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알파고'에게 맡기시라

민주주의의 후퇴를 야기하는 20대 총선 공천상황

오마이뉴스 2016.3.16.


박영민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자원활동가


청년이 고시에 몰리는 건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지와 내가 채점할 수 있는 명확한 답안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붙고 떨어졌는지, 어떤 기준인지,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알 수 없는 기업의 선출 과정에 지쳐 버린 탓도 있다. 16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준비한 더불어민주당 청년비례후보들도 이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식물국회'라는 평이 무색할 정도로 19대 국회의 마지막은 뜨거웠다. 전 국민을 집중 시킨 필리버스터부터 선거구 확정까지, 20대 총선이 다가오는 것을 의식한 정당들의 초조함이 곳곳에 뿌려졌다. 마지막 장식에 박차를 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20대 총선의 공천 상황은 아비규환이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지역이 많고, 상향식, 개혁을 천명한 초반의 패기와는 다르게 이번 공천과정 역시 '깜깜이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거구 확정이 늦어지면서 후보를 결정할 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대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비단 늦은 결정뿐만은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상향식 공천을 통해 정치신인을 길러내고, 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할 것을 약속했지만 정작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의 마찰이었다. 심지어 살생부, 욕설 파동으로 당내 공천과 관련한 어두운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상황도 심각하다. 뚜렷한 방향도 없이 선거 관련 당규의 폐지와 유권해석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위임하며 '입맛대로 공천'이라는 우려를 샀고, 이해찬을 비롯해 몇몇 후보가 당의 결정에 불복해 탈당까지 감행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근거와 기준 없는 공천으로 비판받고 있다. 또한 정청래 의원 컷오프와 관련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박영선 의원과 이철희 전략기획본부장이 공천과정에 개입했다는 논란을 사기도 했다. 


더민주당의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생 신분의 필자가 보는 더민주당의 청년비례대표 공천상황은 처참하다. 모호한 기준과 각종 특혜 논란과 관련해 합격자 4명 중 2명이 퇴출 및 사퇴로 자리를 떠났고, 2000여 명의 당원이 공천관리위원회 위원 전원 사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명서를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자신 있게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청년정치인들은 차라리 '공천고시'라도 준비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5분 면접'으로 청년정치인들에게 모욕을 준 것과는 상반되게 두 정당은 개혁공천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개혁은 이전 국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18대 총선 공천에서 한나라당은 현역의원의 39%를 탈락 시켰고 19대의 경우 46%였지만 20대 총선 공천의 경우 14일 기준으로 현역의원의 탈락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야당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18대 32%, 19대 37%를 기록했지만 20대 총선은 24%에 머물러 무엇이 개혁이라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힘없는 청년정치인에게 보여준 잔인함과는 달리 '최악의 국회'라 소개되는 19대 국회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다.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후보를 결정짓는 공천이 이러하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계파갈등과 '깜깜이 공천'의 반복이 1978년 단 한명의 후보로 진행된 대통령 선거를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개혁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두 거대 정당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잘할 자신이 없다면 물러나야 한다. 발전은 못할 망정 후퇴를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더 이상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 차라리 '알파고'에게 맡기시라,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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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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