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청년 좀 이용하지 마세요

한겨레 2015.10.01


성영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활동가

친구는 항상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가고자 하는 진로도 뚜렷해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취업 준비를 했다. 대학교를 수료한 뒤(요즘은 취업에 불이익이 될까봐 졸업을 잘 하지 않는다) 약 1년간 학원을 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기업에서 일하게 됐다. 3개월 계약직이었다.

3개월이 지나자 추가로 3개월이 연장됐다. 일한 지 4개월 즈음 됐을 때는 자리가 생겼다며 1년을 추가로 계약했다. 친구는 저녁에 일이 끝나면 또 학원에 간다. 팀에서 계약직이 자신을 포함해 총 세 명인데 한 명은 연장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나는 2년만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계속 계약을 연장한 것을 보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나마 주변에 취업을 한 친구는 이 친구 한 명뿐이었다.

작년 이맘때부터 정부는 청년 등 미래세대를 위한 시대적 소명으로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천명했다. 핵심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20대인 나에게 가슴 뛰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안에 비정규직 보호는 없었다. 대신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수 있고, 파견노동자의 허용 범위를 지금보다 넓히자는 주장만 있었다. 정부의 비정규직 차별 철폐 대안에 따르면 나는 이제 친구에게 2년이 아니라 4년을 기다려보자고 말할 수 있게 되고, 친구는 감사하게도 무려 4년씩이나 한 직장에서 눈치 보며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비정규직의 요건을 더 악화시키면서 어떻게 이중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일까? 정부의 해결책은 기묘했다. 답은 정규직의 권리를 줄임으로써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중산층과 빈곤층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산층을 가난하게 만들자는 것과 다름없다.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게 하고 임금, 노동시간, 퇴직수당 등에 대한 취업규칙을 더 쉽게 변경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전문적 용어로 ‘유연화’라고 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8월17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노동시장도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노동유연성이 매우 높은 사회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덴마크인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덴마크 수준에 가깝다고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로 인한 사회문제를 적극적 사회안전망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하는데, 한국은 이 안정성이 선진국 가운데 최저에 머물고 있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우선 안정성을 대폭 높이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아왔다. 노동유연화는 당장의 기업 경영수지에는 유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국민의 소득안정성이 떨어져 소득 감소, 가계 부실, 빈부 격차 등이 발생해 국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청년들은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인 한국 사회에서 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스펙 쌓기와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린다. 그렇지 않아도 한평생 집 한 채 사지 못하고 학자금 대출이나 갚아야 하는 형편에 2년 혹은 4년 동안 눈치 보며 일해서 어렵사리 정규직으로 전환되어도 정당한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쉽게 해고된다면 대체 어디에 희망을 걸라는 말인가.

정부는 이러한 모순을 포장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내세우며 이것이 청년 고용의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로 늘어날 재원의 규모가 허황하다는 근거가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고 설령 비용이 남을지언정 그것이 청년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청년 일자리는 이런 식의 끼워맞추기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이루어져야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청년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 혹은 당과 이념을 위해 청년을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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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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