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근(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드문제와 해묵은 숙제인 북핵문제, 일본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산적한 외교·안보 현안 속에 꼭 잊지 말아야 한 가지가 있어 이렇게 편지를 전합니다. 바로 ‘개성공단’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개성공단은 작년 2월 폐쇄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 외화유입 차단 위한 것" 이라며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했지만 그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개성공단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남북관계의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처럼 버텨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조치인 5.24조치로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되었을 때도 개성공단만은 유일하게 남아 전체 남북교류의 99%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성공단 하나만으로도 전체 남북교류협력이 오히려 증가하는 이상 현상도 있었습니다. 


대북제재로 신규투자가 금지되었음에도 개성공단이 성장세가 지속된 것은 개성공단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 모두 win-win 하는 남북경협사업입니다. 저렴한 노동력과 인접성, 같은 언어 사용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개성공단은 지난 10여년 간 30배 넘는 성장을 해왔고, 남북 노동자는 5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모든 게 3단계로 계획된 개성공단 계획 중 1단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그 자체가 한반도 ‘평화’였습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면 남북대화의 창구로서 상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개성공단을 출구전략 없이 무작정 폐쇄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북경협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관련 종사자들과 거래처, 관계 업체들 모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통일과 관련된 꿈을 키운 청년들의 바람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싶었다는 한 20대 청년은 대학때부터 학생회, 대외활동 모두 ‘통일’에 집중해왔다고 합니다. 실제 북한대학원대학교에도 진학하고 입학금도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학한지 한 달만에 개성공단은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상황실에서 일했다는 30대 청년도 만났습니다. 남북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한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안 북한사람은 그저 동료였다고 합니다. 작은 통일과 탈분단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개성공단이었다고 이야기한 그는 남북관계 악화로 고작 1년 전 일을 옛날 이야기처럼 느끼는 듯 했습니다.


대학 학과 중에는 이제 동국대 북한학과만 남았습니다. 고려대는 작년 ‘북한학과’를 ‘통일외교안보전공’으로 개편한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2006년에는 관동대 북한학과가 폐지되었고, 2008년에는 선문대 북한학과가, 2010년에는 명지대 북한학과가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 남은 동국대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최소 규모의 정원만 유지하며 폐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남북경협이 모두 중단된 와중에 그들이 ‘북한’이라는 현실적으로 특화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남북교류 중단은 청년세대 통일인식 악화로도 이어졌습니다. 2015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과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20대는 20.3%로 30대(30.6%), 40대(27.1%), 50대(33.7%)보다 더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20대는 74.5%가 가능하다고 응답해 30대(71%), 40대(70%), 60대 이상(68.8%) 보다 더 높아 심각한 안보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건 개성공단은 북핵이나 사드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과는 별개의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점을 미국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실제 도라산역을 방문하면 그곳에는 ‘입국’ 대신 ‘입경’ 이라고 쓰여 있고 ‘출국’ 대신 ‘출경’ 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헌법상에 나와있듯이 남북은 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중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곳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과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을 의미를 되새기며 서명한 철도 침목이 놓여있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 서명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철도가 한민족을 이어주기를 기원합니다.’ 즉 미국도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통일대박의 헛된 구호와 통일준비위원회, DMZ세계평화공원 같은 의지와 실천 없는 거짓말로 남북관계의 기대와 전망은 늘 실망으로 끝났습니다. 그럴 때 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이 만났던 10.4 남북공동선언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때는 한반도에 갈등과 대립이 아닌 평화와 번영이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개성공단이 있었습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부터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삼아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 리더십을 기대해봅니다. 6.15, 10.4 그 때처럼 말입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지난 5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한

'2017 상생의 남북경협을 위한 서울시민 한마당' 행사가 열렸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폐쇄된지 벌써 2년여가 지난 '개성공단'이었습니다.


'바꿈, 세상을바꾸는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스 하나를 맡아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바꿈은 

개성공단의 재개를 응원하고, 잊지 말자는 뜻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액션들을 적어

돌려, 돌려, 돌림판!을 준비했습니다.


보이시나요? 이런인기라니요.

바꿈 부스 앞에만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비결은 단연! 바꿈이 준비한 다양한 선물이었지요.


