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에는 여름방학기간 동안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두 명의 대학생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게 벌써 한 달째 인턴생활 중인 두 청년..111년 만에 최고기온 신기록을 세운 몹시도 뜨거운 여름날 만나보았다.

이너뷰어_최영환(바꿈 상임활동가), 이너뷰이_김기홍,박재현(바꿈 인턴, 성공회대 경영학부)


최 : 우선 반갑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김 : 성공회대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4학년생 김기홍이다. 인천에서 살고 있는데, 사무실까지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와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게 좀 힘들지만 인턴생활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최 : 만족한다니 우선 알았다. 


박 : 성공회대 경영학부 재학 중인 박재현이다.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에 살고 있다. 산이 있어 경치도 좋고, 유흥가와 떨어져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이어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최 : 사는 곳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한 사람은 드문 것 같은데..혹시 출마할 생각 있나? 


박 : 없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기에..

(김기홍 인턴)


(박재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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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왜 바꿈으로 지원을 했는 지가 궁금하다.


김 : 다른 기업도 많았지만 NGO가 바꿈 하나였다. 바꿈만 유일한 시민단체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한 다른 사기업보다 호기심이 생겨서 면접에 지원 했다. 사실 시민단체에서 일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일하다보니까 관심이 새롭게 생겨나게 되고..아무튼 바꿈이라는 단체는 정말 좋은 단체인 거 같다.


최 : 음..그래..너무 긍정적인 말들만 하는데 인터뷰를 의식한 것은 아닌지?


김 : 뭐 그럴 수 있지만 시민단체에 관심이 있었다면 진작 바꿈 같은 단체에서 경험을 쌓지 않았을까? 싶다.


최. : 놀랍다.


박 :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필터링 해주는 것인가? 일단 인턴십 교육에서 바꿈을 처음 알았다. 순수하게 바꿈이 재밌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네트워킹 시간에 홍 사무국장과 얘기를 나누는데 4차원 같았고, 더 흥미가 생겼다.


최 : 어떻게 이미지는 처음과 같은가?


박 :  그렇다. 편하게 잘 대해주기도 해서 좋다.


최 : 이 자리에 없는데도 칭찬을 하는 걸 보면 벌써 사회생활을..


박 : 앞서 얘기한 것 처럼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면서 산다. 안좋은 모습도 있겠지만..

(몹시도 더운 날씨 였기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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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그래. 우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다음으로 바꿈에서 일해보니까 어떤가?


김 :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학생 때보다 더 실무적으로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그리고 바꿈은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기간이 더 기다려지고 궁금하다. 바꿈은 항상 기다려지고 궁금해지는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다.


박 : 바꿈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스법단 같은 경우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되었는데 내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 보람되고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된 거 같다. 내가 많이 무지했구나도 싶고. 앞으로는 사회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리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 : 정말 출마 안할 건가?


박 : 그렇다.

(불출마 의사를 확실히 하는 박재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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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바꿈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김 : 면접때 통계나 리서치 쪽에 관심이 많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사회적 이슈나 사회문제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통계를 내고 의미 있는 데이터를 추출해서 바꿈 홈페이지에 올리는 등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은데 이런 것을 하면 적성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박 : 인터뷰라는 고정관념때문에 생각이 갇혀있었는데, 이제는 생각나는대로 말하겠다. 바꿈에서 친목도모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모두와 친목을 다지고 싶다. 


최 : 선호하는 주류와 음식이 있나?


박 : 가리지 않는다. 다만 빵은 피하고 싶다. 친척 중에 빵집하는 분이 계셔서..


최 : 으흠 그래..조만간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친척 분 빵집은 갑질 등 피해를 당하면 바꿈으로 연락을 주길 바란다.


박 :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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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일하면서 느낀 바꿈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김 : 음..우선 집에서 멀고 교통도..그리고 내가 왜 겨울에 인턴을 안하고 여름에 해서 이 더위를..사실 이 외에는 단점이 생각나는 게 없다. 굳이 파헤칠 이유도 없고. 장점은 친한 학교동기와 같이 일하게 되어 서로 도움을 청하고 힘을 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분들이 일에 대해 잘 알려주는 것도 좋고, 사람이 많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능률을 높이며 일할 수 있어 좋은 거 같다.


박 : 장점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정다감하다. 그리고 보람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고..사람이 소수여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은 거 같다. 단점은 점심 때 뭐 먹어야될 지 모르겠다. 강남이라 비싸기도 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 중인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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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바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


김 : 점심식사를 도시락으로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직장인 점심식사에서 막내가 메뉴고민하고 눈치보는 것을 상상했는데..바꿈은 도시락을 먹으니까 신선했다. 


최 : 그것뿐인가?


김 :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일정이 많아서 시민단체가 하는 일들이 발로 바쁘게 뛰어야 되는 것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박 :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름을 굉장히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작명 센스가 좋다. 그리고 들은 얘긴데 5년 프로젝트라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지속되길 바라는데 신선하면서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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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슬슬 마무리해보자. 다음 인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김 : 호기심을 가지고 지원해서 평소에 시민단체에서 일해야겠다라는 기대감은 없이 왔다. 그래서 기간만 채우고 끝내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시민단체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바꿈의 활동이라든가 다른 단체의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된 거 같다.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싶고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바꿈을 추천해주고 싶다.


박 : 바꿈에 오기 전 힘든 알바를 많이 했었다. 택배상하차, 공사장, 예식장 등. 힘든 일을 하다가 여기 오니까 정말 좋았다. 인턴을 지원하는 학생 중 인생을 힘들게 살아오신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직 인생은 행복하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이 추천해주고 싶다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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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 마지막으로 바꿈의 주요사업이 공론장인데..두 사람에게 공론장이란..?


김 :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매우 생소한 것..비유를 하자면..재밌게..


최 :재밌어야 한다.


김 : 중요성을 알면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5만원? 모르면 그냥 지나치지만 알면 줍게 되니까.


박 :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공론장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공론이라는 것이 대다수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뭔지 모르면 안되지 않나? 공론장, 공론화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 시간에도 넣고..실질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서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특히 자신의 의견을 나서서 얘기하는 문화가 아니기도 하고.


최 : 그래서 정말 출마는 안하는 것인가?


박 : 정말 필요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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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던진 공론장관련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답변한 두사람. 무더위에도 바꿈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8월21일(화) 저녁에 열릴 총회에서 만날 수 있고 전화를 드릴 수도 있으니 반갑게 맞아주시면 좋겠다.


이상 끝.



-바꿈,세상을바꾸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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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네트워크 4기 출범!

 

2018 청년도서 프로젝트!!!

청년 네트워크의 발자취...

 

<1기>

청년네트워크 첫 번째 결과물, 1기의 <세상을 바꾸는 청년사회입문서>!!


<2>

1기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탄생하게 된 2기의 <청년사이 꿈을 묻다>

 

<3>

또한 작년 청년네트워크 3기에서는 '대안정치연구모임','글쓰기모임'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번 723일에는 동국대학교에서 2018 청년도서출간을 위한 청년네트워크 4기의 첫 모임이 있었는데요, 올해도 다양한 주제에 많은 관심과
 재능있는 청년들이 많이 모여주셨습니다
.

프로젝트의 취지 소개와 출판사인사, 대주제 선정, 조별인사가 진행됐습니다~


먼저, 이번 출판에 도움을 주실 푸른들녘인데요.

푸른들녘은 도서출판 '들녘'의 청년브랜드입니다. 들녘은 '**록'과 '*권으로 읽는 ***'으로 유명하지만 

숨은 보석처럼 빛나는 인문서를 꾸준히 출판해오고 있는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청년도서의 주제는 총 7가지인데요. 공론장, 어린이집, 정치, 국제개발, 환경, 젠더, 통일 등의 주제를 가지고 

4기 구성원들이 각자의 경험과 사례를 토대로 좋은 글을 써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조별 인사 및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각 주제별로 조를 구성하여 도서의 방향 및 내용을 토론하고 향후 일정, 조장 선정 등 1시간 정도 

조별토론 후 우리의 첫 모임은 마무리됐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궁금하시죠~?

 

우선은 각 조별로 모임을 가지면서 글을 쓸 예정이에요!!

 

8,9월에는 전체모임 일정도 있고요.

 

9월 중으로 초안을 내고 수정작업을 거쳐서 11월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년도서 프로젝트를 왜 매번 하냐고요~?

 

먼저, 이 프로젝트는

민주주의 공론장을 통해 청년이 주도적으로 우리 사회 의제를 토론하고,

재미있고 다양한 논의로 기존 담론을 넘어 창의적 미래 대안을 만들어내고,

본 내용을 도서로 출판하여 의제와 대안을 청년의 시각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고 싶은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 여러 의제에 대한 논쟁적인 이슈를 학습하며,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무엇보다 청년들의 시선을 사회전체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도서출판을 비롯한 사회적 대화, 토론 등은 언론과 담당자에게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청년들의 사회적 참여를 강화시킬 수 있답니다~~

앞으로 청년네트워크 4기 활동과 11월에 출간예정인 청년도서 많이 응원해주세요!!



-바꿈,세상을바꾸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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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꿈의 특급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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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권 번호를 회신드리겠습니다!!

6.14(목) 오후 8시, 6.15(금) 오후8시, 6/16(토) 오후3시, 6/16(토) 7시 


[시놉시스] 

고등학교 동창 기석의 결혼을 앞두고 오랜만에 만난 정수, 우찬, 태식. 오랜만에 만난 탓일까, 오랜 친구 사이가 전같지 않다. 정수는 현실과 타협한 우찬을 비웃고, 우찬은 정수의 태도에 불쾌해한다. 태식은 정수와 우찬 사이의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은 빗나가기만 하고 오히려 세 친구들 사이에 숨겨졌던 감정들이 폭발하고 만다. 서로의 인생관을 비웃고, 부모를 모욕하기도 하며 그동안 묵혀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고... 

우찬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정수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며 정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우찬,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던 태식,  이 세친구는 결국엔 친구사이를 끝내기로 마음먹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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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폰을 낚아챘다. 스르륵. 이어폰이 귀에서 빠져나갔다. 다음은 손이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던 손이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이어폰이, 스마트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밀려난 뒤에야, 누군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바로 내 앞에서.


 무척 짧은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엄습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내 당황과 짜증이 몰려들었다. 스마트폰 액정을 보느라 아래 쪽에 고정돼 있던 두 눈에 불만이 차올랐다. 불만스런 눈빛을 한 채, 나는 떨궈져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였다. 평균 신장에 못 미치는 나보다도 더 작은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나 안 열리나 딱 보고 있어야지, 문 앞에서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걱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 그의 말을 듣는데 짜증과 당황 사이로 얄궂은 가식이 끼어들었다. "네, 네..."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 손을 들어 올렸다. 할머니가 다시 한 번 나를 가로 막았다.


