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금요일 – 2차 숙의 토론회 1일차


15:08 버스 탑승

올해 가장 더운 하루였고 가장 많은 땀을 흘린 날이었다. 취재도 한다는데, 이렇게 생취처럼 땀에 펑 젖어서 가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서울역으로 갔다. 역시 버스 두 대가 와 있었고 나는 뒤에 있는 버스에 탑승했다. 다행히 빈자리는 많았다. 3시간 넘게 앉아야 할 좌석이므로 신중하게 가장 좋은 자리를 골랐다. 창가 쪽 맨 뒷자리. 공간도 넓고 뒷사람 눈치를 안 봐도 되는 훌륭한 자리다. 옆에 누가 앉을까, 고민하며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냈다. 버스 안 사진도 한 장 찍고 엄니에게 카톡도 하나 보냈다. 나보다 어린 남자애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 자리에 턱 앉았다. 나는 혹시나 옆자리가 빈 상태로 버스가 출발하진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기대가 무너지자 애꿎은 남자애에게 심통이 났다. 

“쾌적하고 편안하게 천안까지 갈 수 있었는데 네가 다 망쳤어!”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못내 아쉽고 서운했다. 기사가 물을 한 병씩 나눠줬다. 곧바로 인솔자(알바)가 빵을 하나씩 나눠줬다. 나는 배가 너무 불러서 사양했다. 옆에 앉은 남자애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양 팔을 팔걸이에 걸었다. 거침없는 남자애의 동작에 나는 약간 더 심보가 나, 나 또한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서서히 어깨를 옆으로 집어넣었다. 순간 두 팔뚝이 살짝 스쳤고 남자애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일에 열중했다. 나는 더 약이 올라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남자애를 견제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가장 큰 정책 중 하나인 대입 제도 개편을 위해 공론화 토론회에 참석하겠다는 작자가 고작 버스 좌석의 영역을 놓고 10살이 어린 남학생과 어깨싸움을 벌이다니. 나는 조용히 팔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17:18 계성원 도착

어느새 버스는 네이버 본사가 있는 성남을 지나 천안에 도착했다. 창밖을 보니 정겨운 간판들이 둥둥 떠다닌다. 

산마루칼국수

부경파크빌

마늘돼지갈비찜

다모아레스토랑

도솔마루

“마지막 400만원대 응원지구”

태조산 청소년 수련원

충남 안전 체험관

이윽고, 그런 간판도 안 보이는 산골 깊숙이 차가 들어갔다. 왕복 1차선 도로였는데 옆으로 큰 버스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전남”, “청주”, “대전”이라고 적힌 팻말이 꽂힌 버스였다. 잽싸게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일감을 하나 끝냈으니 어서 다음 일을 하러 가야겠지. 버스는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반대 차선에서 자꾸 차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앞쪽에는 경찰차 두 대가 서 있었는데 그들 역시 진로방해에 한몫 했다. ‘우리가 꼴찌인가?’ 인솔자는 “저녁 6시 50분까지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도착하시면 우선 배정된 숙소로 가셔서 짐 놓고 식당에 가시면 됩니다!”라고 힘차게 말했다. 밥이고 짐이고 나발이고 일단 버스가 위로 올라가서 무사히 주차를 해야 가능할 터였다.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봤다(정체의 원인은 이로부터 약 ?시간 뒤에 알게 된다).


