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참여단 활동은 이번 주 토요일에 1차 숙의 토론회가 진행되고, 그 다다음 주 주말에 2박 3일 일정으로 2차 숙의 토론회가 진행됩니다. 모두 참석 가능하시지요?” 

“네.” 

“온라인으로 진행된 사전 교육 모두 수료하시고 토론회도 모두 참석하시면 사례금으로 65만 원이 지급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대학입시제도대편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으로 선정되다.

모든 것은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요 SNS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정부의 모든 공식적인 대민 업무란 얼굴을 마주보고 접촉하는 대면 접촉 혹은 유무선 통화로 접근하는 ARS 응답을 벗어나지 못한다. 때는 지난 6월 중순경. 설거지를 하는 엄니를 대신해 전화를 받았다. 왜 내가 받았을까. 모르겠다. 모든 소설 같은 일에는 약간의 우연이 섞이기 마련이다. “안녕하세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입니다.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하고요,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나는 막 밖에서 들어와 옷을 홀딱 벗고 소파에 드러누워 허벅지를 박박 긁으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친절했지만 무척이나 촉박했기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귀를 스마트폰에 바짝 갖다 댔다. 그 말투나 억양이 적어도 누군가의 등을 맛있게 떠먹으려는 살기가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나 역시 반 박자 빠른 속도로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이 전화기는 제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우리 엄니 전화기인데요, 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말았다. 상담원 선생님은 맹렬한 기세로 준비된 멘트를 읊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은 대입 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 시민 참여단의 예비 모집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이윽고 내 정치 성향과 연령대, ‘대입 제도’에 대한 의견 등을 묻는 간략한 설문 조사가 이어졌다. 상담원 선생님은 앞만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그가 하루 과업을 조금이라 빨리 마칠 수 있도록 나 역시 신속하고 적확하게 답변을 뱉어냈다. 내가 기억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원내 정당 중 지지하는 정당이 있습니까?” “선생님께서는 현행 입시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선생님께서는 대입 제도가 개편된다면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입 제도 개편을 찬성하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상담원 선생님은 모든 질문을 다 던진 뒤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선생님께서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로부터 시민 참여단 예비 명단으로 선발되셨고요. 최종 선발이 종료되면 7월 초쯤 다시 연락이 갈 예정이니까 꼭 전화를 받아주세요.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연거푸 ‘운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4000만 분의 2만’의 확률로 걸려온 이 행운의 전화를 끊었다. 7월 10일 한 차례 더 전화가 걸려왔고 다음날 참석을 재차 독려하는 당부 연락이 한 번 더 왔다. 다시, ‘2만 분의 550’의 확률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나는 꼭 참석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웃었다. 

“그리고 행사 당일 오전에는 외부 언론사에서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할 수 있습니다. 얼굴은 가급적 측면부만 촬영하도록 사전에 협조해놓겠습니다. 혹시라도 언론에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면, 미리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사고가 나면 보상금을 지원해드리기 위해 여행자 보험에 가입시켜드리겠습니다. 주민번호 열한 자리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고, 혹시라도 주민번호 노출을 원하지 않으시다면 그냥 생년월일만 불러주세요.” 

나는 언론에 내 얼굴이 나와도 괜찮고, 주민번호 11자리도 얼마든지 불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정도 사기극이라면 한 번쯤 속아 넘어가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었고 2할, 아니 1할쯤 되는 책임감을 안고 첫 번째 숙의 토론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토론회가 열린 토요일이 됐다. 


7월 14일 토요일 08:34

오랜만에 서울역에 왔다. 세종대 국제컨벤션센터로 향하는 셔틀 버스는 서울역 앞 광장이 아니라 역 뒤편에 서 있었다. 지하철 1호선 출입구로 따지자면, 2번 출구 쪽이 아니라 3번 출구 쪽.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이 삭막하고 황량한 구도심에 서 있다니. 

550명의 시민 참여단 중 수도권과 제주도, 강원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서울에서, 영남권과 호남권에서 사는 사람은 각각 부산과 광주에서, 그리고 중부권에 거주하는 시민 참여단은 대전에서 토론회를 진행한다. 서울과 광주 토론회는 7월 14일 토요일에 각각 세종대 국제컨벤션센터와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부산과 대전 토론회는 7월 15일 일요일에 각각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과 KT대전인재개발원에서 열린다. 김포에 거주하는 나는 세종대로 향했다.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시민 참여단을 세종대로 ‘이송’하기 위해 셔틀버스 여러 대가 투입됐다. 나는 서울역 출발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8시 50분에 출발하니 반드시 8시 40분까지는 도착하라는 문자가 행사 전 이틀간 세 통 정도 왔다. 문자 메시지에는 ‘인솔자’라는 정체불명의 직책명이 적혀 있었고 심지어 휴대전화 번호까지 나와 있었다. 나는 시민 참여단 이송을 책임지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번호가 아닐까, 적어도 주무관쯤은 되겠거니 했는데 막상 집결 장소에 도착해보니 버스 앞에는 앳된 얼굴을 한 잘생긴 청년 두 명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참여단들의 신상을 확인하고 버스에 탑승시키고 있었다. 다 합쳐 4일 참석해 65만 원을 받는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꿀알바를 찾은 두 청년을 응원하며 버스에 올랐다. 