 "나는 이렇게 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쿵 하는데, 어쩌려고 그래. 문 딱 보고 서 있으라니까.“


 촌스러운 복장과 말투를 한 할머니와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아침 시간 지하철. 출근이라는 행위에 이미 지쳐버린 수십 개의 눈들에서 피곤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일종의 안도감이 배어 나왔다. 짜증을 내도 이해한다는 뜻이었을까.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나를 시선들이 옥죄는 것만 같아 더 얼어붙어 버렸다. 어떤 반응도 못하는 사이, 지하철은 플랫폼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할머니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문이 닫혔다. 지하철이 출발하면서 발생한 진동에 얼음이 깨졌다. 그제야 나와 문 사이 위치를 인지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내 이어폰을 낚아챈 순간부터 그때까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나와 지하철 문의 간격은 한 뼘. 나는 그 문과 직각으로 서서 의자 쪽으로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나름대로는 안전한 자세를 했다고 생각했다. 내심 억울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야 지인들에게 이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결이 같았다. 짜증 났겠네. 뭐야. 헐. 대박. 왜 그래... 주변은 할머니는 오지라퍼, 잔소리꾼이라 평가했다. 타인의 물건과 몸에 함부로 손을 댔고, 행동을 강요했다. 더구나 나는 제정신이었고, 내 몸을 잘 돌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나 역시 지인들과 같은 생각일 터였다. 그런데 대체 왜였을까.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되묻기를 멈추기 어려웠다. 나는 정말 잘못 없이 당하기만 한 걸까. 할머니의 말은 그저 잔소리, 불필요한 참견, 이른바 꼰대질이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이유를 모른다. 지하철 문 앞에서 노래를 들으며 게임을 하는 행위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꼰대라는 단어의 사회적 정의가 불분명한 탓인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혹은 생각하기 귀찮은 탓인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사이에서 그나마 명확해진 점이 단 하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아무한테나 꼰대라는 이름표를 붙여왔다는 사실을. 생각의 게으름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해왔다는 것을 말이다.


- by 조응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N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오포세대(취업, 내 집 마련)를 넘어(인간관계, 희망)라는 말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구포세대(건강, 외모관리)라는 말이 생기고, 꿈도 희망도 없는 삶에 비관하여 ‘삶’까지 포기한다고 하여 심포세대, 완포세대, 전포세대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하나하나 부르기에는 어차피 비슷한 것들이어서 ‘N포세대’라는 말로 틍칭한다는 것이다.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 모자라 임의의 자연수 'N'까지 나오다니. 생각나는 족족 포기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나는 무엇보다 단어 뒤에 붙는 ‘포기’라는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포기라는 단어에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인데 능력이 안돼서 못하는 의미가 담아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당연히 거쳐 지나가는 일로만 알았던 연애, 결혼, 출산 같은 일들이 이제는 대단히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애인이 없고, 결혼을 안 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일이 나의 의사를 뛰어넘어 능력의 하나로 평가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특정 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 심지어 희망과 꿈까지 포기해야 하는 현상은 왜 생겨났을까.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 어른들의 말처럼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 끈기가 부족한 걸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온 세대의 칭얼거림일까. 부모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의 성과를 대가 없이 받기만 해서일까.


 나는 이 모든 이유들이 기성세대들의 ‘꼰대짓‘이라고 생각한다. 노력의 부재. 과연 요즘의 취준생처럼 실로 가공할 만한 스펙을 쌓았던 세대가 있었나. 꿈이 확고하지 못하거나,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투는 경쟁을 당연시하고, 이 경쟁을 뚫지 않고서는 패자로 만들어버리는 법과 정책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의 비슷한 것들을 목표로 설정하고, 한정된 자리를 낚아채야 한다는 것. 자연스럽게 노력은 일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가게 되어있다. 여러 푸념 속에서도 좀처럼 놓지 못하고 집착하게 되는 이 열매를 손에 넣으려고 하다 보니 노력은 끝없이 이어진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미래를 예측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온 몸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N포 세대’ 안에 들어있는 세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다.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 대한 논의는 더욱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기성시대 대 현 시대의 프레임을 유리한 틀로 설정하는 것은 세대간의 괴리를 야기한다. 지금 세대의 문제는 단지 젊기 때문에, 경험을 못해봤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지역, 교육 등 수많은 지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 by 달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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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만연한 갈굼 방식


 일터에 계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관리자의 직급이던 그녀는 나만큼 큰 아들이 있다며 나를 잘 챙겨주었다. 고정관념을 깨라는 그녀의 말에 반한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머리는 쓰라고 있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깨어져 버렸다. 


난 그녀의 언행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녀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전에 그녀가 신경질 적인 말투로 큰소리를 지르던 것이 떠오르는 바람에 그제 서야 그 분의 성격을 파악하고 점점 마음속으로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싸해지는 직장 내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터질 것이 터졌다.


 하루는 갑자기 그녀가 사무실에서 나와서 나에게 화를 내며 안 되어 있는 일들을 지적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급하지 않은 일이었고, 꼭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지적으로 당황스러운 찰나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녀에 의해 옆에 있는 동료와 함께 같이 사무실로 불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동안 했던 실수들을 나열하고는 동료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동료가 나와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동료의 얼굴은 그게 아니라고 하고 있었다.


 관리자의 말은 시작되었다. “시현씨는 참 일을 못하는 사람 같아. 한번만 더 이런 일 생기면 그 땐 그만두라고 할 거야.” 이 일에 경력도 있고 자신도 있었던 나이기에 그 말이 서럽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녀는 내가 전에 그녀의 언행에 불쾌감을 표시한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말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상사가 말하는데 어디 토를 달아.”


그 사건 이후, 힘든 것이 있으면 말을 하라던 그녀의 말에 진심으로 답할 수 없었으며, 사람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소통을 표방한 그 말이 내 발목을 잡으려는 족쇄인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숨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소통이 사라진다는 슬픈 결말이다.


사실 더 분했던 것이 있었다. 맞은편에서 나를 혼내는 사람이 했던 말을 다른 곳에서 똑같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상황과 말투만 달랐지, 갈구는 방식이 소름이 돋도록 같았다. 난 그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의 입장이어서 더 슬펐던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관리자들의 갈굼 방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엄청난 보복이 돌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나에게 돌아온 건 짧은 흰머리 다섯 가닥과 우울증이었다.


 우리는 결국 변할 수밖에 없다


 주위 친구들에게 상사의 괴롭힘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 공감해주며 힘내라고 격려해준다. 우리는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언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마음 한 구석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저장해둔다. 사실 나 역시 상사들의 갈굼 방식에 익숙해져서 나중에 아랫사람에게 똑같이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 by 돌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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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이란 가면을 쓴 꼰대질

    

  “작가하고 싶다면서, 회사만 다니고 글은 안 써?”

어느 날 꽤 친하게 지냈던 언니에게서 들은 말은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이후에도 언니는 만남이 끝날 때까지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말투로 조언인지 아닌지 모를 말들을 했다. ‘회사 끝나고 한 두 시간씩 글 쓰면 1년이면 책 한 권 쓰겠다.’ ‘공모전 내봐, 네 나이에 못할 게 뭐 있니?’, ‘내가 네 나이부터 글 썼으면 지금쯤 작가는 되고도 남았겠다.’ 등의 말들.

 

  나와 15살 차이가 났던 언니는 당시 모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네 자매 중 둘째였던 언니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찍 철이 들어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로 대기업 과장까지 승진한 사람이었다.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일 중독자라고 보일만큼 열정적으로 일했고 승진과 함께 어려웠던 집안도 일으켰다. 언니를 보면 자연히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언니처럼 성공해야지.’란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존경하는 언니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조언도 구했다. 그랬기에 항상 정답이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언니의 조언들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언니의 말들은 소위 ‘꼰대질’과 다름없었고 그 말들에 상처를 받았다고, 기분이 나빴다는 것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인 ‘꼰대’라는 단어는 언론에서 다뤄지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뉴스타파 김진혁 PD가 2015년에 제작한 5분 시사 영상 <선배와 꼰대>에서 보면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의 말에 비춰보면 언니는 내게 ‘자기 경험에서 판단한 조언(이라 쓰고 꼰대질이라 말하는)’을 했던 것이다. 언니의 시대와 지금 시대는 같지 않고, 언니의 삶과 내 삶이 같지 않다. 그 때의 언니는 내가 ‘왜 적성에 안 맞아도 회사를 퇴사할 수 없는지.’, ‘출퇴근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고, 글은 왜 못 쓰는지’에 대한 상황도 모를뿐더러, 나의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 ‘작가가 된다면서 글은 안 쓰는’ 결과에 대한 비판만 한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겐 꼰대였다


  ‘꼰대’라는 말이 화두가 되면서 나 역시도 꼰대라는 단어가 무서웠다. 조금 늦은 졸업으로 직장에서 나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자연스레 동기들에게 꼰대라는 말을 들을까 늘 조심했다. 동생들에게 엄격해지려는 순간이 오면 그러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모르는 사이에 나도 누군가에겐 꼰대질을 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입사한 회사에서 막내는 나 혼자로, 잡일은 당연히 내 몫이었다. 업무는 배우면 됐지만 기본적인 소일은 달랐다. 그건 배우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해야 되는 일이었다. 사무실 전화는 신호음이 2번을 채 울리기 전에 받았고, 손님이 오면 인사하고 자리를 안내해 드렸다. 이어 “차 한 잔 드릴까요?”를 묻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설거지 거리를 치우는 것도 나였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한 명씩 내 밑으로 사람이 들어와도 그런 소일거리는 내가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만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왜 내 후임들은 이런 일을 알아서 하지 않을까?’ ‘꼭 시켜야만 하나?’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게는 당연한 일들이 그들에겐 신경 밖의 일이라는 것에 의아한 동시에 화도 났다.


 “왜 꼭 제가 시켜야만 하나요? 저는 여기 막내 때부터 알아서 해왔어요.” 결국 참다못한 나는 당시 막내 사원에게 한 마디 했고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일을 처리했지만 어쩐지 내 맘은 편치 않았다. 이후에도 내가 몇 번의 ‘지시’를 해야 잡일이 처리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었고 나는 곧 나와 후임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곧 이전에 내가 겪었던 꼰대질, 그 언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지금 나는 그 때의 언니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던 거였다. ‘내가 막내 때 이렇게 했으니 이제 막내인 당신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 ‘난 이게 당연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안 해?’ 라는, 내가 그렇게도 경계하던 꼰대질이었다.

 사실 그런 소일은 무조건 막내가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고칠 필요가 있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일 수 있는데 나 또한 그 문화를 아무렇지 않게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강요할 권리까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나 역시,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잠재된 꼰대와 마주했다.