17:45 저녁식사

인간 역시 ‘영역 표시’의 본능을 DNA 속에 감춘 동물이던가. 내가 숙소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을 비워내는 일이었다. 점심 때 먹은 기름진 음식들이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으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산된 거대한 찌꺼기가 어서 빨리 항문 밖으로 탈출해 대양을 만나고 싶다고 아우성쳤다. 무려 15분이나 버스가 숙소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이들의 아우성은 폭동으로 변했고, 나는 빠른 결단을 내려야 했다.  버스가 주차한 공터 앞에는 이미 언론사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이건 좀 과장이고, ‘서너 무리가 오순도순 사이좋게 카메라를 세워놓고선 하차하는 시민 참여단을 촬영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겠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우리는 숙소 번호와 소속 조 번호가 적힌 명찰(‘비표’라고 불렀다)을 받았고, 덤으로 지난번 1차 숙의 토론회 때 받은 동일한 에코백을 또 받았다. 에코백 안에는 2박 3일간 사용할 플라스틱 물병과 볼펜이 들어 있었다. 주최측 스태프로 보이는 여성이 차에 탑승해 (참으로 친절하게도)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비표를 나눠줬다. 나는 노련한 지휘관답게 뱃속의 폭동이 수습할 수 없는 내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협상 테이블에서 시간을 끌었다. 이윽고 버스 문이 열렸지만, 맨 뒤에 앉은 나는 가장 마지막에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시민 참여단은 벅찬 가슴을 안고 앞으로 2박 3일간 아름다운 추억을 쌓은 이 계성원의 전경을 그윽하게 바라본 뒤 힘찬 발걸음으로 숙소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이 급했다. 나는 과감하게 엘리베이터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사이를 뚫고 계단실로 들어갔다. 

내 숙소는 xxx였다. 인솔자는 우리가 2인 1실로 생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룸메이트는 누구일까? 서로 잘 맞아야 할 터인데… 우선 짐부터 놓고 장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방 안에 딸리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면 가장 좋지만, 룸메이트가 먼저 와 있으면 그것도 좀 애매했다. 초면부터 뿌지직 와장창 내 장 속의 아이들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웅장한 소리를 들려줄 순 없지 않겠는가. 룸메이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도 애매했다. 시원하게 용변을 보고 나왔는데, 룸메이트가 와 있으면 그것도 좀 멋쩍지 않겠는가. 소심하고 찌질한 고민 끝에 내가 택한 길은 지하 2층 식당 앞에 있는 공중 화장실이었다. 휴대전화기만 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장 속이 아무리 가득 찼어도 식사는 꼬박꼬박 해야지 않겠는가.

다행히 550명의 시민 참여단 중 화장실을 찾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남자화장실 바로 앞이 식당 입구였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먼 길을 달려온 굶주린 시민들이 계속해서 1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변기에 엉덩이를 대고 반군들을 일망타진했다. 장을 비우자 식욕도 돌아왔다. 저녁은 제육볶음(메뉴판에는 ‘김치두루치기’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둘의 차이를 모르겠다). 



배식은 편리했다. 빈 쟁반을 들고 배식구 앞에 서서 앞 사람이 천천히 나아가길 기다린다. 밑반찬과 국, 제육볶음과 밥을 순서대로 쟁반에 올린 뒤 아무데나 가서 앉으면 된다. 사람들은 이미 친해졌는지 삼삼오오 모여 먹는 이들도 있었고, 주최 측으로부터는 ‘모더레이터’라고 불리며 그네들끼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집단 역시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처럼 왕따처럼 구석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밥을 먹는 이들도 있었다. ‘아! 이런 곳에서조차 외로움을 타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외톨이!’ 무척 10대스러운 생각을 하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맛은 훌륭했다. 다만 밥이 너무 적었다. 사람들이 밥을 너무 많이 남겨서 그랬을까? 이렇게 적게 퍼주다니. 식당 한가운데는 자유롭게 퍼갈 수 있는 반찬들과 밥솥이 통째로 놓여 있었다. ‘저기다!’ 나는 밥그릇을 들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갔다. 하지만 밥통에는 밥이 없었다. 나는 시민 참여단의 진취적이고 건실한 식욕에 감탄을 표하며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 후로 10분이나 반찬을 입에 대지 않고, 밥통이 리필될 때까지 기다렸지만 식당 아주머니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통에는 1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나는 5분을 더 기다린 후 결국 배식대에 밥그릇을 들고 가 밥 담당 아주머니 앞에서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밥 한 주걱만…”