수첩, 다이어리, 책부터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에게 인기 최고라는 초코파이까지! 

이날 나눠드린 초코파이만 200개 가량 됐는데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초콜렛이 다 녹았다는 건 안비밀.



비밀병기 돌림판에는 어떤 실천들이 담겼는지 궁금하시죠?


개성공단에 응원 메시지 남기기, 바꿈이 준비한 개성공단 관련 카드뉴스 공유하기,

개성공단 관련 메시지가 담긴 프레임 들고 사진 찍어서 지인에게 보내기, SNS 프로필 사진 등록하기

...등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응원의 메시지, 열심히 적고 있는 거 보이시죠? 


지나가던 외국인도 바꿈 부스에 들러서 메시지를 남겨주셨는데요.



뭐라고 남겼는지 볼까요?



흠...다들 무슨 뜻인지 아시죠? :) 

날 그냥 내버려두란 말야!! 



자, 이번에는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보실까요?

인기가 너무 많아서 사진 찍느라 힘들었어요. 훌쩍.


해맑은 꼬마 친구들과

페이스북이 낯설어 프레임을 거꾸로 들고 계셨던 어르신의 NG 사진까지!!

행사장의 깨알 재미들을 함께 느껴 보아요.



이런 열기라면 개성공단 재개의 날,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개성공단 다시 활짝 열린 개성공단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 듯!


아, 조금 덜 더웠으면 하는 소망도 살짝 보탤래요.


돌려, 돌려, 돌림판~

개성공단도 돌아~ 돌아~ 돌아오라!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개성공단이 중단된지 오늘로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과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청년'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분단은 아직도 한민족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불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하다. 그래서 올해 2월 개성공단이 폐쇄 되었을 때에도 그것의 문제점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청소년 중 일부는 북한을 우리와 다른 국가로 인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점차 통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분단이 70년 이상 지속되면서 우리에게 분단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단은 당연한 것일까? 암이 위험한 것은 우리 몸 깊숙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병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고통이 심해져서 발견 할 땐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분단은 어쩌면 우리에게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함에도 그것이 위태롭게 할 만큼 깊은 병이란 사실을 모른 체 살아가는 암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분단이 이렇게 익숙한 가장 큰 이유는 한편으론 분단으로 인한 억압에 그 만큼 익숙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 억압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하나로 정리 될 수 있다. 바로 '다양한 의사표현에 대한 억압'이다.  탈 분단이란 개념은 추상적이면서 포괄적인 개념이다. 간단하게는 분단구조의 해체이기도 하지만, 깊게 들어가면 분단에 파생된 모든 잔재의 청산까지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통일'이 과거 민족주의가 대세였던 해방과 전쟁 이후 추구했던 목표였기 때문에 현재 한반도 상황에선 적합하지 않다. 통일이란 개념 속에선 다양성을 유보시키는 폭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남북정권은 통일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분단체제를 더욱 강화시켰던 선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탈 분단은 보다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우선 그 전에 우리는 언제부터 통일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는지부터 간략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통일은 '단결'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국가권력자에 의해 국민을 통제시키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다. 불행히도 휴전 이후 남북은 특히 과거 냉전시기 체제경쟁에서 남북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데에 통일을 독점하고 이 목표를 위해 '국민'과 '인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시켰다. 그리고 남북 각자의 주도하의 일방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경제개발을 빌미로 주권을 철저히 유린시켰다. 북한은 그 흐름을 깨지 못했지만 남한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계기로 7년 뒤, 87년 '6월 항쟁'을 통해 잃어버린 주권을 쟁취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국민은 통일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 추진한 남북화해협력정책을 보수진영에선 체제부정으로 몰고 다시 과거 반공적인 시각에서 통일을 독점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2016년 12월 현재 우린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탈 분단은 '통일논의의 주도권을 국민이 가지는 것'이며 동시에 '다양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성숙과 확장'이 곧 탈 분단의 실제임을 앞선 역사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2016년 12월 현재 우리는 주권재민을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많은 촛불을 통해 확인했다. 이 광장은 바로 '분단의 구조가 해소되는' 장소이다. 앞서 분단은 통일을 빌미로 국가권력에 일방적으로 '단일화'하는 과정임을 보았다. 다양성을 배제한 체 일방적으로 어떤 입장 또는 세력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배타적인 갈등이 곧 분단의 실재적 모습이다. 또한 오르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모든 가치를 경제우선제일주의로 잡은 산업화로 인한 폭력성을 우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목격했다. 보수 일부 단체들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인심공격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내세운 논리가 바로 '경제위기를 부추긴다.'는 비상식적인 논리였다. 여기에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비판과 갈등, 토론을 '분열'로 통칭하며 곧 북한과 연계된 '종북 세력'으로 규정해 버린다. 지금 그 오래된 분단의 잔재들이 해소되는 과정을 우린 광장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광장은 어떻게 분단에서 파생된 일상적인 문제를 해소하며 그것이 지향해야 될 방향은 무엇인가? 본고는 광장이 '단일성에서 다양성으로 변화하는 만남의 장'으로서 탈 분단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것이 남북분단의 해소로 이어지기 위해선 남북의 사람들 간에 만남의 장이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모델로서 중단된 개성공단의 일상적 단면을 통해 광장의 다양성이 어떻게 남북분단에 다양성을 부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리 탈 분단을 경험하는 만남의 장: 개성공단

