMZ세계평화공원 같은 의지와 실천 없는 거짓말로 남북관계의 기대와 전망은 늘 실망으로 끝났습니다. 그럴 때 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이 만났던 10.4 남북공동선언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때는 한반도에 갈등과 대립이 아닌 평화와 번영이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개성공단이 있었습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부터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삼아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 리더십을 기대해봅니다. 6.15, 10.4 그 때처럼 말입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북-’에 있는 사람들

2011년의 일이다. 수능을 치고, 가, 나, 다군으로 나누어 지망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서를 썼다. 어느 학과를 지원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중에는 지금 재학중인 북한학과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지원한 학교와 학과들을 메모해두셨다. 그런데 다른 학교와 학과는 그 이름 그대로 적어두시고는, 유독 북한학과에 대해서만 ‘북-’이라고 표기해놓으셨다. ‘북-’. 아버지가 나의 지망 학과를 메모하던 그 순간에 북한학과는 왜 ‘북-’이되었을까. ‘북-’은 뭘 의미하는 걸까. ‘북-’은 도대체 뭘까.

북한학도로 약 5년을 보내면서, ‘북-’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졌다. 북한학과 단체티를 입고 버스에 타면, 심심찮게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로 쏠린다. 자세히 보기 위해 가방을 들추어보는 분들도 계신다. 단체티를 입고 거리를 걸을 때, 누군가 뒤에서 “김대(김일성종합대학)다니세요?”하는 해괴한 질문을 한 일도 있었다. 한 선배는 지하철에서 전공 서적을 읽다가 웬 할아버지에게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고 등짝을 맞았다고 하며, 학과 학우가 전공 과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다 사이버수사대에 덜미가 잡혀 경찰서에 출두되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들려왔다.

같은 학교의 학우들도 북한학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학교에 그런 과가 있어요?”하고 놀라며, “그 학과에서는 뭐 배워요?”하고 물어온다. ‘뭐 배워요’가 정말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궁금증만을 함축한 의문은 아닐 것이다. 이설주가 누군지 아느냐는 둥, 장성택이 왜 죽었냐는 둥, 북한에 핵무기가 몇 개냐는 둥의 질문은 애교다. 조금 친해진 사람들은 친밀함이라는 관계성 뒤에 살짝 숨어서는 “북한 추종하고 그래?”, “위험한거 아냐?”, “빨갱이학과야?”하고 물어온다.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내가 북한학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간부와 선임들은 ‘북괴학과’라고 말하며 깔깔거렸다. 인터넷에 북한 관련 글을 몇 번 기고한 적이 있는데, 댓글은 정말 가관이었다. 시민으로서 나의 존재 뿐만 아니라 때로는 부모님까지 들먹여졌다. 악플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편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꽤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꽤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것이 ‘북-’의 정체였다. 그건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북-’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총체적 무지, 사회적 배타성, 그러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묘한-韓-친밀감,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 궁금증 따위의 것들이 온데 뒤섞여있는 복잡한 무언가. 나보다 인생을 훨씬 오래 사셨던 아버지는 ‘북-’의 정체를 나보다 훨씬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북한학과를 ‘북-’이라고 기입한 아버지의 표현은 그야말로 정확했다. 때때로 누군가 나에게 학과를 물어오면,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한번쯤 머릿속으로 굴린다. ‘북-’.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또한, 아마도 ‘북-’에 대해 마냥 심심한 반응을 보이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나는, 말하자면 북한학과라기보단 ‘북-’에 있는 사람이다.

“온 나라가 최순실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운데, 당장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거라고, 저거.”

안보견학차 강원도 철원에 들렀을 때다. 날은 추웠고, 분단 한반도의 최전선이라는 것을 시위하듯 호국훈련이 한창이었다. 철원에 들어서면서 가장 처음 본 모습은 군인들은 도로에 벌벌떨며 서서 차량운행을 통제하고있던 모습이었다. 자주포들과 병력을 실은 군용 차량들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철원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고석정으로 이동하는 길, 앞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군용 트럭 ‘두돈반’ 을 보며 택시기사는 푸념하듯 내뱉었다. 철원평야 저 편에서는 쾅, 쾅 포탄소리가 울렸다.

