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_갱


한 여성이 죽었다. 공무원이었고, 복직한 후 주 7일을 꼬박 출근하며 내내 야근했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그녀는 집에서도 거의 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말을 아이들과 보내기 위해 일요일 오전 5시에 출근했던 그녀는 지난 15일 비상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이 뉴스를 보고나서, 얼마 전 네이버 사장으로 발탁된 한성숙 씨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도 프로야구 선수처럼 일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더 높은 타율을 낸 타자가 더 많은 연봉을 받는 논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처우를 ‘차별’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어 바라보는 것은 조금 위험한 것 같아요.”  이 두 가지 사건은 여성을 향한 시각과 실제 여성이 살아내는 삶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임신 기간 동안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약 5개월 정도 밤늦게까지 야근과 주말 출근에 매달렸다. 임산부가 일정 시간 이상 야근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야근계를 정식으로 올리지 못하고 일해야 했다. 그러니 당연히 야근 수당은 없었다. 프로젝트 동안 함께 고생했던 선배들 역시 후배인 내가 야근 수당을 받지 못하자 그들도 야근계를 올리지 않았다. 정작 리더는 이러한 일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왜 임산부가 야근을 해? 야근 하지마~' 라며 영혼 없이 말하곤 했다. 우리끼리만 애틋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나는 결국 조산 위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아기는 40주 0일까지 끝까지 버티다 나왔다. 이미 열린거나 마찬가지였던 자궁 입구에 힘껏 매달려 준 아기에게 고마웠지만, 아기와 달리 나는 육아휴직 1년조차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와야 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구조조정이었고, 내용은 육아휴직자 전원 전환 배치였다. 배신감과 자괴감에 퇴사를 선택했다. 5년 남짓 일했던 직장의 소지품을 모두 쓸어 담았는데 상자 하나도 다 채우지 못했다. 반쯤 빈 상자를 허탈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들고 나왔다. 그리고 아기가 6개월 되던 때, 다른 회사로 복직했다.


복직한 내가 싸워야 했던 건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었다. 복직 이후에도 나는 계속 우울에 빠져 있었다. 내가 무능했기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내쳐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일을 하거나 자기계발 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업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야근과 밤샘 업무가 많은 남편 직업의 특성 상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기를 돌보아야 하므로 남자인 남편이 야근을 선점하면 나는 야근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처럼 일하라? 남자가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혼자서 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신 아내가 아이를 돌보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4명 중 1명 꼴로 육아휴직 후 일자리를 잃는데 육아휴직 사용자의 비율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경력단절 여성 비율이 3명 중 1명 꼴로 높은 것 또한 이와 연장선 상의 문제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성들을 향한 비난은 어딜가나 들려온다. 칼퇴하는 엄마들, 야근을 미루는 상사, 카페나 식당에서 ‘발견’되는 맘충들까지. 


애쓰며 살지 않으면 어디론가 쓸려 가 버릴 것 같아 두렵다. 모두 그 자리에 있는데 나만 회사를 떠나야 했던 것처럼, 노력하지 않으면 또 다시 지워질 것 같아 괴롭다. 그렇지만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는 나를 순순히 사무실에 앉혀 두지 않는다. 세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는 분명 아이들이 자고 난 이후에 잠들었다가, 아이들이 아직 깨기 전인 새벽 서너시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을 것이다. 고통, 피로, 죄책감.. 그녀의 출근 가운데 스며들었을 감정들이 낱낱이 상상된다.


한성숙 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혼과 육아라는 시기를 거치면서 훅 사라져버린 여성 인재가 너무 많았어요.” 그런 여성을 향해 ‘버티라’고 말하는 그 단순한 논리에서 나는 다시 절망스러운 대한민국을 마주한다. 이 여성의 죽음을 두고 "아이 기르는 엄마에게 10시부터 4시까지 단축 근무"를 말하는 정치인이나, "여성들이 잘 버텨내길" 바란다는 기업인이나 자신들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몫을 너무 쉽게 타인에게 전가해버린다. 특히 전자는 육아를 '엄마'의 일로 한정 짓고 '엄마'라면 응당 일보다 아이를 택할 것이라는 낡은 가부장적 사고 아래 여성의 노동권을 침해한다. 그 여성들은 왜 사라졌을까? 그녀들 스스로 일 대신 육아를 선택했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 질문이다.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 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문정희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젠 우리 현실에 눈을 맞춰야 한다