청년 알바생이 들고 있는 인원 명부를 슬쩍 보니 내 이름 옆에는 ‘30~39세’라고 적혀 있었다. 550명의 시민 참여단 중 ‘30~39세’ 그룹은 몇 명이나 될까? 가보면 알 것이다. 버스 좌석은 이미 절반 정도 차 있었다.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어른들이었다. 60대를 훌쩍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시민 참여단의 모습을 실물로 영접하자 내가 정말 550명에 뽑혔구나, 라고 실감했다. 


09:29

나는 이날 처음으로 세종대가 강남 송파구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꾸벅꾸벅 졸다 깨니 캠퍼스 안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라고 크게 적힌 노란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우리를 안내했는데, 나는 알바생들이 입은 그 노란색 조끼가 너무 탐이 났다. 한 벌 남으면 달라고 해야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씩씩하게 걸었다. 

‘광개토홀’이라고도 불리는 국제컨벤션센터 입구에는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나눠주며 피켓 시위를 하는 어른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나눠준 종이에는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위에는 “대입숙의에 참여하시는 시민들께 보냅니다”라는 글자가 바탕체로 적혀 있었다. 나는 고이 접어 책자에 가방에 넣었다. 

지하 2층에 내려가자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우리를 강당 안으로 몰았다. 강당 입구 앞에 설치된 임시 접수창구에서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로부터 내가 속한 조 번호가 xx번이라는 것을 듣고 기념품을 수령했다. 흔하디흔한 에코백 한 장과 싸구려 볼펜 한 자루였다. 나는 에코백을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강당 안에는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다. 이미 많은 참여단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원형 테이블 하나가 한 조다. 어떤 테이블은 어색한 공기 속에서 생판 처음 보는 남과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고(우리 테이블!), 어떤 테이블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미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내가 속한 xx조 테이블에는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한 명은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누가 봐도 ‘꼰대’ 티가 나는 중년 사내였고, 한 명은 내 또래로 보이는 무척이나 순해 보이는 한마디로 만만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몇 사람이 더 올 때까지 나는 준비된 자료집만 뒤적거리며 침묵을 지켰다. 


공론화란?

특정한 공공정책 사안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깊이 있게 잘 살피며 민주적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숙의자료집” 중에서

자료집에 적힌 ‘공론화’에 대한 정의다. 65만 원에 눈이 멀어 날름 신청했는데, 글쎄 과연 내가 그 값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왠지 말이 무척 많을 것 같은 50대 중년 사내는 여차하면 말을 걸어버릴 테다, 라는 태도로 이리저리 시선을 던지며 자꾸만 나와 순둥이 청년을 바라봤다. 다행히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우리 테이블에 앉자 자연스럽게 두 중년 사내끼리 말을 섞기 시작했다. 물론 ‘꼰대’ 티가 나는 사내가 훨씬 더 많은 말을 했다(오후 5시 행사가 끝날 때까지 가장 많은 말을 한 사람은 단연 이 ‘꼰대’ 아저씨다). 


10:20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나왔다. 통통한 체격의 여자였는데, 진보 성향 단체의 임원이었다. 몇 분 뒤엔 이른바 ‘모더레이터’라는, 이번 숙의 토론회의 두 번째 꿀알바 집단이 우르르 장내로 들어와 각자가 담당하는 조별 테이블로 이동했다. 사회자가 오늘 일정의 대강을 설명하는 동안, 모더레이터들은 원형 테이블의 빈자리에 조용히 앉아 잔뜩 가져온 짐을 뒤적거렸다. 

이윽고, 오늘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바꿔 말하면 언론 취재진들이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한 ‘임석상관’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입장했다. 그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김영란 위원장 뒤로 위원들이 졸졸 따라다녔다.

“그럼 본격적으로 토론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국기에 대해 예를 표하는 순서를 갖겠습니다. 장내에 계신 모든 분께서는 일어나주십시오.”

‘아니, 아직도 이런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이며 만고의 쓸데없는 짓(국기에 대한 경례)을 하는구나!’ 나는 예비군 훈련장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던 이 오래된 의식을 따분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애국가 1절을 ‘시간 관계로 생략’한 뒤 김영란 위원장이 앞으로 나와 축사를 했다. 