그해에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철원의 군대에서는 지뢰폭발 사고가 있었다. 지뢰를 밟은 병사는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아마 그것은, 휴전국에서 태어난 죄일 것이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지뢰를 발로 걷어차다가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은 전방지역에는 비일비재하다. 전쟁이 끝나고 60년도 더 되는 세월이 흘렀으나, 변한 것은 크게 없다.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거라고.” 그게 단순히 철원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안보관광을 하는 길에 관광안내사는 힘주어 강조했다.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켜낸 어르신들에게는 감사를, 나라를 이끌어갈 세대에게는 격려를 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땅덩어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뿐인가, 관광안내사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서 설명을 들은 후, 내가 북한학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안 군인은 내게 질문이 없냐고 물었다. 북한학과라면 더 많은 질문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군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이 조그만 전망대에서 질문이랍시고 할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북한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걸어주었음에 고마워하면서, 앞에 있는 강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했다. “저 강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있을까요?” 군인은 ‘아니’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북한이나 통일, 혹은 분단에 대해 보다 심화된 사유를 기대한다. 누군가는 투철한 안보관을, 누군가는 깊은 평화관을 기대한다. 단순히 북한학과에 있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탈북민 관련 단체에서 일을 하거나, 북한 관련 연구소나 부서에서 근무하거나, 여하튼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총체적 무지, 사회적 배타성, 그러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묘한-韓-친밀감,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 궁금증 따위의 것들이 온데 뒤섞여있는 복잡한 무언가’에 항시적으로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힘쓸 것이고, 누군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단순히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 누구라도, ‘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많이, 더 자주 요구되거나 그렇지 않을 뿐, 누구나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특정한 사유를 요구받고 있다.

2015년 말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일 당시, 새누리당 당사 앞에는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나는 그 현수막을 보자마자 대번에 칼럼을 하나 써서 인터넷에 기고했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현실은 부당하며, 오히려 그런 현실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사실을, 마치 주체사상을 내면화하고 믿기 시작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의 지나친 발현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라는 말도 북한 앞에서는 무용하기 짝이 없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장하는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물론, 악플도 많이 달렸다.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문구는,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주체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지한 가운데 만들어진 문구다. 그러한 현실을 당리당략에 맞게 악용한 것이다. 흔히 ‘북풍’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 사회 정치의 풍토는, 그 효과가 무척이나 확실하므로 지금껏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나서 시작된 박근혜 퇴진 시위 초기에 평화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던 것도 ‘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평화롭지 못하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향해 던져졌던 ‘프락치’라는 말이다. 프락치의 의미가 ‘전문시위꾼’, ‘선동가’, ‘폭력주의자’, ‘종북세력’ 등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은 구태여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초 북풍은 북한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각인시킴으로써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이른바 ‘안보위기 결집효과’를 극대화하고, 동시에 반대세력을 흔들기 위한 보수 기득권층의 전략이었다. 1997년의 총풍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북풍은 주도하는 자가 뚜렷했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북풍은 점차 전략을 넘어, 온 나라를 휘감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구조처럼 굳어지고 있다.

탄핵 소추안이 기각되고 난 후,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심판에서 박근혜는 또 한 번 북풍을 이용하고자 했다. 탄핵심판에서 박근혜의 대변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촛불집회에서 불린 노래의 작곡가가 김일성 찬양 노래를 만든 전력이 있다며, 촛불집회는 민심이 아니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대항마였던 문재인을 향해, 북한에 의견을 물었던 종북주의자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자 몇몇 언론들은 박근혜가 2005년에 김정일에게 썼던 편지를 공개했다. 김정일을 ‘위원장님’이라고 부르거나, 남북이 아닌 ‘북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박근혜를 소개함으로써 북풍의 방향을 오히려 박근혜에게 돌리고자 했다.