우리는 남북관계와 통일을 말 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단의 익숙함을 간과한다. 우리에게 분단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다. 연세 높은 어른이 아니라면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미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났다. 통일은 어디까지나 책으로 보았다. 이중 누구도 통일이 된 한반도를 경험한 이는 해방 이전의 세대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익숙한 통일은 사실 매우 부자연스럽다. 경험을 안했기 때문에 통일은 매우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 통일은 반대하지 않는 한 거의 장밋빛 환상으로 채워져 있다.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남북은 하나가 되고 곧 강대국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도대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통일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건 같은 민족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동질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 단군할아버지부터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서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공유한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으로 우린 북한을 바라본다. 그러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은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갖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대부분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이 우리에게 자연스럽다면 북한에 대한 인식은 추상적인 '민족'이란 동질성 보단 '주적'이란 현실적인 존재가 더 와 닿는다.

사실상 남북관계는 짝사랑과 비슷하다. 짝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거기엔 상대방과의 감정의 공유나 교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짝사랑은 상대방을 매우 추상적으로 이해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짝사랑 하는 상대방을 자기가 원하는 생각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다. 대부분 짝사랑은 상대방을 향한 보다 직접적인 만남과 교류가 없다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파국으로도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대로 사랑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급기야 상대방에게 강제로 사랑을 강요하거나 폭력을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남북 구성원은 바로 현실적인 서로의 이해와 교감 보다 자기가 원하는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하는 통일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이미 남북의 짝사랑은 한번 파국을 겪었다. 바로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한국전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적인 결론에 이른다. 통일은 우리에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남북은 오랫동안 자기가 원하는 짝사랑을 강요하는 관계라면 탈 분단 보다 분단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실제 일상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부대끼고 대화하며 실질적으로 남북 구성원들이 조심스러운 사랑을 키워갔던 장소가 있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2005년 본격적으로 개성공단이 운영된 이후, 완전히 문을 닫은 2016년까지 근 10년 동안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근로자들이 매일같이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편견을 허물고 새롭게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이어갔던 '통일의 실체'였다. 외국인에게 남북통일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긴 설명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여기서는 오히려 분단이 어색하다. 분단에서 남북 구성원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했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함께 지내보니깐 그런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무섭고 거칠고 음흉스러울 것 같던 북한 근로자들은 그저 우리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가장이며, 어머니이고, 이웃 이었다. 그래서 편견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어느 세 개성공단에서 남북 근로자들은 함께 살아가고 교제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탈 분단을 실제로 경험하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개성공단은 바로 미리 탈 분단을 자연스럽게 남북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미리 본 만남의 장 이었다.