  꼰대란 벽을 넘어서


  누구나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조언과 충고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나도 이렇게 했어, 근데 너넨 왜 안 그래?’나 ‘너희는 우리 때보다 쉬운 거야.’ 라는 말을 한두 살 차이에서도 서슴없이 한다. 고3에게 대학생이, 이등병에게 제대한 선배가, 대학생에게 직장인이 하는 조언에서도 그 말들은 가볍고도 당연하게 흘러나온다. 한두 살 차이에서도 이러할진대,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세대가 다른 사이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진혁PD는 꼰대들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선배 세대들의 20대엔 적지 않은 기회와, 누군가 부당함에 맞서면 함께하는 연대 의식, 비교적 낮은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자유로운 생각과 경험이 가능했다는 내용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윗세대에는 있는데 지금 세대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그들의 조언에는 지금 세대들에 없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는데, 넌 왜 못해?’라는 본인 상황에서의 기준과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하라고 하는 거야.’ 라는 무조건적인 방향성 제시만 있다. 그것은 세상에 상처 받은 세대들에게 또 한 번 생채기를 내는 칼날일 뿐이다.


 나는 그런 말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막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느낀다. ‘꼰대’라는 말 안에는 결국 ‘소통이 안 된다’는 얘기도 숨어 있다. 상대를 위한 조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상대가 나처럼, 내 생각대로 하길 바라는, ‘나 편하자고 하는 조언’일 수 있다.


진정한 소통이 없어지는 시대를 체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중요성을 말한다. ‘꼰대’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는 것도 시대가 만들어낸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도 제도나 시스템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다른 방식의 소통을 해야 한다. 나 때는 어땠느니 하는 말들은 무의미하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과 기준이 있기에 꼰대의 맹아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속의 ‘꼰대’가 관계를 막는 벽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의 판단과 조언이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 by 모태한량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나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이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혼자 미드를 몰아보거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이 즐겁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오랜 시간 사귄 남자친구와 함께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 성향과 현재 직업이 없는 백수 상태라는 점이, 내년에 결혼을 하게 될 상황과 만나면, 사람들은 나에게 ‘곧 엄마가 될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라벨을 붙여준다. 어차피 결혼을 하게 되면 취업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남자친구가 경제적인 몫은 해낼 테니 내가 할 일은 얼른 아이나 낳아 기르면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사범대에 진학해 교사가 되어 비혼으로 살기를 바라던 엄마는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려 급하게 결혼해야 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 가정을 꾸리는 삶에 행복과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포기해야 했던 다른 삶을 늘 동경했다. 두 아이의 엄마, 누군가의 남편이 아닌 오로지 한 여자, 개인의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삶을. 엄마는 내가 그런 삶을 대신 살아주기를 바랐다. 나 역시 TV나 영화에서 보던 멋진 여성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래서 결혼과 출산은 내가 상상하는 어른의 모습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생활의 절반을 마무리할 때쯤, 고백을 받았다. 같은 동아리 선배였다. 나 역시도 호감이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사귀기 시작했다. 뭐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고, 여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전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해주는 친구이자, 선후배이자, 연인이 되었다. 


 내가 여러 번 취업에 실패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방황하는 동안에 남자친구는 취업에 성공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도 드렸다. 주변에서도 자연스럽게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는 간섭도 들어야 했다. 내가 취업에 성공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다면 우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친구 역시 이따금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부모가 될까?’라는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나 역시도 결혼을 한다면 임신과 출산은 필수불가결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10년차 커플이 되었고, 어른들은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권유에서 얼른 결혼하라는 강요로 자세를 바꾸셨다. 아직까지 확실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뭘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나는 결혼이 코앞에 다가오자 너무나 두려웠다. 먼저 결혼해서 엄마가 된 동기들이 잘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해 오롯이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는 페이스북 글들을 볼 때마다 ‘곧 내가 저 위치에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몸서리쳐졌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만 남을게 뻔히 보였다. 


 대학생에서 취업 준비생, 다시 수년간 직장인으로 살았던 남자친구의 생각은 어느새 변해있었다. 설령 우리가 맞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아이를 키우기에는 벅차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달에 짧으면 사흘, 길면 이주일 정도는 야근을 하는 남자친구는 그나마 쉴 수 있는 주말을 육아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혹시나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쉽게 이직을 하기 위해서라도 아이가 없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동의했다.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의 행복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서, 둘이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조금 더 방황해도 괜찮다고, 계속해서 응원해주고 있다. 내년이면 부부가 될 우리는, 5년 후, 10년 후 어떤 생활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함께 취미생활을 하고, 여행을 가는 모습들을 상상해본다. 그 속에 아이는 없다. 우리의 결정을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전부 알리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이를 ‘포기’한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돌아올 시선은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 혹은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비난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정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꾸리는 일이라 생각 할 필요가 있을까? 결혼이 곧 출산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인연을 만나 여러 가지 모습의 커플이 되듯, 가족이라는 것 역시 여러 가지 형태의 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뿐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모습을 특정 세대의 이기심, 혹은 특정 세대가 겪어내야 할 고통으로 묶어버린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게 마땅한 이 시대에 꼭 특정 세대를 한꺼번에 낙인찍어야만 할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에게 같은 방식의 삶, 그러니까 출산은 곧 의무라는 식의 강요를 하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누구도 그런 폭력을 겪어야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 산아제한정책이 당연시되던 1970년대식 사고방식은 이제 버릴 때가 한참 지났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는 갓 태어난 아기 사진들이 종종 보인다. 대학 동기와 선배들의 계정에서 올라온 사진들이다. TV를 보면 아이를 둘은 낳으라고 권하는 공익광고가 나온다. 그 광고가 끝나면 귀여운 아이들이 값비싼 옷을 입고 일반 가정은 상상도 못할 체험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내가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고령화국가, 인구절벽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뉴스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커플이 앞으로 국기를 문란하게 만든 반역자로 체포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본다.


 완벽한 가정의 형태가 꼭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과 희생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정을 꾸리고, 행복을 찾고 싶다. 그렇기에 현재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른 거라고 믿는다. 


- by 민트초코칩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너 혹시 여자 좋아해?"
"네? 제가 아무리 솔로라지만 저도 취향이 있습니다."
"맞아. B가 너 여자랑 손잡고 걸어가는 걸 봤다고 하던데?"
"에이, 잘못 봤겠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굳어가는 표정을 숨기는 게 고작이었다. 마른 침을 몇 번이나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던 선배는 이내 흥이 식은 듯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갔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려 카페 밖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에 비친 내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 위선자.


유리에 비친 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의 선배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오늘도 나를 숨기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예전에는 찾아야만 볼 수 있었던 동성애 코드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티비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브로맨스로 포장하여 동성의 우정을 그리던 소재가 점점 사랑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동성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티비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와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와 예쁜 여자. 판타지에나 등장할 것 같은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와 동시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의 동성애는 괜찮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은 싫어라는 새로운 편견도 등장했다.


‘동성애’ 코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나는 점점 더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두려움이 가득했다. 무언가 뒤에서 계속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계속 편견으로 무장하고, 그럴수록이 나의 자괴감은 늘어가고 있었다.


학창시절, 학교에는 '이반 검열'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당시 학교에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끼리 손을 잡으면 벌점이 부가되는 곳이 있었고, 학교에 따라 누가 동성애자인지를 묻는 설문지가 각 반마다 돌려졌다. 설문지의 질문도 참 유치했다.

 

[우리 학교에 동성애자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동성애를 하는 학생에 대해 알고있다면 그 학생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이런 설문지가 돌려졌다면, 아마 나는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던 학생이었을 것이다.
짧은 머리, 보이시한 스타일, 거기에 출석도 귀찮아서 자주 가지 않았던 학교까지. 나는 '이반 검열'에서 그들이 찾고자 했던 이반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던, 소위 말하는 이반이었으니까.

 

그래도 당시에는 당당했다. 동급생뿐만이 아니라 학교의 선후배들까지 나를 이반이라 알고 있었음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함에 부끄러움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두렵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는 지인들이 있었으니까. 무서울 것이 없었다. 가진 게 많다고 생각했고, 잃어버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도 나에게 동성애자냐고 묻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 취업을 하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누구에게도 내가 동성애자라 이야기할 수 없었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발언도, 혐오하는 발언도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사회는 냉혹했다. 동성애자임을 들켜서 회사를 그만둔 지인의 이야기, 동성애자임을 들켜서 강간을 당할 뻔했다는 친구의 이야기, 커밍아웃을 했다가 아웃팅을 당해 집에서 쫓겨난 이야기, 이런 모든 일을 겪고 힘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숨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자립을 하려고 했으나,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나를 숨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아무렇지 않게 애인을 이성으로 포장하여 이성애자처럼 행동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너 혹시 동성애자야?”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진다. 일하는 곳에서 잘릴 수도 있고,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으며, 극단적으로 자살을 하게 만들 수도 있는 질문을, 단지 호기심으로 던진다. 웃는 얼굴을 하고 그저 나는 궁금했노라 이야기를 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사회의 시선이 변하지 않는 이상 폭력은 지속될 것이다. 호기심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폭력이.


- by 다크니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스포츠 세계에서 잊을법하면 접하게 되는 말이 있다. 벼랑 끝에 선 팀의 지도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어다”라는 말로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팬들의 성원을 불러내며 마지막 혈투를 준비한다.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 스포츠는 ‘포기’란 단어를 절대 허용치 않는다.


이상을 지향하는 스포츠와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포기’란 단어가 친숙하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청년, 내 집 마련의 목표를 접은 2030, 꿈을 포기하고 노량진으로 향하는 1020,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심심찮게 접한다. 스포츠는 굵은 땀방울의 대가로 기적을 선물하곤 하지만, 현실은 마음을 여는 데 인색하다. 

 

얼마 전, 삼성과 언론이 얼마나 친밀하게 지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빳빳하던 몸을 수그린 채 협찬금과 자식 취업을 청탁하는 간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삼성이 혹여나 잘못될까 잠 못 이룬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경영진,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내세워 ‘자리’ 하나 내달라던 전직 간부.


