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찌라시'가 대통령 기록인가?

앞뒤 맞지 않는 '유출 문건' 스캔들
프레시안 2015.10.21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

서울중앙지법 형사협의28부는 지난 15일 대통령 기록 무단 유출 관련 선고 공판에서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무죄, 박 경정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날 선고 가운데 법원은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 유출이 '대통령 기록물 위반'이라고 기소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조응천, 박경정 사건 관련자 전부를 무죄 선고했다. 아울러 조응천 전 비서관의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향후 대통령 기록물과 관련해 이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향후 대통령 기록물 범위에 관한 법적 해석을 한 거의 최초 판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어떤 의미가 있고,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어떻게 법 적용을 해야 할지 분석해보자.

논리가 맞지 않는 청와대  

공공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5조에는 기록물 관리의 원칙으로 '공공기관 및 기록물 관리 기관의 장은 기록물의 생산부터 활용까지의 모든 과정에 걸쳐 진본성(眞本性), 무결성(無缺性), 신뢰성 및 이용 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리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진본성과 신뢰성이다. 

진본성이란 책임성 있는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생산한 기록이 맞는지,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에서 기록이 위조되지 않은 채로 관리되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이다. 신뢰성은 해당 업무 과정에서 생산된 문건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여부와 함께 위에서 언급한 4가지가 부합할 때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 정윤회 씨.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면 이번 사건을 여기에 적용해보자. 애초 청와대는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에 대해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이라고 밝혀 그 내용이 공인되지 않았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청와대에서 이 문건을 공식적 결재 라인을 거치지 않은 비공식 기록이라는 것을 뜻하며(진본성 결여), 내용이 청와대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신뢰성 결여)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정은 이러함에도 청와대는 "찌라시도 대통령 기록물에 해당한다"며 조 전 비서관 등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 관련 기록들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상황을 반성적으로 보고 제정된 것"이며 "전자 파일이 존재하고 종이 원본도 이관돼 보존되고 있다면 추가 생산된 문서까지 기록물로 분류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청와대에서 공식적인 문건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록물까지 대통령 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재판부의 판결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대통령 기록물법에는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 또는 유출한 경우 징역 7년 이하로 처벌하게 되어 있다. 이는 처벌 자체가 매우 엄중함으로 그 적용도 매우 신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검찰은 "원본과 같은 내용의 복사본이나 추가 출력본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유출이 돼도 괜찮다는 논리"라며 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위 검찰의 항소 내용은 청와대 스스로 '유출 문건이 짜리사에 불과하다'고 밝힌 내용과 논리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기록물법상 유출 혐의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공무상 기밀 누설 등도 내용의 정확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 적용이 쉽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의 '이지원 시스템' 유출은?  

이와 유사한 사건은 또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대통령 기록 열람권 확보 차원에서 '이지원 시스템'을 복사해 봉하 마을에 있는 관저에 보관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 관계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지원 원본 기록을 유출했다며 관련 기록 관계자 등을 대통령기록물법으로 고발했다.

이 사건도 여러 가지 해석의 쟁점이 있었다. 우선 이지원 등에 보존된 기록은 종이 기록이 아니라 전자 기록이다. 기록학계에서는 전자 기록에 원본 기록은 없으며 진본 기록만 있다고 하는 것이 통설로 통한다. 가령 노트북에서 생산한 기록을 USB로 보존하고 동시에 이메일로 보냈을 경우 원본 기록을 따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진본 기록 여부는 앞에서 밝혔듯이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에서 기록이 위조되지 않은 채로 관리되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따진다. 위의 경우 합법적 틀 내에서 대통령기록관에서 관리되고 있었던 이지원 시스템이 진본 기록이 되며 봉하 마을로 유출된 기록은 사본 기록이 된다. 이 사건의 경우 대통령 사본 기록을 유출할 경우 법 적용을 어떻게 할지 따지면 될 문제였다. 

향후 대통령 기록물 관련 사건이 일어날 경우, 법 적용을 신중해야 한다. 잘못 하면 '찌라시'에 불과한 문건이 영원히 보존해야 할 '대통령 기록'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호에는 "대통령 기록물의 보호·보존 및 활용을 위해 효율적 관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정윤회 문건은 대통령 기록으로 대통령기록관에서 보존해야 할 대통령 기록이 되고 후세대에 이 문건을 대통령 기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osted by 바꿈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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