지난 17대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이들은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이 이만큼이나 더 나빠질 수 있구나.’ 하는 좌절과 반성, 그건 많은 이들의 마음을 5년 내내 아프게 만들었다. 그런데 18대 정부가 들어서고, 더 많은 이들이 통렬하게 가슴을 내리친 건 절망이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구나.’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더 치열하게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한 이들의 방심이 낳은 처절한 업보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민사회운동이 고사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렸죠. 그래서 뜻이 있는 이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다가, 201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반 년 동안 논의를 했습니다. 월 두 차례씩 만나면서 나눈 토론의 결론은 청년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죠.”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진보의 틀과 가치가 왜 일그러졌는지, 그런데도 그런 현실을 왜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를 먼저 진단했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NGO)가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래서 매번 386세대의 언어만 반복한다는 것, 또한 여전히 남성 중심이라는 것,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표현방식 자체가 과거 지향적이라는 것, 이런 모든 논의가 꾸준히 문제의식으로 지적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색다른 대목은 이런 문제를 386세대와 그 이전 활동가들이 먼저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1987년 민주화를 이끈 386세대의 업적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세상과 세대는 이미 바뀐 지 오래됐는데 그 정신으로 대화하기는 힘든 현실이 됐잖아요. 그래서 386세대들이 모여 자기반성의 의미로 대화를 나눴던 겁니다. ‘논의의 장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그 자리를 던져줄 때가 됐다. 이런 틀이 생겼으니까, 있는 그대로 마음껏 토론해 봐라!’ 라는 화두를 던졌던 거죠. 그게 바꿈의 시작이 됐고, 그 바꿈이 청년들의 실제 토론의 장으로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겁니다.”


바꿈은 기존의 모든 걸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다. 대신 ‘바뀌어야 할 대상과 지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한다.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질곡을 딛고, 응급실을 벗어나 어렵게 생존해 왔던 게 대한민국이다.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역할과 가치로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도 맞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청년들의 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해답은 이제 스스로 찾아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숨통 트이는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바꿈은 새로운 기획을 모색하고, 기존의 현실을 타개하는 걸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 사회와 정치를 동시에 혁신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공동 논의의 장을 마련해서 집단지성으로 이끌어낸다. 가치 있는 의견들을 발굴해서 명쾌한 메시지로 정리하고 공유하며, 세대 간의 갈등을 조정할 청년 리더십 발굴에 노력한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혁신되기 위해선, 정치개혁이 우선돼야 함을 강조하는 건 물론이다.


“매달 한 번씩 전체 이사회를 열고, 청년 분과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개별적인 일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열립니다. 현재 청년 분과 모임이 열 개의 팀으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각 분과별로 자유로운 토론과 결과 도출이 가능한 거죠.” 바꿈의 상근활동가 홍명근 씨는 각 분과 활동의 큰 비중에 만족을 나타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노동·인간·대학·평화의 4개 분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여성·평화·정치· 인권·노동/일자리·문화·대학·환경·복지에 더불어 연극 분과가 최근에 추가됐다고 한다.


“각 분과별로 치열한 의견 토론을 나누고, 결론이 나지 않을 만큼의 각자의 의견을 나눕니다. 그게 단점일 수 있는데, 그게 오히려 장점이 맞겠다는 답을 얻게 되는 거죠. 아홉 개 분과까지 있었는데, 얼마 전에 연극하는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각각의 극단에서 연극의 인생을 살던 친구들이었는데, 소속된 극단에서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젊은 연기자들의 상황을 타파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 친구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꿈의 책이나 보고서 같은 게 아닌,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연극 무대로 증명하겠다고 동참을 한 거죠. 그래서 생긴 게 열 번째 분과입니다.”


바꿈은 대한민국의 진보가 포괄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는 전제를 놓고, 모든 의제를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물론 원칙이 ‘답’을 얻기 위한 규정이 될 필요는 없다. 그것마저도 벗어던져 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토론이 다 가능하다. 새로운 토론 분야가 필요하면, 공동의 논의를 통해 만들 수도 있다. 연극이라는 분과가 새로 생겼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장애의 분과도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 되는 게 아닐까? <함께걸음>과의 만남이라서가 아니라, 바꿈 정도의 프로젝트라면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영역이 ‘장애’가 아닐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성분과를 책임지는 박영민 씨의 답이 반가웠다.


“당연히 가능하죠. 저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살겠다고 마음먹으며 살고 있는데, 밖에 나가서 그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운 마음의 벗을 만날 수 있는 게 바꿈이거든요. 실제로 마음 놓고 얘기할 상대를 만났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동참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동지를 찾고 싶었다는 거죠.”


바꿈은 특이하다. 5년이라는 기간을 한정하며, 2020년에 해체하겠다는 목표를 앞에 두고 운영하는 단체이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5년? 왜 하필 5년이라는 기간을 선정하는 걸까? 전진한 상임이사가 추임새를 던졌다.