한국가스안전공사는 2015~2016년 사원 공개채용에서 여성 지원자 7명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정황이 드러났다. ‘탄광촌의 기적’이라 불리는 강원랜드는 가족 근무 비율이 전체 직원 3명 중 1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806명), 형제(170명), 부모 자녀 관계 (4명) 등 가족 채용 시 우대 조항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현대판 음서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장면, 크게 낯설지 않다. 사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는 매해 반복되는 문제이자 해결되지 않는 악습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최근 5년간 감사원이나 관리·감독 부처로부터 부적합 채용 지적을 받은 곳이 58군데나 된다. 그런데도 채용 비리 관련자들이 기소된 곳은 여섯 군데밖에 없고, 유죄판결까지 나온 경우는 단 두 건이다.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도입해 과도한 스펙 쌓기를 줄여나가겠다던 말이 우습게 됐다. 전 정부는 NCS를 통해 산업현장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공정하게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은 그럴싸한 포장에 불과하고, 내 뒤에 누가 있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남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일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돈과 권력을 쥔 한 소녀의 삶은 영화 그 자체였다.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은 그녀의 입학을 위해 땀방울을 아끼지 않았다. 수업에 나가지 않아도 출석이 인정되고, 교수가 과제물을 대신 해결해주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세계적인 기업도 그녀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부모를 잘 만난 이의 삶은 ‘낭만’ 덩어리였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한동안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저쪽 한편에서 속삭였다. “현실(뉴스)과 비현실(영화)을 오가며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일 아니던가. 쟤는 재수가 없었던 거야. 현실적으로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잖아. 대한민국에 이 같은 인물이 하나뿐일까”


머릿속이 알코올로 가득 찬 탓일까,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일까. 꽤 오랜 시간 침묵이 흘렀고, 강력한 쐐기 펀치가 날아들었다. “네가 대기업의 자제 혹은 그녀와 같은 입장이라면, 다를 것 같니.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야. 사회 시스템이 악을 양산해내. 악해져야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고, 일반적인 행복에 다가설 수 있어”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나라고 화가 안 날 것 같니. 그런데 생각해봐. 우리가 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데 섣불리 싸움을 택했다가는 지금보다 험난한 삶을 맞이할 가능성이 훨씬 큰걸. 솔직히 말해 100%지. 안타깝지만, 노력 없이 낭만을 누리는 수많은 이들을 욕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된다고 외치고 싶었다. 평화적인 촛불 집회를 통해 정권교체도 이루어내지 않았던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독재 탄압에 맞서 싸운 청년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분이 가득 찼지만, 정의로운 척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취를 맛본 적이 있으십니까”


최소한 게으르지 않은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학기 중에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 애썼다. 대학 졸업장만큼이나 중요한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도서관을 집보다 가까이했고, 능숙한 외국어 실력을 갖추기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조교를 하며 학업과 일을 병행했고, 방학이면 아르바이트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설렁탕과 쌀국수 그릇을 수없이 날랐고, 의류 판매장, 행사 진행 요원, 공사판 등을 누비며 온실 속 화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저 위의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질문.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전쟁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획기적인 경제 발전의 주역이 되지도 않았다. 평범하게 공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것이 전부다.


대학 졸업장이나 토익, 자격증으로 성취감을 맛봤다 하기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너무나도 많다. 현지인보다 영어를 잘하는 청년이 수두룩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이들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영어는 기본, 중국어와 불어 등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경험은 ‘시간 낭비했다’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거나 신발 하나를 팔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아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대기업 인턴이나 직무 관련 경험이 아니라면, 시간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미련한 사람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지나온 시간을 원망했다. 훨씬 더 치열한 삶을 살아왔더라면, 후회가 적은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배경이 뛰어난 이들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췄더라면,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남 욕하기에 바빴으니 성공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적도 없고,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갖추지도 못했으니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닐까. 하나하나 포기하는 삶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


- by KSL 37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누구나 자신의 언행에 대한 기억보다 당시의 감정의 기억이 더 강렬한 순간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도 모르게 “요즘 애들은 왜 그러니” 라는 ‘뉘앙스의 말이 나왔고, 같이 있던 친구에게 “야, 너 꼰대냐?” 라는 장난스런 농담을 들었다. 그 농담을 듣자마자 “뭐야 나 꼰대 된거야? 그럴리 없어!” 머리를 감싸쥐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때 나는 ‘꼰대’라는 단어에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요즘 애들’이 무슨 일을 벌였던 것인지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 때의 당혹감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내가 ‘꼰대’라는 단어를 들었다는 것은 분명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꼰대들이 쓰는 전형적인 문장’을 스스럼없이 말했다는 것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누군가를 너무 싫어해도 닮아가게 된다던데, 꼰대를 너무 싫어하다가 나도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이제부터 꼰대를 조금 덜 싫어해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했다.


이처럼 ‘꼰대’가 된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꼰대질’의 피해자였던 경험이 있고, ‘꼰대질’에 당할때마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며 다짐했을 것이다. 소통이 시대의 키워드로 떠오른 세상에 꼰대는 소통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하루아침에도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그 트렌드를 읽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에서 꼰대는 고리타분하게 늙어가는 사람의 표본이다. 그리고 이는 곧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인터넷 포탈에 꼰대를 검색하면, 꼰대 자가진단 테스트, 꼰대 체크리스트 등이 연관검색어에 쪼르륵 뜨는데, 이걸 보면, 자신이 꼰대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꼰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한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자신이 꼰대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만, 여전히 학교, 군대, 직장에서 ‘꼰대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꼰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사실, 꼰대가 무엇인지, 꼰대질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된 바 없어서 꼰대의 실체는 없다. 생각해보면 ‘좋은 어른’과 ‘꼰대’의 차이는 한 끗 차이다. 나이 상으로나,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해 막내의 위치에 있던 적이 많았던 나의 경험 상, 같은 말을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으면 뼈가되고 살이 되는 조언 같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들으면 꼰대질 같았다. 한마디로 그냥 내가 싫어하는 어른은 나에게 언제든 ‘꼰대’가 되었다.

 

‘내가 혹시 꼰대가 아닐까’ 노심초사하던 사람들에게 맥 빠지는 얘기일 수 있지만, 젊은 세대의 은어에 불과했던, 실체 없는 ‘꼰대’를 어디에나 존재하게 만든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낙인찍힐지 모른다는 불안감. 여기서 비롯된 ‘꼰대’라는 단어에 대한 지나친 의식이다. 그래서 ‘꼰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은 언제나 존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이 바뀌면 삶의 양식이 바뀌고, 삶의 양식이 바뀌면서 생각이 바뀐다. 바뀐 삶의 양식을 경험하지 못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오늘날 여러 통로로 간접경험이 가능하고 ‘대4차산업혁명’시대에 VR, AR로 간접경험의 수준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직접경험 없이 무엇을 이해한다는 것은 5차, 6차, 7차 산업혁명이 이뤄져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꼰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데 더해 언제까지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애써 꼰대가 되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한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신뢰받는 사람의 한마디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한마디 보다 더 가치 있기 마련이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꼰대 안 되는 법’이 일부 겹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꼰대 체크리스트의 행동 하나하나를 하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 언행과 일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라는 가치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의식하는 것이다. 후배의 사생활에 ‘감놔라 배놔라’ 사사건건 간섭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단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를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자연스레 신뢰할 수밖에 없다. 한때, 토크콘서트 열풍이 보여주듯 청춘들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의 관심과 조언은 언제든 환영했고, 오히려 그것에 목말라 있다. 그러니 ‘꼰대’라는 단어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라는 기본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꼰대’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 by 노영주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 청년네트워크 3기 '대안정치연구모임'의 
전반기 마지막 강의(3차)가 8월 10일 저녁,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진행됐습니다.

바꿈의 손우정 이사와 권오현 빠띠 대표가
정당 민주주의와 IT로 민주주의 하는 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비가 와서 혹시 안오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요. ☞☜
걱정이 무색하게 많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권오현 대표는 
스웨덴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의 말을 인용해 빠띠의 활동 목표를 설명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모두가 영향을 미치는 구조.
권 대표는 등산로나 여행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작은 '돌탑'이 그러한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조각씩 쌓아서 완성시키는,
하지만 누구에게도 큰 짐을 지우지 않아도 되는 모델을 지향한다고
권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권 대표가 진행하는 'IT로 민주주의 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빠띠 ▶ https://parti.xyz/
우주당 ▶ http://wouldyouparty.org/

그리고 바꿈 X 우주당의 콜라보레이션!

'시민이 직접 쓰는 새로운 헌법' ▶ http://bit.ly/시민개헌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 청년네트워크 글쓰기모임이

요즘 가장 핫한 작가이신 은유 작가님을 모시고

두 번째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은유 작가님의 강연 주제는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였는데요.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중에서도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점과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한 행동지침(?!)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 쓰고 싶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

2. 글쓰기를 위한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라.

3. 함께 글을 써서 읽어보고, 다듬을 수 있는 믿음직한 모임이 필요하다.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제 저만 잘 하면 될 것 같아요.) 




공간 사정상 주어진 시간(85분 가량)이 너무 짧아서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다시 한 번 꼭 만나뵙고 싶어요!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국도형


N포시대. 청년들이 참 살기 힘든 시대이다. 대출에 생활비에 결혼, 출산, 직장까지... 그냥 놔둬도 미쳐버릴 것 같은데, 우리 사회 속 ‘순siri’ 같은 괴물들의 존재는 벼룩의 간도 모자라 대장 췌장까지 다 갉아먹으려는 것 아닌가싶어 뼛속 깊이 패배의식마저 느껴진다. 


참 특이한 것은, 정작 노오오오력이 뭔지도 모르는 그들이 아직도 청년들을 향해 노오오오력이 부족하다며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를 만들라고 뽑아놓은 지도자가 중동지역의 청년 아웃소싱을 주장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대한민국 청년들을 무시하다 못해 누군가 표현했던 ‘개 돼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영하 5도의 날씨,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새벽 5시부터 공무원학원 앞에서 담요하나로 몸을 녹이며 책을 펼쳐들고 있는 그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노오오오오력을 하라고? 죽고 싶냐 진짜. 


어렸을 적 나는 정주영 회장을 존경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 누구나 안 된다고 얘기할 때 할 수 있다며 기적을 일궈내신 분. 대한민국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위대한 어르신인 것을 크게 반박할 이는 없을 것이라 본다. 그 정도 되시는 분이 노오오오오력 얘기하면 진짜 터놓고 다 받아들일 것 같다. ‘이봐 해봤어?’라며 일침을 놓으실 때 ‘어이구 안해봤습니다 한 번 해보고 얘기하겠습니다..’ 라며 가슴 깊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너무 많이 화두가 되어 거론조차 무의미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그 분은 과연 진짜 아픈 청춘들의 삶이 어떤지 알고는 계신 것일까.


나는 현재 기업인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아닌 진짜 주식회사를 설립한 대표이사이다. 우리 집은 기초수급자 직전까지 갔었던 극빈층이었다. 나는 실제로 정규 대학도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가난한 것이 너무 싫어 어렸을 적부터 대우자동차에서 자동차 영업을 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새벽 2시까지 일했고, 그렇게 몇 달을 일해야 겨우 차 한 대를 팔아 몇 십 만원을 벌 수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항상 기쁨에 차 있었다. 내가 택한 길이었고 그 일이 보람된다고 느껴졌었기에. 그때 나는 요행이 아닌 진짜 노력해서 얻는 돈의 가치는 새겨진 가치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게 돈은 삶의 윤택하게 해주는 도구이자 열심히 사는 내 인생에 주는 일종의 증명서 같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자기계발서나 노오오오력을 주장하는 분들이 얘기하는 ‘일을 즐기라’ 라는 조언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한만큼 돌아올 것이라는 내 기대는 일을 6개월쯤 했을 때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회사가 부도가 나 대리점이 축소되어 영업직원들이 직장을 잃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뛰어났던 애사심은 그때쯤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지나 GM대우의 간판이 쉐보레로 바뀔 때 쯤 나는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누구보다 일을 즐겼고 노오오오력을 통한 결실을 보람차게 여겼던 내가 왜 그곳을 나와야만 했던 것인가. 나는 분명 성공한 그들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한참이 지나 5년쯤 지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방향은 내 의지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현시대 청년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청년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공무원만 준비한다는 사람들께 꼭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50대에 접어든 지자체 공무원은 당시 할게 없어서 공무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경찰간부 출신의 어르신도 경찰이 멋있어 보여서 하고 싶었다고 한다. 분명 하고 싶으면 도전하여 이룰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2016년 행정직 공무원 경쟁률이 30대1에 육박한다고 한다. 같은 ‘공무원’이지만 진입장벽의 높이 자체가 다르다. 만약 위에 언급했던 50대 지자체 공무원이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한 사람을 보고 ‘노력이 부족했어’ 라고 얘기한다면 과연 그 얘기는 합당한 얘기인 것일까? 