18:53 2차 설문 조사


비운 장 안에 다시금 음식물을 차곡차곡 쌓은 뒤 부랴부랴 이를 닦고 ‘비전홀’로 내려갔다. 앞으로 전체 토의나 큰 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열리는 것 같다. 6시 50분까지 비전홀로 내려오라는 방송이 거듭 스피커에서 쏟아졌다. 나는 이를 닦고 면도까지 하느라 49분쯤에 출발했다. 그때까지도 나의 룸메이트는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혼자 쓰려나?’ 옅은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쿵쾅쿵쾅 계단을 달려 지하 1층 비전홀에 도착했다. 홀 안에는 500명 남짓한 시민 참여단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고, 좌석 뒤쪽에는 국민TV 등 언론사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단상 위에는 1차 숙의 토론회 때 뵈었던 바로 그 진행자 선생님(무슨 연구소 소장이었는데?)이 마이크를 들고 올라와 있었다. 4개 지역에서 1차 숙의 토론회가 진행되었으니 아마도 4명의 진행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모두가 모인 2차 숙의 토론회 때 서울 토론회의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은 것을 보니 저 진행자가 가장 서열이 높거나 진행 솜씨가 탁월한 것 같다. 

시민 참여단의 공식적인 첫 일정은 2차 설문 조사였다. 뒤에 앉아 있던 모더레이터들이 우르르 내려와 1차 숙의 토론회 때 작성했던 동일한 내용의 설문지를 나눠줬다. 내가 속한 조의 모더레이터는 남자였다. 인상이 굉장히 선하고 유해 보였다. 한국리서치 총무가 단상에 올라와 설문지 작성을 안내했다. 지난번과 동일한 내용이었으므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응답자의 배경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가계소득’, ‘정치성향’, ‘직업’ 등을 묻는 질문이 추가되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의 경제적 지위는? (많으면 10점) 4점

당신 가구의 월 평균 전체 소득은? 300~400만 원

당신의 정치 성향은? 매우 진보


비전홀 좌석 배치는 조별로 구성되었는데 의자가 일렬로 늘어선 극장형 좌석인지라 조별로 앉혀 놓기가 애매했다. 가령, 어떤 조는 반드시 서로 다른 조 사이에 끼어 의자로 들어가기가 몹시 어려운 구조였다. 친절하게 팻말도 붙여 놓고 안내를 해줬지만 자기 조 자리를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방황하는 시민 참여단이 줄을 이었다. 나도 앞쪽으로 빙 돌아서 겨우 내 자리를 찾았다. 아무튼 그렇게 조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우리 조는 남자가 3명이고 여자가 6명이다. 조별 정원은 10명인데 우리 조만 9명이었다. ‘아,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의문의 남자 한 명이 빠져서 그렇구나.’ 나는 내 바람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약간 흥분했다. 현재까지 이곳 계성원 숙소에 도착한 시민 참여단은 464명. 여기에 추가로 도착하는 인원은 30명. 550명 정원이었지만 결국 50여 명이 중도에 하차한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앉은 같은 조 사람들의 설문지를 슬쩍 훔쳐봤다.

학생, 600~700만 원, 진보도 보수도 아님, 경제 등급 9

퇴직, 200~300만 원, 진보, 경제 등급 6


19:29 개회식

설문이 끝났다. 이제 언론사가 입장해 우리를 마구마구 촬영할 것이다. 개회사를 시작하기 전에 공론화위원회 간사가 나와 이번 사업의 경과를 보고했다. 말씀을 굉장히 잘하시는 분이었다. 그는 ‘오늘 숙소 입구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에 대해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며, 일부 단체가 룰을 어기고 계성원에 진입해 참여단에게 유인물을 뿌리는 등 대입제도 개편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했다며, 그들과의 마찰로 인해 차량 진입에 정체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들의 의견은 공론화위원회의 의견과 무방하다는 첨언까지. 

