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이 낡은 틀? 공부 안 한 사람들 이야기"

바꿈 '청년도서' 필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만나다

오마이뉴스 2015.09.29

 

최수지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청년도서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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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과의 첫만남 9월 8일 '바꿈' 임시총회 뒷풀이 자리
ⓒ 최수지



"판교에서 온 이종석입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낯익은 분께서 술잔을 들고 우리 테이블로 건너왔다. 지난 8일,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아래 바꿈)의 임시총회 뒤풀이 자리였다. 북한학과 학생, 통일교육 강사, 시민단체 간사, 인권 관련 연구소 활동가 등 다소 특이한 신상(?)을 늘어놓는 우리의 자기소개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유난히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던 '그분'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청년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바꿈 청년도서 제작 프로젝트'에 '평화·통일 분과'로 참여하고 있는 필진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먼 주제인 '평화·통일'을 다루는 청년들을 어여삐 여긴 분은 다름 아닌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장관)이었다. 그는 바꿈의 회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고, 앉은 자리에서 30여 분간의 이야기가 오갔다. 대화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다음에 판교에 있는 세종연구소에 놀러 오면 아예 3시간의 자체 세미나 후 저녁을 사주겠다"며 깜짝 제안했고, 우리는 즉석에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이렇게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만남이 성사됐다. 

그로부터 2주 후, 우리는 세종연구소에서 이종석 수석연구위원을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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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연구소 회의실 열띤 토론 중인 이종석 전 장관과 바꿈의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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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회의실에서 시작한 대화는 도중에 횟집으로 이동해서까지 장장 6시간 반 동안이나 계속됐다. 세대를 막론하고 '북한과 통일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맺어진 유대감은 우리의 대화를 끊임없이 이끌어 낸 원동력이었다. 전직 참모이자 원로 학자이며, 인생 선배이자 '또 다른 청년'이기도 한 그와 가슴 깊이 마주했던 시간, 그 속의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전직 참모'와의 만남

이 수석연구위원은 참여정부 시절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자주와 평화의 철학을 실현하고자 했던 참모였다. 2003년 1월 1일 인수위원을 시작으로 NSC 사무차장, 그리고 통일부장관을 거친 '북한 통(通)'이자, 실제 남북관계 분야에서 막강한 '정책 권력'을 행사했던 전문가였다. 

그는 우리가 던지는 초보적인 질문에서부터 이른바 '답이 없는' 물음까지 진지한 태도로 들어주었고, 탄탄한 이론적 지식과 생생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막힘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 중국과 북한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 앞으로 북·중관계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북·중관계의 이중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서로 다른 전략적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북한 정권을 냉정하게 대하는 듯 보이나, 동북 3성을 비롯한 지방정부 차원에서 북한과 이뤄지는 인력교류는 엄청난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기업들은 북한의 지하자원에 대한 전통적 관심을 넘어 노동력에까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 중국에 있는 북한 노동자의 임금은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의 2~3배를 웃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섬유 공장에 도급을 하는 방식으로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인센티브제'를 택하고 있다. 만약 20일 이내에 생산을 끝내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실제 북한까지 포함한 전략이다. 중국과 북한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으니 앞으로는 '정반합'의 원리대로 서로 당기는 시기가 올 것이다. 내년 말까지는 반드시 북중정상회담 있을 것이라고 본다."

- 중국 열병식에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 열병식이 김정은의 첫 외교 무대 데뷔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아직 외교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첫 무대에서 '여러 지도자 중 한 명(one of them)'이 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를 들면 북중회담, 남북회담, 북일회담 레벨 정도는 되어야 했다."

- 6자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세간에서는 6자회담을 '낡은 틀'처럼 보기도 하는데. 
"6자회담은 결코 낡은 틀이 아니다. 때때로 공부 안 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곤 하는데(웃음). 9.19 공동성명 합의문만 이행되면 사실상 우리가 목표로 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비핵화는 물론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 국제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까지. 굉장히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합의였다. 

9.19 공동성명 합의문이 그대로 이행만 됐다면, 지금쯤 매우 많은 것이 이뤄진 상태일 것이다. 이후 미국의 파기로 흐지부지되고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처럼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 협력 문제는 서로 간의 '적대적 불신 구조'가 깨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남북 합의(제도적 해결)와 불신 해소(실천적 과정)는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져있는 것이 문제다. '북한은 밉고 혐오스러운 존재니까 그냥 때리기만 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해있다. 미국은 수년 간 대북압박 정책, 전략적 인내 등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을 끊임없이 '악마화'하면서 같은 논의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는 성찰주의적 의견이 없다. 미국은 합리적인 국가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조건 없는 복귀'를 이야기하다가, 이제는 복귀의 조건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틀 자체가 6자회담이 아닌가? 일단 나와서 문제를 풀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를 나오기 위한 수단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채찍질만 무의미하게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또 언론은 가만히 있고. 모두가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 한미동맹의 방향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불균형한 한중관계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다만, 균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열병식에 참가한 것을 둘러싸고 거대언론은 이를 하나같이 칭송했다. 사실 이런 것들이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이 일은 한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나름의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본다."

'원로 학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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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띤 토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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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5일 통일부장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본연의 임무인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행정·정책수립자의 역할 이상으로 그가 훨씬 더 오래 간직해왔던 이름은 바로 '학자'였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 전략 차원에서 행해지던 '북한 연구 1세대'가 저물고, 본격적으로 북한을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한 '북한 연구 2세대'에 속하는 그였다. 