물론 걔 중에는 해보지도 않고 시대 탓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청년단체를 설립하여 1년여간 활동을 하며 만난 청년들 중엔 아무 비전도 미래도 없이 바로 앞만 보고 달리는 청년들도 상당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받아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의 청년들이 의욕이 없고 인생에 노력이 부족해서, 또는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눈만 높아져서 취업난이 이토록 심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대학을 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은 누구인가? 대학에서 전공을 살리지 못하면 사회 패배자가 되는 것처럼 가르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 나는 결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를 살아가는 양 쪽 세대간의 조화가 일어나야 경제가 살아나고 내가 하는 사업에 더욱 많은 수익이 생겨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다.


다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프레임과도 비슷한 논점에서 어느 한쪽의 잘못만으로 상황을 몰고 간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나는 돈과 인맥없이 저신용자 햇살론 800만원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도 2억 가까이 되는 빚을 지고 있고, 나는 물러날 곳이 없어 사업을 선택한 배수진 형 사업가이다.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한 번 미끄러지면 내 가정 자체가 파탄날 것이라는 생각에 목 앞에 칼날을 세워놓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장 힘 빠질 때는 사업이 잘 안돼 매출이 줄었을 때보다 사업가 모임을 갔다가 나보다 훨씬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부모님 또는 친척들의 좋은 인맥을 통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보게 될 때이다. 물론 그들 또한 내가 모르는 나보다 더 한 노력을 했을 수 있겠지만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과 비빌 언덕을 뒤에 두고 일하는 사람을 비교했을때의 절실함을 따지자면 내가 결코 그들에 비해 ‘노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에 동의한다. 아직 한참 젊은 나이인 나조차 어렸을 적 열심히 일했던 경험들이 사업을 하며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노오오오오력 하다보면 성공과 가까워질 것이라며... 무언가 하다가 안 될 때는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모든 것을 청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아주 정상적인 기회의 땅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는 그들을 조롱하는 듯한 세태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들이 봤을 때 흠 잡지 못 할 수준으로 지난 3년간 미친 듯이 노오오오력해 온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겠다. 


진심으로 청년들을 위하신다면 차이의 다름을 인정해주시는 ‘노오오오오오력’부터 다해주시길.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 청년네트워크 3기 글쓰기모임의 첫번째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짝짝짝


 2017년 6월 28일 저녁 7시30분, 

서울 종로에 있는 마이크임팩트에서 진행된 첫번째 강의는

권성민 MBC PD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평소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는 따뜻한 글들을 쓰시는 권 피디께

'글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들어보았는데요.


권 피디님 왈 "글솜씨는 중요하지 않다"

두둥! 그렇다면 뭐가 중요하다는 걸까요?



권 피디가 강조한, 소재찾기의 중요한 한 포인트는 '관찰'.


권 피디는 평소 이동할 때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는데요.  

삶의 장면들을 지켜보고, 궁금해지면 이것저것 묻기도 한답니다.



권 피디의 강의 중에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늘 고민한다."


저도 고민, 또 고민해야겠습니다.



소소한 간식이 빠질 수 없겠죠?

글쓰기강의의 이번 간식은 샌드위치와 음료(*앗 사진이 없다 -__-)였습니다.

다음에는 또 뭘 준비할지...벌써부터 고민이에요.




두번째 수업은 7월 19일(수) 저녁 7시30분 서울시민청에서 진행됩니다.


강사는 누가 오시게요?

 To be Continued...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김현경


나는 환경운동가로 살고 있다.


어쩌다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흘러가는 대로 걸어온 다양한 삶들이 나를 환경운동가의 길로 이끌었던 것 같다. 우습게도 내 꿈은 12년의 학업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림쟁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중산층의 탈을 쓴 흙수저에게는 그림쟁이도 과분한 꿈이었다. 수출용 아동복 포장, 전단지, 문구점, 사무보조, 모형회사 아르바이트 및 학교 근로봉사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대학을 그럭저럭 졸업했다. 


그리고 88만원세대에서 얻은 첫 직장은 어린이집 보조교사였다. 보조교사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교육학 공부에 3년을 투자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하며 접하게 된 평생교육과 환경교육 분야는 나를 시민사회단체로 이끌었다. 여러 가지에 호기심이 많고 배우고자하는 욕구, 정의감이 있는 성격인데다 이전까지 접해온 다양한 경험들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유용한 밑거름이 되었다.


공부를 마친 20대 중반에 2년반 동안 소비자단체에서 환경과 농업파트를 담당했고, 20대 말미에는 지역사회교육운동을 했다. 30대 들어서 시작하여 현재 30대 중반인 나는 6년째 세상에서 말하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아직도 환경문제와 환경권을 주장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봐도 우리 생활 속에 환경 문제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만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배부른 소리’로 넘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환경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이상 노동권, 인권, 성차별, 복지 등 각종 문제들 가운데 삶의 우선순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라는 삶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얻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 환경운동을 하며 자연을 접하고 많은 사람을 대하며 내성적인 성격도 외향적인 성격으로 발전했다. 장미, 백합 같은 원예종의 꽃만 알던 내게 들판이나 길가에 핀 손톱보다도 작은 꽃들은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2017년은 내가 시민사회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10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나는 이 일을 하게 된 것에 만족해하며 감사하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근래 가장 핵심 키워드는 단연코 ‘생물다양성’일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단순히 멸종위기에 처한 어떤 생물종의 보호를 넘어서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생물종류, 개체수, 서식지 보전 등 생물종을 둘러싼 생태계 환경 전반이 하나의 체계로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 시대는 모두가 같은 길을 동경하며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는 사회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환경운동가는 생물다양성의 개념처럼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한 축을 이루는 사람이다. 환경운동가는 개발만이 경제성장이라 부르짖는 사회 가운데 보전도 발전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이다. 넓은 길만 보며 획일화된 삶을 선택하기보다 좁은 길인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선배활동가와 동료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또한 지구의 파수꾼이자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는 미래 환경운동가로 살아가고 있을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예술이 밥 먹여 주면 좋겠다.

[인터뷰] 극단 99도 홍승오, 진한나씨



‘지옥고’

2017년, 대한민국 청년 주거 문제의 단상을 보여주는 단어다. ‘지옥고’란 ‘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이 합쳐진 신조어다. 2015년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 중 약 70%는 소득의 30%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23%는 무려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서울 거주 청년 10명 중 2명은 주거 빈곤 상태인 셈이다. 


이와 같은 청년주거빈곤시대 ‘고시원’을 주제로 청년예술인의 삶을 그린 창작연극이 있다. 청년들이 직접 기획·연출·출연은 물론 실무까지 진행한 ‘고시원의 햄릿공주’ 다. 본 연극은 지난 5월 14일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을 연극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노력중인 극단99도 홍승오 대표와 진한나씨를 만나보았다. 


“사람들은 예술을 하면 당연히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승오씨와 진한나씨는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극단99도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고시원의 햄릿공주’는 청년예술인에 대한 편견과 어려움을 해학적으로 담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자살이 자꾸 늘어만간다. 이를 본 염라대왕은 청년들의 자살을 막고자 두 명의 저승사자를 이승에 내려보낸다. 청년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고시원에 도착한 두 명의 저승사자는 그곳에서 주인공 ‘정소정’을 만난다. 희극을 쓰는 정소정은 주거빈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무너진 자존감, 불안한 미래,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두 저승사자는 정소정의 자살을 막으려고 노력해보지만…….


진한나 - “청년 예술인들의 삶을 대중에게 좀 더 가볍게 공감하고자 하는 게 핵심이었어요.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거 하고 있으면서 왜 징징되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게 참 어려운 문제인거 같아요.” 


실제 극단 99도를 비롯해 대학로 청년극단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청년 창작극은 관객 동원이나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출연료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연극을 올리는 것 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배우들은 자연히 연극보다 아르바이트로 내몰린다.


홍승오 - “연습시간 외 시간에 알바를 하는데 편의점이 많아요. 실제 고시원의 햄릿공주에 출연한 배우들도 보면 공연 끝나면 저녁에 알바하러가고 다시 와서 연습하기도 해요. 더 안타까운 것은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연극이 본업이니 관련된 일을 하면서 부수입을 얻으면 좋은데 구조적으로 그렇지 못한 게 아쉬워요.”


진한나 - “게다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 집세와 생활비 등의 지출이 껑충 뛰어올라요. 그렇다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예술인들은 자연스럽게 고시원에 몰리게 되요. 고시원이 원래는 고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한 공간인데 어느덧 또 다른 주거 공간이 되어버린 셈이죠.” 


17년 간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 작가 난나의 죽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삶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고시원의 햄릿공주’ 주인공 정소정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일러스트 작가인 난나가 대표적이다.  


진한나 - “‘난나 작가는 17년 동안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에요. 난나 작가의 일러스트는 인기도 있었고 <문화일보> <시사인> 등에 게재 될 정도로 인정받았어요. 누군가는 삽화를 글 속에 들어가는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지만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작품성도 있다고 평가받았어요. 그러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실제 난나 작가의 삶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난나 작가는 논술학원에서 알바를 병행해야 했다. 학원 알바 이후 너무 바빠 작업하기도 힘들어 했다. 이렇다 할 만한 롤모델도 없었고, 월세가 밀릴 때도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워졌고, 가족들과 교류도 줄어갔다. 그렇게 난나 작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난나 작가의 유서의 내용은 고시원의 햄릿공주 연극 첫 장면에 인용되었다.


‘나는 나를 잃어가는 게 싫어. 이 편지가 네게 갔을 때는 방황이 끝나 있을 거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연극하면 안 된다.


문화예술 활동은 고정적 수익이 담보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 수준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전업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홍승오 - “오랫동안 연극을 해온 기성 연극인도 먹고 살기 어려워요. 심지어 최근 10여년 간 문화예술 분야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지면서 역사가 30년씩 된 극단들도 지원받지 못하고. 연극제 일주일 전에 극장을 닫아버린 일도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 청년 연극인까지 생각할 여력 자체가 없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이들은 이렇게 힘든 연극을 왜 하는 걸까? 