공론화위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에 출범됐다. 그 후 교육 문제를 다룬 각종 다큐가 방영되었고 대규모 토론회가 여러 지역에서 개최되어 생중계됐다. 나는 왜 이 토론회를 못 봤을까? 이곳에서 우리 토의할 의제 4건은 소위 ‘시나리오 워크숍’이라는 절차를 통해 도출되었는데, 35명의 교육 관계자가 1박 2일간 숙의해 정립한 것이란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세계관, 교육관을 지닌 수많은 단체가 모여 최종 4개의 의제를 도출했다. 그리고 중간에서 ‘공론화협의회’가 중재를 맡아 4개의 의제를 발의한 대표자들과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 네 건의 의제가 성립된 과정에 대해선 많은 이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의문은 ‘왜 우리가 이 제한된 의제 안에서만 마치 객관식 시험을 치르듯 토의해야 하느냐’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는 나중에 좀 더 쓰기로 하자. 아무튼 이렇게 도출된 의제를 바탕으로 벌인 시민 참여단의 토론과 그 결과는 올해 8월 3일에 발표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토의 규칙’을 읽었다. 

의제 발제자와의 개별 접촉 금지!

끝장 토론 벌이면 퇴장!

모더레이터에게 복종!

경청 또 경청!

(필자가 재해석한 것임, 실제로는 이렇지 않음)

물론 이렇게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느낀 뉘앙스는 이 정도로 단호했다.


19:46 환영사

위원장이 입장했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고 시민 참여단들도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김영란 전 대법관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도 담았다. 

“반드시 전문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은 판사입니다. 판사들은 판결을 내릴 때 우선 경청부터 하고 수많은 자료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검토합니다. 그러고 나서 판결을 내립니다. 여러분도 판사가 되어주십시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문득 이 공론화 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떤 대단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않아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종착역까지만 도달한다면 되는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과연 우리가 여기서 무슨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그저 이렇게 다들 열심히, 정말 열심히 토론회에 참석해 2박 3일간 생고생을 해 어떤 의제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게 된다면, 그러한 과정 자체가 명분이 되어 해당 지지 의제가 대입 제도 개편 논의에서 힘을 얻고 채택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뿐이다.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그 누구도 독단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를 시민의 힘으로 끊어내 대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그 힘으로 대입 제도 개편 드라이브를 밟는다.’ 여기까지다.   


20:20 1차 분임 토의

개회사가 끝나고 첫 번째 분임 토의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우리 조원들과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조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오른쪽 순서로) 제주에 올라온 20대 여자 학생, 영남권 사투리를 쓰는 20대 남자 학생, 70대 할아버지, 40대 아주머니, 공무원 출신 60대 아주머니, 서울에서 온 40대 여성, 전라도 광주에서 온 40~50대 아주머니로 구성되었다. 머뭇거리는 입술, 분주한 눈동자, 각도를 쉬이 잡지 못하는 시선, 알 수 없는 표정, 적당한 터를 찾지 못하는 어설픈 손짓… 우리 조뿐만 아니라, 다른 조도 마찬가지겠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70대의 남녀들은 자기를 소개하고 대입 제도 전반에 대한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질문에 애써 적당한 답변을 찾아내 조잡한 단어로 조합해내며 끊임없이 서로를 탐색하고 분석하고 검토하고 평가했다. 그리고 끝내 함부로 판단해버리겠지. ‘저 사람은 패스, 저 사람은 말이 너무 많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어두워?’ 어쩌겠는가, 우리도 어리석은 인간들일 뿐이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우리 조가 앉아 있는 자리로 왔다. ‘설마!’ 2박 3일간 객식 하나를 통째로 쓰겠다던 내 꿈은 보기 좋게 박살났다. 내 꿈을 부순 그를 노려봤다. 나보다 네댓 살 많아 보이는 남자였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연차를 쓰지 못하고 이제야 도착했단다. ‘그럼 오질 말든가!’ 속으로 열이 뻗쳤지만 내색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로 그를 환영했다.   

첫 번째 분임토의는 조별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파악하고 전체 의제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기탄없이 나누는 자리였다. 따라서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질문이 주어졌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정성껏 글로 푸는 일은 무의미할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말이 오갈까. 상냥한 우리의 모더레이터 선생님께서는 총 3개의 질의를 던졌다.


당신이 지난 1차 숙의 토론회와 지난 이러닝 교육 및 자료집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현행 입시 제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대입 제도의 올바른 방향과 모습은 무엇입니까?


모더레이터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나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이어졌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보자.