“여러분, 정말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이 멘트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550명의 시민참여단을 대표하는 9인의 참여단이 단상에 올라가 김영란 위원장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고 위촉장도 받았다. ‘아,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주관하는 모든 행사는 이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구나!’ 예비군 5년차인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노고에 깊이 탄복했다. 


10:45

장학사의 진행으로 간단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다. 대입 제도 전반에 관한 의견을 묻는 설문이었고, 이번 1~2차 숙의 토론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할 안건, 즉 ‘공론화 범위’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숙의자료집”이 제시하는 공론화 의제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

<공론화 범위>

1. 선발 방법의 비율

① 학생부위주전형(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수능위주전형 간 비율 검토

②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의 활용 여부 

2. 수능 평가방법 : (1안)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 (2안) 상대평가 유지 원칙 

-“숙의자료집” 중에서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첫째, 정시와 수시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수능을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 상대평가로 할 것인가. 

셋째, 대학이 수험생들에게 수능 최저등급을 요구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시민 참여단은, 이 세 가지 의제에 관한 의견을 정리해 공론화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다. 그 ‘의견’이 향후 교육 정책 및 대입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모른다. ‘의견을 정리하는 방식’은 설문조사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 참여단을 대상으로 위 세 가지 의제에 대한 동일한 질문을 세 번 반복한다. 공론화 활동(1차 및 2차 숙의 토론회)이 진행됨에 따라 참여단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하려는 의도다.

지금 하고 있는 설문이 첫 번째고, 다다음주 2박 3일 2차 숙의 토론회에서 첫날과 마지막 날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설문을 진행했다. 총 3회 설문의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지, 혹은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 


11:20 

설문이 끝난 뒤 잠깐 짬을 이용해 ‘신나고 즐거운’ 자기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모더레이터가 진행했다. 우리 조는 50대 아저씨 두 명, 20대 여자 대학생 한 명, 30대 후반 유부남 한 명, 40대 아저씨 한 명, 60대 할머니 한 명, 50대 아주머니 한 명, 그리고 30대 미혼자인 남자인 나 이렇게 총 8명이 뭉쳤다. 

50대 아저씨 두 명 중 한 명은 자영업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안전 관련 공사에서 일한다. 20대 여자 대학생은 자리에 앉자마자 펜을 들고 자료집을 정독할 정도로 토론회에 진지하게 임했다. 30대 후반 유부남은 치과 의사였는데 사례금이 있다고 하길래 덥석 신청했다고 한다. 40대 아저씨(사실 50대 같기도 하다)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50대 아주머니는 강원도에 오셨고 입시를 앞둔 자녀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내가 꼴찌로 소개했다) ‘김포 거주, 32세, 미혼, 회사원’ 딱 이렇게 네 단어만을 조합해 3초 만에 소개를 끝냈다.

이어서 곧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1교시는 “공론화의 이해와 시민 참여단의 역할”, 2교시는 “대입제도의 이해”였다. 각각 25분과 45분이 배정되었는데, 이 시간은 참여단의 질의응답까지 포함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발제자들은 말 그대로 숨이 넘어갈 정도로 급박하게 발표 자료를 읽었다. 

점심으로는 도시락을 먹었다. 칠리 새우 한 마리, 소불고기 조금, 치킨 텐더 한 조각, 계란찜 한 조각, 닭날개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맛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공짜밥이니만큼 야무지게 맛있게 먹어줬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우리의 TMT 아저씨께서 장광설을 하며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아이구,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60대 할머니가 그를 칭찬하자,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아무도 말을 안 하니까 제가 그냥 나선 거죠 뭘” 하고 응수했다. “하핫!” 멋쩍은 웃음까지 더해져 그의 꼰대로서의 풍모는 가일층 웅장해졌다. 과연! 사람을 알아보는 내 식견이란! 나는 나 자신에게 감탄했다.


13:30

식사 후 본격적인 순서, 즉 이번 숙의 토론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촉발할 네 가지 의제가 역순으로 발표되었다. 4번 의제, 3번 의제, 2번 의제, 1번 의제. 각각의 의제는 현행 입시 제도에 관한 서로 다른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고 당연히 그 해결책 역시 저마다 완전히 달랐다.

여기서 각각의 의제가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고 정리하고 평가하고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 같다. 결코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 의제 발표 후 진행된 조별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을 맥락 없이 죽 열거하는 것이 차라리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각 의제에서 인용한 통계자료들 출처는? 똑같은 자료를 갖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니까 헛갈린다. 이번 시민 참여단 활동에서 너무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550개의 서로 다른 의견이 각축하고 뒤섞여야 ‘그나마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참여단 각자는 조금 거칠고 미완의 대안일지라도 서슴없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내놓아야 한다. 