홍승오 -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연극 하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좋아서하는 게 가장 큰 거 같아요.”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진한나 - “외국에서는 삽화를 따로 모아 전시회를 하기도 해요. 예술적 지위나 대우도 달라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삽화만 그려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점이에요.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 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해요.”  


극단 99도는 이러한 노력을 바라기만 하지 않는다. 고시원의 햄릿공주는 5월 9일 대선 날 첫 공연을 했다. 그 이유는 투표독려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투표 인증샷을 보여주면 전석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했다. 뿐만 아니라 사진전, 관련 음반, 마을 라디오 팟캐스트, 심지어 봉사활동까지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진한나 - “사회적 참여를 열심히 해야 우리가 연극을 통해 메시지가 더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시 우리 연극을 통해 시민들에게 시대정신이 전달되고요. 사회적 문제의식 화두를 던지고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극단99도를 시민운동처럼 해보고 싶어요.”


홍승오 - “올해는 서울청년에술단에서 7월, 12월 각각 1편씩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최종목표는 4대보험과 고정수입이 나오는 극단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극단을 후배들한테 공감 받을 수 있도록 여러 활동들을 하고 싶어요. 연극만 해서 밥 벌어 먹는 시대가 올지는 조금 회의적이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한국에서 스스로 숨을 끊는 사람은 하루 40여명에 이른다. 그 속에는 수 많은 청년들이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그들이 왜 죽음을 택했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만들어도 늦지 않는다. 


고시원. 

그 좁은 공간에서 먹고살기 위해 시급 6,000원을 벌면서 주거 생활비를 다 벌려면 도대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가? 그런 노동 후 다시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예술도 하나의 노동으로 대접받고 예술로 밥 벌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본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청년네트워크 3기가 정치분과의 첫 모임, 대안정치연구모임 창립포럼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5월의 마지막날, 청와대까지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모임공간 '나누다봄'에서 이날 모임이 진행됐는데요.



오후 7시에 모임이 시작되는 만큼 '바꿈, 세상을바꾸는꿈'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신 분들 위해서 식사 대용으로 피자를 두둑히 준비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쥬?



사전 신청하신 분들이 무척 많았는데요.

별로 안 오면 어쩌지, 걱정을 잠깐 했지만...역시 기우였네요.

준비된 공간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청년네트워크의 총괄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바꿈 상임활동가 홍명근 님의 발언을 시작으로, 

크게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9대 대선 및 문재인 정부 3주에 대한 평가, 한국 사회의 핵심 과제,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지러워 @_@)



민중연합당 공동대표이자 흙수저당 대표인 손솔,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청년좌파 대표 용혜인, 정의당 청년미래부 부본부장 장지웅

이렇게 네 분이 발제를 겸하여 포럼 주제들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창립포럼 이전부터 기획단으로 참여해 사전 준비를 해주신 분들께 박수를 ~ (짝.짝.짝.) 



객석(?)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준 덕분에 다양한 고민과 이야기들이 오고간 시간이었습니다.



대안정치연구모임은 앞으로 3주마다 한 번씩 새로운 정치를 고민하는 자리를 가져보려고 합니다.


두번째 모임은 

'정당의 개념과 경로'(강사 : 노동당 김상철) 라는 주제로 

6월 21일(수) 저녁 7시에 강좌 및 분임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장소는 정해지는 대로 공지하겠습니다! 


(계속 관심 가져달라는 미끼일지도) 

 

포럼에서 무슨 이야기가 갔는지, 대안정치를 고민하는 청년 세대의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대안정치연구모임 창립 포럼 자료집 


다운로드 ☞   20170531_대안정치연구모임_창립포럼_자료집.pdf


* 사진 제공 : <민플러스>


* 대안정치연구모임 토론회 하이리이트*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대선일이 발표된 날에 국회 대관이 정해졌어요. 국회라면 일반인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대통령이 처음 본 전시가 제 전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마침 (더불어민주당 대선) 상황실이 거기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이 지나갔죠.”


창문이 있는 방은 한 달에 22만 원, 없는 방은 그보다도 저렴한 월 18만 원이었다. 지독하게 좁은 주거지, 고시원을 찍은 사진전이 지난 대선 기간(5/8~12)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강원도가 고향인 심규동 사진가(29)는 서울에서 지낼 때면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수년 씩 지낸 어른들을 만났다. 결혼을 하지 않고 이곳에 계속 산다면 어떨까, 스스로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고시원의 실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시원이 학생, 돈 없는 사람들 외에도 정말 주거 공간이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요. 새로운 사회 현상을 알리고 싶었어요.”


“완전 적자…기초생활수급자가 밥을 사줬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젊은 작가가 촬영에 1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투자하고, 전시를 여는 일은 ‘밑지는 장사’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 21세기에 필름을 사용한다면 원가는 더 올라간다.


“완전 적자죠. 거지처럼 살면서 했어요. 생활 시간대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카페 같은 아르바이트는 못 해요. 시간대가 자유로운 엑스트라 알바를 하면서 했는데, 그건 바로 돈이 들어와요. 그런데도 돈이 없으면 기초 생활수급자가 밥을 사줬어요. 장애인 수급자가 더 좋다며 어떻게 받을 수 있도록 알아보라는 팁을 주기도 했어요.(웃음)”


전시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장소를 구하는 것도 문제였거니와 사진 인화비 등 전시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신현림 시인의 도움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를 열수 있게 됐지만, 나머지는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전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열었던 크라우드 펀딩 반응이 다행히 꽤 좋아,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


“작품 뒤처리에 또 돈…폐기처분 고민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시가 열린 국회라는 공간은 일반인과 정치인 모두에게 ‘고시원’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대선 기간에 국회에서 그런 사진전(고시원 관련)을 한다는 게 이슈가 되고, 기사나 언론의 반응은 좋았어요. 그런데 전시장에는 대선 기간이라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었어요. 텅 빈 국회였죠.” 그나마 전시장이 더불어민주당 대선상황실로 가는 통로에 있어서 대선 당일 문재인 당시 후보가 그 앞을 지나갔다는 게 위안이랄까. 


닷새 기간의 전시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진들을 처리하는 문제가 남았다. “그게 다 짐이에요. 강릉(고향집)까지 이동하는 데 포장하고, 용달비 같은 돈이 또 나가야 하니까 차라리 폐기처분할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팔리는 사진도 아니고요.”



언론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후속 전시를 열겠다고 나선 곳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청년 문제를 고민하는 ‘극단99도’에서 제안을 해왔다. “전시장에 극단 대표가 왔어요. 얘기하던 중에 다양한 방향을 얘기했는데 창고가 있어서 맡아주실 수 있다고 했어요.”


극단99도의 연습실에서 진행 중인 심규동 작가의 사진전 <고시텔>



당시 극단99도는 ‘고시원의 햄릿공주’(주최 바꿈, 세상을바꾸는꿈 / 후원 6월포럼)라는 제목의 연극을 한창 공연 중이었다. 청년 예술인들 등이 모여 사는 고시원을 무대로, 포스터에 새겨진 ‘예술이 밥 먹여주면 좋겠다’는 주제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고시원’이라는 공통점을 찾은 청년들은 그렇게 한 공간에서 고민을 공유하게 됐다. 서울 성북구 한성대 인근에 위치한 극단99도의 연습실에서는 지난 26일부터 기한 없이 심 작가의 <고시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예술이 밥 먹여주면 좋겠다’


전시회처럼, 심규동 작가의 작품 활동 역시 이어질 것이다. “전시를 보러 온 이들과 대화를 했는데 대부분이 저처럼 전공이 아닌데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사람들이었어요. 제 이런 행보가 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정의롭지 못하거나 문제점 있으면 그걸 표면에 드러내서 그게 조금이라도 알려지거나, 좋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사회적인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고시원> 전시회와 사진집 출판은 ‘사진가’ 심규동의 출발선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 선 앞에서 순간순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니까 제 사진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게 돼 버리는 것 같았어요. 이 사람들을 이용해서 내가 작가가 되려고 하는 건가….”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 본 이들을 사진 속 피사체로만 인식하지 않으려 매순간 고뇌하는 작가가 우리 시대에 한 명 더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는 지금 같은 시스템은 곤란하다. 생계는 말 그대로 문제다. “고시원에 있을 때 나이가 차니까(30살이 된 이후) 카페 알바 같은 게 퇴짜를 맞더라고요.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그 자리에 들어온 거죠.”


문재인 정부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범죄라고 규정하며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지향이나 학연‧지연이 아닌, 예술이 그 성과와 존재가치만으로 평가 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리하여  ‘예술이 밥 먹여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작점으로 삼기에 참 좋은 날이다.


김지혜 ‘바꿈, 세상을바꾸는꿈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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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진보정치의 위기라면, 

그것을 넘어설 대안은 

다음세대가 지난 날의 오류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부터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 청년들은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갈등과 분열의 흔적 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숩니다.


민감한 여러 쟁점들,

주제들은 각 당에서 알아서 하더라도,

어차피 해야할 것이라면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서로 교류하고 함께 만들어보는 경험을 쌓아 가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세대들 먼저 공론장을 만들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역량이 강화되고,

그래서 다시 각자의 위치에서 좀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시작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먼저 4개 단위의 청년들이 뜻을 모았지만,

새로운 대안정치에 관심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서로 필요한 공부도 함께 하고, 

때론 논쟁도 하면서

기성세대가 넘지 못한 벽을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습다.

다만 그래도 청년모임인지라 불가피하게 나이를 제한했습니다.

여러 방식으로 함께 하고 싶은 기성세대를 모아 지원단 같은 것이라도 꾸려볼까 생각중입니다.

전환의 시대, 새로운 정치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모임의 첫 자리를 토론회로 마련했습니다.


5월 31일(수) 오후 7시입니다. 참고로 피자도 줍니다.

연구모임 신청은 아래 링크로 해주시면 됩니다.

https://goo.gl/v77U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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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않되?

보도자료, 논평, 보고서… 내가 쓴 건 대체 기사가 ‘외않되’는데!!


글쓰기에 자신이 없으십니까? 내놓기만 하면 기사가 되는, 페이스북에서 따봉이 수 백 개 달리는 소위 ‘잘 팔리는’ 글을 쓰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사회 이슈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쓸 공간이 필요하십니까?


프린터가 삼디(3D)를 뽑아내고, (3차산업혁명에도 아직 적응을 못했는데) 4차혁명 어쩌고 하는 2017년인데, 왜 때문에 우리는 2차원 평면 공간에 여느 때 보다 많은 글을 쓰고 있는 건가요. 나는 왜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눈앞이 깜깜하고, 키보드에 손만 얹어도 머리가 하얘지는 건가요.


글쓰기가 무엇입니꽈아아아!!! 이런 생각하고 계신 분들, 모여 봅시다.