북한학과 신입생 시절 그가 20여 년 전에 쓴 <조선로동당연구><현대북한의 이해>를 읽으며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학문적 발자취를 함께 되돌아보는 일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20여 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북한학이기에, 선행 연구자의 개척담을 듣는 일이 더더욱 귀중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연구 후세대에 속하는 우리에게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졸업 후 맞닥뜨린 이상과 현실 괴리라는 가장 '키치스러운' 걱정에서부터, 하다못해 연구주제에 대한 고민까지 늘어놓는 우리들의 어리광(?)을 그는 스스럼없이 받아주고 보듬어주었다. 새파란 후학들을 위해 꿀 같은 일요일 오후와 저녁 시간대를 통째로 반납한 그는 진정한 '스승'이었다. 

- 북한·통일 분야의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본래 고시를 하기 위해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생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학부 시절, 성대사회과학연구소에서 주최한 통일 논문 현상공모에 '주한미군철수'를 주제로 낸 논문이 석·박사생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이는 앞으로 대학원 진학할 때 정치학과를 선택하고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처럼 문제의식은 우발적인 계기로 시작되는 것이다. 연구 영역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넓어진다. 대신 공부할 때는 '몰입'을 해서 정말 열심히 파야 한다."

- 군부정권 시절 '주한미군철수'라는 주제의 논문을 쓰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맞다. 그러나 사실상 '자주국방'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먼저 꺼냈던 이야기다. 카터 행정부가 주한미군철수를 공언하자 박정희 정권에서 자주국방을 하자고 외쳤다. 그 시절 자주국방 노선을 긍정했던 군이나 예비역 장군 등이 나중에 참여정부의 자주국방 정책을 위험시한 것은 크나큰 자기모순이다."

- 연구 논문 주제를 잡기가 너무 어렵다. 
"나만의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기 안에서 핵심이 되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한 뒤, 그다음에 비교를 해야 공부를 할 때 지겹지가 않다. 또한, 선행연구는 아주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자신의 글을 쓸 때는 2차 참고문헌은 모두 배제하고 1차 자료와 내 생각만 가지고 시작한다. 2차 자료는 오로지 비교할 때만 쓴다. 

하나의 연구가 탄생하는 데 수많은 연구자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다. 만약 자신의 주제를 이미 다룬 연구가 있다면 반드시 인용해야 한다. 요사이 나오는 연구들을 보면 마치 새로운 연구인 양 내놓는 것이 많은데, 사실 이미 다 나왔던 것들인 경우가 많다. 뼈아프지만 이미 이뤄진 연구는 인용을 해주고, 거기에 자신만의 생각을 보태야 한다." 

-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나.
"공부할 땐 그저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을 걸을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오로지 공부, 연구 주제 생각밖에 없었다. 미래에 무엇이 되겠다, 교수가 되겠다, 이런 크나큰 비전이나 목표를 세운 적도 없었다. 한 번도 이 공부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런 걱정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우직하게 공부했고, 그것이 결국 좋은 연구로 이어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1995년 <조선로동당연구>가 탄생했다. 20년이나 지난 연구이지만 지금도 토씨 하나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때 했던 연구가 결국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영향을 주었다."

- 시민사회를 위한 통일 논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다행히도 이제는 이 질문에 답변하기가 아주 쉬운 시대가 됐다. '통일은 먹거리다'라고 설명하면 된다. 통일대박론의 가장 큰 공로는 이전까지는 할 수 없던 통일 이야기들을 이제는 너무도 간단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통일대박론 덕분에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통일의 좋은 점들을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게 됐다."

- 통일이라는 정치적 의제의 한계가 뚜렷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북관계와 통일을 말하는 데 있어서 보수와 진보와 같은 당파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는 분단체제 특성상 보수와 진보의 역할이 모호하게 흘러온 부분이 많다. 나라의 주권을 지켜야 할 보수가 군사주권의 핵심인 전작권 환수를 반대했고, 진보는 오히려 보수의 가치인 민족 통합이나 국가적 통일 문제에 집착하면서 다양한 진보적 의제를 도외시한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좌우 이념적 차원을 넘어선 포괄적 시각이 필요하다."

'또 다른 청년'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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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홍명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 추재훈(동국대 북한학과 학생), 이종석(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수지(통일부 통일교육원 강사), 임지훈(통일교육문화원 강사)
ⓒ 최수지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았다. 삼엄했던 80년대, 학생운동의 변방에서 후배들에겐 술을 사주며 응원하고, 대신 학교 도서관에서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했던 자신의 용기 부족을 후학들 앞에서 담담하게 고백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청년 이종석'과 시공간을 초월한 근사한 조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그는 부끄러움을 연료 삼아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누적된 성찰을 바탕으로 더 크고 당당하게 행동할 줄 아는 그의 실천가적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석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한 특별한 자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 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고 공통된 위안을 얻었다. 이 날 우리는 각자를 옭아매는 '원년 대 청년', '스승 대 제자' 등의 규정을 넘어 막힘없이 소통했고, '평화·통일'이라는 키워드가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주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 속의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를 바꾸는 꿈, 진정한 평화를 향한 우리들의 '바꿈'은 어쩌면 이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세대와 지위를 넘어 '문제의식'과 '공감'으로 연대하는 우리의 움직임은 결코 작지도, 미약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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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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