개성공단 그 때 그 하루 : 일상에서 온 몸으로 경험하는 탈 분단

오늘도 어김없이 자명종 시계는 오전 6시를 귀 따갑도록 울린다. 정말 몸은 무겁지만 일찍 일어나야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개성공단에서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살아야 한다. 약속된 시간에 나가지 못하면 회사 지각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부지런히 세면하고 숙소를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직장까지 이동한다. 빠르게 대로로 나갈 수도 있지만 맘 편하게 외곽으로 빙빙 돈다. 뭐 산책 겸 이라는 건 명분이고 사실은 까다로운 북한 교통보안원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저항정신이라 할까? 안개가 자욱이 낀 개성공단은 매우 부산하다. 새벽부터 5만이 넘는 북한근로자들이 통근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무려 250대의 버스가 이동하는 장관이지만 5만의 북한 근로자를 실어 나르기엔 무리다. 거의 콩나물 버스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버스에 내려선 꼭 삼삼오오 손을 잡고 직장까지 출근을 한다. 그런 출근시간의 부산한 모습을 보면서 J군도 출근했다.

출근하고 밀려오는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점심 때 쯤 되면 함께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아저씨가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번엔 자녀자랑이다. 이번에 개성의 명문인 개성성균관상공업대학에 자식이 입학했다면서 굳어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보면 남북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대부분이 다 아버지뻘 인데 사리원 출신인 비슷한 연배의 북한 근로자는 어느 세 친구처럼 친숙하다. 때마침 브라질 월드컵 시즌이라 외국의 유명한 축구 스타플레이어에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음 남북 남자들은 역시 축구이야기면 사족을 못 쓴가 싶다. 그렇게 수다를 털다 보면 어느 덧 정오가 오고,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식당에 간다. 이때가 아쉬운데 남북 근로자들이 직장에서 일은 같이 하지만 식사는 따로 한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먹으면 참 좋을 텐데.......

오후에 잠시 숙소에 들려 차를 끌고 오기 위해서 J군은 잠깐 걷기로 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태양과 그 속에서 배구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황해도 아가씨들의 코웃음에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 진다. 숙소에서 차를 끌고 가기 전에 숙소 옆 OO편의점에 들른다. 개성공단에서는 모든 종업원은 반드시 북한 근로자를 써야 해서 점원 역시 북한 앳된 여자점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고향이 어딘지 물어본다. 수줍어하면서도 할 말을 하는 북한 여자점원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리고 차를 몰고 다시 직장에 도착해서 남은 일들을 마무리 하고 그렇게 퇴근길에 오른다.

저녁노을이 길게 늘어진 개성공단 밖의 북한 마을풍경. 2중으로 펜스가 둘러치고 그 사이 북한 초병이 있지만 북한 마을은 그 어느 때 보다 가까이에 있다. 거기에 개성공단은 주변에 공장도 도시도 없기에 소리가 잘 들린다. J씨는 그 때 펜스 건너편 길에서 한 아이의 쩌렁쩌렁한 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장면을 바라본다. 그 아이는 또랑또랑하게 엄마를 부르고, 동구 밖부터 달려오는 자녀를 보며 안길 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너그러운 모습. 그리고 그렇게 품에 안긴 자녀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그 아이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재잘재잘 이야길 한다. 그것은 카메라로 담으라고 해도 담을 수 없는 J군만의 아름다운 추억 이었다.

그렇게 북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개성공단 이웃을 만나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정말 탈 분단을 온 몸으로 맞보고 싶은가?