▪ 찾는 사람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혹은 예비 활동가

 - 각종 사회 이슈에 민감한 촉을 가지고 이를 글로써 풀어내고 싶은 이


▪ 활동 안내

 1. 개 요

 : ‘글쓰기 모임’은 바꿈, 세상을바꾸는꿈이 진행하는 청년네트워크 사업(3rd)의 일환으로, 청년들의 이야기를 ‘보다 나은’ 글쓰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모임입니다. 글쓰기모임의 기획위원은 글력(力)을 키워가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고, 그러한 기회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2. 기획위원의 역할

  1) 강의 기획 : 3주에 한 번 열리는 글쓰기 강의를 기획합니다. 기획위원은 강의료 Free★

  2) 나눠 읽기 : 강의 내용을 토대로 글을 쓰고, 서로 나누어 보면서 글력(力)을 키웁시다!

  3) 글쓰기모임만의 결과물 : 기획위원들이 함께 정해요.(미정) 

  4) 기타 등등


▪ 글쓰기모임 기획 위원을 위한 특전

 1. 글쓰기 강의 무료!(플러스알파가 있을 수도!) 

 2. 소정의 모임비 지원

 3. 단행본 출판 등 내 이름을 단 ㅇㅇㅇ이 나온다!

 4. 이 외에도 자그마한 혜택들이 줄줄~


▪ 활동 기간 : 2017년 6월 ~ 11월

▪ 활동 영역 : 서울 일대


▪ 모집 기간 : 2017. 5. 18 ~ 28(열흘 간)

▪ 모집 인원 : 0명(※ 지원자가 모집 인원보다 많으면, 관심분야를 기준으로 선정)

▪ 지원 방법 : 이메일 접수 jhkim@change2020.org 

  필수 기재 사항 :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이메일, 관심 분야(ex.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또는 기타 본인의 의지에 따른 세부 분류도 괜찮습니다.), 최근 관심사에 대한 100자 이상의 소개글(길지 않은! 글쓰기 실력 평가가 아닌, 기획단 내부의 관심 분야를 조정하기 위해서 필요)

 - 알려주면 좋은 내용들 : SNS 주소, 취미 등 


▪ 문의 : 바꿈, 세상을바꾸는꿈 02-522-9686 / 김지혜 바꿈 활동가 010-8843-8437(문자나 카톡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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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꿈] 고시원의 햄릿공주를 소개합니다!

바꿈 회원에 가입하시면 1인 2매 티켓을 드립니다!


바꿈 회원가입하기 : http://change2020.org/notice/54

플레이티켓 예매 바로가기 : https://goo.gl/qgWV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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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5월11일(목) 오후 8시

장소 : 대학로 소극장 '공유'

* 바꿈 회원은 사전신청을 해주시면 무료입니다. 


>신청하기<

https://goo.gl/forms/uBGGlusWTq4hXxx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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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약 1년에 걸쳐 청년들이 주도하고 직접 만드는 창작 연극을 준비해 왔습니다. 

우리 곁에 있지만 보이지 않고, 알아도 느낄 수 없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바꿈 청년들의 만든 창작 연극에 함께해주세요! 꼭 이요!


내용을 간단히 소개드리자면 

최근 청년 자살자가 급증해서 저승에 수용공간이 부족하다는 설정입니다.

그래서 저승사자들이 영혼을 거두는게 아니라 수용공간이 확장될 때까지 죽음을 막기위해 애를 쓰면서

한 고시원에서 자살을 하려는 주인공의 자살을 막으려고 하는 스토리 입니다. 

 



일시 : 5월11일(목) 오후 8시

장소 : 대학로 소극장 '공유'

문의 : 02-522-9686 ㅣ lolen86@change2020.org (홍명근)


>바꿈 연극 신청하기<

https://goo.gl/forms/2XwvS7Lav0weVb563


* 바꿈 회원은 11일 사전신청을 해주시면 무료입니다. 

* 바꿈 회원에 신규 가입해주시면 1인 2매씩 표를 제공해드립니다.

* 인터파크 등 예매 링크는 빠른 시간 내로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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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태경


그는 철학 공부를 좋아하는 대학생이었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우연히 철학 동아리를 알게 되어 가입했다. 동아리에서 서양철학사를 공부하다가 마르크스의 사상을 처음으로 접했다. 마르크스 사상은 이미 주요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에 큰 거부감 없이 공부했다. 통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와 북한의 체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북한의 사회, 경제적 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기들과는 달리 그런 것까지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인정받고 싶었다. 개인 홈페이지에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한 ‘공산당 선언’ 전문을 그대로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느즈막이 군대에 가야했다. 이왕 가는 거 리더십 훈련도 받고, 강한 군대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어서 해병대 학사장교에 자원했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강화도에 배치되었다.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분단의 최전선에서 성실히 근무하며, 휴일과 휴가 때에는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으며 지냈다. 


너 우리가 올 줄 알았지?


2011년 4월 어느날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오전 회의 시간에 부대에 기무부대 차량 두 대가 들어왔다. 기무사령부 소속의 L소령은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위반 혐의가 적힌 압수수색영장을 내밀고, 김 중위의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말했다. “너, 우리가 올 줄 알았지?” 김 중위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 대답도 못했다.


기무부대 수사관 두명은 김 중위의 사무실과 영내숙소에 들어가서 장갑을 끼고 곳곳을 수색하더니,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떼고, 노트북, 일기장, 책 등을 압수했다. 같은 시간, 어머니가 살고 있는 서울 집에서도 기무부대 수사관이 갑자기 찾아가서 김 중위의 책 30여권 등을 압수했다. 그로부터 열흘동안 기무부대에서 매일 10시간이 넘는 조사가 진행되었다. 능숙해보이는 기무부대 수사관은 압수물품들에 대한 사실 관계부터 김중위의 과거 여러 기록과 행적 그리고 군대와 근현대사, 마르크스 사상,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생각, 국보법에 대한 인식 여부까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수사는 짜여진 각본이 있는 것처럼 매일 정해진 진도 범위가 있는 것 같았다. 김 중위가 비협조적인 태도와 불성실한 대답을 하면, 수사관들은 “그렇게 하면 나중에 불리하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게다가 기괴한 논리로 김 중위가 군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며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해석을 강요했다. 김 중위는 자신을 애초부터 피의자로 낙인 찍으며 진행되는 조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잘 나오던 후식이 끊기고, 대대장을 통해 “결국 도와주려는 거니까 수사에 잘 협조하라.”는 압박이 있었다. 수사 종료 사흘 전, 수사관 책상에서 우연히 보게 된 공문에는 “고려산 공작사건 용의자 사법처리 가능성 검토”라는 제목이 쓰여있었다. 고려산은 김 중위의 부대가 위치한 산의 이름이었고, 기무부대의 목적은 김 중위의 사법처리였다. 


살벌했던 기무부대 조사가 끝나고, 석달 후에 군검사 조사가 시작되었다. 검사의 조사 내용은 기무부대에서 조사한 내용들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기소가 되기 전이었는데 가족들이 크게 걱정해서 군법무사령관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재판과정에서 변호사는 빨갛게 덧칠해진 김 중위의 사상과 언행을 거의 인정하면서, “피고인이 현재 철저히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변호했다. 1심 군사재판은 증인 신문 없이 사실 관계만 파악하고 간단명료하게 종료되었다. 두 달 후에 선고 공판이 열렸고, 재판관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김일성 혁명업적, 마르크스의 사상, 맑스 저작선집, 청년을위한한국현대사> 서적 몰수”를 선고했다. 


무죄가 아니었다. 군사법원의 한계는 확고했다.


무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집행유예도 법적으로는 유죄 판결이기 때문에, 김 중위는 군인사법에 따라 곧바로 휴직되었다. 당연히 항소를 결정하고, 이제부터는 재판부에 선처를 구할 것이 아니라, 무죄를 적극적으로 다투기로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소개받은 이 변호사는 김 중위에게 사건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직도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크게 분노했다. 이 변호사와 김 중위는 항소심 군사재판에서 피고인의 경력을 ‘좌편향적’으로만 보지 말 것,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서적들을 소유하고 학습한 목적에 이적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했다. 책의 내용 중 일부는 북한을 찬양하거나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하여 각 서적을 집필하거나 번역한 교수님들과 학자들에게 진술서와 의견서를 여럿 받았다. 게다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북한에 대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 두 명이 군사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전투적으로 증언했다. 마르크스가 즐겨 사용했던 혁명, 투쟁에 대한 단어 해석과 북한을 과연 반국가단체로만 볼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뜨거웠다. 변론 과정에서 분위기가 우세했고, 수많은 국보법 무죄 판결 선례에 비추어 자신감도 커져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소심 선고문은 1심과 같았다.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그나마 김일성 혁명업적 서적 외에 다른 서적 및 자료에 대한 유죄는 모두 기각되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군사법원의 한계가 확고했다. 군사법원이 아닌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서 끝까지 무죄를 받아내기로 했다. 상고이유서에서 김일성 서적 취득과 소지 자체를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협하지 않는다, 김 중위는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와 관련도 없고 이적 목적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인용하여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시켰고, 군사법원에서 마침내 그토록 듣고 싶던, 기필코 들어야 했던 결과를 들었다. “피고인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


70년대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실제 2010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국가보안법 입건 및 기소현황은 2013년 가장 높아진다. 정부는 2012, 2013년 천안함, 연평도사건 관련 이적표현물사범 증가로 입건자 일시 증가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7,80년대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2011년에 시작되어 2014년에야 마무리된 일이다. 엄혹하고 암흑한 군사독재 시절에 국보법은 ‘막걸리법’이라고 불렸다. 막걸리 마시는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정부 비판을 하다가 국보법이 적용되어 잡혀갔다는 일화에서, 또는 ‘막’ 걸면 걸린다는 특성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과 사상의 자유에 배치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하며, 모호한 법조항에 따른 자의적인 법 해석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국보법은 제정 당시부터 그 피해가 막심했다. 시행 한 해 동안에만 118,621명이 검거․투옥되었고, 132개 정당, 사회단체, 언론기관이 해산당했다. 5~6공 기간과 문민정권 기간인 1980년에서 1996년까지 국보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4,196명이었다. 이 기간에는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과 관련된 수많은 조작사건이 있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국보법 적용은 이전 민주정부의 남북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반동적 성격이 짙고, 건수도 훨씬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보법 적용 입건 건수는 2005년 33건, 2006년 35건, 2007년 39건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년 40건, 2009년 70건, 2010년 151건, 2011년 135건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 양상은 비슷한데, 내용 면에서 보다 강력하다. 출범 초기부터 한 정당을 종북세력의 원흉으로 여겨서 내란음모사건을 조작 하고 끝내 해산시켰다. 최근 국보법 사건은 녹취록, 출입경 기록, 중국통화내역 문서, 사진 등 공신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외국 자료들이 증거로 활용되면서, 기본인권이 침해되고 자주적 노선의 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의 도구가 되고 있다. 