“저희들은 주도권 싸움을 위해 저희 이름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뒤에 물러나서 연결하고 지원하는 사업에 집중합니다. 당연히 바꿈이 전면에 나설 일이 없다는 거죠.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은 자신의 단체명으로 힘을 얻고 지속가능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바꿈이라는 단체명이 지속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고 처음부터 판단을 했거든요. 밀알이 되는 걸로 만족합니다. 대신 최선의 역할을 다할 겁니다. 2017년 말 대선에서 큰 역할을 하고 싶고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그 이후의 답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들이 바꿈 안에서 숨을 쉴 인생의 공간을 찾는 게 충분하겠다는 확신이 든다. 젊은 장애당사자들에게는 뜻밖의 해방구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바꿈에서도 얼마든지 환영하고 반길 준비가 이미 돼 있다고 한다. 세상을 알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바꿈이 제시하는 방법론에 우리가 동참할 필요는 충분하고, 그런 질서를 갈망했던 게 바로 우리의 요구사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꿈의 홈페이지를 남긴다. 홍보의 개념은 아니다. 동참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어젯밤에 뭐했어?" 이런 말 좀 하지마세요

내가 좋아서 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일... 왜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나
오마이뉴스 2015.09.27.

이윤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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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8월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이 주관하는 '2007 방송엔터테인먼트 채용박람회'가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한 아나운서 아카데미 부스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그냥 우물쭈물 거리며 "이것저것 하는 프리랜서예요"라고 답한다. 프리랜서면 백수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백수는 아니다. 

"일 좀 그만 해"라고 버릇처럼 핀잔주시는 울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리는 라디오, 내 얼굴이 나오는 TV를 꼭꼭 챙겨 보신다. 그렇다. 나는 무명 프리랜서 방송인(아나운서 겸 작가)이다. 

무명이라 나 하나쯤은 이 바닥에 있어도 없어도 티 나지 않을 정도지만, 누가 뭐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 만큼 단 하루의 게으름도 없이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냐, 내가 정말 사랑해서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원했던 분야가 애초의 꿈과는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 등 떠밀어 갖게 된 직업도 아니고, 정말 내가 되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다. 

그래, 프리랜서가 되기 전까지는 공채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공채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일은 각각의 능력에 따라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릇이 달랐겠지. 아무튼 나는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프리랜서는 돈 끌어모으면 안 되나요?

나는 입버릇처럼, 나를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꺼이 가겠다고 말해 왔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해야 인맥도 넓어지고, 참여하는 방송도 많아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물론 내가 생각한 '어디든'은 '아무데나'도 아니고, '아무렇게나'도 아니었다. 비록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의 신념을 가진 방송인으로서 그 열정을 바치고 싶다는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그러나 나 홀로 생각한 마음의 소리일 뿐이었다. 정말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미혼이고 젊은데 뭐 그렇게 돈이 필요해?", "집 좀 살지 않아?", "소문에 돈 끌어 모은다는 얘기가 있던데."

미안하다, 우리 집은 좀 살지도 않고 나는 돈을 끌어 모은 적도 없다. 그런데 내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한 것과 미혼이고 젊은 것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다. 프리랜서 아나운서겸 작가로 활동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출연료나 원고료가 입금될 시기가 되면 특히 많이 듣게 되는, 나를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프리랜서는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좋은 벌이 기회가 자주 주어진다. 하지만 안정적이지도 않고,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있다 해도 절차가 복잡하거나 어떤 제도가 있는지 알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에 만 분의 일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직장인들도 직장생활에 애환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내 이야기를 풀기로 했으니, 좀 더 풀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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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진 아나운서, '카트'에 공감 지난 2014년 9월 30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카트>제작보고회에서 박혜진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있다. <카트>는 주류영화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로, 한국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노동현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 이정민



어느 날 갑자기 협의도 없이 나의 출연료가 깎였다. 이유는 '회사 사정' 때문이었다. 연차는 쌓이는데 출연료가 깎인다는 것은 '나가'라는 소리거나, 정말 실력이 없거나(그럼 교체해야지)의 이유이지 않을까? 특별한 이유 없이 회사사정 때문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일개 대기업이 단돈 5만 원을 깎아 어디에 쓰려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열정에 찬물을 부은 것에 분함을 느끼며 다른 곳으로 옮겨갈 기회를 노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은 그렇게 많이 시키는지...

또 연차와 능력에 맞게 임금을 협상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특히 아나운서 업무는 더더욱 치열했다. 인정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너 말고도 싼 값에 하려는 애들이 많다"라고 하며 말도 안 되는 비용을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먹고 살기 위해 치사하지만 해야만 했다. 일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이곳에 발을 들일 이름 모를 어린 후배들에게 미안함의 부채의식을 갖게 됐다. 누군가는 나의 전철을 밟아 말도 안 되는 비용에 자신의 열정을 팔고 있을 거라는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이 일을 위해, 부당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별다른 항변을 못하는 게 억울했다. 

프리랜서는 한 군데가 아닌 여러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A직장에서 B직장에 소속된 것을 티내거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어떤 일도 쉬운 일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안다. 