위의 J군의 '개성공단의 일일'이 소설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이것은 추상적인 상상이 아닌 실제를 바탕으로 재현한 이야기다. 개성공단에서 남북 근로자들은 실제로 남한 사람, 북한 사람(또는 남조선 사람, 북조선 사람)으로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냥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이자 함께 이야길 나누는 가까운 이웃으로 서로를 느끼고 나눈다. 거기엔 이념도 정치적인 견해도 나눌 필요가 없다. 그저 함께 일상을 나누는 친근한 이웃이자 친구로 이미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남북 근로자들은 탈 분단을 온몸으로 경험해 왔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작년 2월 갑자기 폐쇄 되었을 때 북한도 맞대응으로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48시간 이내로 남한 근로자들을 모두 추방시켰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게 급하게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데 매일 직장 건물을 청소하던 직원이 '선생님 언젠가 꼭 다시 만납시다.'란 인사를 건넬 때 뭉클했다는 일화도 있다. 비록 남북관계는 크게 변했고 정치적인 갈등이 증폭되었을 지언 정 개성공단 안에서 만큼은 남북 근로자 모두 서로 함께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고 바랬다. 사실상 개성공단은 남북 구성원이란 정체성에서 개성공단인 이란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경험이 지금 단절 된 체 1년여의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정말 탈 분단을 온 몸으로 맞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주저 없이 개성공단이 다시 복원되길 소망하고 또 새로운 정부에 외쳐야 한다. 지난 남북관계에서 보듯 아무리 정부가 남북교류의 의지가 강해도 국민이 동조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철저히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야 말로 더 많은 만남을 경험해야 한다. 연애는 책으로 공부해서 알 수 없듯이, 남북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탈 분단은 이론과 이해가 아니라 경험과 만남을 통해서만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체득될 수 있다. 곧 더 많은 지역에서 남북 구성원들이 함께 만남을 통해 탈 분단을 희망하고 고대하는 이들이 남북 도처에 많아지길 기원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개성공단이 중단된지 오늘로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과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청년'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2016년 2월 10일 나의 날개가 부러졌다. 나의 미래이자 꿈이었던 개성공단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통일이라는 꿈은 개성공단 몇 개만 있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에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들어가 일을 하고 통일의 초석이 되겠노라 다짐했었다.

이런 다짐을 한 후 나의 꿈을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힘을 쏟아 부었던 시절은 '대학생'때 였다. 내가 바라던 통일리더가 되기 위해 나는 무던히 애를 썼다. 나의 리더쉽을 기르기 위해 학생회에 들어가 동기, 선·후배들과 열정적으로 술을 마셨고 통일과 우리사회와 관련된 대외활동들을 통해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꿔보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학과공부 또한 열심히 하여 학과수석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성과들은 때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내가 했던 활동들은 빨간 색깔론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며 간혹 회의감에 휩싸여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든지 해내는 나를 놀라워했고 '너는 정말 취직은 걱정없겠다!'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분단'이라는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의 사람들에게 큰 아픔이지만 분단을 해소하기 위한 통일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는 개인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노력은 흔히 바늘구멍이라 불리는 대기업, 공무원의 취업문턱을 넘기 위한 것이 아닌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들어가서 통일을 위한 일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결국 중단되었다.

현재 청년실업률 9.4%, 고용률 42% 심각하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없는 나의 미래의 실업률 100%, 고용률 0% 더 심각한 상황이다. 단순히 개성공단의 중단은 숫자에 불과한 실업률과 고용률 뿐만이 아닌 나의 꿈이라는 목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통일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이 중단되었다는 발표를 들은 후 나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통일의 꿈을 꿔봤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것을 정부가 모를 리가 없을 터, 나는 우리나라가 통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통일이라는 꿈 때문에 나는 북한대학원대학교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합격발표가 나고 등록금을 이미 낸 상태에서 불과 한달 후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맘껏 먹지도, 놀지도 않고 돈을 모아 대학원등록금을 마련해서 입학을 했는데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들어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기대감을 가진 채 입학을 했다. 이런 기대감속에 입학 후 나는 이미 남북한과 관련된 업을 삼고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다. 대북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시는 분, 대북사업을 하셨던 분, 통일부에서 일하시는 분, 그 외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셨던 말은 '개성공단이 중단된 마당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였다. 그 분들이야 그래도 직장이 있는 마당에 고민을 하셨지만 사실 아직 직장도 없고 전업학생이었던 나로써는 그런 말들을 들으니 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이 좌절감이 과연 나만의 고민이었을 까?

지난년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의 1명을 모집하던 직원 공고에서 400명이 모였다고 한다. 대기업도 철밥통도 아니었던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400:1일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나처럼 통일을 꿈꾸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인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그곳에 모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기성세대는 400명의 미래의 기회를 빼앗아 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개성공단을 더 이상은 정치의 문제, 국가의 문제, 남북한 간의 체제갈등적인 상황으로써의 수단이 아닌 단지 '삶의 터'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냥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중에 하나'라고 말이다. 한창 개성공단 취직을 꿈꾸던 시절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는 한 직장인을 만나 물은 적이 있다.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개성공단을 통해 정말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남북한이 정말 서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나요?' 이러한 기대에 찬 나의 생각과는 달리 그분은 그저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는 것 뿐이다. 개성공단에 대해 뭔가 심오하게 생각하고 통일에 대해서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통일이 그저 그냥 먹고 살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개성공단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보다 통일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인간으로써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북쪽으로, 개성공단으로 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닌 어쩌면 그냥 개성공단에 가서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그 자체가 통일이라는 것이다. 바로 '생활의 통일'이다. 