통일이 되면 막걸리법의 현실은 어떻게 달라질까. 적대와 불신이 아니라, 통일과 평화가 시대정신이 되면, 한 국가의 보안만 걱정하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과 부정으로 70년이나 넘게 지내오면서 변화될 가능성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때로는 시대보다 사람이 먼저 변하기도 하고, 사람의 외적인 부분보다 내면이 먼저 변하기도 한다. 이 사건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국보법이 바꾸어버린 한 청년의 삶


국보법 사건이 한 청춘의 인생과 내면의 욕망을 바꾸었다. 어떤 철학자의 말마따나 현대인들은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자기도 따라서 욕망한다는데, 김중위도 결국 타인이 자기를 인정해주길 욕망했다. 어려운 철학책을 들고 다니며 똑똑한 대학생으로 보이고 싶었고, 민족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자랑했으며, 군대에서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의식 있는 간부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김 중위는 국보법 재판 과정을 통해서 심연의 인정욕망에 직면하였고, 이제는 그 욕망의 방향을 바꾸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타인의 욕망이 내 것인냥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욕망해 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누구나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욕망하기 나름인데, 우리나라에 가장 결핍된 평화통일을 욕망하는 것이 더 건강한 일이 아닐까. 


결국 국보법도 위협적인 존재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면 내가 필요하다는 인정 욕망이 뿌리 깊은 것 같다. 서로 믿지 못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막걸리법의 속성으로부터, 이해하고 믿고 존중하는 평화통일을 욕망하길 바란다. 그것은 꾸준한 몸부림이 필요하고, 혼자 할 수 없다. 다행히도 평화통일 운동을 하는 사람, 단체들 중에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진중하게 한 길 걷는 이들이 꽤 많다. 거기서 따뜻한 위로를 얻고, 바라는 바의 꿈과 희망을 보게 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지난 토요일, 바꿈은 2016년 송년회 대신 회원들과 함께 시국을 이야기할 회원모임을 가졌습니다. 탄핵 가결의 기쁨과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눈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작년에 바꿈에서 기획한 세대공감토크쇼 2탄으로, 지난 시간에는 세대간의 차이에 집중했다면 이번 토크쇼에서는 각기 다른 세대가 함께 촛불을 만든 만큼 서로가 공감과 이해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습니다. 



토크쇼의 사회는 바꿈의 대표 연예인, 손우정 이사가 수고해주셨고 세대 별 패널로 중고생 혁명의 박기쁨(10대), 메니페스토 청년협동조합의 정다운(30대), 더미래 연구소의 홍일표(40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정연순(50대), 6월민주포럼의 황인성(60대)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패널들은 각자 세대에서 바라보고 있는 시국과 그 안에서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매주 촛불집회에 나온 여러 세대로서 지난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이나 87년체제 등과 지금의 차이는 무엇이 있고 또 각자는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등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87년도에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10대 대표 박기쁨님은 자신이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는 6월항쟁은 어떠한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박기쁨님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약 600명 규모의 단체인 '중고생 혁명'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전남 부안에서 토요일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거의 매주 서울까지 올라오고 있고, 비록 10대가 사회적으로 어린 나이로 취급되지만 10대가 보기에도 답답한 정치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불합리한 현재 교육제도, 입시제도부터 꿈도 없이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도 결국 암담한 대한민국 정치상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규탄이 분명 학생들의 교육권 증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이 끝나더라도 학생들의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 여러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말씀 역시 덧붙여 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대구 출신이자, 대구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 40대 대표 홍일표님은 보수지역의 이미지가 강한 대구에서도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을 전하셨습니다. 과거의 정부에 잘못된 이들이 발견되면 단순히 그 정부의 잘못, 세상과 사회의 잘못으로 이야기했던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잘못 뽑았을 수도 있겠다'는 성찰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에 집중되면서 분명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북 성주에서 오신 분께서 청중 발언을 해주셨는데, 성주는 대구만큼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고 또 시가 아닌 면단위이기 때문에 더 폐쇄적인 분위기라고 합니다. 농민회 활동을 오래 하더라도 결국 1번에게 표를 던지는 지역에서는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이야기를 일상에서 나누는 것 조차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마냥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만 가져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고, 지역에서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셨습니다. 자신의 공간을 바꿔야 결국 나라가 바뀐다는 생각에 깊게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집회에 참여하게 된 경위도 이유도 전부 다르고, 세대 별로 현재를 이해가고 있는 방향도 달랐지만 분명 우리는 나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믿음, 또 그래야만 한다는 공통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전국적인 촛불집회에서 유독 10대들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는 만큼, 이런 세상을 물려주어서 미안하다는 어른들의 발언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함께 행동하는 10대들은 미안하다는 말보다 함께하자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탄핵 가결과 헌재 판결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만큼 추운 겨울,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또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떠한지 고민하는 것으로 촛불의 열기를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행사를 마친 후 간단한 뒷풀이를 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다가올 2017년은 조금은 바뀐 세상이 되도록, 바꿈 역시 노력하겠습니다. 안녕!:)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2016년 11월 29일

지난 5월부터 출발해 어느덧 반환점을 돈 바꿈 청년네트워크 2기사업의 세 번째 전체모임이 열렸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우리사회의 의제를 모으고 토론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끊임없이 만들어왔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이야기와 고민들을 나눠왔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https://sway.com/MBTFnjWIdMRURI7r

지난 6개월간의 활동은 위에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날은 정치, 노동, 인권, 환경, 게임, 여성, 통일 이렇게 7개 분과의 토론내용이 있었습니다

각 분과별 준비해온 기획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없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서로 궁금증을 나눴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어지러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이 본인 의제에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바꿈 청년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과 문제인식,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내년 5월경, 출간되는 도서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단지 대통령 한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닌

더 공고해지고, 더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공고한 벽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한 노력이 지금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알차고 좋은 내용을 담기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입니다.

여러분,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라가 이모양 이꼴입니다. 뉴스만 보면 자괴감이 드는데요.

박근혜-최순실 덕분에 드는 자괴감

'청년'의 자괴감을 나누면서 우리의 자존감을 찾는 방향을 모색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발제는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로

구의역 사고를 사례로 '실습생'의 자괴감을 말했습니다.


두 번째 김성은님은 '노점상' 으로서의 자괴감을 이야기 했습니다.

솜사탕, 핸드폰케이스, 오뎅가게 등 다양한 노점상 문제를 공유했습니다.


나보배씨는 '선원' 이었습니다.

배를 타면 청년으로 겪은 여러 부조리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네 번째는 박영민씨가 발표했으며 '여성운동'의 자괴감을 나누었습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이민호씨는

환경운동을 하며 느끼는 자괴감을 진솔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이진수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교사'로서 느끼는 자괴감을 말했습니다.


마지막 홍승오씨는 연극을 하면서 느끼는 자괴감을 나누었습니다.


이후 각자 담고있는 청년들의 자괴감을 서로서로 나누었습니다.


게임을 만들면서 느끼는 자괴감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자괴감

아이 아빠로서의 자괴감

물리치료를 하면서 느낀 자괴감 등

다양한 자괴감을 나누는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서로의 자괴감을 나누고 공유하는 과정만으로도

이 나라, 이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넘어 연대와 동질성을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재미있는 모임으로 만나요!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최근 대한민국은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으로 인해 국민들은 분노와 깊은 허탈감에 빠져있다. 이 기막힌 사기극으로 인해 대부분의 피해와 앞으로 수습하는 과정에서 받게 될 정신적 피로감 역시 국민의 몫이다. 국민들은 이제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시작은 새로운 세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일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청소년과 음악인들이 모여 ‘18세 참정권 인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한다. 11월 17일 수능일 저녁 6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난장법석 거리공연 ‘수능 18세! 선거19세? 투표권도 없는 18세 인생, 이제 끝내자!’는 2017민주평화포럼, 우리헌법읽기 국민운동본부, 인문예술공유지 문래당, 참여불교재가연대,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성대민주동문회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이 공연은 “1%를 향한 99%의 힘”을 모토로 지난 8월7일 종각에서 열렸던 ‘개돼지들의 카니발’의 연속 기획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에는 집시트로니카 밴드 ‘오즈(OZ)’와 악마의 블루스 밴드 ‘김태춘과 바퀴벌레들’, 플라멩코 퍼포먼스 그룹 ‘뻬냐 플라멩카 엘 오리엔떼(Penä Plamenca El Oriente)’ 등 홍대 앞에서 주로 활동하는 개성적인 뮤지션들의 다양한 무대가 펼쳐진다. 



공연과 함께 현 시국에 대한 뮤지션과 관객들의 1분 발언, 참정권 확대에 관한 청소년의 1분 발언, 18세 선거연령 인하 찬반 투표 등도 이루어진다. 공연은 공연자와 참여 시민들이 어우러져 함께 즐기는 형식의 무대로 꾸며질 예정이다. 기존의 딱딱한 집회의 형식을 벗어나 관객이 공연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웃음과 노래와 춤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시민들의 힘의 원천임을 자각하고, 정치적 주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취지이다. 올해 초부터 돌풍을 일으킨 ‘손바닥 헌법책’도 현장에서 보급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성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헌법만 지키면 99%를 위한 나라는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는 소망을 담았다. 



18세 선거권 인하 온라인 서명 : https://goo.gl/forms/m6xRpDMG5BBZ7fix1

18세 선거권 인하 온라인 찬반 투표 : https://goo.gl/forms/m6xRpDMG5BBZ7fix1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빨리 모이지 않으면 현기증이 나신다기에 바꿈이 한 번 가봤습니다.


알록달록한 풍선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맥주병.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 가시는 분이 계신가요?


지난 11월 7일 월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순수한 마음'에 '마음 아픈'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예능을 보는 것보다 뉴스를 보는 것이 더 흥미진진했던 지난 날들을 뒤로 하고

언제까지 구경만 할 것인가, 시국이 처참하다! 라는 생각 끝에 정말 '뭐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와글과 바꿈, 또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의 구성원들이 모여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들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테이블 마다 한명의 제안자가 있었고, 제안된 주제가 흥미롭다고 느껴지면 그 테이블에 앉아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대안을 이끌어내는 방식, 지나치게 사건이 거대해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소수자에 대한 고민 등

각자가 현 시점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주제별, 방법론별, 시기별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바꿈의 손우정 이사님도 제안자로 함께 했습니다.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87체제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갑작스럽게 테이블 하나가 더 생기고 토론의 장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만큼 현 시점에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오늘의 토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모임을 바탕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날 것인지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민중총궐기에 맞춰 활동을 고민했던 테이블도 있었고,

토론 참여자가 이후 또 다른 제안자가 되어 이러한 형태의 자리를 만들겠다라고 이야기한 테이블도 있었습니다.



시국은 암담하지만 그날의 토론은 활기찼습니다.

나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희망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뭐라도' 할 것이라고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눈 대화였지만 이를 통해 또 다시 힘을 얻고 앞으로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 게시물의 사진은 페이스북 페이지 <국민의 뜻이 우주의 뜻이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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