북풍을 박근혜에게 돌리고자 했던 현실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북풍이 단순히 북한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 관련되거나 북한에 친밀감을 표하는 행위를 경계하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그 어떤 평화적 사유와 행위도 배척된다면,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헌법마저도 경계대상이 된다. ‘북-’에서 살아가는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과, 한반도 남쪽의 모든 시민들은 분단의 옭아맴 속에서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의 남성들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2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거나,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치졸한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전방의 주민들이 지뢰사고를 당한다거나,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북한이 동해와 서해 어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겨 우리나라 어민들이 어획에 피해를 입었다거나, 그 결과 꽃게나 오징어의 가격이 폭등하거나, 개성공단이 폐쇄되어 한동안 교복 공급량이 수요량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교복 대란이 있었다거나, 하다못해 북한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는 사실이 있다거나, 하는 현실보다 더욱 심각한 현실이 닥치고 있다. 북한학과를 ‘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더욱 가혹해졌다는 것, 과거에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주장과 실험을 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그조차도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제는 ‘북-’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들조차 배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단은 강하다. 그러므로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강해야한다. ‘북-’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념과 사상은 달랐을지언정,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러나 북풍이 거세지는 오늘날에는 노력의 스펙트럼이 상당부분 소실되고 있다. 이래서는 평화적으로 분단을 넘어서는 일은 점차 불가능에 가까워지기만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분단은 강하다. 그러므로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강해야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우리 손으로 제한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여전히 ‘북-’의 한가운데 선 채로, 언젠가 ‘북-’이 아니라 평화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꿈꿔본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졸업을 앞두고 새 국회에


2016.5.26. 한겨레


박영민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활동가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졸업이 다가왔습니다. 그간 대선부터 지방선거, 총선까지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나의 한 표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고민하고 또 염원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어제보다 더 진보했고,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동국대 북한학과에 재학 중인 저는 최근 36년 만에 개최된 북한 조선노동당의 당 대회를 관심 있게 봤습니다. 당 대회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악화된 남북관계는 북한학도에겐 막연한 정치가 아닙니다. 취업과 미래를 결정지을 현실에 가깝습니다.


당장 남북교류를 다루는 회사도, 정부부처도 없는 상황이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으로 2011년 기준 약 6000억원대의 손해를 입은 현대아산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중단 사태로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생활고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사업계획이 확대될 일도 없기 때문이죠.


최고 수치를 기록한 청년실업률 앞에 정부는 청년과 대학에 그 탓을 돌립니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대학에서 적절한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수요를 염두에 두지 않은 학문을 배운 청년들 탓이라는 것이지요. 정부의 이러한 불호령 앞에 대학은 앞다퉈 ‘프라임 사업’이라고 불리는 구조조정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인문·사회계열 인원은 축소되고 그 인원을 공학계열에서 충당했습니다. 교육부에는 ‘너무 많은 대학과 대학생’이 오직 인문·사회계열에만 해당했던 모양입니다. 프라임 사업의 결과로 해당 대학 전체 인원의 11%에 해당하는 5351명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이동’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인문계열과 공학계열을 복합한다는 명목으로 신설된 학과들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경희대는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을 합쳐 웹툰창작학과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샀고, 국민대는 ‘엔터테인먼트디자인 테크놀로지학과’ 등 읽기도 힘든 영어를 다 가져다 붙여 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은, 대학에선 문과의 씨를 말려놓고 정작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자며 ‘인문학 증진법’을 공포한 게 다름 아닌 정부라는 것입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청년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왜 취업에 실패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가장 분명한 건 문과생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적절한 분배도 없이 발전을 외치며 돈 되는 기업만 키워주는 풍습이 원인입니다. 인력난에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경직된 시장은 고려하지 않고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을 하라고 말하는 정부가 원인입니다.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나라 정치의 암담함이 보입니다. 청년들의 투표율이 계속해서 상승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생존의 문제가 닥친 청년들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승리했다는 성취감에 취해 20대 국회에 기대하고 있는 청년들을 잊어버리진 않았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4년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패기 넘치게 출발 테이프를 끊은 만큼 모두의 염원을 빌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꼭 일조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원문 바로가기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