1~4번 의제 외의 제 5의 의견을 말해도 됩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온 다른 안건이 채택될 가능성도 있습니까? 이미 짜인 판에 낀 것 같아서 유감입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된 것 같군요.

대입 제도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제도 같아요.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도, 대학도…

가장 큰 문제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죠!

내 자식한테만 불리한 제도?

이래 갖고는 우병우 같은 애들만 나오는 거야!

각 의제의 실행 계획을 뒷받침할 강력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수반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예상했고, 그러나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우려는 물론 현실이 되었다. 1분 남짓으로 발언 시간을 조절해달라는 모더레이터의 부탁은 세미나실 어느 구석에 처박혔고, 답변들은 제시된 질문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자유로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쾌감도 확실했다. 어떤 진리를 향해 다함께 나아간다는 추상적인 감각, 그 여정에 나의 목소리가 얹어지고 바로 이 순간 내가 속한 조의 조원들에게 내 육성을 전한다는 명징한 감각. 그리고 내 의견이 포함된 거대한 공의가 실제 우리 현실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런 추상적이고도 직접적인 여러 감각이 모여 500명 남짓한 시민 참여단의 숙의 일정을 힘차게 밀었다. 


21:27 전체 나눔: 1차 분임 토의 결과 공유

조별 모임을 마치고 다시 비전홀로 돌아갔다. 다들 감을 잡았는지,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자기가 속한 조를 찾아 재빠르게 착석한다. 예닐곱 조가 자기네가 토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오늘이 27일이므로 사회자는 7조, 17조, 27조, 37조, 47조를 먼저 지명했다.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각 조의 대표자가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큰 박수 소리가 나왔다. 

“현행 입시 제도는 수시 비율이 너무 높은 것 같다.”

“제도 밖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밤 10시가 조금 안 되어 첫 날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다(한 게 있어야 피곤하지!). 우르르, 마치 예비군 훈련병들이 강당을 빠져나가 숙소로 돌아갈 때처럼 노도와 같은 기세로 시민들이 각 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22:19 숙소 이동, 휴식

첫날밤이 이렇게 흘러간다. 이쯤에서 집단지성의 위대함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숙의 민주주의의 실험이 가열차게 진행되는 천안 태조산 기슭의 거대한 숙소를 소개해보자. 이곳의 정식 명칭은 계성원이다. 교보생명 그룹사에서 연수원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며 지하 4층부터 지상 7층까지 11층 규모다. 2층부터 7층까지는 숙실이 들어서 있고 1층에는 각종 공용 격실이 위치하고 있다. 지하에는 헬스실, 실내체육관, 컨벤셜홀, 라운지, 세미나실 따위가 있다. 건물을 바깥에서 보면 거대한 ‘ㄷ’ 자가 오른쪽으로 누워 있는 형상인데, 1~3층까지 건물 가운데를 뚫어놔 바람이 오가는 거대한 문처럼 보인다. 

숙실은 2인 1실이며 싱글 침대 두 개가 있다. 수압 좋은 샤워기가 달린 화장실이 달려 있고, 개인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함이 두 개 있다. 수납함은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다. TV는 없고 개인당 수건 세 장과 발수건 한 장을 지급한다. 비누와 휴지가 비치되어 있고 숙소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슬리퍼도 있다. 매점은 밤 11시가지 운영한다는데 가보진 못했다. 로비에는 청소년(입사 당사자)들이 몇 주 전 열린 ‘미래세대토론회’에서 분임 토론한 결과를 요약해 정리한 전지가 미술 전시물처럼 게시되어 있었다. 자세히는 못 봤다. 또 로비 한 편에는 이번 대입 개편 논의에 대한 시민 참여자들 질문이 적힌 무수한 쪽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역시 자세히는 못 봤다.



밤 11시가 되자 잠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노트북 앞에 앉아 20분 정도 후기를 적었지만 너무 졸려서 바로잤다.



※ 이 기록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인간군상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무례한 관찰기이자, 결코 개선되지 않을 문제에 달린 불가능한 보기들 사이에서 방황한 한 시민의 설문 후기다. 中편으로 계속..



-바꿈,세상을바꾸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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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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