"어젯밤에 뭐했어?" 이 질문은 하지 마세요

하지만, 최저 생계비도 안 될 돈을 주며 생색내는 모습에는 할 말을 잃었다. 남의 지갑 벌리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일까? 꿈 한번 잘못 꿔서 이런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걸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이런 곳이 산재해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내가 아니라 해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될 테니 말이다. 

'열정'을 불사르는 중이라며 자기위안도 수천, 수만 번을 했다. 그럼에도 부당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사흘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주고 15분짜리 구성물 4편을 만들어 오라는 오더가 내려오는가 하면(고료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일단 글부터 쓰고 원고료를 책정해 주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새벽에 깨워 일 시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녹화를 위해 무거운 눈꺼풀을 깨워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초라했다. 

내부 변심 문제로 된통 맞은 적도 있었다. 분명 그들과 협의한 대로 원고를 썼지만, 그들의 변심에 나는 원고료 한푼도 받지 못하는 꼴이 됐다. 좋은 글이었든 나쁜 글이었든, 본인들의 변심이든 노동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심한 업무 강도에 나는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자지도 못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했다. 그런데도 피곤기 있는 얼굴을 보이면 따뜻한 위로보단 "어젯밤에 뭐했어?", "그래서 되겠어" 식의 비아냥거림만 있었다. 차라리 진심으로 걱정해 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젯밤 당신네들이 시킨 일을 하느라 못 잤단 말이다. 맡은 바 책임을 지겠다는 어리숙함 때문에 열정과 건강을 맞바꾸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기계처럼 말하고, 공장처럼 찍어내듯 글을 쓰는 게 내 직업이었구나. 그래서 선뜻 내 직업이 '무엇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하는 일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돈벌이가 시원찮아서도 아니고, 하는 일이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정말 거지같은 취급을 받고 사는 내 스스로가 불쌍해서였다. 
       
우리는 보다 인간답게 살아 가기 위해 일한다. 하지만, 그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일하기도 한다. 비단 나의 직업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이 글을 함께 읽고 있는 누군가도 이하동문이라며 울분을 토할 것이고, 누군가는 울음에 목이 메여 소리조차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병폐에 대항할, 당연한 권리를 찾아줄, 한 목소리를 내줄, 진정한 '지붕'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프리랜서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용자로서 당연히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나처럼 이렇게 힘없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작가, 피디들을 위해 싸워줄 이가 있을까? 우리끼리 모여 한 목소리를 낸다고 들어줄까? 아니 들리기나 할까? 이 땅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것 같다. 힘없는 사람을 보호해줄 제대로 된 법조차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신고조차 접수되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내년이 총선이다. 법의 사각지대의 놓여있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대표가 300명 중에 꼭 한 명은 있었으면 좋겠다. 허울뿐인 법 새로 하나 제정해 주고, 맡은 바를 묵묵히 하는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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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창립선언문

2015.08.21 14:27 바꿈 소개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 창립선언문

  

바꿈을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까?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불황과 심화되는 양극화폭증하는 가계부채와 주거비치솟는 등록금과 사라지는 좋은 일자리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확산이 보여주는 정부의 무능그리고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치권.

 

우리사회는 현재의 불만과 불안을 극복할 등불을 쉬이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을 잃어버린 국가와 정치권의 무능은 어둠이 걷힐 것이라는 기대를 무색케 합니다또 시민사회의 역동성도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우리사회 전반에 희망기대사랑활기존중배려는 약해지고 냉소와 체념조롱이 넘치고 있습니다.

 

광복 70년에 우리사회를 이끌어 온 긍정적인 힘을 우리는 어떻게 다시 복원해야 할까요지금무엇을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 작지만 큰 첫 걸음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독선과 독단의 창조주 역할을 자임할 생각이 결코 없습니다우리는 정치시민사회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곳곳에 남아 있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같이 키워나갈 것입니다어떤 소박한 희망이라도 현실로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엔진이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우리는 그 엔진이 힘을 발휘하는 작은 나사못연결 벨트윤활유가 되겠습니다.


오늘, 2015년 7월 7일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1.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개방적이며 유연한 방식으로 사회의 힘을 모으는 연결고리가 되고자 합니다공감을 기초로 공동의 관심사를 만드는 바꿈의 공간이 되겠습니다.

 

2.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한국 사회 전체와 파트너십 단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개별단체로서 바꿈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협력과 조정을 통해 한걸음 더 진전된 가치를 창출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3.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가치를 창출하겠습니다.

 

4.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리사회의 꿈과 희망을 발굴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있고 쉽게 전달함으로써 우리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5.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일반시민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는 사회운동을 지양합니다정치와 사회운동이 민주적 선순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배제되지 않으며우리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꿈을 함께 꿀 모든 이들에게 손 내밀어 바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2015년 7월 7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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