여기 나온 의제들은 최선이아니라 차선이다. 이번 공론화 활동은 진화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장일 뿐,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자. 시민 참여단의 기본적인 역할은 대입 제도 개편 논의를 주변에 널리 알리고, 대안적 공의를 모으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다. 주변에 널리 알려 시민들이 대입 제도 개편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도록 노력하겠다.

의제들은 좋은데, 다들 왜 이렇게 발표 시간을 못 지키죠?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이라… 적어도 입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학생 스스로 포기하지는 못하게 해야겠죠.

무작위로 뽑힌 ‘비전문가’ 시민 집단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그런 아마추어 집단의 의견이 실제 교육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더 책임감을 갖고 참여단 활동에 임하겠다. 2차 때까지 모두 빠지지 말고 참석합시다.

2차 토론회 때로 오늘 모인 조가 유지되나요? (20대 여대생)

아이고, 우리 젊은 친구들은 공부 열심히 하시네. 우리 조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모였나봐. 하핫. (TMT 아저씨)

주최 측에서 나눠준 자료집의 질이 무척 형편없다. 우리 회사 신입사원이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 것이다. 이런 자료집을 가져오면 그 직원은 사표 써야 한다. (‘대기업’ 건설회사 아저씨)


16:10

조별 토론을 마친 뒤, 각 조에서 나눈 이야기를 다른 조 참여자들에게 공유하는 발표 시간을 가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으려 해서 좀 놀랐다. 하긴, 귀한 주말 중 하루를 통째로 할애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라면, 저 정도의 열의는 평범한 수준일 것이다. 점심식사 후 진행된 의제 발표 때도 전문가 발제자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 여럿 나왔다. 많은 시민이 마이크를 얻기 위해 손을 번쩍 들고 ‘여기요!’라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에서는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고 당연히 마이크도 오지 않았다. 


17:20

귀갓길에도 역시 셔틀 버스가 운행됐다. 올 때 탄 버스를 다시 타면 된다. 인원이 이미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버스는 못 탄다. 서울역으로 가고 싶은 어떤 아저씨는 눈물을 머금고 다른 버스를 탔다. 오후 5시가 넘었음에도 태양은 강렬했다. 토요일이었지만 캠퍼스에는 수많은 학생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기네 학교에서 무려 ‘시민참여형 조사와 시나리오 워크숍이 결합된 형태로서 국내 상황에 적합한 공론화 모델이 개발, 적용되는 최초의 사례’인 이 공론화 활동의 첫 번째 숙의 토론회가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강변북로로 진입한 버스는 아직 동호대교도 지나지 못했는데 서버렸다. 까치발을 들어 버스 앞을 내다보니 도로가 차로 꽉 막혀 있었다. 멀리까지 줄을 선 차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6시면 넉넉하게 서울역에 도착하리라 생각했지만, 버스는 개미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움직일 뿐이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나보다 뒤쪽에 앉은 어느 아주머니였는데,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건 것 같았다. 아마 같은 조였으리라. “이번에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더라고요. 저기 보이는 아파트가 내가 사놓은 아파트인데 원래는 되게 저렴하게 샀어요. 한 5억? 근데 지금 보니까 10억까지 올랐더라고. 참나.” 늘 버스 안에서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에워싸고 있는 아파트들의 소유주가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바로 그 집주인이 나와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다. 


시민참여단 선정

시민참여단은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 남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민참여단 선정을 위한 대국민 조사’를 통해 선정하였다. … 우리나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표본을 추출하는 1차 조사와, 1차 조사응답자 중 … 토론회 참석 의향을 밝힌 응답자 중 지역, 성, 연령 등 인구통계학적 분포 및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태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시민참여단 550명을 선정하였다. 

-“숙의자료집” 중에서

과연, ‘인구통계학적 분포를 고려’해 폭넓은 계층의 참여단이 모였다. 수도권 변두리에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입주자부터 강남 알짜배기 땅에 지어진 아파트의 소유자까지. 서로의 삶에 대해 조금도 상상해보지 못한, 아니 상상할 수 없었던 이 다채로운 계층이 모인 집단은 과연 어떤 공통된 의견을 내놓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한남대교, 반포대교, 동작대교, 한강대교를 기어이 돌파한 버스는 용산역을 뒤로 빙 돌아 청파동을 관통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서울역 뒤편, 지하철 1호선 3번 출구 앞. 사람들은 짤막한 인사도 나눌 새 없이 각자의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1차 숙의 토론회가 끝났다.

ps.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간 2차 숙의 토론회가 열린다. 이 후기도 곧 공유하곘다. 혹시 대입 제도 개편에 관한, 아니 대한민국 교육 제도와 철학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바꿈으로 서슴없이 이야기해주시길. 반영될지는 모르겠으나 성실히 전달하겠다. 


* 본 기고글은 318로 익명을 요청하신 공론화 위원회 참가자 후기입니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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