개성공단은 화해의 접촉지대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먹고 일하며 서로간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또한 개성공단은 통일 네트워크다. 개성공단의 사람들뿐만이 아닌 그들의 가족·고향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제품들을 사는 고객과 그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 준다. 개성공단은 청년들의 미래의 기회다. 청년들에게 힘내라는 말이 아닌 진짜 힘을 실어줘야 한다. 개성공단을 재가동 시키는 것이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남북간의 교류에 대한 '상'(像)은 북한의 핵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개성공단으로 인해 어떻게 바뀔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개성공단을 지속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개성공단을 다시 재가동한다면 개성공단에 대한 정확한 '상'을 그리고 이를 활용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나는 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에게 '베스트 커플상'을 주고 싶다. 베스트커플의 수상자는 바로 남한의 대기업의 장벽에 갇혀 성장의 발동을 이어나갈 중소기업과 북한의 노동자뿐만이 아닌 더 나아가 북한의 기업 및 연구센터이다. 즉, 이들의 수상이유는 이를 통해 새로운 '뉴커플'=남북기업클러스트를 형성하고 더불어 남북한청년들에게 미래의 '기회의 터'를 제공할 것이다.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최후의 통첩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같이 분단의 아픔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다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만 무성하지만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언젠가 다시 재개될 개성공단이 가져올 새로운 상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나에게 '삶의 터'에서 더 나아가 '기회의 터'를 제공할 개성공단을 계속 그리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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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있는 사람들

2011년의 일이다. 수능을 치고, 가, 나, 다군으로 나누어 지망하는 대학과 학과에 지원서를 썼다. 어느 학과를 지원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중에는 지금 재학중인 북한학과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지원한 학교와 학과들을 메모해두셨다. 그런데 다른 학교와 학과는 그 이름 그대로 적어두시고는, 유독 북한학과에 대해서만 ‘북-’이라고 표기해놓으셨다. ‘북-’. 아버지가 나의 지망 학과를 메모하던 그 순간에 북한학과는 왜 ‘북-’이되었을까. ‘북-’은 뭘 의미하는 걸까. ‘북-’은 도대체 뭘까.

북한학도로 약 5년을 보내면서, ‘북-’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졌다. 북한학과 단체티를 입고 버스에 타면, 심심찮게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로 쏠린다. 자세히 보기 위해 가방을 들추어보는 분들도 계신다. 단체티를 입고 거리를 걸을 때, 누군가 뒤에서 “김대(김일성종합대학)다니세요?”하는 해괴한 질문을 한 일도 있었다. 한 선배는 지하철에서 전공 서적을 읽다가 웬 할아버지에게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고 등짝을 맞았다고 하며, 학과 학우가 전공 과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다 사이버수사대에 덜미가 잡혀 경찰서에 출두되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들려왔다.

같은 학교의 학우들도 북한학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학교에 그런 과가 있어요?”하고 놀라며, “그 학과에서는 뭐 배워요?”하고 물어온다. ‘뭐 배워요’가 정말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궁금증만을 함축한 의문은 아닐 것이다. 이설주가 누군지 아느냐는 둥, 장성택이 왜 죽었냐는 둥, 북한에 핵무기가 몇 개냐는 둥의 질문은 애교다. 조금 친해진 사람들은 친밀함이라는 관계성 뒤에 살짝 숨어서는 “북한 추종하고 그래?”, “위험한거 아냐?”, “빨갱이학과야?”하고 물어온다.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내가 북한학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간부와 선임들은 ‘북괴학과’라고 말하며 깔깔거렸다. 인터넷에 북한 관련 글을 몇 번 기고한 적이 있는데, 댓글은 정말 가관이었다. 시민으로서 나의 존재 뿐만 아니라 때로는 부모님까지 들먹여졌다. 악플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편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꽤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꽤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것이 ‘북-’의 정체였다. 그건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북-’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총체적 무지, 사회적 배타성, 그러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묘한-韓-친밀감,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 궁금증 따위의 것들이 온데 뒤섞여있는 복잡한 무언가. 나보다 인생을 훨씬 오래 사셨던 아버지는 ‘북-’의 정체를 나보다 훨씬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북한학과를 ‘북-’이라고 기입한 아버지의 표현은 그야말로 정확했다. 때때로 누군가 나에게 학과를 물어오면,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한번쯤 머릿속으로 굴린다. ‘북-’.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또한, 아마도 ‘북-’에 대해 마냥 심심한 반응을 보이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나는, 말하자면 북한학과라기보단 ‘북-’에 있는 사람이다.

