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직무 정지, 대통령 직함 이하 생략)과 최순실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뻔한 질문이 밥상 위에 던져졌다. 정답보다 웃음이 먼저 터졌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탓이다.

세상은 나를 언론인이라 부른다. “인권 교육 매체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 향상과 인권 감수성 향상에 기여”(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할 책임이 있는 바로 그 언론이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나는 저 질문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하지만 답이 정해진 저 질문 앞에서 망설였듯, 나는 그리고 이 사회의 언론은 종종(사실 항상) 누구보다 앞서 인권을 모르는 척하고 짓밟는다.

“언론은 한 번 보도하면 끝이잖아요. 그 다음은 우리 몫이죠.” 

지난해 만난 한 취재원의 이야기가 한동안 잊고 지낸 죄책감을 끌어 올렸다. 피해자로서 꽤 여러 언론과 접촉했던 그였다. 나를 만나기에 앞서 그는 주류 언론 소속의 기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일정이 잡혔지만, 해당 기자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기자가 올 것이라는 소문은 이미 나버린 상황이었다.

그 기자는 아마도 피해를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는 종종 이런 피해를 낳는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즘 무척 주목받는 한 언론사에서 일했을 때였다. 프리랜서였던 나는, 담당 기자를 대신해 사례자(취재원)를 인터뷰했다. 그의 상황을 온전히 보도하지 못한다는 점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간절했던 그는 취재에 응했다. 후속 취재를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그의 도움으로 기사는 간신히 전파를 탔다. 문제는 그 뒤였다. 취재원이 처한 문제의 핵심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해당 언론사는 추가 보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참이 지난 뒤, 그를 다시 만났다.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고,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이었다. 

언론 보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사실 적지 않을 것이다.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만해도 또다른 대형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중소기업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피해 기업주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취재진의 일정에 맞추려고, 오밤 중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중 한 사장님의 사연은 취재진의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 누락됐다. 방송되지 않는다는 소식은 방송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통보됐다. 소송에서 이기기 전까지, 그 사장님은 대기업으로부터 또다른 피해를 겪어야 했다. 전파를 탄 사장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추가 피해가 이어졌고,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취재원의 몫이었다. 

좋은 뜻에서 시작됐던 취재도 이렇게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가해자는 물론이다). 그렇지 않은 기사들은 어떨까. 

사실 이 글은 지난해 여름 시작되었다. 박 아무개를 시작으로 남성 연예인을 가해자로 지목한 성범죄 사건이 연일 보도되던 지난해 6월 무렵 말이다. 타사 보도를 지켜보는데,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피고소인(피의자)의 신분이 가감 없이 노출됐고, 혐의 역시 그대로 폭로됐다. 

언론들은 알면서도 인권을 무시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피고소인(당시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한 결과가 고소인(당시 피해자)의 인권 침해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고소인들의 신상이 공개됐고 비난은 비등했다. 인권 침해의 한 가운데서 사건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지위가 뒤바뀌는 반전까지 거듭했다. 반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남겨진 것은 만신창이가 된 사건 관계자들 뿐이다. 하루 종일 떠들어대며, 사건 관계자들을 할퀴었던 언론들은 무척이나 무사하다.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2014년 12월 개정판)을 무시한 것이지만, 하루종일 떠들어대며 사건 관계자들을 할퀴었던 언론들은 무척이나 무사하다. 인권보도준칙에는 범죄 보도와 관련한 항목이 즐비한데, 헌법에 보장된 무죄 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지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건을 다룰 때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범죄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성폭행) 피해 상황을 설명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등 구체적인 규정 또한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모든 것을 공개했다. ‘성범죄 피해 신고 = 공개될 수 있음’을 경고하듯이 말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피의자 박근혜와 최순실에게는 인권이 없는 것일까. 해방 이래, 아니 단군 이래 최대 게이트를 벌인, 민주주의를 싸그리 무시해버린 이들의 인권까지 고려 대상인걸까. 물론 이들의 범죄는 위에 제시한 사례와 결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인이며,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다. 자신에게 잠시 부여된 권한을 위법적으로 사용했고, 국민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았다. 대답을 망설였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와 최순실, 두 죄인에게도 인권은 있다고 말해야 한다. ‘언론의 인권 침해’라는 커다란 문제에 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탐사 보도 전문 언론인 모임인 ICIJ의 보도 윤리에도 이러한 내용은 포함돼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라 - 공식적인 기소 전에 범죄 용의자의 신원을 지목하는 데에 신중하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해자의 권리와 대중의 알권리에서 균형을 잡아라.” 공직자의 비위, 비리 사실을 보도함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우리 언론은 지금 괜찮은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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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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