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국회의원 회관과 여성화장실

서울신문 2015.10.02

김은희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사

 

생로병사만큼 인간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을까? 생명은 모두에게 고귀하고 질병의 고통은 권력의 있고 없음을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도 사회가 되고 제도가 되면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사실 건강불평등으로 자주 논의되는 대상이 여성이다. 건강의 질도 낮아서 긴 노년을 보내는 여성들은 대부분 몇 가지 이상의 병원과 약을 달고 산다. 골골백세라고나 할까.

 

김창엽 교수의 책 [건강할 권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지만 타고난 잠재력으로는 지금보다 더 차이가 많이 나야 한단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수명이 본래보다 줄어들었다는 말인데, 건강의 성 불평등은 고용과 노동, 정치적 권한 등 다른 불평등 구조와 뗄 수 없고 이런 불평등 구조를 통해 여성의 건강 잠재력이 훼손된 탓이란다. 이런 사례로 생각나는 여성 정치인이 있는데, 바로 박순천여사이다(보통 한번 장관이면 물러나도 계속 장관으로 불리고, 국회의원도 다르지 않은데 왜 그런지 모르지만 박순천의 이름 뒤에 따르는 호칭은 여사이다).

 

우리나라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첫 선거 당시에는 당선자 200명 중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안동에서 실시된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임영신이 첫 여성의원이고, 2대 국회에는 210명 국회의원 중 임영신과 함께 종로갑에서 박순천이 당선되어 여성의원은 두 명이 되었다. 박순천은 이후로도 4~7대 국회에 내리 당선되어 활동한 초창기 여성정치인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당시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남성의원의 공격을 받자 나랏일이 급한데 암탉 수탉 가리지 말고 써야지 언제 저런 병아리 길러서 쓰겠느냐. 암탉이 낳은 병아리가 저렇게 꼬꼬댁거리니 길러서 쓰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되받아친 일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강단 있는 여성정치인 박순천을 오래도록 괴롭힌 지병이 있었으니 바로 방광염이다. 국회에서 활동하면서 소변을 참아서 생긴 병이란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국회 청사로 사용했던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에는 아예 여성화장실이 없었다.

 

국회의사당에서 국정을 논하는 사람으로 여성의 존재를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여성 국회의원이라야 한 두 사람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쓴웃음 나는 얘기다. 당시 박순천과 존경하는 선배동료 의원으로 활동했던 남성들은 그 고통을 알았을까?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남성들은 겪어보지 못한 의회 내 소수자인 여성의 경험이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그 후로 세월이 흘러 세상은 바뀌고 있다. 여성 국회의원들이 늘어나면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성 평등 감수성도 조금은 나아졌다. 지난해 개정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여성들의 화장실 이용시간까지를 고려해 공중화장실의 경우에는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가 남성화장실 대·소변기 수의 1.5배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성화장실에도 영유아용 기저귀교환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어졌다. 고인이 된 분이 하늘에서라도 이 소식을 들었으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여자화장실을 만드는 일은 이제 너무나 당연해졌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정치적 소수자이다. 매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성격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지위는 조사대상 142개국 중 117위로 2006년 이래로 거의 나아지지 못한 세계 꼴찌 수준이다. 지난 201219대 총선 당시에 전체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여성은 47(15.7)이었다.

 

경제규모나 사회적 조건이 비슷한 OECD국가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아시아 평균치인 18.4%에도 미치지 못하고, 딱 아랍지역 평균치(15.7%)와 같다. ‘여풍(女風)’이 불고 있는 게 아니라 아직 갈 길이 머나먼 것이다. 여성정치참여확대를 위한 할당제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기득권을 강화하는 단순다수소선거구제 하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정치적 권한이 확보된 유럽선진국들은 대부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비례대표제와 여성정치참여는 매우 높은 긍정적 상관성이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제 확대를 위한 정치개혁 요구가 높다. 어느 분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고 하더라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여성정치참여 확대를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스스로 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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