“온 나라가 최순실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운데, 당장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거라고, 저거.”

안보견학차 강원도 철원에 들렀을 때다. 날은 추웠고, 분단 한반도의 최전선이라는 것을 시위하듯 호국훈련이 한창이었다. 철원에 들어서면서 가장 처음 본 모습은 군인들은 도로에 벌벌떨며 서서 차량운행을 통제하고있던 모습이었다. 자주포들과 병력을 실은 군용 차량들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철원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고석정으로 이동하는 길, 앞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군용 트럭 ‘두돈반’ 을 보며 택시기사는 푸념하듯 내뱉었다. 철원평야 저 편에서는 쾅, 쾅 포탄소리가 울렸다.

그해에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철원의 군대에서는 지뢰폭발 사고가 있었다. 지뢰를 밟은 병사는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아마 그것은, 휴전국에서 태어난 죄일 것이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지뢰를 발로 걷어차다가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은 전방지역에는 비일비재하다. 전쟁이 끝나고 60년도 더 되는 세월이 흘렀으나, 변한 것은 크게 없다.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거라고.” 그게 단순히 철원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안보관광을 하는 길에 관광안내사는 힘주어 강조했다.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켜낸 어르신들에게는 감사를, 나라를 이끌어갈 세대에게는 격려를 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땅덩어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뿐인가, 관광안내사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서 설명을 들은 후, 내가 북한학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안 군인은 내게 질문이 없냐고 물었다. 북한학과라면 더 많은 질문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군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이 조그만 전망대에서 질문이랍시고 할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북한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걸어주었음에 고마워하면서, 앞에 있는 강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했다. “저 강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있을까요?” 군인은 ‘아니’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북한이나 통일, 혹은 분단에 대해 보다 심화된 사유를 기대한다. 누군가는 투철한 안보관을, 누군가는 깊은 평화관을 기대한다. 단순히 북한학과에 있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탈북민 관련 단체에서 일을 하거나, 북한 관련 연구소나 부서에서 근무하거나, 여하튼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 ‘북한에 대한 만연한 적대감, 총체적 무지, 사회적 배타성, 그러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는 묘한-韓-친밀감,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 궁금증 따위의 것들이 온데 뒤섞여있는 복잡한 무언가’에 항시적으로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힘쓸 것이고, 누군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단순히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 누구라도, ‘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많이, 더 자주 요구되거나 그렇지 않을 뿐, 누구나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특정한 사유를 요구받고 있다.

2015년 말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일 당시, 새누리당 당사 앞에는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나는 그 현수막을 보자마자 대번에 칼럼을 하나 써서 인터넷에 기고했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현실은 부당하며, 오히려 그런 현실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사실을, 마치 주체사상을 내면화하고 믿기 시작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의 지나친 발현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라는 말도 북한 앞에서는 무용하기 짝이 없다.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장하는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물론, 악플도 많이 달렸다.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문구는,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주체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지한 가운데 만들어진 문구다. 그러한 현실을 당리당략에 맞게 악용한 것이다. 흔히 ‘북풍’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 사회 정치의 풍토는, 그 효과가 무척이나 확실하므로 지금껏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나서 시작된 박근혜 퇴진 시위 초기에 평화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던 것도 ‘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평화롭지 못하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 버스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향해 던져졌던 ‘프락치’라는 말이다. 프락치의 의미가 ‘전문시위꾼’, ‘선동가’, ‘폭력주의자’, ‘종북세력’ 등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은 구태여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초 북풍은 북한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각인시킴으로써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이른바 ‘안보위기 결집효과’를 극대화하고, 동시에 반대세력을 흔들기 위한 보수 기득권층의 전략이었다. 1997년의 총풍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북풍은 주도하는 자가 뚜렷했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북풍은 점차 전략을 넘어, 온 나라를 휘감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구조처럼 굳어지고 있다.

탄핵 소추안이 기각되고 난 후,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심판에서 박근혜는 또 한 번 북풍을 이용하고자 했다. 탄핵심판에서 박근혜의 대변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촛불집회에서 불린 노래의 작곡가가 김일성 찬양 노래를 만든 전력이 있다며, 촛불집회는 민심이 아니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대항마였던 문재인을 향해, 북한에 의견을 물었던 종북주의자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자 몇몇 언론들은 박근혜가 2005년에 김정일에게 썼던 편지를 공개했다. 김정일을 ‘위원장님’이라고 부르거나, 남북이 아닌 ‘북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박근혜를 소개함으로써 북풍의 방향을 오히려 박근혜에게 돌리고자 했다.

북풍을 박근혜에게 돌리고자 했던 현실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북풍이 단순히 북한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 관련되거나 북한에 친밀감을 표하는 행위를 경계하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그 어떤 평화적 사유와 행위도 배척된다면,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헌법마저도 경계대상이 된다. ‘북-’에서 살아가는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과, 한반도 남쪽의 모든 시민들은 분단의 옭아맴 속에서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의 남성들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2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거나,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치졸한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전방의 주민들이 지뢰사고를 당한다거나,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북한이 동해와 서해 어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겨 우리나라 어민들이 어획에 피해를 입었다거나, 그 결과 꽃게나 오징어의 가격이 폭등하거나, 개성공단이 폐쇄되어 한동안 교복 공급량이 수요량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교복 대란이 있었다거나, 하다못해 북한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는 사실이 있다거나, 하는 현실보다 더욱 심각한 현실이 닥치고 있다. 북한학과를 ‘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더욱 가혹해졌다는 것, 과거에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주장과 실험을 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그조차도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제는 ‘북-’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들조차 배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단은 강하다. 그러므로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강해야한다. ‘북-’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념과 사상은 달랐을지언정,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러나 북풍이 거세지는 오늘날에는 노력의 스펙트럼이 상당부분 소실되고 있다. 이래서는 평화적으로 분단을 넘어서는 일은 점차 불가능에 가까워지기만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분단은 강하다. 그러므로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더욱 강해야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우리 손으로 제한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여전히 ‘북-’의 한가운데 선 채로, 언젠가 ‘북-’이 아니라 평화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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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다시뛰자 개성공단" 시민한마당 

청년 이그나이트 경진대회 청년, 개성공단의 길을 묻다


지난 토요일 무려 100만명이 모였다는 광화문 광장을 바꿈은 일요일에 또 갔어요.

100만 명 까지는 아니지만 포근한 주말을 즐기기 위한 많은 시민들로 가득했습니다.


한겨레신문사와 사단법인 개성공단 기업협회 주최하는 
청년 이그나이트 경진대회 ‘청년, 개성공단의 길을 묻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개성공단과 청년에 대해 행사를 기획하고 발표도 하는 자리였습니다.

바꿈은 부스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한반도와 개성공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쿠키에 우리나라 지도도 그리고, 사진도 찍으며 사람들 머릿속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한반도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시민 분은 실제로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했었다는 분이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만든 개성공단이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큰 상징성을 가지며 지켜왔는데, 
이 모든 노력이 어쩌면 비선실세의 농락 때문에 좌절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애착이 강한 분께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우리가 그간 너무 무심하진 않았는지 반성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또한 비선실세가 아니라 바꿈의 실세인 홍명근 활동가가 멋진 발표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남북문제, 평화, 통일, 개성공단이 어떠한지 
또 우리가 멀게 느끼는 이런 주제들이 얼마나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지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발표에 대한 시상을 하기도 했는데요, 바꿈이 무려 우수상을 받는! 쾌거를!

열띤 집회로 조금은 피곤한 일요일이었지만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주말이었습니다:)

개성공단도, 우리나라도, 한반도도 이제 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바꿈도 열심히! 해볼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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